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ra Pound를 중심으로

 

이 세순(문학박사, 전중앙대학교 영문과 교수)

 

I. 서 론

 

무릇 시 치고서 적든 많든 심상(image)에 의지하지 않는 시는 없겠으나, 사상주의(寫像主義) 혹은 사상파(寫像派 Imagism)의 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심상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의 표현을 거의 전적으로 감각적 심상(특히 시각적 심상)에 의존하게 되었다. 사상주의 시인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정확하게 표현할 것을 주장하였고, 따라서 이들은 시인의 감정적 발언을 억제하고 시각적 심상에 의한 간결하고 정확하며 명확한 시를 추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시에 있어서 image의 위치를 새롭게 자각하고 그 의미와 역할을 심화·확장시켜 놓았다. 그러나 이들이 시각적 심상의 도입에 의해 시의 새로운 면을 개척하는 공을 세우긴 했어도, 지나치게 정적인 시각적 심상에만 의존한 나머지 시가 복잡 미묘한 인간의 내면 세계를 전달할 수 없는 큰 결점을 드러내게 되었다. 사상파 시인들은 이러한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궤도수정이 필연적 과제였고, 이러한 필연성은 심화된 이론의 발전을 가져왔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사상주의는 소위 Modernism의 한 핵심을 형성하였고, 시운동으로서의 존속기간은 비록 짧았으나 사상파 시인들이 내세운 시원칙은 현대 거의 모든 주요 시인들의 성숙된 시 속에 아직도 반영되고 있다. 본디 사상주의는 1910년대를 전후하여 몇몇 젊은 영미시인들이 런던을 거점으로 일으킨 하나의 시 혁신운동으로서, 아직도 낭만주의적 색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Victoria와 George왕조 시에 대한 반동이었다. 사상파 시인들은 종래의 시인들처럼 시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다루고자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시인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모든 낭만주의적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고 관념시(poetry of ideas)를 탈피하며, 시인의 감정을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는 데만 관심을 집중하여 시어와 시의 기교를 혁신함으로써 침체된 영국시의 전통에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넣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 사상주의가 영국시의 인습화되고 침체된 전통에 대한 반동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새로운 시 운동으로 발돋움하여 후세의 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T. E. Hulme(1883~1917)과 Ezra Loomis Pound(1885~1972) 등과 같은 뛰어난 지도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시론이 견실한 이론적 뒷 받침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사상파시 운동의 그 이론적 모체는 T. E. Hulme의 반낭만주의사상과 Pound의 중세문학과 영시와 일본 시 등의 동양 시에서 얻은 고전주의시론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Arthur Symons의 The Symbolist Movement in Literature(문학운동에서의 상징주의자, 1899)를 통해 불란서의 상징파시에 심취했던 것을 감안할 때, 사상주의시론에 끼친 불란서 상징파시론의 영향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사상파시운동의 시작은 후일 Pound가 “the forgotten School of Images(이미지의 잊어진 유파)”라고 칭한, Hulme의 주도하에 조직된 Poets’ Club에서 비롯되었다. 이 Poets’ Club은 Hulme을 중심으로 London에서 모임을 가진 젊은 시인들의 조직으로서, 1908년에 결성되었다가 흩어진 후 다시 1909년에 명칭 없이 회동하였으나 1년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이렇듯 Poets’ Club의 활동기간은 매우 짧았으나, 새로운 시적 수법을 찾아내고 견실한 이론으로 청년 시인들의 시작활동을 선도함으로써 사상파시운동을 키워낸 온상으로서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첫 모임은 1909년 3월 25일 Soho 소재의 한 식당인 Eiffel Tower에서 열렸고, Pound가 정식 회원으로 참여한 것은 그 해 4월의 일이었다. 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회동하였고, 그들의 화제는 시적 수법에 관한 것이었으며, 최근 불란서의 상징파가 내세운 vers libre, 일본의 하이쿠(俳句), 히브리시형 및 troubadour(서정·음유시인, 11~14세기 무렵에 주로 프랑스 남부에서 활약함) 등 여러 가지 외국의 시형에 대해 토론하고 침체된 영시의 활로를 개척하고자 애썼다.

이 Poets’ Club의 핵심 구성원은 Hulme, Pound 그리고 F. S. Flint(1885~1960)였고, 여기에 참여한 시인들로는 Edward Storer, F. W. Tancred, Joseph Campbell, Florence Farr 등이 있었다. 이들을 이끌어 간 Hulme은 인습화되고 힘없는 시의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고 “a period of dry, hard, classical verse(건조하고, 견고하고, 고전적인 시의 시대)”의 도래를 예언하였다(Speculations 133). 그리고 1915년 5월 1일자 Egoist지에 실린 “History of Imagism(이미지즘의 역사)”에서 Flint는, Hulme은 언제나 “absolutely accurate presentation and no verbiage(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과 군말이 없는 표현)”을 내세웠다고 회고하였다. 이와 함께 Pound는 모든 불필요한 수식적 요소를 배격하고 산문의 정확성을 시에 도입하려는 시의 산문화를 주창하는 한편, 독자적으로 얻은 시론을 발전시켜 사상주의시의 삼대원칙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Hulme은 그의 시론에 입각하여 “Autumn(가을)” 등 5편의 시를 썼으며, 그 중 “Autumn(가을)”과 “A City Sunset(일몰의 도시)”은 For Christmas MDCCCCⅧ라는 소책자로 Poets’ Club에 의해 출간되었다. 이것이 곧, 비록 ‘Imagist’라는 용어는 아직 사용치 않았지만, 사실상 최초의 사상파 시집이었고, 곧 “Autumn”은 사상파시의 효시가 되었다.

Poets’ Club이 해체되자 Pound는 독자적으로 사상주의 시론을 체계화하고 1912년에는 자작시집 Ripostes(반격)를 출간하였다. Pound는 이 시집에 부록으로 “The Complete Poetical Works of T. E. Hulme(T. E. Hulme의 능란한 시적 작품들)”이라 하여 “Autumn(가을)”을 비롯한 Hulme의 5편의 시를 게재하고 설명을 붙이는 가운데 최초로 “Imagist”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사상주의 운동을 부각시켰다. 그가 꼽고 있는 Imagist들은 H. D. (Hilda Doolittle; 1886~1961)와 Richard Aldington(1892~1962), 그리고 Pound 자신을 뜻하지만, Pound는 Hulme을 사상파시운동의 지도자로 여기며 그의 시를 사상파시의 뛰어난 본보기로 삼고 있다(Pratt 16).

사상주의가 뚜렷한 일개의 시운동으로 성장해 감에 따라 Pound의 눈길을 끈 것은 H. D.의 시가 보여준 명확·강렬·견고함이었다. Pound는 Harriet Monroe에게 H. D.의 시를 보내 1913년 1월호 Poetry지에 발표되게 하고, H. D.의 우수 작품으로 손꼽히는 “Oread(오레이아스; 산의 요정)”가 이듬해 Egoist에 발표되게 주선해 주었다. 후일 Pound는 Imagism이 생긴 것은 H. D.의 시를 위해서였다고까지 술회한 바 있다.

한편, Pound 자신은 일본의 하이쿠를 본보기로 하여 사상주의시론에 의한 대표작이라 할 “In a Station of the Metro(지하철 정거장에서)”를 썼다. 이 시에서 Pound는 일체의 불필요한 수식어구를 배제하고 시인 자신의 감정적 발언을 극도로 억제하여 그것을 정서와의 등가물, 즉 “objective correlative(객관적 상관물)”로 나타냄으로써 완전히 시인 감정의 객관화를 이루었다. 이것은 그의 후배시인 T. S. Eliot에 의해 한층 발전되어 객관적 상관물의 이론을 근간으로 하는 통합된 감수성의 시론을 낳게 했으며, 그 이론적 기초는 Pound가 image를 “일시에 지적·정서적 복합체를 제시하는 것(An ‘Image’ is that which presents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complex in an instant of time.)”(Eliot 4)으로 정의한 데 있다고 믿어진다.

1913년 Poetry 3월호에는 F. S. Flint의 “Imagism”과 Pound의 글 “A Few Don’ts by an Imagiste(이미지스트의 몇 가지 금지사항)”가 실렸는데, 이것은 공식적으로 Imagism의 정의를 내림과 동시에 Imagism이 따라야 할 원칙을 선언한 것으로서, 당시 시인들의 시작활동이 산발적이었던 데다가 이들의 시가 혼성적이며 이화수정(異花受精)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적절한 방향 제시였던 것이다.

한편, 그 동안 Poetry, Egoist 등의 시지에 산발적으로 발표되었던 사상파 시인들의 시가 Pound에 의해 1914년 한 권의 시화집으로 집대성되어 Des Imagistes가 탄생되었는데, 이것이 곧 최초의 사상파시집이다. 여기에는 거의 모든 사상파시에 관련된 시인들이 총망라된 바, 네 명의 창설회원인 Aldington, H. D., Flint, 그리고 Pound와 그밖에 새로운 시인들인 Amy Lowell(1874~1925), William Carlos Williams(1883~1963), Skipwith Cannell, Allen Upward, John Cournos 및 산문작가로 알려진 James Joyce(1882~1941), Ford Madox Hueffer(1873~1939; 일차대전 발발 후 Ford로 개명) 등 모두 11명의 시가 들어 있다. 다음으로 나온 시집으로는 Some Imagist Poets인데, Amy Lowell의 주도하에 1915년, 1916년, 1917년에 발행되었다. 이로써 사상파시운동 기간에 나온 시집은 모두 4권이었다.

Amy Lowell이 주도자가 되어 처음 간행한 시집 Some Imagist Poets(1915)에는 그 동안 Pound나 Flint에 의해 여러 가지 형식으로 발표된 바 있는 사상주의시론과 행동지침이 종합·체계화되어 6항의 원칙이 나와 있다. 그것은 곧 정확한 언어의 사용, 새로운 운율의 창조, 제재 선택의 절대 자유, 정확한 한 심상의 표현, 견실하고 분명한 시, 시의 근본은 집중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915년부터 사상파시운동이 Lowell의 주도권 하에 들어가자 시가 용장해지고 연약하며 입체적이어야 할 용어가 단순히 장식화되고 정적 심상만을 취하는 약점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Pound는 이를 "Amygism"으로 불러 비난하면서, Imagism에서 손을 떼고 Vorticism(소용돌이주의) 운동에 가담하여 동적 심상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Pound가 주장하는 image는 흔히 다른 사상파 시인들의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속이 텅빈 “머릿속의 그림”에 불과한 image와는 다른 폭과 깊이를 지닌 감각화된 사상으로서의 image인 것이다(이창배 114). 이렇게 해서, Pound는 사상주의 시론의 약점을 보강하여 견실하게 함으로써 그 영향을 영속화하는 데 큰 공적을 남기게 되었다.

