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보일드(hardboiled)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은 1920년대 캐롤 존 델리(Carroll John Daly)가 개척한 문학스타일로서 대실 해미트(Samuel Dashiell Hammett)가 대중적인 길을 닦고, 1930년대 말부터는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Thornton Chandler)가 더욱 정교하게 다듬었다. 공통적으로 탐정 스토리의 모습을 취하며,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초창기부터 소위 펄프픽션(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블랙마스크 Black Mask)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기 때문에 하드보일드파 소설은 질이 안 좋고 값이 싼 페이퍼백 전문 출판사들이 주로 취급하였다. 그 결과 펄프픽션이란 말이 하드보일드 소설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미국의 오리지널 하드보일드소설은 많은 작가들에 의해 발전했다. 체스터 하임스(Chester Himes), 미키 스필레인(Mickey Spillane), 로스 맥도널드(Ross Macdonald), 존 D. 맥도널드(John D. MacDonald), 로버트 B. 파커(Robert B. Parker), 사라 파레츠키(Sara Paretsky), 슈 그래프톤(Sue Grafton), 월터 모슬리(Walter Mosley) 등이 그들이다.
  하드보일드라는 말은 계란을 완숙(hardboiled)하면 더 “딱딱해(tough)”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델리가 만들어낸 형사들인 테리 맥(Terry Mack)과 레이스 윌리엄스(Race Williams)가 등장한 이래, 해미트의 샘 스페이드(Sam Spade), 챈들러의 필립 말로우(Philip Marlowe)가 나타나 인기를 끌면서, 거만하면서도 쿨한 탐정 캐릭터의 전형을 확립하였다.

  1.  누아르픽션(Noir fiction)
  누아르 픽션은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부분집합으로 간주되는 범죄소설의 유형을 가리킬 때 종종 사용된다. 조지 터틀(George Tuttle)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 장르에서 주인공은 보통 탐정이 아니라, 희생자, 용의자, 또는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범죄의 한 가운데에 묶여 있어서, 외부로부터 해결을 위해 부름을 받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은 성적 관계에 대한 강조가 많고, 섹스를 사용해서 플롯을 전개시킨다든가, 주인공이 자기파괴적인 성향을 보인다든가 하는 점이다. 이런 타입의 픽션은 보다 직접적인 서술과 투박한 리얼리즘을 채용한다는 점에서 하드보일드 픽션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누아르픽션의 맹아를 제공한 사람은 제임스 M. 케인이다. 그는 초창기 하드보일드역사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인물로, 1934년 정확히 해미트와 챈들러가 활동한 중간시점에 범죄소설로 데뷔하였다. 누아르 전통에서 미국역사상 중요한 또 다른 인물은 코넬 울리치(Cornell Woolrich), 도로시 B 휴즈(Dorothy B. Hughes), 짐 톰슨(Jim Tompson), 데이비드 구디스(David Goodis), 챨스 윌리엄스(Charles Williams),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 등이다. 누아르픽션(검은 소설)이라는 말은 가차 없는 어둠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사실 이 분야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운명론적 태도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주었다. 울리치와 구디스는 희망 없는 세계를, 레너드는 종종 붉은 피마저도 밝은 분위기로 보여주었다. 휴즈와 윌리엄스의 경우, 그 중간의 위치를 차지한다. 전자의 주인공은 철학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로 자신의 힘을 표현하며, 후자의 작품에서는 진지하면서도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성격에 충실한 편이다. 캐인과 톰슨은 각각 미국 장르소설의 가장 어두운, 그러면서도 웃음을 유발하는 유형에 속한다.
  유행처럼 쓰이는 누아르라는 단어는 필름 누아르에서 따온 것이긴 하지만, 그 영화들도 초기 하드보일드작품을 영화화한 것이 많다. 그리고 1940년대 어두운 할리우드 영화를 프랑스비평가가 '누아르'라고 부른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영어권 사람들은 미스터리를, 다른 사람들은 고딕 멜로드라마를 연상할법한 일군의 하드보일드 작품을 가리키려고 “로망 누아르(roman noir; 검은 소설, black novel)”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누아르픽션과 로망누아르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45년 프랑스 출판업자인 Gallimard가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의 번역본을 포함하는 새로운 페이퍼백시리즈를 발행하였는데 이로써 누아르픽션과 로망누아르는 더욱 밀접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조류를 세리 누아르(Serie noire)라고 한다.

