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lationship between structural linguistics and poetics)

 

(조선문학 통권 279호, 2014. 07. 01)

 

A. J. Greimas / 주근옥 역

 

시의 종적인 성질

구조언어학과 시학

구조언어학과 시학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밀접 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다. 양자에 있어서, 기술된 대상은 언어학적으로 동일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언어학과 시학의 그 대상을 분석하기 위해 동일한 기초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사고함으로써, 우리를 정당화하는 관계의 체계로(예를 들어, 복합체계로) 중요시하게 된 이 대상의 존재자의 형식을 고찰하는 방법도 동일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하는, 그 사실조차도 동일하다. 그리고 시학에서 사용된 기술절차는(적어도 최초의 프레이즈 안에서) 그저 언어학으로 해결하는 절차의 선형사상(線形寫像; application)과 그것의 확장(extension)일 뿐이다.

의미론의 우주와 문학의 세계

시적 대상은 인지된다. 반면에, 그들은 문학의 세계에 속한 그들의 아종적인 성질을 소유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 자신이 자신을 아티큘레이션으로 묶고, 자연언어에 의해 표현된 존재(being)의 의미작용 능력의 전체 범위를 에워싸고 있는 의미론적 우주의 분리 단면을 형성한다. 그러나 문학의 세계는 자신의 특별한 영역이 없는 그 사실에 의해 둘러싸인 다시 말해서 종교나 법률 같이 내포된 타아(他我)와 구별된다. 역으로, 첫눈에 그 내용의 형식(forms)”은 이러한 장(field; 수사어구, 장르)의 성격을 만드는 것 같으며, 인간 파롤의 보편적·구조적 속성의 일부를 형성한다.
범박하게 말해서
, 언어학적 커뮤니케이션은 여분의 매우 많은 박자(拍子)를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을 우리는 정보가 관련되는 한 무의미한 노력으로 주시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문학적대상의 독창성(완벽하게 잘못된 텀으로 사용된)은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르게 특별한 특징, 다시 말해서 담화의 결과로서의 정보의 점차적인 고갈에 의지하는 것 같다.

   이러한 보편적 현상은 담화의 폐포(閉包, the close)의 형식으로 관행화되며, 그것은 정보의 흐름을 방해하고, 따라서 여분에 신선한 의미를 제공하며, 대신에 정보의 상실에 이르게 하고, 발화를 위해 선택된 질료에 가치를 제공하며, 지체 없이 그것을 닫아버린다. 따라서 그렇게 닫힌 발화는 담화를 구조적 대상으로, 그리고 스토리를 최후의 기록으로 변화시킨다.
   기술되거나 구술된 문학은 의미의 장(field)이 아니지만, 구성적 범주로든지 또는 폐포를 불러들여 시퀀스 안에 담기게 된 질료의 엉겨 붙은 조정(調停)을 위한 규칙으로든지 하여간 어떤 것으로든지 간에 사용된, 언어학적 구조의 집합(한층 더 높이 정의된)이다.


문어(文語)적 탐색과 시적 탐색

문어적탐색이 내용의 형식에 기초된 그리고 그것의 실체를 조직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구조적 도식(圖式)과 모델의 기술 쪽으로 지시되는 반면에, 그 안에 당연하게 완결된 시퀀스의 하부구조로부터 시작하는 시적 탐색은 또한 표현형식의 후소(後素) 병치조직(parallel organization)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비록 경험적으로 보다 더 많이 제한된 질료의 동체 위에서 작용하고 있을지라도, 시학은 보다 더 크게 그리고 보다 복합적인 작업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두 측면의 아티큘레이션으로 묶인 단순도식을 기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두 측면 간의 시적 대상을 확립하는 아종적 상호관계로도 고찰할 수 있다.