 

Ⅱ. 사상주의 시론의 성립: 산문체의 도입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사상파시의 원조가 된 것은 Poets’ Club을 조직한 Hulme이고, 또 사상파 시인들에게 이론적 뒷받침을 해 준 것은 그의 산문집 Speculations에 천명된 반낭만주의 사상이다. Hulme은 이 산문집에 실린 두 논문 “Humanism and Religious Attitude(인문주의와 종교적 자세)”와 “Romanticism and Classicism(로맨티시즘과 고전주의)”에서 철두철미 반낭만주의, 반인본주의, 반자연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그는 낭만주의 문학이 인간에게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세계를 인간중심으로 생각하기에, 거기에서 오는 좌절감으로 인해 한숨과 눈물을 가져오며 부드럽고 축축한 것이라고 통박했다. 따라서 그는 신과 자연만이 완전한 존재라고 보는 고전주의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불완전성을 역설하고, 작금의 시에 팽배되어 있는 모든 인습화되고 낡은 낭만주의적 색채와 불필요한 수식어구를 극력 배격하였다. O’Connor는 그의 저서 Ezra Pound에서 Hulme의 말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Poetry, he said, was lost in romantic smoothness, vagueness, fatuousness, and general insipidity. He wanted a period of dry, hard verse. Poetry needed a new convention. Men, he also said, was a limited creature. One need not descend a deep well to plumb his depths; a bucket would do! (20)

 

시는 로맨틱한 교언(巧言), 애매함, 얼빠짐, 그리고 보편적인 무미건조함을 상실했다고 언급했다. 그는 메마르고 견고한 시격(詩格)의 피리오드(붙임줄, period; 악보의 articulation→phrase→period를 상상하라)를 요구했다. 시는 새로운 인습이 필요했다.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인간은 유한의 생물이다. 인간은 그 자신의 심연을 측량하기 위하여 두레박처럼 깊은 우물 속으로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주 근옥 역)

 

한 마디로, Hulme은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삼대목표인 정확(精確)·정밀(情密)·명확(明確)한 표현을 내세운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낭만 시와 같은 막연하고 부정확한 태도가 아니라, 정확하고 견고한 산문의 태도로 시를 써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의 주장이다. 또 산문은 수학에서처럼 어떤 사물에 대한 등가의 등식이 성립되듯이, 시는 시인의 감정과 등가의 등식이 성립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학에서는 구체적인 것이 모두 일정한 규칙에 따라 숫자로 표시될 뿐 시각화되지 않지만, 시의 언어는 이처럼 아무데나 적용되는 부호식(符號式) 언어가 아니고, 시각적·구체적 언어이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즉, Hulme은 시의 대목표인 정확(exactness)·정밀(precision)·명확성(clarity)을 추구하고자 고담하고 정확한 심상의 시를 주장하게 되고, 사물의 정확한 윤곽을 얻기 위해서는 시각적 심상의 사용을 강조한다. 그리고 Hulme은 왜 우리가 부단히 신선한 형용사구나 새로운 비유를 택하는지의 연유와 시에 있어서의 심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직각적(直覺的) 언어의 정수임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It is not a counter language, but a visual concrete one. It is a compromise for a language of intuition which would hand over sensations bodily. It always endeavours to arrest you, and to make you continuously see a physical thing, to prevent you gliding through an abstract process. It chooses fresh epithets and fresh metaphors, not so much because they are new, and we are tired of the old, but because the old cease to convey a physical thing and become abstract counters.… Visual meanings can only be transferred by the new bowl of the metaphor; prose in an old pot that lets them leak out. Images in verse are not mere decoration, but the very essence of an intuitive language. (134~135) (my italics)

 

그것은 대응 언어가 아니고, 단지 시각적 구체적 언어일 뿐이다. 그것은 육체 그대로의 감각을 잡아당겨 늘리는 직관언어를 위한 절충물이다. 그것은 항상 당신을 구속하려고, 그리고 물질적인 것을 끊임없이 고찰하도록 만들려고, 추상적인 변화과정을 통하여 미끄러지는 것을 막으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신선한 형용어구와 신선한 은유를 선택하며, 우리는 낡은 것에 싫증이 나게 되지만, 그 낡은 것은 물질적인 것을 운반하는 것을 멈추고 추상적인 대응물이 된다. 시각적인 의미는 은유의 새로운 단지(bowl), 즉 그들이 누설되게 만든 낡은 단지 안의 단조로운 산문(은유와 같은 표층의 수사가 없다는 뜻이지 운율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역주)에 의해 전승(轉乘)될 수 있을 뿐이다. 그 산문 심층의 이미지는 단지 장식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언어의 정수 바로 그것이다. (주 근옥 역)

 

이러한 시론으로 Poets’ Club을 이끌어 간 Hulme은 자신의 시론에 입각하여 5편의 사상파시의 효시격인 작품을 남겼다. 다음은 그의 대표작이라 할 “Autumn(가을)”이다.

 

A touch of cold in the Autumn night―

I walked abroad,

And saw the ruddy moon lean over a hedge

Like a red-faced farmer.

I did not speak, but nodded,

And round about were the wistful stars

With white faces like town children.

 

가을밤의 차가운 촉감…

나는 여기저기 걸어 다니다가

붉은 농부의 얼굴처럼 생긴

달이 생 울타리에 기대고 있는 것을 보았네.

나는 말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네.

주위에는 생각에 잠긴 별들이

도시 아이들처럼 흰 얼굴을 하고 있었네. (주 근옥 역)

 

이 시는 낭만주의적 색채가 완전히 일소되고 주로 “the ruddy moon(불그레한 달)”, “a red-faced farmer(붉은 농부의 얼굴처럼 생긴)”, “white faces(흰 얼굴)” 등과 같은 고담한 시각적 심상이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또, 불필요한 수식어구가 없고 시인의 발언이 매우 제한되어 시인 자신의 감정이 거의 노출되어 있지 않다. 즉, 이 시는 서정적 내용을 시인의 감정개입이 없이 극명하고 간결하게 비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Daiches가 지적하듯, 너무 발언을 억제하고 시각적 심상만을 강조한 나머지 표현된 경험에 조직성과 통일성이 없고, 심상이 서로 분리되어 상호관련하여 단일조직이 되지 못해 시의 핵심이 없는 것이 결점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사상파시는 시인의 감정노출 없이 시각적 심상만을 나열할 뿐 깊고 복잡한 내면세계의 전달에는 미흡하다. 따라서 시에 뼈와 살을 붙여 이해해야 할 사람은 독자이므로 독자의 상당한 상상을 요구하는 바, 이것은 상징주의의 영향으로 풀이될 수 있다.

비록 Pound가 Poets’ Club에 가담하여 Hulme과 더불어 새로운 시론을 펴고 사상파시운동을 이끌어 가긴 했지만, Pound도 이미 독자적으로 Hulme과 비슷한 생각과 시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우선 Pound는 전통적인 영국시가 아직껏 지니고 있는 낭만주의적 색채와 그 약점을 통렬하게 비판하여 이렇게 말했다.

 

The common verse in Britain from 1890 was a horrible agglomerate compost, not minted, most of it not even baked, all legato, a doughy mess of third-hand Keats, Wordsworth, heaven knows what, fourth-hand Elizabethan sonority blunted, half-melted, lumpy. (Jones 14)

 

1890년부터 영국에서의 일반 운문은 대부분 모든 레가토의 악절이 잘 구워지지 않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혼합물의 덩어리였으며, 키츠, 워즈워스 두 사람을 거치면서 개밥 같이 덜 구워진 혼합식이었으며, 우툴두툴한, 반쯤 거덜 난, 둔감한 엘리자베스 시대의 사람들의(특히 시인·극작가 등) 운문의 울려 퍼짐을 하늘은 안다. (주 근옥 역)

 

또 Pound는 이미 1908년 10월 21일자 William Carlos Williams에게 보낸 서한에서 Hulme이 주장하는 “absolutely accurate presentation and no verbiage(절대적으로 정확한 표현과 군말이 없는 표현)”의 내용과 비슷한 “ultimate attainments of poesy(시작법의 근원적인 달성)”를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1. To paint the thing as I see it.

2. Beauty.

3. Freedom from didacticism.

4. It is only good manners if you repeat a few other men to at least do it better or more briefly. Utter originality is of course out of the question. (Jones 16) (my italics)

 

1. 내가 보고 있는 것처럼 사물을 그리기.

2. 심미

3. 교훈주의로부터의 자유

4. 당신이 어쨌든 그것을 보다 더 좋게 또는 보다 더 간단히 몇몇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아주 훌륭한 방법이다. (주 근옥 역)

 

이렇게 Pound가 시에서 막연하고 부정확한 언어를 배제하고 간결·명확한 표현을 주장하게 된 것은 그의 예술관의 필연적 소산이다. 그는 위대한 예술의 목적을 미에 의한 법열의 창설에 두었었고(The Spirit of Romance 81), 정확한 표현을 Hulme의 경우와 같이 산문에서 찾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시의 산문화의 주장은 아주 새삼스런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해서 나타나는 영시의 흐름으로서, 그 예를 이미 17세기 형이상학파 시인 John Donne과 Lyrical Ballads의 서문에 천명된 Wordsworth의 태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233).

한편, 현대 영 시단에서 시의 산문화를 다시금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Ford Madox Ford였다. Pound는 현대 영 시단에서 제일 먼저 시를 산문처럼 쓸 것을 주장한 Ford를 언어 혁명을 일으킨 중요 인물로 설정하고, 그 까닭을 Ford가 시를 산문의 전통 위에 두고 집요하게 명확성과 정확성을 추구한 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음은 Ford의 산문체시 “Antwerp(벨기에 북부의 주, 또 그 주도·해항)”의 일절로 Pound가 지적한 중요 특징이 잘 드러나고 있다.

 

This is Charing Cross;

It is midnight;

There is a great crowd

And no light,

A great crowd, all black that hardly whispers aloud.

Surely, that is a dead woman―a dead mother!

She has a dead face;

She is dressed all in black;

She wanders to the bookstall and back,

At the back of the crowd;

And back again and again back,

She sways and wanders. (VI, 1~12)

 

여기는 런던의 채링 광장

한밤중

거기 많은 군중이 있고

불빛도 없어,

많은 군중, 거의 속삭임소리도 없는 암흑

그래, 핏기 없는 여인―핏기 없는 어머니!

그녀는 핏기 없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었다.

군중의 암흑 속에서,

그녀는 헌책방 여기저기를 헤매고,

되돌아오고 다시 되돌아오고

그녀는 흔들리며 헤맨다. (주 근옥 역)

 

아무리 형형색색의 옷차림을 한 군중이라 할지라도, 어둠 속에선 검정 일색으로 보일 뿐 각자의 표정도 읽을 수 없으니, 이것은 사자들의 행진으로만 여겨진다. 이 시는 이러한 내용을 간결하고 소박한 일상어를 사용하여 산문적으로 정확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였다. 죽음의 세계를 표시하는 방법으로 검정색 위주의 심상을 제시하고 있는 수법은 한 심상을 제시한다는 사상파시의 원칙과도 일치하고 있는 것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또 이런 점에서, 이 시는 후론될 Pound의 “Dance Figure(무희)”와 아주 흡사한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Pound는 Ford에 의하여 다시금 제창된 시와 산문과의 타협의 이론을 한층 체계화하여 새로운 시론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Pound의 새로운 시관은 그가 1915년 1월 Harriet Monroe에게 보낸 서한에 잘 나타나 있다.

 

Poetry must be as well written as prose. Its language must be a fine language, departing in no way from speech save by a heightened intensity (i.e. simplicity). There must be no book words, no periphrases, no inversions. It must be as simple as De Maupassan’s best prose, and as hard as Stendhal’s.

There must be no interjections. No words flying off to nothing. Granted one can’t get perfection every shot, this must be one’s INTENTION.

Rhythm MUST have meaning. It can’t be merely a careless dash off, with no grip and no real hold to the words and sense, a tumty tum tumty tum ta.

There must be no cliches, set phrases, stereotyped journalese. The only escape from such is by precision, a result of concentrated attention to what one is writing. The test of a writer is his ability for such concentration AND for his power to stay concentrated till he gets to the end of his poem…

Objectivity and again objectivity, and expression: no hindside-beforeness, no straddled adjectives (as ‘addled mosses dank’), no Tennysonianness of speech, nothing―nothing that you couldn’t, in some circumstance, in the stress of some emotion, actually say.…

Language is made out of concrete things. General expressions in nonconcrete terms are a laziness; they are talk, not art, not creation. They are the reaction of things on the writer, not a creative act by the writer.

‘Epithets’ are usually abstractions―I mean what they call 'epithets' in the books about poetry. The only adjective that is worth using is the adjective that is essential to the sense of the passage, not the decorative frill adjective. (Paige 91)

 

시는 산문처럼 문법에 맞게 정확하게 쓰여야만 한다. 그 언어는 고조된 긴장(단순성)에 의해 절약된 파롤로부터 조금이라도 일탈해서는 안 되는 그래서 정제된 언어여만 한다. 거기에는 독서로 배워 발음이 잘 안 되는 말이 있어서는 안 되며, 완곡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전도가 있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모파상의 훌륭한 산문처럼 단순하여야 하며, 스탕달처럼 견고하여야만 한다.