  2. 새로운 경향
  하드보일드와 누아르의 주목할 만한 변종이 나타났다. 버넷(W. R. Burnett)은 해미트, 캐인과 함께 초창기 하드보일드파를 형성했지만, 영웅적인 갱스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알콜중독 형사 빌 크레인(Bill Crane)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조나단 래티머(Jonathan Latimer)의 소설들은 하드보일드 스크류볼 코메디(screwball comedy)의 첫 번째 시리즈물이 되었다. 찰스 윌리포드(Charles Willeford)의 작품은 하드보일드나 누아르픽션으로 분류되었지만 “네오누아르(neo-noir)”에 더 가깝다. 형사주인공을 자주 등장시키는 후대의 작가로서 뚜렷하게 누아르식으로 쓰는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단연 제임스 엘로이(James Ellroy)이다.
캐릭터, 플롯, 세계관이라는 측면에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는 누아르픽션의 가장 보석 같은 작가이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많은 작품들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그녀의 스타일이 필름 누아르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그와는 다른 독창적인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군더더기 없이, 직접적인 묘사를 하는 전통에 비해서, 그녀의 작품들은 충실한 내용과 미묘함을 특징으로 한다.

  3. 참조
  흔히 펄프-pulps-라고 불렸음.
  조지 터틀(George Tuttle), 누아르란 무엇인가(What is Noir?) scene 43 (1994).

  대실 해미트(Samuel Dashiell Hammett, 1894~1961)  

  미국 메릴랜드주 출생. 새뮤얼 대실 해미트(Samuel Dashiell Hammett)은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과 단편작품을 쓴 미국의 소설가이다. 소설 속에서 샘 스페이드(Sam Spade), 닉 과 노라 찰스(Nick and Nora Charles)라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인물들을 창조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이후에 나온 수많은 통속 소설과 영화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상 가장 멋진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로 그리고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동시대인인 레이먼드 챈들러, 후세대인 존 D. 맥도널드(John D. Macdonald),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 필명 Ross Macdonald) 등과 같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다면적인 캐릭터의 강조, 동기에 대한 현실주의적 묘사, 날카롭고 위트있는 대화가 특징이다.

  1. 초년
  남부 메릴랜드(southern Maryland, 메릴랜드 주의 남부에 체스피크만에 면한 일부 군을 관습적으로 일컫는 말)의 세인트메리 카운티(St. Mary's County)의 한 농장에서, 리처드 토마스 해미트(Richard Thomas Hammet, 부친)와 앤 본드 더쉴(Anne Bond Dashiell, 모친)를 부모로 태어났다. 모친의 가문은 오래 전에 메릴랜드에 뿌리를 내린 프랑스 이민계로, Dashiell이란 성은 프랑스어 De Chiel이 영어로 변형된 것이다. 필라델피아와 볼티모어에서 성장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13살때 학교를 중퇴하고 철도역의 심부름꾼, 광고 카피라이터 등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하다가 핑커톤 탐정회사(Pinkerton National Detective Agency)에 들어갔다. 1915년부터 1921년까지 현장 요원(operative)으로 일하다가, 전쟁(제 1차 세계대전)을 맞아, 휴직하고 전장으로 나갔다. 핑커톤에서 재직시 노조의 스트라이크를 탄압하는 공작에 동원된 일은 경력에 오점으로 남아 있다.