시적 커뮤니케이션

언어학적 그리고 시적 단위

시인의 메시지는 어느 자연언어의 아티큘레이션으로 묶인 담화의 형식 안에 발송된다. 그러나 정확한 언어학적 단위와 나란히 이러한 담화는 분할될 수 있으며, 거기에는 이러한 단위를 복사하고 있는 그래서 새로운 시적 단위가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은 표현과 내용이 따로따로 두 개의 측면에 그들의 출현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a) 그들은 결합체적 여분(폐포된 텍스트 안에서)에 의해, 또는 계열체적 여분(몇몇 유사 텍스트가 겹쳐진 곳)에 의해 인식될 수 있다. (b) 그들은 자연적 파롤의 통사론적 또는 운율법적 아티큘레이션과 같은 도식을 추종하지 않는다. 그들의 주연(周延)은 그들이 문장의 프레임을 범람하며, 그리고 그들이 실질적인 시퀀스인 체하는(그리고 형성하는) 그런 것으로 존재한다. (c) 그들은 구조적 단위이다. , 그들 특징 중의 하나는 적어도 두 개의 텀 간의 관계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개념(Bernard BlochARchibald Hill에 의해 제공된 스타일의 정의의 통합)은 이러한 단위(이 단계에 정상적으로 존재하는)에 감사하게 여기는, 그 발송된 시적 메시지의 내용의 문제를 무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동일 메시지의 일부를 형성하는 표현구조의 의미의 문제를 끊임없이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시적 단위의 언어학적 성질을 역설하기 위하여 그들의 규모 또는 내재의 아티큘레이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그것은 시적 커뮤니케이션과 그 단위의 구조적 단위의 레벨의 문제를 일으킨다.

시적 단위: 결합체적 도식(Syntagmatic patterns)

만약 우리가 기호분석(sign analysis)의 측면에서 인식된 결합체적 도식(syntagmatic patterns)의 투기(projections)만으로 존재하는 시적 단위에 따르기 위하여 주연적 해석(Samuel R. Levin)의 관점에서 출발하기를 선택한다고 한다면, 우리는 각각의 표현과 내용을 위하여, 특이하고 독창적인 결합체적 차원과 함께 시적 단위를 담고 있는 각각의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상과 하의 레벨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차원        언어측면

표현

내용

결합체(Syntagma)
발화(Utterane, énoncé)

음소적 도식

운율적 도식

문법적 도식

화술적 도식


거기서 우리는 표현도식과 내용도식 간의 어떤 동형성(isomorphism)이 나타나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서로 필적하는 차원이 후소적 병치로 위치가 잡힐 때 나타나는 것을 고찰하게 될 것이다. 범박하게 말해서, 통사론적 또는 형태론적 도식(Samuel R. Levin의 커플링)은 음절 군을 만들어내고 있는 음소의 특별한 주연에 의해 형성된 음소적 도식과 상응한다. 때때로 전조(轉調)적 어구로 사용하는 그리고 때때로 음절 군의 강세로 사용하는(리듬과 라임을 사용하고 있는 시의 규정된 도식의 경우, 두 개의 표현 레벨의 혼합과 함께), 운율적 도식(prosodie patterns)은 시구(詩句)를 일탈하는 시퀀스를 그저 발화의 성분범주의 선형사상으로만 나타내는, 화술도식에 의해 조화를 이루게 된다. 비록 상위에 기술된 레벨 안의 하부-(sub-divisions)으로, 그리고 시적 도식의 좀 더 미묘한 분급(classification)으로, 예기될 뿐일지라도, 그것은 그런 조화를 소유할 가능성이 명백하다. 선형사상과 일탈 양자는 언어학적 분석의 잘 알려진 원리 위에서 매개적 구성으로 기초가 만들어진다.

결합체적 도식의 분석

분석의 이 단계에서, 시학은 2중의 과업을 가지고 있으며, 게다가 시적 도식의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그들은 각각의 이러한 레벨을 마주 잡고 있는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레벨을 기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들은 기호의 측면(plane of signs)에 출현하는 것으로서의 시적 레벨과 상응하는 언어학적 레벨 간의 상호관계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비교의 결과로 고찰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정의하고 있는 문체로 간주되지 않으면 안 될지 모르는 인자가 된 어떤 것으로 고찰된)은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도식은 시구(詩句)의 범위 안에서(독창적 커뮤니케이션 안에서), 그리고 폭넓은 파롤의 단위 안에서, 항상 2중의 함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러한 왜곡을 인식하는, 그리고 그들의 관계를 결정하는 분석의 과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석은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또 다른 레벨 간의 상호관계를 탐색하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동치(同値)로서의 종속(從屬) 변형