거기에는 감탄사적인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벗어나 달아나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부여된 말은 어리짐작의 빗댐으로 완성할 수 없으며, 이것은 말의 1차 개념(intention)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라임은 반드시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것은 꽉 쥠 없이 그리고 "a tumty tum tumty tum ta"과 같은 말과 같이 의미의 실재적인 파악 없이, 그저 경솔한 급진이 될 수 없다.

거기에는 상투적인 문구, 관용어구, 스테레오타입의 신문기사 투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것으로부터의 탈출만이 누군가가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집중된 주의력의 결과로서의 정밀한 것이 된다. 작가의 실험은 그러한 집중과 그가 시의 끝에서 획득할 때까지 집중된 것으로 체류하는 그의 힘을 위한 그의 능력으로 존재한다.

객관성 다시 또 그만큼의 객관성, 그리고 표현: 후방-전방 없는, 두 다리 걸친 형용사(“ddled mosses dank; 축축한 혼탁한 이끼”와 같은) 없는, 테니슨의 표현과 같은 파롤이 없는, 다시 말해서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감정의 강제 속에서, 당신이 실제적으로 언급할 수 없는 무(無)-공(空).

언어는 구체적이며 명확한 것으로 만들어진다. 명확한 텀 안에서의 일반적인 표현은 굼뜨고 나태하다. 그들은 예술품도 아니고 창조물도 아닌 것으로 언급된다. 그들은 작가 바로 그 안에서 사물의 반작용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작가에 의해 창조된 행위가 아니다.

잘 변형되는 형용어구(Epithets)는 실제 추상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나는 그들이 시집 안에서 잘 변형되는 형용어구라고 호칭하는 의미를 부여한다. 형용사로 사용되고 있는 그 가치로 존재하는 그 형용사만이 장식적인․겉치레적인 형용사가 아닌, 그 추이의 의미에 본질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주 근옥 역)

 

여기에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것과 같이, Pound는 반낭만주의적 입장에 서서 시의 산문과 같은 적확․객관적 표현을 주장한다. 그는 시에서 일체의 낭만적 요소인 텅빈 형용사 따위를 극력 배제하고 산문과 같은 간결하고 견실한 표현을 주장하고 있다. 또 그는 시인이 쓰고 있는 대상에 관심을 집중하여 적확성을 얻어야 하며, 판에 박힌 상투어를 피해야 하고, 반드시 표현은 객관적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의 또 하나의 중요한 주장은 내용과 표현의 일치로서, 불필요한 운율이나 비유를 배격하며 운율에는 물론 비유나 형용사구에도 반드시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형용사나 비유는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시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Pound의 생각은 Hulme이 시를 결국 심상과 비유의 문제로 보고 사물이건 마음속의 사상이건 그것을 심상이나 비유로 환치함으로써 정확한 의미 전달을 할 수 있다고 본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Ⅲ. 사상주의 시론의 성숙: 객관성의 추구

 

Hulme과 Pound가 주도하던 “Schools of Images”로 불리우는 Poets’ Club은, 그것이 비록 사상파시운동의 태동이긴 했지만, 그 수확으로는 “Autumn(가을)”을 비롯한 Hulme의 시 5편을 냈을 뿐이었다. Poets’ Club이 단명하여 1909년 겨울에 와해되자 사상파시운동은 1912년 Pound의 Ripostes(반격)가 나오기까지는 공백기를 지내게 되었다. 따라서 Poets’ Club시대는 시적인 소득보다는 사상주의시론을 이론화한데 한층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본격적인 사상주의시 운동은 Pound의 Ripostes(반격)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Pound는 자신의 시집에 부록으로 Hulme의 전작 5편을 싣고 해설하는 가운데 처음으로 “Imagiste”라는 말을 사용하고, 자신들을 “Les Imagistes” 라고 표현했다. 이제 Pound의 주도하에 1912년에서 1914년까지 Les Imagistes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시를 산문처럼 쓸 것을 주장하여 시의 객관성·정확성·정밀성을 추구하고 일체의 불분명한 형용사를 배격함으로써 시의 충실한 객관성을 강조한 Pound는 그러한 시의 표본을 H. D.의 시 “Oread(오레이아스; 산의 요정)”에서 발견하였다.

 

Whirl up, sea―

Whirl your pointed pines,

Splash your great pines,

On our rocks,

Hurl your green over us,

Cover us with your pools of fir.

 

용트림하는 바다 ―

소용돌이친다, 예리한 솔잎 위에서

물보라 친다, 솔숲 위에서

바윗돌 위에서,

우리 위로 그 초록빛 퍼붓는다.

전나무 숲과 우리를 뒤덮는다. (주 근옥 역)

 

Pound가 Imagism의 한층 더 엄격한 형식이라 할 Vorticism(소용돌이주의)을 정의하는 가운데 열거한 이 시는, 산에 바람이 불어 닥쳐 푸르게 우거진 나무들이 소용돌이치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을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의 심상으로 표현하였다. 불필요한 일체의 수식어구를 배제하였으며, 시인의 감정노출이 전혀 없는 객관적 표현으로써 눈에 두드러진 시각적 심상의 사용에 의해 간결하고도 정확한 사상시파의 표본을 이루고 있다. Pound는 Harriet Munroe에게 보낸 서신에서 H. D.의 시를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I’ve had luck again, and am sending you some modern stuff by an America. I say modern, for it is in the laconic speech of the Imagistes, even if the subject is classic… This is the sort of American stuff that I can show here and in Paris without its being ridiculed. Objective―no slither; direct―no excessive use of adjectives, no metaphors that won’t permit examination. It’s straight talk, straight as the Greek! (Paige 16)

 

나는 다시 한 번 운 좋게 미국에 의해 이룩된 어떤 현대적인 요소를 당신에게 보내고 있다. 나는 현대적인 것(modern)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록 그 주체가 고전적일지라도 이미지스트들의 간결한 파롤 안에 그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여기 파리에서 조롱받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아메리카적인 요소의 일종이다. 객관적인 것-미끄러짐이 없는 것, 직접적이고 명백한 것-형용사의 고도한 사용이 없는 것, 실험을 허락하지 않는 은유가 없는 것, 그것은 솔직히 말하는 것, 다시 말해서 이성간이면서도 항문으로 하는 성교(the Greek)와 같이 솔직한 것이다! (주 근옥 역)

 

Pound의 이 말은 “Oread(오레이아스; 산의 요정)”가 가지고 있는 사상파시가 지향하는 모든 특징을 설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시의 산문화·객관화를 내걸고 불분명한 수식어구를 배제한 간결·고담·견고한 시를 요구하며, 정밀성을 표어로 삼고 시운동을 전개해 나간 것이 사상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들은 이러한 자기들의 시론을 관철하기 위해 다음의 3원칙을 내세웠다.

 

1. Direct treatment of the “thing” whether subjective or objective.

2. To use absolutely no word that does not contribute to the presentation.

3. As regarding rhythm: to compose in the sequence of the musical phrase, not in sequence of a metronome. (Lierary Essays 3)

 

1. 주체적이거나 객관적이거나 하여간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논법

2. 표현에 기여하는 단어를 단호히 사용하는 것.

3. 리듬에 관여함으로써, 박절기(拍節器)의 시퀀스가 아닌, 음악적인 프레이즈(화성에서 두 아티큘레이션을 이음줄로 이은 것)의 시퀀스를 조직하는 것. (주 근옥 역)

 

한편, Pound는 “Doctrine of the Images(이미지스트의 원칙)”라 할 수 있는 “A few Don’ts by an Imagiste(이미지스트의 몇 가지 금지사항)”라는 글에서 사상파시가 지향하는 심상의 정의를 처음으로 분명하게 내렸다. Pound는 Image를 한 순간에 지적․서정적 복합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몇 가지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

 

An “Image” is that which presents an intellectual and emotional complex in an instant of time.…

It is the presentation of such a ‘complex’ instantaneously which gives that sense of sudden liberation; that sense of freedom from time limits and space limits; that sense of sudden growth, which we experience in the presence of the greatest works of art.

It is better to present one Image in a lifetime than to produce voluminous works. (Literary Essays 4)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지적이면서도 감정적인 복소어(復素語)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돌연한 유리(遊離)의 의미, 제한된 시간과 공간으로부터의 무제약의 자유의 의미, 우리가 술책의 가장 좋은 말의 현존재를 경험하는 그 돌연한 생성의 의미를 제공하는 바로 그렇게 즉각적이면서 동시적인 “복소어”의 표현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권수가 많아 방대한 저서를 생산하는 것보다 일생에 하나의 이미지를 제공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보다 더 좋게 존재한다. (주 근옥 역)

 

Pound의 심상은 단지 지적․정서적 복합체의 제시에 그치지 않고, 그와 동시에 훌륭한 예술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갑작스런 성장감과 시공적 제약으로부터의 갑작스런 해방감까지도 제시해 주는 다기능적 심상이다. 이것은 곧 Hulme이 애매하고 불분명한 소위 “circumambient gas(에워싸인 허풍)”를 불식하고 언어에 활력소를 공급하기 위해 “직관”에 중점을 둔 것이나, James Joyce가 말하는 “epiphany(에피파니; 통찰의 순간)”와 매우 흡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Pound는 몇 가지 금기사항을 천명하였는데,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Use no superfluous word, no adjective which does not reveal something.…

Go in fear of abstractions. Do not retail in mediocre verse what has already been done in good prose. .

Don’t imagine that the art of poetry is any simpler than the art of music…

Don’t allow ‘influence’ to mean merely that you mop up the particular decorative vocabulary of some one or two poets whom you happen to admire.…

Use either no ornament or good ornament.…

Don’t chop your stuff into separate iambs. Don’t make each line stop dead at the end, and then begin every next line with a heave… (Hollander 5~6)

 

불필요한 단어를, 어떤 것을 묵시하지 않는 형용사를, 사용하지 말라.

추상작용을 두려워하라. 기왕에 완전한 산문으로 쓰였던 그래서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평범한 시행을 그대로 옮겨라.

시의 기교가 음악의 기교보다 보다 더 단순하다고 상상하지 말라. 당신을 감탄토록 만들었던 어떤 몇몇의 시인들의 특유의 장식적인 어휘를 당신이 걸신들린 듯이 먹어치우는 바로 그러한 방식을 의미하는 “영향력”을 허용하지 말라.

꾸밈음이거나 예배에 사용되는 멋진 기구 같은 단어이거나 하여간 어떤 것이든지 간에 사용하지 말라.

당신의 작품을 갈라진 약강격(iambus)으로 팍팍 잘라내지 말라. 결국 운율이 죽어버린 각각의 시행을 결코 만들지 말 것이며, 그리고 그 시행을 안으로 들어 올려 거기서 새로운 운율과 의미가 시작되도록 하라. (주 근옥 역)

 

이번에는 이런 시론이 실제로 시에 어떻게 적용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Pound의 “In a station of the Metro(지하철 정거장에서)”를 예로 들어 고찰해 보기로 하겠다.

 

The apparition of these faces in the crowd;

Petals on wet, black bough.