  2. 전쟁과 집필활동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위생병으로 종군했으나 스페인 독감을 앓다가 결핵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전쟁의 그 나머지 기간을 워싱턴 주 타코마(Tacoma)의 한 병원(Cushman Hospital)에서 환자로 보냈다. 입원 중에 한 간호사(조세핀 돌란, Josephine Dolan)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딸을 둘 두었다(메리 제인 Mary Jane, 1921년 출생, 조세핀 Josephine, 1926년 출생). 둘째 딸을 낳은 지 얼마 후에 병원 측에서는 결핵을 이유로 가정으로부터 아버지를 격리하라는 권고를 하였고, 이에 따라 그들 부부는 샌프란시스코에 장소를 마련하여 아이들과 엄마가 따로 지내면서 주말마다 해미트가 방문하도록 하였지만, 결혼은 곧 파국을 맞았고, 해미트는 집필 활동에서 번 돈으로 아내와 딸들에게 재정적 원조를 하게 되었다.
  낙심한 그는 술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지만 결국 글을 쓰는 일에 정착하였다. 사립탐정으로 일한 경험이 그에게 집필의 영감을 제공하였다. 대중잡지 등에 단편 소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고 1929년 장편 《피의 수확》(Red Harvest)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발표한 《데인 집안의 저주》(The Dain Curse), 《말타의 매》(The Maltese Falcon)로 확고한 명성을 얻었다. 특히 《말타의 매》는 하드보일드 스타일 소설의 원조로 여겨진다. 이 장르의 후계자 레이먼드 챈들러는 《The Simple Art of Murder》에서 해미트의 업적에 대해서 말하기를, “해미트는 넘버원 작가였습니다.… 감정이 부족하다는 말도 듣지만, 오히려 남자들의 우정에 관한 기록이야말로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글의 스타일은 말을 아끼면서, 소박하게, 그리고 하드보일드했습니다. 언제나 최고의 작가였던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이 전혀 써 본 일이라곤 없는 걸 썼어요.”라고 했다.
  1929년부터 1930년까지 작가인 넬 마틴(Nell Martin)을 사랑하여, 그의 작품 《The Glass Key》를 헌정하였고, 그녀 역시 자신의 소설 《Lovers Should Marry》를 해미트에게 바쳤다.
  1932년 릴리안 헬만(Lillian Florence Hellman)과의 30년에 걸친 사랑이 시작되었다. 헬만은 강한 성격의, 위트 있고, 지적인 여성이었으며, 폭넓은 사회교류망을 갖고 있었다. 헬만과의 교류는 해미트에게 상류층과의 접촉 기회를 열어주었다. 그녀와 사귀는 동안에도 과도한 음주와 외도를 그치지 않아서 헬만을 실망시켰고, 이 때문에 종종 사이가 벌어진 적도 있지만 두 사람은 일생동안 좋은 친구관계로 남았다.
  1934년에 쓴 소설을 마지막으로, 나머지 인생을 좌익 활동에 전념하였다. 1930년대 동안 반파시스트 활동을 정력적으로 펼쳤으며 1937년 미국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미국 작가연맹(the League of American Writers)의 일원으로서, 1940년 1월에 있었던 히틀러-스탈린 조약의 기간 중에 미국반전위원회(Keep America Out of War Committee)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1942년 진주만 사건이 일어나자 미 육군에 지원하였다. 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입은 퇴역군인이었지만, 모종의 뒷 수단을 쓴 덕분에 그의 입대신청은 받아들여졌고, 제 2차 세계대전 중 그가 주로 맡은 임무는 북태평양에 있는 알류샨 열도(Aleutian Islands)에서 미육군의 신문을 편집하는 일이었다. 퇴역할 즈음에는 폐기종(emphysema)으로 고생하였다. 1943년 상병 해미트는 미 육군 정보부의 헨리 W. 할(Henry W. Hall)소령의 지시로 로버트 컬로드니 상병(Cpl. Robert Colodny)과 《알류샨의 전투》(The Battle of Aleutians)를 공동집필하였다.
  《피의 수확》은 쿠로사와 아키라(くろさわ あきら, 黑澤明) 감독의 〈요짐보(用心棒, ようじんぼう, 1961)〉, 세르지오 레오네의 〈A Fistful of Dollars〉, 월터 힐(Walter Hill)의 〈Last Man Standing〉으로 영화화되었다. 《말타의 매》는 1941년 만들어진 험프리 보가트(Humphrey DeForest Bogart) 주연의 영화 때문에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 되었다. 《The Thin Man》 역시 영화로 만들어져 큰 히트를 쳤다(윌리엄 파월 과 미르나 로이-Myrna Loy 주연).

  3. 투옥과 블랙리스트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정치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열정은 한풀 꺾인 상태였다. 하지만 1946년 뉴욕시의 디플로맷 호텔(Diplomat Hetel)에서 가진 한 모임에서 뉴욕 시민권 의회(Civil Rights Congress of New York, 약칭 CRC)의 의장으로 선출되자 그 일에 전념하였다. 1946년 정치적인 이유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보석금을 마련하려는 펀드가 CRC 에 의해서 만들어졌는데, 해미트도 세 사람의 수탁자(受託者) 중 일인으로 선정되었다.
1949년 11월 4일 CRC의 펀드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폭력으로 미국정부를 전복하려는 시도를 교사하거나 옹호하는 범죄음모에 대한 스미스 법안(Smith Act)에 의해서 유죄판결을 받은 11명의 항소(抗訴)를 돕기 위해 양도성 국채(國債, 미화 26만불)로 보석금을 지불하였는데, 1951년 7월 2일 항소가 기각되었으므로 그들은 감옥으로 가야했음에도, 그 중 네 사람이 도망을 쳐 버린 것이다. 뉴욕 남부 지방법원(Southern District of New York)은 도망자들의 행방을 쫒기 위해 CRC 펀드의 수탁인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였다. 해미트도 1951년 7월 9일 지방법원 판사 실베스터 라이언(Sylvester Ryan) 앞에서 미국 지방검사인 어빙 새이폴(Irving Saypol)로부터 심문(審問)을 받았지만, 정보(특히 도망자들을 도와 도피하도록 도울 수 있는 CRC 후원자들의 명단)의 제공을 거절하면서 수정 헌법 제 5조를 무기로 내세웠다. 법원은 그의 증언이 끝난 후 즉각 법정모독죄 로 유죄판결을 내리고 감옥으로 보냈다.
  맥카시즘이 한창일 때, 이번에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에 소환되어 증언하였다(1953년 3월 26일). 비록 그 자신의 활동에 관한 것을 질문 받았을 뿐이지만 역시 또 협조를 거부하였고,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이 때 《말타의 매》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정부 도서관에서 추방되었다.

