
-시집 <갈대 속의 비비새> 자서(2002)
 
(월간문학 통권 618호 2020.08.01. 보정본)
(한맥문학 통권 307호 2016.03.25. 보정본)
주근옥
19세기 후반 오귀스트 콩트(Auguste
Comte)와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등의 사회적 진화론과 같은 실증주의가 횡행하고 있을 때,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조에 바탕을 둔 A. 비슬로프스키(A. Veselovskij;
1838∼1906)의 문학관이 창궐하고 있었다. 이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비합리적 우격다짐의 딜렘마, 독단적 결론, 의사시적(擬似詩的; pseudo-poetic) 장황함 등의 반실증주의적인
경향이 일어나 B. 자르크사(B. Jarxo)가 비난하였듯이 학문을 서정시로 분류해야 할지 과학이나 언어학이나
사회학으로 분류해야 할지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 속에서, A. 비슬로프스키의 제자 중 좀 더 야심적이고 방법론을 의식하는 학자들이 여기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시도를 과감히 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V. 피리어트(V. Peretc)를 들 수 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그의 스승과는 달리 개성(개별적·인위적 의미)을 이데올로기와 동등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시나 법적 서류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확립하지 못한, 다시 말해서 문학의 특성인 상상력의 문제를 확정하지 못한 그의 방법론적 견해는 전통적인 절충주의에 너무 심하게 감염되어 있어서 호기심 많은 문학도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절충주의는 오늘날 한국문학의 현실과 같지 않을까? 상상력을
개별적 의미의 신기(神奇)로 생각하고 또 이것을
창조적 행위로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찍이 T. S. 엘리엇(T.
S. Eliot)은 이러한 신기에 대해서 언급한 바가 있다. 그에 의하면, 어떤
예술가가 그의 위대한 선배들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그의 방법론(신기)에 대한 발견이 무시당하자
그것이 자극이 되어 공격적으로 나오게 되고, 공격하자면 이론이 필요해진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백만금의 광고비를 들여 서푼 가치의 예술을 판 것과 같다고 했다.
그렇다. 러시아 젊은 문학도들도 이러한 것을 깨닫고,
다시 말해서 상상력에 대해서 깨닫고, 실증주의 시대에 A. 비슬로프스키의 문학관에 압도당했던 A. 포트브니아(A.
Potebnja; 1835∼1891)를 찾게 되었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언어를 외연적 범주로 몰아넣는 관념의 하녀 또는 꼬리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는
언어로 구성된 기호 자체의 최상의 자율성을 이룩하려고 노력하며, 또 언어의 복잡한 의미론적 구조와 그것의 함축적 그 풍부함 속에 내재하는 잠재력(상상력)을 실현시키려고 노력하며, 이러한
해방감은 시속에서 가장 가깝게 실현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젊은 문학도들이 여기서 만족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압도하고 있는 신문법학파
이론의 일방적인 역사주의를 공격하면서, 그들의 스승들을 뛰어넘어 새로운 문제들을 탐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하기를 더욱 더 열망하였다. 이렇게
그들이 기능적 접근을 옹호하게 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의 영향이었다. 그들은
언어를 기호들의 중심체제, 의미가 담겨있는 개별적 표현의 본질적인 원형으로 보았으며, 또 언어에 보편적인
기본문법 범주들의 논리적 기능을 면밀히 조사하고, 비교언어학의 경험적 자료의 차원을 초월해서, 순수한
보편적 문법과 그 자체로서의 언어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비로소 에드문트 후설의 생활세계, 다시 말해서 키네스테제(Kinesthese)적 자유운동의 세계(Doxa+Monade)를
발견한 것이다(한전숙: 현상학 참조). 이 운동이 1910년대에
조직적으로 구체화되기 시작하여, 마침내 1915년에는 모스크바 언어학회와 페테르스브르그의 시어연구협회(Opojaz)가 결성되어 러시아 형식주의가 탄생된 것이다(러시아 형식주의: 빅토르 어얼리치/박거용 역 참조).