 

군중 속에 문득 나타난 이 얼굴들,

검고 축축한 가지에 피어난 꽃잎들. (주 근옥 역)

 

이 시는 Pound 자신이 어느 날 파리의 La Concorde 지하철역에서 하차하여, 갑자기 눈에 비친 정거장 주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받은 한 순간의 강렬한 인상을 표현한 것이다. 즉, 이 시는 Pound가 말하는 것처럼 “the precise instant when a thing outward and objective transforms itself, or darts into a thing inward and subjective(밖으로 향한 그래서 객관적인 사물이 그 자신 안에 스며들게 하는, 다시 말해서 안으로 향한 그래서 주체적인 사물로 돌진하는 바로 그 순간-주 근옥 역)”(Fortnightly Review 467)을 기록하려 한 것이다. 이런 순간을 포착·표현함에 있어 구체적이고 적확한 심상을 써서 본디 30행이었던 것을 일본의 하이쿠를 본떠 2행의 극히 간명한 시로 응축시켜 놓았다. 시인은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표현함에 있어, 자신의 감정적 발언을 극도로 제한하였다. 그러면서도 시인이 느낀 순간적인 강렬한 인상을 뚜렷하게 부각시켜 준 것은 일체의 불분명하거나 불필요한 수식 어구를 배제하고 적확한 시각적 심상을 사용하여 한 폭의 회화처럼 영상화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축축한 검은 가지에 맺힌 꽃잎들”은 갑자기 시인의 눈에 비친 사람들의 환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심상으로서, 시인이 직접 느꼈던 정서의 등가물, 즉 Eliot이 말하는 “objective correlative(객관적 상관물)”인 것이다. 이로써 Pound는 그가 목표로 삼는 시의 완전 객관주의를 성취한 셈인데, 그는 이미 그의 “The Spirit of Romance(로맨스의 유령)”에서 Eliot의 객관적 상관물이론이 나오기 전에 시가 인간의 정서를 나타내는 의식이라고 말한 바 있다.

 

Poetry is a sort of inspired mathematics, which gives us equations, not for abstract figures, triangles, spheres, and the like, but equations for the human emotions. If one have a mind which inclines to magic rather than science, one will prefer to speak of these equations as spells or incantations; it sound more arcane, mysterious, recondite. (5) (my italics)

 

시는 영감을 받은 일종의 수학이며, 그래서 우리에게 방정식을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추상적인 형상, 환영의 트라이앵글, 환영의 구체적인 영역, 그리고 유사한 것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의 감정을 위한 방정식을 제공할 뿐이다. 만약 우리가 과학보다 마술적인 것으로 기울어진 마음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이러한 방정식을 정확하게 쓴 철자나 마법의 주문처럼 언급하기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다. 시는 보다 더 불가해하고, 신비하고, 심원한 것이다. (주 근옥 역)

 

따라서 사상주의 시가 교훈적이거나 관념적이 아니라 시인의 정서적 경험을 감각화하여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중요과제로 삼는다. 그러기에 심상의 선택은 적확·엄밀해야 하고, 심상은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가 언어이며 나아가 시의 내용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The point of Imagism is that it does not use images as ornaments. The image itself is the speech. The image is the word beyond formulated language. (Fortnightly Review 466)

 

이미지즘의 관점은 꾸밈 같은 것을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 이미지 그 자체가 파롤이다. 이미지는 고정관념으로 형식화된 언어를 초월한 언어이다. (주 근옥 역)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앞의 시 “In a Station of the Metro(지하철 정거장에서)”에서 꽃잎의 영상은 과거 낭만시인들의 것과 같은 장식물로서의 심상이 아니다. 따라서 그 심상이 유발하는 감정 즉, 그 함축된 의미가 이 시의 의미인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시에서는 거기에 쓰인 심상을 제거해도 시의 의미엔 별 상관이 없었지만, 현대시에서의 심상은 그 비유가 없으면 시의 의미가 파괴되고 마는 것이다(이창배 274~275). 그리고 우리는 Pound의 이 시 “In a Station of the Metro(지하철 정거장에서)”를 쓴 과정의 설명에서 사상파 시인들이 따라야 할 시작 원리를 볼 수 있다.

 

There is in this account the working out of all the Imagist principles―beginning with a sudden striking visual image, then the forming of a ‘visual chord’ or pattern of colors in the mind, then the search for the exact words to express it, the deliberate effort at concentration, and finally the use of a foreign poetic model to produce the crystallization that becomes the finished poem. (Pratt 32)

 

거기에는 돌연한·인상적인 시각이미지, 다시 말해서 “시각적 심금(心琴)” 또는 마음속의 색깔의 패턴, 집중적으로 신중하게 진력해서 그것을 나타내는 정확한 언어의 탐색, 결국 세련된 시가 만들어진 결정체를 생산하는 그리스의 서정시·프랑스의 상징시·일본의 하이쿠와 같은 외국시적인 모델로서의 모든 이미지스트의 발단-원칙의 발효과정이 이러한 근거 안에 존재한다. (주 근옥 역)

 

Ⅳ. 사상주의의 확장: 이화수정(異花受精)적 발전

 

사상주의가 하나의 새로운 시운동으로 알려지자, Poetry지에는 놀랄 만큼 많은 미국시인들이 사상주의 수법으로 쓴 시가 쇄도하였다. 그러나 미국시인들의 이러한 대거 참여에도 불구하고, 사상주의 시운동의 본부는 여전히 런던에 있었고, 이들의 영향은 1914년 1월에 창간된 새로운 잡지 Egoist지를 통해 확장되어 나갔다. Pound와 Aldington이 공동으로 문예편집자인 이 Egoist지에는 Flint, Aldington, Pound, H. D., Amy Lowell, John Gould Fletcher, William Carlos Williams, D. H. Lawrence 등을 비롯하여 그밖에 “한층 자유로운 표현”을 지향하는 이 운동에 고무된 많은 남녀시인들의 시가 게재되었다. 1914년 봄 사상파의 첫 사화집의 출간과 함께 이제 사상파시운동은 순풍에 망망대해를 향해 항해하는 격이었다.

Pound가 편집을 맡은 첫 사화집 Des Imagistes에는 사상파시운동 창설회원인 Aldington, H. D., Flint, Pound,를 비롯하여 산문작가로 알려진 James Joyce와 Ford Madox Ford 등 총 11명의 시가 수록되었다. 여기에 게재된 30편의 시들은 작가들이 다양한 것만큼이나 질과 형식적으로부터 운율을 갖춘 운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시의 길이는 모두가 매우 짧았다. 그리고 이들의 시가 담고 있는 외국시의 주요 영향으로는 그리스의 고전적 서정시, 일본의 당카(短歌)와 하이쿠(俳句), 그리고 vers libre(자유시)형식의 최근 불란서의 상징파시였다. 그러나 Pound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모든 것을 외에도 troubadour와 영시에 대한 관심과 그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시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의 시는 예상한 것만큼 사상파시로서의 공통점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것은 또 Pound가 사상주의에 엄격한 선을 그어 작가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존경하는 모든 작가를 선택했던 데에도 원인이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사상주의 시는 혼성적 산물이며 계속적인 이화수정(異花受精)으로 번져 나갔다.

 

. . . for formal models it reached far back into the past and into languages other than English, and for contributors it was not confined to any of the groups (and there was more than one) who called themselves “Imagist”. The Imagist poem was a hybrid, and being a hybrid it thrived by a process of continual cross-fertilization. (Pratt 11)

 

그 형식적인 모델은 과거 속으로 그리고 영어보다 다른 언어 속으로 아주 멀리 되돌아 가 도착했는데, 그 자신들을 “이미지스트”라고 불렀던 그 그룹의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았던(거기에는 우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공헌자들이었다. (주 근옥 역)

 

이러한 경향은 자기의 것만 알아 가지고는 폭넓은 작품을 창작할 수 없으므로, 훌륭하고 영향력있는 작가는 모름지기 가능한 한 이국적 요소를 수용해야 한다는 Pound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사상파시운동에서 Pound가 손을 떼고 그 주도권이 Amy Lowell로 넘어가, 소위 “Amygism”시대를 맞게 되면서 사상파시운동의 한계점이 드러남으로써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이에 Pound는 Amygism에 불만을 나타내고, Imagism의 초기 약점을 보완하는 한편 Vorticism(소용돌이주의)과 Objectivism(객관주의)에 가담하여 사상주의 시론을 더욱 깊게 하였다. 그러면 Amygism과 Imagism과의 문제는 뒤로 미루고, 이제 우선 Pound의 사상주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 불란서 상징시와 영시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Ⅴ. 사상주의 시론과 상징주의 시론

 

현대 영미시를 출발시킨 모체가 Pound와 Hulme의 사상주의 시론과 T. S. Eliot, 그리고 W. B. Yeats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현대시의 자각과 방향을 제시해 준 것은 19세기 말 불란서의 상징주의 시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상파 시인들은 신시운동을 전개하면서 불란서 상징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그것을 영미시단에 소개하였다. 그리고 Pound는 Poetry, The Little Review 등의 잡지를 통해 Remy de Gourmont(1858~1915), Paul Marie Verlaine(1844~1896), Jules Laforgue(1860~1887) 등을 소개하는 한편, 불란서시의 전모를 개관하였다.

그러면, Flint가 말하듯, 사상파 시인들이 현대 불란서의 상징시에 크게 영향을 받았고(Jones 16), Pound가 상징시에 깊은 관심을 표명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것은 사상파나 상징파가 다같이 시를 심상의 암시적 힘에 의존시키고 있는 점에서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Edgar Allen Poe(1809~1849)에게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는 불란서 상징시에서의 심상은 Pound가 찾는 것과 같이 적확하여 그 자체가 시의 내용이 되는 그런 심상은 아니었다. 즉, Poe나 Charles Baudelaire(1821~1867) 같은 상징파 시인들은 물질적인 세계의 것들을 영혼 세계의 상징으로 보기 때문에, 자연 만상은 시인의 꿈이나 영혼 같은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뿐, 시에서 이 물질 세계의 심상들은 그 자체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것들은 시인이 죽음이나 천사, 악마 같은 저 세상과 관련된 우울, 황홀, 공포같은 감정을 표현할 때 하나의 매체로 사용될 뿐이다(이창배 159). 이러한 기능의 심상은 Pound의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Pound는 이미 “The natural object is always the adequate symbol(자연대상은 항상 적당한 상징으로 존재한다-편주)”(Hollander 5)이라 믿고 있었으며, 그에게 있어서는 심상은 “일순간에 지적․정서적 복합체를 제시하는 것”으로서, 시인의 정서적 등가물(즉, 객관적 상관물)이며 그것이 곧 의미요 시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언어의 표시적인(denotative; 외연적인) 면보다 함축적인(connotative; 내포적인) 면을 중시하여 시의 암시성을 역설한 Stephane Mallarm(1842~1898)의 말―한 사물을 구체적으로 말하게 되면 시의 기쁨의 4분의 3은 없어진다. 시의 시쁨은 조금씩 조금씩 추측하는 만족에서 온다. 암시하고 유발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상을 매혹시키는 것이다(Michaud 74)―은, 사상주의 시가 시인의 발언을 극도로 억제하고 시의 의미를 독자의 상상에 맡기려고 하는 점에서 유사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사상파 시인들은 조금씩 조금씩 추측하는데 만족을 찾지 않고 단번에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Taupin 101)는 점에서 상징시와 사상파시는 근본적으로 다른 데가 있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심상을 주장하는 Hulme이 상징파 시인들이 시에 불가지의 신비적 요소를 도입하는 데 반대했듯이, Pound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Baudelaire나 Mallarm의 시에 비판적이었다. Pound는 다른 상징파 시인들과 달리, 시에 막연하고 추상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고 윤곽이 뚜렷하며 구체적인 이미지가 나타나 있는 Thophile Gautier(1811~1872)를 찬양했다. 다음으로 Pound에게 영향을 끼친 시인은 Arthur Rimbaud(1854~1891)와 Tristan Corbire(1845~1875)인 바, Pound는 Rimbaud의 Tte de Faune(목신의 머리)에서 사상파가 추구하는 미를 찾았다.

 

Dans la feuille crin vert tach d’or

Dans la feuille incertaine et fleurie

De fleurs splendides ou le baiser dort,

Vif et crevant l’exquise broderie,

 

Un faune effare montre ses deux yeux

Et mord les fleurs rouges de ses dents blanches.

Brunie et sanglante ainsi qu’un vin vieux,

Sa lvre clate en rires sous les branches.

 

Et quand il a fui―tel qu’un cureuil―

Son rire tremble encore chaque feuille

Et l’on voit peur par un bouvreuil

Le Baiser d’or du Bois, qui se recueille.