일단 시적 도식의 목록이 만들어지면, 거기에는 그들의 의미의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주체 위에서 언급될 수 있는 모든 것은 결합체적 고리로 만들어진 동치의 투기로서의 시적 언어의 정의에 의해 시학 안에서의 탐색으로 주어진 혁명적 충격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도래된다(R. Jakobson). 만약 우리가 언어의 착란적인(discursive) 함수가 그 자신을 계층관계의 확립 안에서 평소대로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하위계열적(hypotactic) 관계는 동치관계로의 시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변형될 것이다. , 사실상 연언(conjunction)과 선언(disjunction)의 관계로. 따라서 음소적인 그리고 문법적인 도식은 시적 모체로 변형되고, 운율적인 도식과 화술적인 도식은 장르의 모델로 변형된다. 시적 단위의 이러한 2중의 함수(결합체적 도식과 계열체적 모델로 존재하는)는 오로지 모든 은유가 환유와 역설로 끝을 맺는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의 고찰로 증명될 뿐이다.

시적 질료의 계열체적 구조

이러한 사실의 꽉 찬 의미작용은 따라서 우리가 메타언어학으로 변형된 관계를 고찰할 때, 오로지 그때에만 출현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음소와 어휘소(형태소)의 강류로 연결되어 끌려올라가지만,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이 2개의 음소 또는 2개의 어휘를 이러한 단위의 내재구조의 난맥(亂脈)으로, , 하위계열적(hypotactic)이거나 상위계열적(hyperotactic)인 것으로 중립화 된(formantclasseme으로 분할된) 격상소(phemes) 또는 의미소(semes)의 그 난맥으로, 동정적인(identical; conjunctive) 또는 대당적인(opposite; disjunctive) 것으로 존재하는 이러한 변별적 특징으로 부언된 망상을 빌려온 그 난맥으로, 즐겨 사용될 때, 우리는 관계의 이러한 변형을 이해할 수 있다. 질료의 그러한 재구성은 A : A' :: B : B', 그리고 레빈의 커플링이 오로지 한 개의 예로만 존재하는 것에 따르고 있는, 표준화의 보편적인 절차에 의해 인식되고 기록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그것의 내용과 표현 양측에 고용된 질료의 계열체적 조직을 생산하는 시적 관계의 함수(기능)로 존재한다. 첫 번째 단계에서, 모운(母韻, assonances)과 두운(頭韻, alliteration) 또는 의미론적 유사점(resemblance)과 근사점(approximation)으로 만들어진 도식은 마치 동정과 대당으로 만들어진 격상소 또는 의미소의 모체와 같은 특유의 특징을 교묘하게 만들어내는 것에 의해 분석되고 재구성될 수 있다. 그러나 형식과 마찬가지로 실체의 후소적 반복(repetition of substance)이 포함된 여분은 내용과 표현 양측에 관계하는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개성으로 존재하는 기본 동류체(isotopy)의 구성부분과 동시에 존재한다.

시적 동류체와 담화의 측면

커뮤니케이션의 동류체(isotopy)의 개념은 비유적 언어의 사용뿐만 아니라 폐포된, 다시 말해서 폐포 화술구조의 정전학(正典學)으로 이루어진 내용의 측면에서 없어서는 안 될 토대가 되는 것 같다. 의미소 범주의 용장(冗長)한 꾸러미로 정의된 동류체는 사실 개인 특유의 착란적인 현현(顯現)과 결정으로부터, 파롤의 결합체적 표출(syntagmatic manifestation) 안에서 기왕에 인식된 시적 관계(군집, 환유, 관용구 등) 그 유형학의 중명사(中名辭)에 의해 이루어진 그들의 완벽한 목록의 준비를 위한 수사(修辭)의 구조 바로 이러한 간극으로부터, 이러한 동류체를 분류하여 뽑아낸 그 간극의 평가를 위한 기초이다. 그것은 레비스트로스가 오이디푸스 신화, 그리고 단순 동류체적 발화 "I love you(Ruwet)"의 일련의 변형과 양립하는 것 같을는지도 모르는 루이스 라베(Louise Labe)의 소네트를 분석할 수 있었던, 그 화술의 동류체적 레벨을 결정했던 바로 그것에 의한 것이었다.

동일한 기술적 절차는 음성적 동류체로부터 우리에게 창조의 능력을 부여하고 있는, 변별적 특징을 구축하고 있는, 겉으로는 음소이면서도 안으로는 음소가 아닌, 다시 말해서 시적 대상의 보편적 총체성의 구조와 표현의 비유적 언어사용양측 모두를 함께 구축하고 있는 표현의 측면으로 보다 쉽게 적용될 수 있다.

