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론

 

(문예운동 통권 126호, 2015년 여름호: 2015. 06. 01. 재게재)


장수익

(한남대학교 국문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주요 저서로는 한국 근대 소설사의 탐색」, 한국 현대 소설의 시각」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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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근옥 선생의 한국시 변동 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시문학사, 2001)를 경탄의 마음으로 읽었다. 개화기에서 1920년대까지의 역사적인 격동의 시기에 일어난 한국 현대시의 태동 과정을 다룬 이 저서는 치밀한 이론적 틀을 기반으로 문학사적 사실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칸트에서 헤겔, 보들레르에서 엘리엇, 바르트와 그레마스, 그리고 임화에서 김윤식과 김용직에 이르는 숱한 철학과 문학사의 저작들이 풍부한 시사 자료와 어울려 그의 저서 속에서 자유롭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서울 중심의 학문적 풍토가 너무도 굳게 자리 잡고 있는 현금의 학문적 상황을 되돌아볼 때, 이 저서는 지방에서 활동하는 국문학 연구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연구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현대문학 연구의 전반적인 발전에도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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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이 저서의 가장 큰 문제 의식은 한국 현대시에서 어떻게 모더니티 곧 근대성이 나타났는지 드러내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선 기존의 연구사를 세밀하게 검토한 뒤, 세 가지의 명제를 내세운다. 그 첫 번째는 개화기 시가의 변화형태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개화기 시가에 상반된 성격의 두 흐름, 곧 자체적인 발전을 통해 변화한 진화시(사설시조·개화시·개화가사)의 흐름과 외래 시와의 접촉을 통해 나타난 전파시(찬송가·창가·신체시)의 흐름이 양립하고 있었음을 제시한다. 두 번째는 모더니티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헤겔 철학 특히 정신현상학의 구도를 따라 절대 이성에 도달하기 위한 주체의 자기 의식을 모더니티가 발현되는 경로로 간주한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하버마스의 논의를 빌어 그러한 절대 이성은 시에서 심층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자유이자 가상 세계로서 모더니티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세 번째는 이 시기 시사의 중요한 문제로 간주되어 왔던 자유시 성립과 관계된 것으로, 저자는 ‘현대시 = 자유운율 및 개성적 의미’라는 종래의 정통적인 현대시사 등식을 비판하면서 정형률이냐 자유율이냐에 관계없이 ‘심층의 새로운 의미’가 있으면 현대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개화기 이후 192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 현대시의 전개 과정은 바로 이 ‘심층’을 형성하는 문제에 핵심이 있었다고 본다.