 

녹색바탕에 금으로 얼룩지게 한 보석함, 수풀의 잎 그늘로부터

입 맞추고 나서 좋은 장소, 꽃들을 잔뜩 달고,

줄곧 흔들리기만 하는 수풀의 잎 그늘로부터

정교한 자수물을 기운차게 찢고,

 

망설이는 듯한 목신의 머리가 불쑥 나타나면서, 두 개의 눈을 굴리면서,

진홍빛 꽃을 닥치는 대로 하얀 이빨 밑에서 물어뜯었다.

해묵은 술인 양 다갈색으로 빛나는 그 입술이

숱한 나뭇가지 밑에서 크게 웃어댔다.

 

이윽고 다람쥐의 재빠름으로 몸을 감추어버렸으나,

그 웃음들은 나뭇잎마다 남아서 떨고 있었다.

피리새가 날아간 다음 놀라버린,

황금의 입맞춤의 숲은 이따금씩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준오 역)

 

이 시는 전편에 찬란한 색채의 아름다움이 흘러넘치면서도, 사물의 지나친 상징화를 피하고 정확히 기술되어 있는데, 이 점이 바로 Pound가 추구하는 바였던 것이다. 또 Corbire의 Le Dormeur de Val(계곡에서의 잠)에서 볼 수 있는 정밀하고 구체적인 묘사에서 풍기는 선명하고 정확한 이미지는 이미지스트인 Pound에게는 좋은 본보기였음에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상징파 시인들이 아직 추상적이고 윤곽이 희미한 시를 쓰고 있긴 해도, 웅변조, 장엄체, 유창한 수사와 같은 전통적인 관념시적 요소를 배제하고, 비교적 간결하고 독창적인 언어를 쓴 것은 확실히 Pound 뿐만 아니라 현대 영미시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되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 사상주의는 상징주의와 다르다고 Pound는 설명하고 있다.

 

Imagisme is not Symbolism. The symbolists dealt in “association”, that is, in a sort of allusion, almost of allegory. They degraded the symbol to the status of a word. They made it a form of metonymy.… The symbolists’ symbols have a fixed value, like the numbers in arithmetic, like 1, 2, and 7. The imagiste’s images have a variable significance, like the signs a, b, and x in algebra.

Moreover, one does not want to be called a symbolist, because symbolism has usually been associated with mushy technique. (Gaudier-Brzeska 97)

 

이미지즘은 상징주의가 아니다. 상징주의자들은 “연상(association)”과 관련되며, 그것은 빗댐의 일종인 알레고리와 대체로 같은 것이다. 그들은 상징을 지각차원의 언어의 지위로 격하시켰다. 그들은 그것을 환유의 형식으로 만들었다. 상징주의자들의 상징은 1, 2. 그리고 7과 같은 산술상의 숫자처럼, 고정된 가치를 가지고 있다. Boolean algebra(불 대수) 등의 초수학과 비교해 보라.이미지스트의 이미지는 대수학의 a, b, 그리고 x의 기호와 같은 변화무쌍한 의미작용을 가지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상징주의자들이라고 호칭되기를 결코 원치 않는데, 그 이유는 상징주의는 눈물을 잘 흘리는 그 감상적인 기법과 결합되기 때문이다. (주 근옥 역)

 

Pound에 따르면, 상징주의시인들은 symbol을 다만 풍유나 환유로 보아 산수에서의 1, 2, 7 등의 숫자처럼 고정된 의미로 끌어내렸으나, 사상파 시인들의 image는 수학에서의 a, b, x 등의 기호처럼 가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Pound는 symbol보다는 image가 포괄적이며 다기능적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양자를 전반적으로 살펴 볼 때, Symbilosm과 Imagism과의 차이점은 Taupin의 말처럼 “symbol”과 “Image” 사이의 “a difference only of precision(정밀도의 편차)”(98)로 요약할 수 있다.

 

Ⅵ. 한시의 영향: 정서의 등가물이론의 도입

 

Pound의 사상주의시론의 형성에 있어 그가 심취했던 한자와 한시의 영향이 큰 바, 그는 상형문자인 한자와 그것으로 쓰인 한시에서 그가 추구하는 사상주의 시와의 유사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발견은 한자는 “주로 그림으로 되어 눈에 들어오는 언어”임을 인식한 데서 비롯되었다. 한자가 이렇게 시각적인 까닭은 그것이 음으로 된 것이 아니고 형상으로 되어 그 형상 자체가 의미를 나타내는 상형․표의문자이기 때문이다. 상형·표의문자로서의 한자는 “木”자나 “森”자 같은 것에서 쉽게 볼 수 있듯이, 그 자체가 자연물체를 나타내는 그림으로 되어 있으면서도 그림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물이 직접 취급되어 거기에 쓴 사람의 주관적 설명 없이도 그 사물의 의미가 암시되어 있기 때문에, 그 그림을 통하여 비물질적인 의미까지도 제시해 준다. 가령 “森”자는 “나무”의 모양과 뜻을 갖는 “작은 이미지(image)”가 모여 “수풀”이라는 “큰 이미지(Image)”를 만들어 내고, 나무가 울창한 산림으로 인간의 때가 묻지 않는 무언가 신선하고 깨끗한 선계까지도 암시받게 해 주는 것 같다. 따라서 Pound는 한자가 풍기는 이상과 같은 시각적 요소와 상징성, 그리고 객관적이며 간명하고 고담한 수법에서 사상주의가 따라야 할 새로운 시의 전형을 찾은 것이다. Hugh Kenner의 다음의 말은 이러한 한시와 사상주의 시와의 관련성을 잘 암시해 준다.

 

The relation between the Confucian calling of things by their right names (Ching Ming: 正名) and the Imagist programme of (1) presentations, not yatter ‘about’: (2) no unnecessary word; (3) intrinsic, rather than superimposed, musical schemes, will be obvious. The essential seriousness of the Imagist procedures as a means of restoring language to health is brought out by considering, in this new context, yet another of Pound’s ‘Ching Ming’ formulations. (71)

 

그들의 정명(正名, Ching Ming;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말로, 명칭, 곧 말의 개념을 바르게 한다는 뜻. ① 명칭에 즉응하는 실질의 존재. ② 명분에 상응하여 실질을 바르게 함. 예를 들면, 군신·부자에는 그에 상부한 윤리·질서가 존재한다고 하는 사상에 의한 사물의 유학자적인 소명 간의 관계), 그리고 (1) “대략(about)”으로 재잘재잘 지껄이지 않는(yatter) 표현. (2) 불필요한 단어가 없는 표현. (3) 겹쳐진, 음악적인 도식보다 더 내재적인 그것은 명백할 것이다. 건강을 되찾은 언어의 의미로서의 이미지스트의 절차의 본질적인 진정성은 이렇게 새로운 텍스트 안에서 상호 비교되면서, 파운드의 또 다른 공식 “정명(正名)”으로 뜻이 분명해진다. (주 근옥 역) —각주 참조

 

여기서 Pound는 짧고 명확하고 정확한 것이 시의 정수임을 깨닫고 한시와 일본의 하이쿠에도 관심을 두고 그것들을 모범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은 Pound 자신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Or “dans ce genre on n'emeut que par la clarte”. One “moves” the reader only by clarity. I depicting the motions of the “human heart” the durability of the writing depends on the exactitude. It is the thing that is true and stays true that keeps fresh for the new reader. (Polite Essays 165)

 

또 “일상생활을 그린 그림 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감동은 투명함(명확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우리는 오로지 투명함을 통해서만 독자를 움직이게 한다. 나는 엄밀함에 의지하고 있는 글쓰기의 내구력을 “인간의 마음”으로서의 그 동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진리로 존재하는 사물이며, 새로운 독자를 위해 신선함을 지키는 진리로 체재한다. (주 근옥 역)

 

이렇게 볼 때, Peter Russell(15)도 지적하고 있듯이, Pound의 영문학 상 “어슴프레한 기질에 대한 반항”적 태도는 정확성을 요구하는 사상주의 시론으로 발전되고, 이것은 또 중국의 “정명”사상에서 그 이론적 뒷받침을 얻었다 하겠다. 그러나 이렇듯 한자와 한시의 영향을 받아 모든 사물 및 사상에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정확(正確)·정밀(情密)·엄밀(嚴密) 제일주의의 Pound였지만, 그의 영역 한시집 Cathay(kæɵéi, 중국)에서 보듯이, 실제에서는 주관에 의한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다시 말해서, Pound는 그가 시의 모범으로 삼았던 상징적이면서도 명료한 상형적 시각성을 지닌 한자와 한시를 수용함에 있어 다소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사상주의시론을 정립함에 있어서, 중국의 한자와 한시의 수법에서 그 전형을 찾은 결과, 그것이 그의 시론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다는 점은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Pound가 한때 심취했던 한시를 접하는 가운데 그가 얻은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것은 “정서와의 등가물” 즉, “객관적 상관물”의 이론적 기초라 할 수 있다. Dante시대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T. S. Eliot에 이르러 이론화된 “Objective Correlative(객관적 상관물)”가 이미 11세기에 당(唐)시인들에게 알려져 있었으므로, Pound가 중국의 고전시를 연구하고 번역하는 동안에 그것을 배웠을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또 그가 이렇게 체득한 이론이 그의 제자격인 후배 시인인 Eliot에게 전수된 것은 분명하며, 그 이론이 Eliot에 이르러 한층 뚜렷하고 성숙된 것으로 발전되었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Eva Hesse가 전하는 당시인에게 알려진 그 이론의 핵심은 아래와 같다.

 

. . . it was apparently also known to the eleventh country T’ang poet Wei T’ai, who wrote: ‘Poetry presents the thing in order to convey the feeling. It should be precise about the thing and reticent about the feeling, for as soon as the mind [of the reader] responds to and connects with the thing, the feeling shows in the words: this is how poetry enters deeply into us. If the poet presents directly feelings which overwhelm him, and keeps nothing back… he cannot… strengthen morality and refine culture, set heaven and earth in motion and call up the spirits.’ (New Approaches to Ezra Pound 23)

 

그것은 또한 11세기의 당시(唐詩)로 명백하게 알려졌다. 이백(李白)은 다음과 같이 썼다. “시는 감정을 전달하기 위하여 사물로 나타낸다. 그것은 사물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으면 안 되며, 그리고 감정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독자의 마음이 사물과 함께 응답하고 연결되자마자, 감정은 말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가 우리 안으로 어떤 방식으로든지 교묘하게 틈입하는 것이다. 만약 시인이 그 자신 안에 압도되어있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나타낸다면, 그리고 되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그는 강하게 만들어진 도덕성과 정련된 교양을 움직여 천지간에 안치시킬 수 없을 것이며, 정신을 분기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주 근옥 역)

 

여기서 사상주의시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시인의 감정적 발언을 억제하고 정서와의 등가물인 객관적상관물에 의한 전달방식을 모색하려는 Pound의 이론의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Pound의 이론이 전적으로 한자와 한시에서 얻은 것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앞서 논급한 바와 같은 불란서의 상징주의시론이 영미시의 사상주의시론의 형성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음을 감안할 때, 불란서 상징주의의 시금석이 된 Baudelaire의 유명한 “Correspondances(상응)” 에서 비롯된 것을 Pound가 발전시킨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인정해야 한다.

 

Ⅶ. Amygism의 대두와 사상주의의 수정

 

사상주의 운동의 주도권이 Pound에게서 에이미 로우월로 넘어가자, 사상주의 시에 많은 변화가 생겨, 당초 순수한 의미의 사상주의 시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다. 본래 간결·정확·견고·뚜렷한 윤곽을 신조로 삼았던 것과는 달리, 이들의 시는 점점 더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으며 H. D.의 시마저도 말수가 많아지고, 뚜렷했던 윤곽과 간명하고 조각한 듯한 형태는 연약하고 몽롱해졌다. 이들은 또 양적으로 팽창하고 너무나 vers libre(자유시)에만 집착·의존하는 나머지, 사상중의는 이제 unrhymed irregular verse(운율이 없는 불규칙변화의 시행)로 쓰인 거의 모든 시를 뜻하게 되었고, image의 의미도 변색되어 갔다.