글쓰기와 시적 코드

시학의(그리고 수사학의) 고대 전통으로 되돌아간, 시적(또는 문학적) 커뮤니케이션과 착란적인 표출(discursive manifestation) 측면의 동류체 간 관계의 전도(顚倒), 최근에 이 분야의 연구를 소생시키고 있다.

시적 단위의 구성관계의 형식적 레벨에서, 글쓰기(Roland Barthes)의 개념은 문체유형학으로 그 방식을 포장하기 위하여 문학의 분류법과 집합적 성질의 시적 형식을 촉진시키려고 시도한다.

내용의 동류체 그 실체적 레벨에서, 탐색의 다양한 수렴(收斂)의 윤곽 만들기는 발화(동의와 지배)의 형태통사론적인 관계의 투기에 기초된 의미론적 동류체의(생물과 무생물의, 물질과 심증-윤리적인 것의, 다양한 장르의 범주) 어떤 범주의 망상(the importance)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탐색은 또한 동형적인 그리고 두 사람(Bachelard, Levi-Strauss) 중의 한 사람으로부터 변용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감각중추의 목류로부터 광범위하게 도출된 조직코드의 시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그 관행으로부터 발생하고 있는 기호학적인(semiolgical; semiology가 아니라 semiotics의 차원이다) 동류체의 존재자의 재인식(recognition)을 유도해내고 있다. 따라서 상응(correspondences)의 낡은 은유적 관념 위에 구조적인 지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있음직한 두 병치지시와 표현측면의 동일 개념의 치환(置換)의 이러한 시적 탐색의 진전은 더 나아가 착란적 커뮤니케이션의 다중선형(plurilinear)의 성질을 뒷받침하고 있다.

표현과 내용의 구조적 적정성

게다가 상호발현은 그 구조 상태에서 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언어학적 특성이, 감각과 음성의 완벽한 합동으로 존재하는 발성의 레벨에 배치되지 못하는 것이 틀림없는 것인지(Ruwet), 아닌지(그 부정논리합은 이중 아티큘레이션의 모든 성격을 떠맡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언어의 sign의 임의적 성질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분명하게 관측할 수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그것은 우리가 구조적 적정성과 표현·내용의 통제된 주연(周延, distribution)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그 자신을, 음소적 그리고 문법적 도식의 변형의 결과인 격상소적인 것과 의미소적인 것의 모체(the phemic and semic matrices)의 레벨에 존재한다. 물론 범주의 동정과 대비(identity and contrast)의 상호작용의 중명사로 획득된 이 모체는, 한편으로는 표현상의 실체(substance), 다른 한편으로는 내용상의 실체를 연결하고 있는 형식적 구조로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표현과 내용 형식의 상호발현은 그들의 형식적인 구조 안에서 동정(identical)적인 격상소와 의미소의 모체가 표현과 내용의 실체를 대칭적으로 악보의 아티큘레이션처럼 명확히 표현한 것이라고 언급할 수 있다. 또한 모체의 적정성(야콥슨과 레비스트로와 뤼웨의 소네트의 분석에 의해 충분히 예증된)은 그들의 언어학적 아티큘레이션의 조망과 함께 의성어의 양수(讓受) 레벨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근원으로부터 도래하고 있는 형성요소(etymons)의 새로운 부류로 재분류하는 민중어원명목 하에 기본구조의 레벨에서 어원의 장(field)을 노현(露顯)시킨다. 이러한 동일 현상은 또 다른 레벨에서 그리고 농담과 펀 안에서 그러한 논법으로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이러한 모든 현상에서의 공통인자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간의 단축으로 존재한다. , 그것은 시의 언어로 보일는지도 모르고, 반면에 여전히 언어는 인간감정 고유의 외침으로 되돌아가는, 따라서 단순한 언어학적 아티큘레이션과 이중 언어학적 아티큘레이션 간의 중간에 놓여있는 방식으로 발견되는 것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재발견된 진실,” 즉 단어의 본래의 의미(sense)에서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 다시 말해서 인용된 또 다른 예의 공통된 의미효과(sense effect)”를 생산한다. 단어들 간의 글자 수수께끼는 표현측면에서 숨겨진 그리고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심원한 의미(profound sense)”의 이렇게 혼동하기 쉬운, 마치 암술과 수술이 꽃부리 밖으로 돌출해 있지 않은 것 같은 환영의 의미(meaning)로 포장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시적 탐구는 아직 우리가 시적 형식의 의미의 문제(야콥슨에 의해 제기된)에 대한 해법(예를 들어, 내용과 표현의 적정성 상에서 의미 진실에 대해 논의될 수 있는 해법의 한 가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것에 충분하게 진전하지 못했다.