이상의 세 명제를 염두에 두고 이 책의 이후 논의를 보면, 매우 정합적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저자는 첫 번째 명제와 관련하여 개화기에 드러난 우리 시가의 변동 과정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논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문학 자체의 내재적 발전(진화)을 중심에 두되 사회여건과의 관련성을 종속요소로 간주하는 입장을 취한 김용직의 논의와, 외래 문화의 이식(전파)으로 우리 신문학의 성립을 드러내려 한 임화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 두 관점 가운데 어느 한쪽의 관점으로 개화기 시가 전반을 두루 설명하는 것이 무리임을 논증하고, 임화의 다소 혼란스럽지만 그 대의는 적절했던 문화에 대한 관점을 가다듬어 철학적 인식론의 틀 위에서 체계화하여 드러낸다. 이러한 시각에 따른다면, 결국 개화기 시가의 변동은 우리 문화의 전통 속에서 일어난 자생적인 발전이라는 특수한 흐름(진화시)과, 외부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고 동화되거나 수용되거나 일방적으로 영향받는 일반적 흐름(전파시)이 모순 관계를 형성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저자는 개화기 시가의 변동을 분석 내지 해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론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체계가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이다. 곧 진화시든 전파시든 모두 이 구조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렇게 공간적--철학적 인식론--으로 분석해낼 때라야 비로소 진화시나 전파시가 지니는 의미의 심층적 맥락이 드러나고 따라서 그것이 지니는 시간 속에서의 의미도 좀더 명확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적절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제 두 번째 명제인 모더니티에 대한 규정 문제를 어떻게 논했는지 살펴보자. 이 명제는 이 논문 전체의 이론적 틀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주관에서 객관으로의 관점(진리의 본성적 관점)과 주관에서 주관으로의 관점(진리의 기준적 관점)이라는 큰 틀로 철학의 흐름을 구분한다. 여기서 전자의 관점은 이미 사실로 존재하는 객관적 대상을 주관이 어떤 식으로 모사·반영하는가 곧 인식 대상과 주관의 관계를 문제삼는 관점인데,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것은 결국 경험 또는 오성의 한계 속에 갇히는 것이 된다(브래들리 및 엘리엇). 반면 후자의 관점은 문제틀을 인식 대상과 주관의 관계에서 주관 내부의 관계 곧 인식 자체의 문제로 해명의 방향을 선회하는 것이다(칸트 및 헤겔). 그것이 독일고전철학의 비판론이거니와, 특히 저자는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드러낸 즉자(타자)와 대자로 구성된 자기 의식이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절대 이성에 도달하는 경로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경험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무한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길임을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하버마스의 논지를 비판적으로 가져와 이러한 자유를 지향해 나아가는 것 또는 그러한 자유 자체야말로 모더니티임을 드러낸다. 한편, 이러한 시각에 따른다면, 모더니티는 현상적인 것이 아니라 심층적인 것이며, 경험적인 표층적 사실에 얽매여서는 절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표층적 사실에서 그러한 심층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역시 논리적인 방법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방법론으로 저자는 바르트와 그레마스의 기호학을 가져오고 있다. 이 두 이론은 모두 표면적인 언술에서 심층 구조를 분석해내는 구조적 방법들인바, 앞에서 진화시와 전파시의 대립을 파악하기 위해 구조기능주의를 가져왔던 것과 논리적으로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핀 모더니티는 일반적인 차원에 있다. 따라서 시라는 특수한 범주 속에서 모더니티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살필 필요가 있는데, 저자는 이를 보들레르의 시와 시론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일단 저자는 시에서 모더니티란 또다른 심층의 작품을 이루는 것, 곧 작품을 중층 구조로 만드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 책의 4장에서 특별히 보들레르를 다룬 이유도 그 때문인데, 이른바 ‘심연’과 ‘상응’으로 요약되는 보들레르의 시와 시론은 그러한 절대지로서의 심층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것은 ‘상응’인바, ‘상응’은 단순히 내용상의 심층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파악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내용적 주제 설정의 차원을 넘어 소리와 소리의 화음으로부터 떠오르는 불확정성의 근원”으로서 심층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첫 번째 명제로써 개화기 시가의 변동 과정을 바라보는 문학사적 시각을 마련하고, 두 번째 명제로써 모더니티의 정체를 규정하는 이론적 틀을 마련하였다면, 세 번째 명제는 이 두 명제를 기반으로 초기 한국 현대시에 대한 실질적인 분석을 하는 것이 된다. 저자는 그러한 분석을 통해 현대시의 정신이 단순히 자유시의 성립에 있지 않고 심층이자 절대로서의 모더니티를 형성하는 데 있음을 논구한다.