비록 Amy Lowell에 의해 간행된 Some Imagist Poets(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 1915, 1916, 1917)가 Pound의 Des Imagistes보다도 많은 훌륭한 시를 소개하고 있긴 했지만, Pound는 Lowell이 사상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갔다해서 그녀 자신을 “Imagiste”라고 부르지 말 것을 권유하고, Amy가 주도했던 시기를 “Amygism”의 시대라 별칭하였다.

Amy Lowell은 1915년 판 Some Imagist Poets(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의 서문에 본래 3항목이었던 사상주의 시 원칙을 6항목으로 확대하여 공표함으로써 전열을 가다듬었다.

 

1. To use the language of common speech, but not to employ always the exact word, not the nearly-exact, nor the merely decorative word.

2. To create new rhythms-as the expression of new moods-and not to copy old rhythms, which merely echo old moods. We do not insist upon “free-verse” as the only method of writing poetry. We fight for it as a principle of liberty. We believe that the individuality of a poet may often be better expressed in free-verse than in conventional forms. In poetry, a new cadence means a new idea.

3. To allow absolute freedom in the choice of subject. It is not good art to write badly about aeroplanes automobiles; nor it is necessary bad art to write well about the past. We believe passionately in the artistic value of modern life, but we wish to point out that there is nothing so uninspiring nor so old-fashioned as an aeroplane of the year 1911.

4. To present an image (hence the name: “Imagist”). We are not a school of painters, but we believe that poetry should render particulars exactly and not deal in vague generalities, however magnificent and sonorous. It is for this reason that we oppose the cosmic poet, who seems to us to shirk the real difficulties of this art.

5. To produce poetry that so hard and clear, never blurred nor indefinite.

6. Finally, most of us believe that concentration is of the very essence of poetry. (Jones 135)

 

1. 일반적인 파롤을 사용하기, 그러나 항상 정확한 단어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는 하지만 거의 정확하거나 또는 그저 장식적인 단어만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

2. 새로운 리듬(새로운 무드의 표현 같은)을 창조하기, 그리고 그저 낡은 무드를 되풀이하는 낡은 리듬을 복사하지 말라. 우리는 시 쓰기 바로 그 방법으로서의 ‘자유시’만을 결코 요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유의 원칙으로서의 그것을 얻으려고 투쟁한다. 우리는 시의 개성이 흔히 인습적인 형식 안에서보다 자유시 안에서 더 좋게 표현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믿는다.

3. 주체의 선택으로 절대자유룰 허락하기. 비행기와 자동차에 대해 나쁘게 쓰는 것이 훌륭한 기교도 아니다. 과거에 대해 좋게 쓰는 것이 나쁜 기교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당연하지도 않다. 우리는 현대생활의 예술적 가치를 열정적으로 믿으며, 단지 우리는 영감을 주지 않는 또는 1911년의 비행기처럼 그렇게 낡은 방식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4. 이미지로 나타내기(지금부터 명칭 ‘이미지스트’를 사용한다). 우리는 회화의 학파가 아니지만, 시가 특성을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그리고 아무리 화려하고 격조가 높을지라도, 막연한 보편성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다. 그것이 우리가 이러한 기교의 실제적인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 같은 그래서 유행에 민감한 시인과 대립하는 이유이다.

5. 얼룩지거나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닌, 매우 견고하고 분명한 시를 생산하기.

6. 끝으로, 우리들 대부분은 그 집중이 시의 바로 그 본질이라는 것을 믿는다. (주 근옥 역)

 

이 원칙은 이미 Pound에 의하여 천명된 것과 일치하는 것으로 전혀 새롭거나 색다른 주장이 아니다. 소위 Amygist들은 이 점을 인정하면서, 이 원칙들은 비단 사상파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훌륭한 시, 진정 모든 훌륭한 문학의 본질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다시금 한층 강화된 시 원칙을 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Amy Lowell 자신의 시마저도 용장함을 면치는 못했다. Lowell은 “free-verse(자유시)를 시작의 유일한 한 방법으로 고집하지는 않는다”는 제2원칙과, 견실하고 분명하며, 결코 흐릿하거나 막연치 않은 시를 창작한다“는 제5원칙과는 달리, vers libre(자유시)의 확장이라 할 “Polyphonic Prose(다성의 산문적 표현)”라는 새로운 형식을 도입하고 있다. 한편, 사상파 시인들 중 한 사람인 John Gould Fletcher는 Poetry(April 1915)에 실린 "Miss Lowell’s Discovery(미스 로웰의 발견)"라는 글에서 Amy Lowell이 도입한 “Polyphonic Prose(다성의 산문적 표현)”의 필연성과 당위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 . . a critical examination of the work of the best of these young poets―Aldington, H. D., Flint, Pound―

proves that their attempt has not been altogether successful… Intense and concise grasp of substance is not enough; the ear instinctively demands that this bare skeleton be clothed fittingly with all the beautiful and subtle orchestral qualities of assonance, alliteration, rhyme, and return.

This orchestral quality Miss Lowell has developed to the utmost. Therefore it seems fitting that a new name should be given to these poems of hers...The little that fits them best is that of Polyphonic Prose. (Poetry 35)

 

…이 젊은 시인들의 최선의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Aldington, H. D., Flint, Pound―

그들의 시도는 대체적으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실체의 일사불란하고 간결한 파악은 충분하지 못했다. 그 음감(音感)은 모운, 두운, 라임, 그리고 반복의 모든 미적인 그리고 미묘한 오케스트라의 특성으로 적당하게 옷 입혀진, 적나라한 골격을 직감적으로 요구한다.

이렇게 오케스트라적인 특성을 Miss Lowell은 최고도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이 새로운 명칭이 그녀의 이러한 시들에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된 것 같다. 그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 그들을 최선의 것으로 짜 맞추어 어울리게 하는 것은 다성(多聲)의·수사어구의 대위법적인 산문으로 존재한다. (주 근옥 역)

 

다시 말해서, Amy Lowell을 선봉으로 하는 이들 “some imagist poets(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는 그들의 새로운 시를 사상주의 시론이라는 융통성이 없는 그릇에 더 이상 담을 수 없음을 알고서, “the Imagist doctrines of concentration and economy(농축과 절약의 이미지스트의 신조)”를 멀리 벗어났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한 예를 1916년 간행 사화집 Some Imagist Poets(몇몇 이미지스트 시인들)에 실린 Lowell의 산문시 “Spring Day(용솟음치는 대낮)”에서 여실히 볼 수 있다.

 

Swirl of crowded streets. Shock and recoil of traffic. The stock-still brick facade of an old church, against which the waves of people lurch and withdraw. Flare of sunshine down side-street. Eddies of light in the windows of chemists’ shop, with their blue, gold, purple jars, darting colours fat into the crowd. Loud bangs and tremors, murmurings out of high windows, whirling of machine belts, blurring of horses and motors. A quick spin and shudder of brakes on an electric car, and the jar of a church bell knocking against the metal blue of the sky. I am a piece of the town, a bit of blown dust, thrust along with crowd. Proud to feel the pavement under me, reeling with feet. Feet tripping, skipping, lagging, dragging plodding doggedly, or springing up and advancing on firm elastic insteps. A boy is selling papers, I smell them clean and new from the press. They are fresh like the air, and pungent as tulips and narcissus.

The blue sky pales to lemon, and great tongues of gold blind the shop-windows putting out their contents in a flood of flame. (Jones 88)

 

혼잡한 거리의 소용돌이. 넘치는 교통량으로 인한 뒷걸음질. 비틀거리고 움츠린 사람들을 향한, 낡은 교회의 꼼짝 않는 정면벽돌. 골목에 쏟아지는 햇빛의 섬광. 푸른 빛, 금빛, 자줏빛의 격동, 군중을 비곗덩어리로 만들며 돌진하는 색깔과, 화학공장 창문 속 환경파괴의 빛. 쾅쾅거리며 진동하는 소리, 높은 창문의 솨솨하는 소리, 기계벨트의 소용돌이, 무두질대와 발동기의 더러움. 전동차 제동의 급회전과 전율, 그리고 하늘의 청동 빛을 향해 치는 교회종소리의 격동. 나는 도회의 한 조각이다, 밀려닥친 군중 속 부풀려진 먼지의 한 조각이다. 발밑의 포장도로를 의기양양하게 밟고서, 현기증을 느끼는. 깡충깡충 가벼운 발걸음, 느린 발걸음, 터벅터벅 끈질기게 더딘 드래그 레이스(dragging), 또는 단단하고 탄력 있는 발등 위로 튀어 오름. 한 소년이 신문을 팔고, 나는 그 신문으로부터 깨끗하고 새로운 냄새를 맡는다. 그들은 공기처럼 신선하고, 튤립과 수선화처럼 얼얼하다.

푸른 하늘은 마약(lemon)으로 창백해지고, 화염에 휩싸여 상품을 끄집어내고 있는 상점창문의 황금빛 블라인드의 거대한 혓바닥. (주 근옥 역)

 

Lowell의 이 새로운 형식의 산문시에는 유달리 많은 ‘-ing’형을 씀으로 해서 인상주의 문체의 냄새를 짙게 풍기고 있다. 이것은 또 대표적인 Modernist 작가들의 작품―이를테면 James Joyce의 Ulysses와 Virginia Woolf의 To the Lighthouse(등대에게) 등―에 Modernism 문학의 한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 산문과 운문과의 경계선의 파괴를 이루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 할 수 있다(진일보가 아니라 퇴보일 것이다-편주). 즉, 이들은 이제 시인 자신의 발언을 극도로 억제하고, 명료한 시각적 심상에 의한 표현을 할 것을 주장하는 융통성이 없고 엄격한 사상주의 시론과 형식의 한계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가능한 한 대원칙에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들의 심오하고 무게 있는 속뜻을 전달해 줄 보다 강렬한 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사상주의 시 운동이 Hulme과 Pound가 내세운 간결·견고하면서도 정확(正確)·정밀(情密)·명확(明確)한 표현 원칙에서 멀리 벗어나, 시가 용장(冗長)하고 연약해지며, 윤곽이 흐리게 되어 Amygism으로 흐르자, Pound는 시각적 심상 중심의 간결·견고한 시를 찾아 떠나버렸다. 그 후 Lowell에 의해 이끌려 나가던 사상주의는 1917년에 접어들면서 하나의 시운동으로서의 명맥은 끊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 사상주의의 시론은 살아 남아 후세 시인들의 작품 속에 숨쉬고 있으니, Carl Sandburg(1878~1967), Marianne Moore(1887~1972), Wallace Stevens(1879~1955), Herbert Read(1893~ ), E. E. Cummings(1894~1962), Archibald MacLeish(1892~ ) 등은 사상주의 시형의 새로운 시를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MacLeish는 그의 시 "Ars Poetica"에서 이제까지의 사상주의 시론에 의한 시의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이 시에서 우리는 초기의 사상주의의 시가 지니고 있는 특징의 일면과 그것이 실패한 원인인 약점을 발견할 수 있다.

 

A poem should be palpable mute

As a globed fruit

 

Dumb

As old medallions to the thumb

 

Silent as the sleeve-worn stone

Of casement ledges where the moss has grown―

 

A poem should be wordless

As the flight of birds

 

A poem should be motionless in time

As the moon climbs

 

Leaving, as the moon releases

Twig by twig the night-entangled trees,

 

Leaving, as the moon behind the winter leaves,

Memory by memory the mind―

 

A poem should be motionless in time

As the moon climbs

 

A poem should be equal to:

 

 

Not true

 

For all the history of grief

An empty doorway and maple leaf

 

For love

The leaning grasses and two lights above the sea―

 

A poem should not mean

But be.

 

시는 둥근 과일처럼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무언이 되지 않으면 안 되네.

 

엄지손가락의 메달처럼

말이 없는

 

이끼 덮인 한 쌍 암초의

소매 깃 돌처럼 침묵하는

 

새들의 비상처럼

말이 없어야 하네.