  4. 알링턴 국립묘지
해미트의 묘비1961년 6월 뉴욕시 레녹스 힐 병원(Lenox Hill Hospital)에서(그 보다 두 달 전 진단 받은)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FBI 국장 에드가 후버가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로서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유명인사로서 다른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는 정부가 제공하는 단촐한 스타일의 묘비를 받아들였다. 이유는 동료 군인들 틈에서 튀어 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묘비명은 ‘더쉴’ 이 빠진 ‘사무엘 D. 해미트’라고만 되어 있다. 국립묘지 상 그의 주소는 section 12, Lot 508, Grid Y/Z -23.

  5. 작품
  장편
  1929년 《피의 수확》 Red Harvest
  1929년 《데인 집안의 저주》 The Dain Curse
  1930년 《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
  1931년 《유리열쇠》 The Glass Key
  1934년 《그림자없는 사나이》The Thin Man

  단편소설 모음집
  Creeps by Night; Chills and Thrills
  The Big Knockover(a collection of short stories)
  The Continental Op
  The Return of the Continental Op
  Nightmare Town
  Blood Money
  A Man Called Spade
  Dead Yellow Women
  Hammett Homicides
  The Creeping Siamese

  레이먼드 챈들러(Raymond Thornton Chandler, 1888~1959)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출생. 레이먼드 손튼 챈들러(영어: Raymond Thornton Chandler)는 미국의 범죄소설 작가로서 현대 범죄소설 분야에 거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그가 구사한 문체와 등장인물의 유형은 그대로 그 장르의 특징이 되었고, 소설 속의 주인공인 필립 말로우(Philip Marlowe)는 더쉴 해미트(Dashiell Hammett)의 샘 스페이드(Sam Spade)와 함께 사립탐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1. 전반
  1888년 일리노이주 시카고 시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생부(철도회사에서 일하는 알콜중독자였다고 한다)가 집을 나간 뒤 아일랜드 출생인 어머니와 함께 1895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마침 성공한 변호사인 삼촌이 그들을 도와줬다. 1900년에 덜위치 대학(Dulwich College)에 입학하여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학교에 출석하는 것보다는 주변의 프랑스나 독일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1907년 공무원시험을 보기 위해 영국 국적을 취득했는데, 시험은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영국 해군성에서 약 일 년 남짓 일하는 동안 첫 번째 시집을 냈다.
  공무원의 근무분위기가 싫어서 그만두었는데 이것은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저널리스트나 출판업자로서 활동했지만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다만 낭만파 시를 쓰는 작업은 계속했다. 훗날 그는 다난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는 똑똑한 젊은이들이 수많은 문학주간지를 통해서 프리랜서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똑똑한 젊은이가 아니었다. 행복하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1912년 삼촌에게서 돈을 빌려(삼촌은 조카로부터 이자와 함께 원금을 돌려받기를 기대했다) 미국으로 돌아왔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한동안은 테니스라켓을 수리한다든가, 과일을 줍는다든가 하면서 어렵게 외로운 내핍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회계에 관한 통신교육과정을 접하면서 활로가 열렸다. 정해진 일정보다 앞당겨 졸업을 하고서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1917년 미국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되자, 캐나다방면 원정대에 입대하였고, 프랑스에서 복무하게 되었다. 영국에서 항공훈련을 받는 중에 종전(終戰)을 맞았다.
  전쟁이 끝나고 로스앤젤레스에 돌아와서 시시 파스칼(Cissy Pascal)과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는 18살 연상에 게다가 기혼자였다. 마침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그의 어머니는 이들의 결합을 반대했지만 1923년 9월 26일 그녀가 세상을 떠나자, 1924년 두 사람은 결혼하였다. 1932년 회계업무라는 직업적 경력을 계속 살려서 대브니 석유회사(Dabney Oil syndicate)의 부사장이 되었지만, 지나친 음주습관과 근무 중 자리를 비운다든가, 자살소동을 벌인다든가 함으로써, 일 년 정도 만에 실직하였다.