한편 일본의 경우,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
俳人)는 나츠메 소우세키(夏目漱石, 1867∼1916, 소설가)와 마츠야마(松山)에서
같은 해에 태어난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는데, 그의 공적은 하이쿠(俳句)나 와카(和歌)를 소재로 메이지(明治) 문단에
문예비평 형식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단(歌壇)의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도전을 통해서 밖에 실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바쇼(芭蕉)를 절대적인 권위로 삼지 않고 부송(蕪村)의 사실적인 구를 칭찬했다고 한다.
五月雨(さみだれ)や大河(たいが)を前に家二軒
유월 장마비여 큰 강물 앞의 집 두 채
―부송(蕪村)
あちら向き古足袋(たび)さして居る妻よ
絲瓜(へちま)さきて痰(たん)のつまりし佛(ほとけ)かな
저쪽을 보며 버선을 신고 있는 아내여
수세미 피고 가래에 목이 막힌 돌부처인가
―잇사(一茶)
그리고 부송(蕪村)보다는 농민이나 조닌(町人,
도시에 사는 상인계급)의 일상생활(이
점에 대해서는 20년대의 金石松의 "문학의 실생활론"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졸저
「석송 김형원 연구」 참조)에 다가가 있는 잇사(一茶)와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부송과 잇사의 표현이 모두 사실주의적이지만 잇사가 좀 더 서민의 일상생활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와카나
하이쿠가 "5·7·5·7·7"의 31자와 "5·7·5"의 17자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는 상황에서(字余り句가 있기는 하지만. 예: 枯枝に烏のとまりたるや秋の暮-松尾芭蕉),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 형태(자수율)를 교묘하게 변형하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 안에서 표현 방법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겠다. 그러므로 가토우 슈이치(加藤周一)에 의하면 마사오카 시키는 새로운 시 형태의 발명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학의 역사를 재평가하고 그러한
일로
가치전환의 기초를 세우면서 문예비평의 창조적 기능을 훌륭하게 발휘해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예언한 것처럼 31자와
17자의 엄격한 율격 안에 "정신을 바꿔 넣은"
와카와 하이쿠는 일본 서정시의 주요한 형식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주의가 단순히 사실만을 포착할 때에는 시로서의 가치는 없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적인 랑그 차원의 사전적 의미를 잠재시키고 그 심층에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때(경험론과 합리론의 결합)
우수한 와카나 하이쿠가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의 정형시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장황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너스레가 아니다. 110년 전의 러시아 문학이 절충주의에 빠지고, 일본 문학이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처럼 나 또한 그 수렁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형식주의자들처럼
또는 마사오카 시키처럼 에포케(Epoche)를 시도해보고자 하는, 즉 향가의 삼구육명(三句六名: 素節)과 사설시조의 연극성(素劇詩)을 되살리고, 나아가 산문화된 자유시의 운율을 복원하면서, 이 모든 것을 길항구조(antagonistic structure)의 인식론적 총체성으로 환원하는 그 우화(羽化)를 꾀해보고자 하는 몸짓일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의 굵은 동아줄이 되어준 것은 에드문트 후설, 모리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의 현상학과 미니멀리즘(後素詩學)의 토대인 A. J. 그레마스(Algirdas
Julien Greimas)의 기호학이라는 것을 굳이 감추지 않겠다.
구조언어학과 시학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밀접 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양자에
있어서, 기술된 대상은 언어학적으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언어학과 시학의 그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동일한 기초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함으로써, 우리를 정당화하는 관계의 체계로(예를 들어, 복합체계로) 중요시하게
된 이 대상의 존재자의 형식을 고찰하는 방법도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조차도 동일하다. 그리고
시학에서 사용된 기술절차는(적어도 최초의 프레이즈 안에서) 그저
언어학으로 해결하는 절차의 선형사상(線形寫像)과
그것의 확장일 뿐이다. ―A. J. 그레마스(구조언어학과 시학의 관계)
각주: 위 도표는, 주근옥, “한국문학의 판단중지(Epoche)를
위하여(조선문학 통권 282호, 2014.10. 01. 보정본)”의 아래 도표를 참조하라.
SUR LES ROUES/Gueune-Ok JOUH
구조의미론(Structural Semantics); A.J.Greimas/주근옥 역
의미론선집(On Meaning); A.J.Greimas/주근옥 역
정념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Passions); A.J.Greimas, Jacques Fontanille/주근옥 역
미니멀리즘; 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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