 

시는 달이 뜨는 것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하네.

 

밤에 엉클어진 잔가지들 위에

달빛을 풀어놓는 것처럼, 남기고 떠나는

 

겨울 나뭇가지 뒤의 달처럼

마음속의 기억처럼, 남기고 떠나가는

 

시는 달이 뜨는 것처럼

움직이지 말아야 하네.

 

시는 다음과 같아야 하네.

 

진리가 아닌

 

빈 문간과 단풍잎처럼

비통의 역사를 위한 것이 아닌

 

경사진 풀밭과 바다 위의 두 개의 불빛

그 사랑을 위한 것이 아닌

 

시는 의미해서는 안 되고

그저 존재하여야만 하는 것이네. (주 근옥 역)

 

이 시는 요컨대 “Don’t let a poem talk(시적 공론을 떠맡게 하지 말자).”라는 반낭만주의적 입장의 사상파 시론을 대변하듯, 시인의 감정적 발언을 극도로 억제하여 시로 하여금 정적이며 침묵할 것을 강요한다. 그래서 정적인 가운데 시인의 정서적 경험을 군소리 없이 독자에게 뚜렷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확한 시각적 심상을 가진 참신한 언어와 산문의 간결성을 도입함으로써, 침체된 영미시단에 새 바람을 일으켰던 사상파시는 시각성만을 강조한 나머지 이제는 “mute(묵음)”하고 “silent(침묵)”하며 “motionless(정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여기서 또 한 번 사상파시 최대 강점인 정적 요소가 발견된다. 이 점이 곧 Pound가 불만을 표시하고 방향을 바꿔 “동적인 심상”의 도입을 주창하여 시론의 폭을 넓히게 된 동기이며, Amygism으로 흘러버린 사상주의를 떠난 직접적 요소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Pound는 초기 사상주의 시가 실패한 것을 바로 “stationary image(정지된 이미지)”의 탓으로 보았던 것이다. 정적 심상으로는 통합된 감수성 즉, 지적·정서적 복합체를 제시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Pound의 “moving image(동적 이미지)” 추구의 경향은 “living moment(생명이 넘치는 순간)”를 동시적으로 생동감 있게 포착하려고 한 E. E. Cummings의 시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Ⅷ. 사상주의시론의 심화: 동적 심상의 도입

 

용장해지고 윤곽이 흐려 불분명하며 연약한 시를 나오게 한 Amygism을 못마땅하게 여긴 Pound는 사상주의시운동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개인적으로 사상주의 시론을 보강·심화하는데 주력하였다. 따라서 그는 또 다시 윤곽이 뚜렷한 시각적 심상 중심의 간결․견고한 시를 쓰는데 전념하였다. 이러한 시각적 심상의 효과를 가장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의 “Dance Figure(무희): For the Marriage in Cana of Galilee(갈릴리의 가나에서의 결혼을 위하여)”일 것이다.

 

Dark eyed,

O woman of my dreams,

Ivory sandaled,

There is none like thee among the dancers,

None with swift feet.

 

I have not found thee in the tents,

In the broken darkness.

I have not found thee at the well-head

Among the women with pitchers.

 

Thine arms are as a young sapling under the bark;

Thy face as a river with lights.

 

White as an almond are thy shoulders;

As new almonds stripped from the husk.

They guard thee not with eunuchs;

Not with bars of copper.

 

Gilt turquoise and silver are in the place of thy rest.

A brown robe, with threads of gold woven in patterns, hast

thou gathered about thee,

O Nathat-Ikanaie, “Tree-at-the-river.”

 

As a rillet among the sedge are thy hands upon me;

Thy fingers a frosted steam.

 

Thy maidens are white like pebbles;

Their music about thee!

 

There is none like thee among the dancers;

None with swift feet.

 

검은 눈동자

오 내 꿈의 여인

상아빛 덧신을 신은

무희들 중에 그대와 같이

날렵한 발걸음은 아무도 없네.

 

비탄에 잠긴 어둠 속에서

천막 속에서, 나는 그대를 찾지 못했네.

건초를 던져 쌓는 여인들 속에서

우물가에서, 나는 그대를 찾지 못했네.

 

그대의 팔은 나무껍질 속의 여린 나무 같고

그대의 얼굴은 빛나는 강물 같네.

 

껍질이 벗겨진 풋 아몬드 같이

그대의 어깨는 희고.

그대의 팔․얼굴․어깨는 환관에게도

경관의 곤봉으로도 보호받지 않네.

 

그대의 안식처는 금박 청록과 은색.

줄무늬로 짜인 황금빛 옷과 갈색 루비,

그것으로 장식된 그대

오 Nathat-Ikanaie(묵주), “갈릴리 바다의 십자가.”

 

사초(莎草) 속의 실개천 같이 그대의 손이 내게 건네지고

그대의 손가락은 서리처럼 하얗게 덮인 김

 

그대의 순결은 조약돌처럼 희고

그대를 위한 조약돌의 노래!

 

무희들 중에 그대와 같이

날렵한 발걸음은 아무도 없네. (주 근옥 역)

 

언뜻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시에서 주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흰색에 의한 시각적 심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쓰인 흰색에 의한 심상은 단순히 시각적 심상에 그치지 않고 촉각에까지도 호소력을 지닌 사상을 감각화하는 복합적 심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흰색이 주는 춤추는 여인에 대한 느낌은 피부가 희고 청순하며 고상하고 섬세한 우아미를 지니고는 있으나, 어딘가 차디찬 친밀감이라고는 없는 무딘 감정의 소유자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For the Marriage in Cana of Galilee(갈릴리의 가나에서의 결혼을 위하여)”라는 제사에서 이 춤추는 여인이 그리스도(Jesus Christ) 시대의 옛 인물이며 Cana의 이국인임을 제시함으로써, 차갑고 고상하며 지체 높은 고전적 미모의 여인으로서 접근할 수 없는 인물임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데 매우 적절하다. 이렇게 Pound는 촉각적 요소까지 포함하고 있는 시각적 심상을 주로 써서 간결하고 견실하여 윤곽이 뚜렷한 시를 창출했다. 이것은 시각적 심상만을 쓴 사상주의의 힘없는 시에 다시 활력소를 공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Pound는 한시와 하이쿠(俳句)에서 영향 받은 바로서 시의 엄밀성·간결성·객관성을 더욱 강력히 추구하였고, 그 결과 시는 극도로 응축되어 소품화되고 단편적이며 소위 극단적인 객관주의(Objectivism)의 경향으로 기울게 되었다.

 

Whatever its source, the test of the image was that it be rendered exactly, in as few words as possible and with the maximum of visual content. Imagist poetry aimed at complete objectivity, leaving out all rational and moral comment, for behind it was the belief that only the image communicates meaning. The sparer, starker, more striking the image, the better the poem. (Pratt 29~30)

 

근원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미지의 기준은 명확하게, 간단히 말해서 가능한 그리고 시각적인 내용의 극대치로 묘사되는 것이었다. 이미지스트의 시는 모든 오성적(悟性的) 그리고 윤리적 논평을 이탈하고 있는, 완벽한 객관성을 목표로 삼았는데, 나중에 그 이미지는 의미를 전달하는 바로 그것 만으로서의 신앙이 되었다. 절약하는 것, 홀랑 벗는 것, 더 나아가 이미지를 단조(鍛造)하는 것, 바로 그것이 보다 더 좋은 시를 만드는 것이다. (주 근옥 역)

 

Pound가 이렇게 시인의 감정적 발언을 억제하고 감정의 등가물인 시각적 심상에만 의존하였기 때문에, 심상을 벽돌이나 장작 쌓듯이 나열해 놓음으로써 그의 시는 풍경화 같은 인상을 준다. 이처럼 시에서 선명한 시각적 영상만을 강조할 경우, 시의 사상은 배제되고 시의 기능이 축소되는 한편, 묘사의 기교에 치우친 결과 인간의 복잡한 경험과 내면세계를 전달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사상주의 시가 교묘하게 채색된 회화나 몇 장면의 연속된 인상의 투영도로 되어, 독자로 하여금 사상과 감정이 일체가 된 시인의 깊이 있는 체험세계에 참여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이창배 275 참조). Pound의 "Ts’ai Chi’h"라는 시가 그 좋은 예 중의 하나일 것이다.

 

The petals fall in the fountain,

the orange-coloured rose-leaves,

Their ochre clings to the stone.

 

샘물 속으로 쏟아지는 꽃잎들

오렌지 빛 장미꽃잎들

돌에 달라붙는 그 황토 빛. (주 근옥 역)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더욱 극단적인 예는 명사만이 나열된 다음의 경우 일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음악가가 침묵을, 화가가 여백을 이용하여 폭넓은 의미를 전달하려 하듯, 전보처럼 가능한 한 소수의 언어로 최대의 의미 전달을 노리고자 하는 시적 생략(poetic ellipse)의 수법이기도 한 것이다(Madge 120).

 

Prayer: hands uplifted

Solitude: a person, a Nurse

Plumes: is she angel or bird, is she a bird or an angel?

 

기도: 들어 올린 손

황야: 삼위일체 중의 한 위격(位格), 유모

깃털: 그녀는 천사 또는 새, 그녀는 새 또는 천사일까? (주 근옥 역)

 

간결한 산문체를 극도로 차용한 까닭에 이 시에서는 일체의 장식적 요소인 형용사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흡사 사전의 낱말 풀이를 보는 느낌을 자아내어 깊은 의미 전달이 불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사상주의의 결점을 지적하고 그 개선 방안을 제시한 Fletcher의 말은 적절하다.

 

It was the fault of imagism never to let its devotees draw clear conclusions about life and to force the poet to state too much and to deduce too little life―to lead its disciples too often into a barren aestheticism which was, and is, empty of content… Poetry merely descriptive of nature as such, however vivid, no longer seems to me enough; there has to be added to it the human judgement, the human evaluation. (213~214)

 

삶에 대하여 명확한 결론을 묘사하는 광신의 열성가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 그리고 삶에 대하여 너무 지나치게 진술하는, 약간 지나치게 연역하는 시인의 표현을 억제하는, 내용이 비었던 그리고 비어있는, 불모의 유미주의로 너무 지나치게 문하생들을 유도하는, 바로 그것이 이미지즘의 결점이었다. (주 근옥 역)

 

이런 점을 깨닫고서, 극도의 객관주의(Objectivism)로 치닫던 Pound는 사상주의의 약점을 불식하고 그 깊이와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은 그가 초기 사상주의 시의 결점이 정적 심상만을 생각했기 때문이라 여기고 동적 심상의 도입을 주장한 데서 비롯된다.

 

The defect of earlier Imagist propaganda was not in misstatement but in incomplete statement. The diluters took the handiest and easiest meaning, and thought only of the STATIONARY image. If you can’t think of imagism or phanopoeia as including the moving image, you will have to make a really needless division of fixed image and praxis or action.

I have taken to using the term phanopoeia to get away from irrelevant particular connotations tangled with a particular group of young people who were writing in 1912. (ABC of Reading 36)

 

초기 이미지스트의 선전활동의 결점은 허위진술이 아니라 단지 불완전한 진술이었다는 것일 뿐이다. 그 희박성은 편리하고 쉬운 의미를 선택했던 것이며, 변화하지 않는 이미지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미지즘을, 또는 움직이는 이미지를 포함한 파노포에이아를 생각할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고정된 그 이미지와 프락시스와 연기가 실제적으로 분류법상의 불필요한 문(門, division)을 만들었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1912년에 시를 썼던 젊은이들의 특별한 그룹의 올가미에 걸려들었던 당치도 않은 특별내포로부터 빠져나온 용어 파노포에이아를 사용하기로 했다. (주 근옥 역)

 

이렇게 “moving image(동적 이미지)”를 시에 도입하는 한편, Pound는 앞서 image를 “일순간에 지적․정서적 복합체를 제시하는 것”이라고 본 데서 진일보하여, image를 “objective image(객관적 이미지)”와 “subjective image(주관적 이미지)”로 구분함으로써 image의 폭과 기능을 확장시켰다. Pound는 그의 “As for Imagisme(이미지즘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The Image can be of two sorts. It can arise within the mind. It is then ‘subjective’. External causes play upon the mind perhaps; if so, they ante drawn into the mind, fused, transmitted, and emerge in an Image unlike themselves. Secondly, the Image can be ‘objective’. Emotion seizing upon some external scene or action carries it in fact to the mind; and that vortex purges it of all save the essential or dominant or dramatic qualities, and it emerges like the external original.