  2. 펄프 픽션과 할리우드
  프레드 맥머레이(Fred MacMurray)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쪽으로 생활비를 벌기 위해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쓰기로 결심, 최초의 소설인 《협박자는 쏘지 않는다》(Blackmailer Don't Shoot)를 완성하여 1933년 블랙마스크(Black Mask)지에 실리게 되었다. 최초의 장편소설은 《거대한 잠》(Big Sleep), 1939년에 출간되었다. 다행히 책이 잘 팔렸고 그는 할리우드로 갔다.
  1944년, 제임스 M. 케인(James M. Cain)의 《이중배상》(Double Indemnity)을 빌리 와일더(Billy Wilder)감독과 공동으로 각색하였다. 그 자신이 만든 작품(screenplay)으로는 《블루 달리아》(The Blue Dahlia, 1946년)가 있다. 또한 알프레드 히치콕의 《Stranger's on a Train》(1951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Patricia Highsmith 원작)의 극본작업에 일원으로 참여하였다. 이즈음 챈들러부부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부유한 해안도시인 라 졸라(La Jolla)로 이주하였다.

  3. 후반
  아내가 오랜 지병을 앓는 중에도 《기나긴 이별》(The Long Goodbye)을 써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내가 죽자(1954년), 좌절하고 외로워진 끝에 다시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다시는 끊지 못했다. 자연히 작업의 질과 양은 낮아졌다.
  1955년 자살을 시도했는데 《오랜 포옹,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가 사랑한 여인들》(The Long Embrace: Raymond Chandler and the Woman He Loved)의 작가 쥬디스 프리먼(Judith Freeman)에 따르면 일종의 “도움을 바라는 호소” 였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미리 경찰에 신고를 해서 자살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챈들러의 공적, 사적인 삶은 그가 사랑한 여인들로 인해 도움이 되기도, 동시에 복잡하게 되기도 했다. 헬가 그린(Helga Greene, 그의 문학 에이전트), 진 프랑카세(Jean Fracasse, 비서), 소니아 오웰(Sonia Owell, 조지 오웰의 미망인), 나타샤 스펜더(Natasha Spender, 스티븐 스펜더의 부인) 등이 그들이다(뒤의 두 사람은 그를 동성애자라고 여겼다).
  영국으로 갔다가 다시 라 졸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죽음이었다. 스크립스 메모리얼 병원(Scripps Memorial Hospital)에서 폐 말초혈관쇼크(pneumonial peripheral vascular shock)와 전신 장요독증(pre-renal uremia)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70세. 헬가 그린이 진 프랑카세와 법정에서 다툼을 벌인 끝에 챈들러의 재산을 상속했다. 유해는 샌디에이고, 마운트 호프(Mount Hope) 묘지에 묻혔다.

  4. 저서
  장편
  〈The Big Sleep〉, 험프리 보가트《거대한 잠, The Big Sleep》(1939).
  《안녕 내사랑, Farewell, My Lovely》 (1940).
  《The High Window》(1942).
  《호수의 여인, The Lady in the Lake》(1943).
  《The Little Sister》(1949).
  《긴 이별, The Long Goodbye》(1954).
  《Playback》(1958).
  《Poodle Springs》(1959). 미완의 원고를 로버트 파커(Robert B. Parker)가 1989년에 완성하였다.

  단편
  《Blackmailers Don't Shoot》(1933)
  《Smart-Aleck Kill》(1934)
  《Finger Man》(1934)
  《Killer in the Rain》(1935)
  《Nevada Gas》(1935)
  《Spanish Blood》(1935)
  《The Curtain》(1936)
  《Guns at Cyrano's》(1936)
  《Goldfish》(1936)
  《The Man Who Liked Dogs》(1936)
  《Pickup on Noon Street》(1936)
  《Mandarin's Jade》(1937)
  《Try the Girl》(1937)
  《Bay City Blues》(1938)
  《The King in Yellow》(1938)- 로버트 챔버스(Robert W. Chambers)의 동명소설과 다름.
  《Red Wind》(1938)
  《The Lady in the Lake》(1939)
  《Pearls Are a Nuisance》(1939)
  《Trouble is My Business》(1939)
  《No Crime in the Mountains》(1941)
  《The Pencil》(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