개화기 시가의 진화시와 전파시에 대한 분석을 보면, 우선 진화시는 하나의 즉자적 상태로 간주되는 것 같다. 그래서 형태면에서 어느 정도 발전은 이루었으나 의미상 단층 구조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어서 심층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파시는 좀 복잡한데, 찬송가의 경우는 서구시 형식을 가져왔으나 심층 의미를 가지지 못했으며, 창가 또한 부분적으로는 전통 운율과 접합시켰으나 기본적으로 일본 및 서구의 악곡 형식을 단선적으로 가져오는 차원에 머무른 탓에 단층구조의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신체시의 경우는 모더니티가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선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이승만의 「고목가」는 저자에 의해 최초의 신체시이자 그 나름의 모더니티를 배태한 것으로 저자는 평가하고 있다. 한편 일본 신타이시의 영향을 받은 최남선의 신체시 역시 모더니티를 배태한 것이기는 하나 그러한 모더니티는 일본의 사회진화론적 이념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비판된다. 결국 진화시와 전파시는 헤겔의 관점에 따를 때 자기의식의 낮은 단계에 머무르는 시들로서 모더니티가 태동하는 초기의 혼란상이 나타난 경우라고 하겠으며, 모더니티의 본격적인 형성은 이후의 시들로 미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시 형성 과정의 모더니티는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앞에서 살펴본 세 번째 명제에 따른다면, 모더니티는 내용의 차원이 아니라 형식까지 아우르는, 임화의 개인적 용어로는 ‘양식’의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임화의 ‘양식’ 개념이 소박하게나마 가상세계로서의 ‘자유’(자유운율이 아니다)을 암시하는 것으로 본 바 있거니와, 이러한 자유의 개념이 백대진, 황석우, 김억 등을 거쳐 주요한, 김소월 등의 시에서 형성되고 있었음을 기호학적 분석틀을 이용하여 보여준다. 여기서 특기할 것은 모더니티가 자유 운율의 시에서뿐만 아니라 정형 운율의 시에서도 나타난다고 본 점이다. 곧 저자는 현대시가 진정한 현대시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 운율만 확보해서도 안되고 동시에 개성적인 의미(‘의미의 개별성’)만 드러내어서도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자유 운율과 개성적 의미라는 표층을 넘어서서 존재하는 그 무엇, 그것이 심층이고 의미의 불확정성인바, 그것이야말로 시인과 독자에게 동시에 자유를 느끼게 만드는 것으로서 모더니티가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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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 소개에서 보듯이, 이 저서는 여러 가지 미덕을 지니고 있어 주제 넘게 서평자의 위치에 선 필자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 그러한 미덕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무엇보다 모더니티에 대한 원론적인 접근에 있다. 주지하듯이 모더니티의 특성으로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이 이성중심주의이지만, 그러한 이성은 대개 데카르트가 주목했던 방법론적 또는 회의적 이성에서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이성이 주체와 맺는 관계는 확증성 이상의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곧 주체의 다양한 층위는 사상되고 방법론적 회의라는 일관된 방향으로 구성될 뿐이다. 그럴 때 주체의 다양한 층위와 이성을 연결시킨 것이 이른바 독일고전철학이라면, 주체가 자기 의식의 대립과 투쟁을 통해 절대 이성에 도달하는 과정을 논한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비록 미완이지만 그 작업만으로도 주체 철학의 정점에 서 있다. 이러한 철학적 구도를 이 저서는 문학사의 전개 과정에 도입하고 있거니와, 이를 위해 오성과 이성의 관계를 밝힌 것은 ‘모더니티 = 이성’이라는 이 논문 전체의 주제에 가장 큰 이론적 계기가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하여 우리 문학사가 오성의 한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의 비밀스러운 과정을 밝혀낸 것은 그러한 시도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며, 나아가 우리 현대문학 전체의 가장 큰 화두인 모더니티의 획득 또는 형성 문제에 대한 하나의 잣대로도 될 것으로 여겨진다. 그만큼 저자의 학문적 야망이 크고 깊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헤겔의 철학과 구조주의적 방법론을 일정한 수준으로 융화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헤겔의 절대 이성과 상응하는 것으로서 모더니티를 심층에 놓고, 그러한 심층을 밝히는 방법으로 구조주의적 분석 방법을 가져온 것은 얼핏 보기에 모순이 되지 않는가 하는 의심이 일기도 한다. 구조주의적 방법론은 주체에 반하는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그런 점에서 오히려 현상학적 방법을 가져왔으면 어떨까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구조주의의 방법을 그 속속들이 가져왔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야말로 하나의 하위적 도구로써만 쓰고 있을 뿐이다. 이는 구조주의의 측면에서 볼 때는 방법론적인 후퇴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저서의 전체 흐름에 있어서는 오히려 심층의 모더니티를 논구하는 적절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정형 운율과 자유 운율의 문제를 이성과 오성과 묶어서 기호사각형으로 제시한 부분은 현대시의 본질적 성격을 적절하고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는 보들레르 이후의 현대시의 본질이자 모더니티의 성격으로서 심연과 상응을 들고, 이를 지향해 나가는 운동을 현대시의 세계사적 보편성으로서 제시하면서, 이와 유사한 과정으로 한국 현대시의 형성 과정을 드러내려 한 점이다. 이에 의해 한국 현대시가 어떻게 시적 깊이를 확보하게 되었는가를 치밀하게 재구성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동시에 그러한 한국 현대시사의 운동이 세계사적 보편성과 연결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예전에도 세계 현대시의 보편적 흐름에 맞추어 한국 현대시사의 변동을 설명하려 했던 시도가 여러 번 시도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시도들은 운율 등의 장르 규칙 또는 형식의 측면이나 시적 언어의 개성적 의미 확장이라는 표면적 차원에 머물렀을 뿐이어서, 이 저서가 나오기 전까지는 ‘정신’의 측면에서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것이다. 유한한 가운데서도 무한을 지향해 나가는 그러한 정신을 우리 현대시사에서 보게 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이 저서의 가장 큰 의미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네 번째는 기존 연구들에 대한 성실하고 치밀한 읽기와 비판이 수행된 동시에 그러한 비판을 이론적 측면뿐만 아니라 치밀한 실제 작품 분석에도 훌륭히 연계시켰다는 점이다. 근 600페이지나 되는 큰 저서에서 주제와 관계되는 수많은 논문들을 분별하고 그 긍정적 의미와 한계를 짚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서구의 문학 이론뿐만 아니라 우리 국문학사의 여러 연구들에 대해서도 철학적 이론틀을 바탕으로 그 의의와 한계를 짚어내면서 그 한계를 돌파해 나갈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 논지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궁구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 아래서 개화기에서 1920년대에 이르는 많은 작품들을 실질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분석해 내고 있는 것이다. 흔히 이론적 관심이 승한 논문에서 작품 자체의 분석에 소홀한 경우가 많은데, 이 저서는 그러한 잘못에 빠지기 쉬운 후학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이밖에도 이 논문이 가진 미덕을 꼽자면 한이 없을 것이나, 그것은 이 논문을 직접 읽는 이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이제부터는 서평자로서 좀 의문이 가거나 아쉬웠던 점을 몇 가지 말해 보기로 한다.