In either case the Image is more than idea. It is a vortex or cluster of fused ideas and is endowed with energy. If it does not fulfil these specifications, it is not what I mean by an Image. (The New Age XVI 349)

 

이미지는 두 종류로 존재할 수 있다. 그것은 마음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주체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외부의 이미지는 어쩌면 마음속 이미지의 조연일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은 마음속에 융합된, 전도된 그림으로 마치 포커에서의 돈처럼 태우는 것이 될 것이며, 따라서 그 자신과는 다른 이미지로 나타날 것이다. 두 번째로 그 이미지는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어떤 외부의 광경과 연기를 포착하고 있는 감정은 사실 마음속으로 운반된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본질적인, 지배적인, 극적인 특성으로 모두 축적되어 정화되며, 따라서 마치 외부의 원물(原物)처럼 나타난다.

게다가 이미지는 이념보다 더 이념적이다. 그것은 소용돌이 또는 융합된 이념의 덩어리로 존재하며, 에너지를 타고난다. 만약 그것이 분류법상의 명확성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떤 이미지에 의해 의미가 만들어지지 못하는 것으로 존재할 것이다. (주 근옥 역)

 

이상과 같은 이론을 배경으로 하여 Pound가 그의 “In a Station of the Metro(지하철 정거장에서)”를 “the precise instant when a thing outward and objective transforms itself, darts into a thing inward and subjective(밖으로 향한 그래서 객관적인 사물이 그 자신 안에 스며들게 하는, 다시 말해서 안으로 향한 그래서 주체적인 사물로 돌진하는 바로 그 순간-주 근옥 역)”의 기록이라고 한 말을 음미해 보면, 사상과 시인과의 객관과 주관의 교류, 그리고 시를 통한 시인과 독자와의 객관과 주관의 교류를 가능케 해 주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이미지인 것이다. 이것은 또 Pound가 말하는 시인 감정의 등가물로서의 image가 Eliot이 말하는 “objective correlative(객관적 상관물)”와 William Carlos Williams가 말하는 “subjective correlative(주관적 상관물)”의 성질을 포괄하고 있는 복합체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아래에 인용한 "Hugh Selwyn Mauberley"의 일절에서 우리는 명실 공히 현대 시인으로 성장한 Pound의 사상주의시의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다.

 

There died a myriad,

And of the best, among them,

For an old bitch gone in the teeth,

For a botched civilization

 

Charm smiling at the good mouth,

Quick eyes gone under earth’s lid,

 

For two gross of broken statues,

For a few thousand battered books. (SP 64)

 

무수한 사람들이 죽었네,

그들 중에는 우수한 인재도 있었네,

눈앞에서 사라진 늙은 암캐를 위해,

보잘 것 없는 문명을 위해.

 

입가에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지구의 눈꺼풀 아래 빠르게 사라진 눈.

 

부서진 조상(彫像)의 두 막돼먹은 것들을 위해,

수많은 분서(焚書)를 위해. (주 근옥 역)

 

이 시는 구체적이며 시각화된 심상 위주의 간결한 산문체로 쓰여 있긴 해도, 종래의 발언이 극도로 제한되어 응축되고 단편적이며 소품화된 사상파시와는 달리, 전쟁이 휩쓸고 간 뒤의 황폐한 현대문명에 대한 현대인들의 착잡한 감회를 생생하게 표현해 주고 있다. 이로써 사상파시가 짧고 간결할지언정 인생비평과 인간의 복잡한 경험까지도 능히 전달할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Ⅸ. 결 론

 

사상주의의 시론은 Bergson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Hulme의 반낭만주의적 시론에서 출발하여 Ezra Pound에 의해 꽃피웠다. 사상주의의 시론은 낭만주의의 막연하고 연약한 정신 편향, 감상주의를 배격하고 벽돌을 쌓아올리는 듯한 정밀함과 억제력을 요구하였다. 사상주의는 Modernism의 한 핵심으로서 고담·간결·견실하고 윤곽이 뚜렷한 표현을 주장했다. 이들은 Victoria조와 George조의 시가 의도했던 사상이나 관념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시인의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적확한 언어를 찾는 데 관심을 집중했다.

이들은 또 시에서 불필요한 수식어 따위의 모든 낭만적 요소를 제거하고, 시인의 감정적 발언을 극도로 제한하여 감정의 등가물을 찾음으로써 시의 객관화 내지 비개성화를 성취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침체된 영시에 새로운 활력소를 제공하는 데 공헌한바 컸다.

그러나 한 때 너무나 간결성과 시각적 심상만을 중시한 결과, 시가 시인의 복잡한 내적 체험을 전달할 수 없는 풍경화와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적확한 심상의 추구에만 집착한 나머지 시에서 심상의 제시 외에는 다른 시적 요소를 소홀히 함으로써 시인 자신의 시야를 위험스러울 정도로 한정시켰고, 어떤 소재라도 그 심상만 제시하면 그것이 곧 시가 되는 것으로 본 것이나, 사물의 표면이 곧 의미라고 본 것, 그리고 이미지를 “지적·정서적 복합체를 일순간에 제시하는 것”으로 봄으로써 주지적이며 기교적인 면으로 기울었던 점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Pound는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적 심상” 대신 “동적 심상”을 도입하였고, image를 “objective corrective(객관적 상관물)”과 “subjective correlative(주관적 상관물)”의 복합체로 보아 그 기능을 확장시켜 놓음으로써 사상주의의 시론을 보다 폭넓고 깊게 발전시켰다.

비록 사상주의가 하나의 시운동으로는 단명하여 실패는 했으나, 그들이 내세운 시의 원칙은 현대의 훌륭한 영미시인들의 작품 속에 그대로 살아 있으며 소설문학에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떄, 이 사상주의의 이론은 다른 문학운동의 다양성과 방향제시에 공헌한 바 크며, 아직도 이 시론이 성공했음을 과시하고 있다.

 

각주

324) 일본의 室町時代(14~16세기)에 비롯된 것으로서 속가(速歌; “連歌의 오류인 것 같다. 連歌[れんが]; 보통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장구[長句; 5·7·5]와 단구[短句; 7·7]를 번갈아 읊어 나가는 형식의 노래[대개 100구를 단위로 함]”―주근옥 주)를 구성하는 발구(發句)와 대구(對句) 중 발구가 바로 독립하여 발전한 한 시형식이다. 이것은 보통 5·7·5조의 17음으로 형성되는 가장 짧은 형식을 취하며, 시구 중에는 반드시 중간이나 말미에 특정한 맺음말인 절수지(切水字; 오류인 것 같다. “切れ字”이어야 올바르다. 한 구의 매듭을 짓는 조사·조동사 や·けり·かな 따위나 용언의 명령형 등을 말한다. ―주근옥 주)와 계절어(季節語) 등이 들어가게 되어 있다.

325) 산문이라고 함은 비문으로서의 은유와 같은 수사를 사용하지 않고, 문법에 정확한 문장을 사용한 문장을 의미하는 것이지, metre, foot, rhyme과 같은 운율을 사용하지 않는 문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pound는 정형운율이건 자유운율이건 하여간 어떤 운율이건 운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편자 주)

326) Imagism은 러시아의 아크메이즘과도 상통한다. Acmeism 또는 Clarism: 아크메이즘(Acmeism) 또는 시동인(詩同人)들은 Nikolai Gumilyov와 Sergei Gorodetsky의 리더십 하에 1910년 러시아에서 출현한 초월시학파였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 “acme(절정, 극점, 극치, 전성기),” 예를 들어 “인간의 최고 원숙기(the best age of man)”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아크메이스트(Acmeist)의 풍조는 Mikhail Kuzmin이 1910년에 발표한 시론(詩論) “미적 명석(明晳)에 대하여(Concerning Beautiful Clarity)”에서 최초로 감지되었다. 아크메이스트는 Bely와 Vyacheslav Ivanov와 같은 러시아 상징주의 시인들에 의해 전파된 “디오니시오스(Syracuse의 왕; 430?~367 B. C.)적인 비논리적인 열광(Dionysian frenzy)”과 뚜렷이 대비되는, 말하자면 고전미를 갖춘, 균형이 잡힌, 따라서 아폴로적인 명석(明晳, Apollonian clarity)의 이상을 표현한다. 상징주의자들이 “상징을 통하여 암시하는(intimations through symbols)” 그 편견과는 다르게, 그들은 “이미지를 통하여 직접적으로 표현(direct expression through images)”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나중에 그의 선언서 “아크메이즘의 여명(黎明, The Morning of Acmeism, 1913)”에서, Osip Mandelstam은 “세계문화를 향한 동경(憧憬)”으로서의 운동이라고 정의했다. “시적 기교와 문화적 연속성”을 본질적인 것으로 만든 모더니즘의 네오-고전적인 형식으로서, 그 시동인(詩同人)들은 Alexander Pope, Theophile Gautier, Rudyard Kipling, Innokentiy Annensky, 그리고 선배들 중에서 특히 고답파의 시인들(the Parnassian poets)을 기억에 되살렸다. 이 학파의 주요 시인들은 Nikolay Gumilyov, Mandelshtam, Mikhail Kuzmin, Anna Akhmatova, 그리고 Georgiy Ivanov를 포함한다. 그 그룹은 원래 화가와 작가들을 위한 따라서 아주 유명한 만남의 장소였던 상뜨-뻬제르부르그의 카페 유기견(遺棄犬, The Stray Dog Cafe)에서 회동했었다. ―백과사전 Wikipedia. (편주)

 

각주(주근옥)

正名(rectification of names , zhengming)

논어에서 공자는 정치를 맡기면 무엇부터 하겠느냐는 질문에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正名)”고 하였다. 공자는 이를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君君, 臣臣, 父父, 子子)”, “모난 술잔()이 모나지 않으면, 그것이 모난 술잔인가! 모난 술잔인가!”라는 말로 표현하였다. 이 말은 그 이름()에 부합한 실제()가 있어야 그 이름이 성립한다는 의미이다.

공자의 정명은 일반적으로 군···자 등 신분질서를 지칭하는 이름에 한정하여, 그 이름에 걸 맞는 각 주체의 역할과 행위가 실현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정명의 이 신분질서를 나타내는 군, , , 자 따위를 우선 지칭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명은 모든 개념을 포함하게 된다. 왜냐하면 신하가 신하답게 되기 위해서는 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자식이 자식답게 되기 위해서는 효()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시 효다워야 효라고 할 수 있다.

즉 겉으로 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효가 아닌 행위가 있을 수 있다. 이로부터 라는 이름 속에 다시 효라고 이름할 수 있는 수많은 실제 행위를 함축하게 된다. 이렇게 정명은 인간 관계의 대표적인 역할 네 가지, 곧 임금, 신하, 아버지, 아들로부터 시작하여, 인간 사회의 모든 행위를 그 이름에 적합하도록 할 것을 요구한다. 예컨대 정의의 경우 그 단어에 부합하는 사태에 대해서만 정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사태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그런 사태를 누가 정의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바르지 못한 이름(不正名)이다.

불의(不義)를 저지르고 그에 대해 정의라고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흔히 권력자가 저지른다. 당시 불의한 일에 대해 정의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공자는 그것을 불의라고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불의한 사태에 대해서는 불의라는 이름을, 정의로운 사태에 대해서는 정의라는 이름을 붙이겠다는 것이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공자의 말의 의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명 [正名, rectification of names, zhengming]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와동주의(渦動主義)_에즈러 파운드/주근옥 역

서사문(마사오카시키' 正岡子規; まさおかしき)/주근옥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