첫 번째로는 헤겔의 자기 의식의 변증법을 문학사의 변동 구도에 적용하는 문제이다. 즉자와 대자라는 자기 의식의 분열은 그러한 변증법이 작동하는 첫 단계일 것인데, 처음에 서평자는 진화시와 전파시의 대립이 바로 그러한 자기 의식의 분열과 상동 관계에 있는 것으로 ‘오독’(?)하였지만, 정작 논문의 후반부에서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서평자로서는 진화시를 대자적 자기 의식에, 전파시를 즉자적 자기 의식의 위치에 놓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너무 과도한 일반화나 이론틀의 일방적 적용이라는 위험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어떻든 서평자로서는 이후 우리 현대시가 스토아주의나 회의주의, 또는 불행한 의식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그려내지 않은 것이 아쉬운 것이다(실제로 김소월의 「초혼」 같은 작품은 분석에서 빠져 있는데 이 시는 불행한 의식의 한 예로 설명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덧붙여 말할 것은 진화시에 대한 분석이 전파시에 비해 너무 소략한 감이 든다는 것이다. 진화시와 전파시 간의 경쟁 관계나 대립 관계를 다루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다. 당시 하위 장르들 간의 경쟁 관계를 염두에 두면 자기 의식 간의 대립과 상응하는 문학사적 구도를 마련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의문과 연관된 것으로, 그렇게 자기 의식의 발전이라는 틀이 관철되지 못했기에 ‘심층’으로서의 모더니티가 단순화된 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보들레르의 심연과 상응을 생각해 볼 때 그러한데, 보들레르에게서는 ‘향기’로 언급되었듯이 유현(幽玄)함이 드러나지만, 신체시의 일부나 김억, 황석우 등의 시에서 분석된 바의 심층은 정말 심층이라고 하기보다는 좀 소박한 비유적 의미 차원이 아닌가 생각이 되는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의미나 운율 차원을 넘어 그러한 심층이 나타나고 있음을 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석된 시들이 저자가 논한 바의 심층을 감당하기에는 유현함이 부족한 시들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는 특히 「해에게서 소년으로」에 대한 분석에서 더욱 그러한데, 그 신체시의 심층이 일본의 사회진화론적인 것이라면, 그것은 차라리 심층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아쉬운 점에 대해 저자는 그것이 한국현대시의 ‘태동’ 과정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태동’이란 움직임이며 따라서 방향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고, 그러한 방향성이 섣불리 규정할 수 없는 절대 이성으로서의 모더니티에 있다면, 그것을 향한 문학사의 대립적 운동을 자기의식의 운동과 상응하는 방식으로 밝혀내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아쉬웠던 점이 아니라 희망하는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서평자는 이 저서의 시각으로 볼 때 1920년대 중반 이후의 시들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가지게 될까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가령 카프 계열의 시라든가(그 속에는 단순한 선전시도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도 있다), 아니면 민족주의 계열의 시, 나아가 모더니즘 시에서 형성된 모더니티 또는 심층은 어떤 것일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업이 지속된다면, 아마도 우리는 ‘정신’으로서의 한국현대시사를 알게 되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한국현대시의 가장 큰 비밀과 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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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주근옥 선생의 역작을 어줍잖은 후학의 위치에서 평해 보았다. 이러한 서평 자체를 하는 것도, 그리고 상찬의 말을 덧붙이지는 못할 망정 다소간 비판한 것도 모두 비례라는 것은 알지만, 학문적인 관점에서 너그럽게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러한 서평을 통해 서평자 자신의 이해의 부족함이 드러나지나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저서는 넓고 깊은 것인데, 저자에게 결례가 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이 서평을 마친다.

 

 

참고문헌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기호학적 연구(박사학위논문, 대전대학교 대학원, 2001. 02)

한국시 변동과정의 모더니티에 관한 연구(시문학사, 2001)_주근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