또한 내부결합문장(intra-sentence)의 시학 안에서 보다 명백하게 점진적으로 만들어지는 구조상태의 적정성은, 시의 과학이 시적 장르의 낡은 문제를 소생시키고 있는 그 자체를 발견할 것인 그곳, 또한 형식과 실체의 적정성에 의해 전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함께 존재하는 것의, 초월결합문장(supra-sentence)의 레벨에서, 발견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적 대상

강제 구조의 폭주(輻輳, convergence)

시학은 이원적인 목표(twofold aim)를 가지고 있다. , 한편으로는 구조적 텀 안에서 랑그 차원의 이해와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을 시도하려고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개인의 시적 대상의 구조적 정수(精髓)를 평가하는 실행능력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종류의 시적 대상(쿠플레, 소네트, 서사시)은 시적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레벨의 폭주의 한 중심에, 어떤 시적 단위(units)가 선택되거나 거부된 위치에,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존재한다. 그것은 다음 조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강제의 두 종류가 되어 나타난다.

(a) 이것은 채용된 자연언어를 그들의 기초로 선택한다. 따라서 가능한 내용과 표현의 선택으로 한정한다. , 그들은 선험적 필요조건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글쓰기로 표현될 수 있다(이러한 글쓰기는 거부될 수 있지만 묵살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b) 이것은 각기 다른 개인 특유의 언어로 학습되고 채택되며, 개성적 언어구조로 떠맡겨진 개인적 어조의 생산으로 고찰될 수 있다. 또한 동치(equivalent) 또는 다른 기호학적 구조의, 후소적이고(parallel) 언어학이 아닌 구조의, 뒤틀린 아티큘레이션에 기인하고 있는 개성의 독창성은 각각 개인적인 특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정론의 매우 엉성한 형식을 구성하는 강제(롤랑 바르트에 의해 형식화된)로 고찰될 것이다. , 복합적 판별구조 두 유형의 폭주는 하나의 사건(있음직한 개성의 시적 대상)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시적 대상의 분석은 근원적인 사회적 글쓰기와 시인 개성의 언어학적 구조의 선험적 기술을 전제한다. 실제로, 탐색의 그 두 유형은 후소적으로 성취되고, 이러한 조건을 만들고 있는 인자에 대한 우리의 부적절한 지식의 관점에서, 그리고 명백한 대상의 있음직한 성질의 관점에서, 상보적인 것으로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은 시적 대상의 심미적 가치의 문제를 정확하게 형식화하는 것을 눈앞에 나타내는 것이 불가능할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만약 하나의 시도가 시적 레벨이나 단위로부터든지, 또는 기록된 레벨 사이에서 발견된 대칭적, 또는 비대칭적인 것의 상호관계로부터든지, 하여간 어떤 방식으로든지 추론된다고 하면 말이다.

형식과 실체의 기술

특별한 시적 대상의 분석의 레벨에서, 시는 간주된 주체-질료로부터 추론(연역)하고 있는 이러한 것들(융합적인; 연역법+귀납법)과 함께, 형식(배타적인)으로부터 추론하고 있는, 따라서 의미론과 음성학 분야에 밀접한 것을 묘사하고 있는, 도식과 구조의 기술을 필연적으로 혼동하게 된다. 이러한 작용의 결과는 텀의 엄밀한 의미에서의 탐구와 의미론적 탐구를 함께 포함한 최근의 기술, “고양이들(Les Chats)”이 가장 좋은 실례로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시의 폐포(閉包) 세계의 의미론적 기술에 그 자신을 바쳐 몰두하고 있는(구조적 가능성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완벽한 학파(프랑스의 신비평학파와 같은)로 존재한다.

이러한 입장의 변동은 담화에서의 동치의 투기로서 시에 대한 야콥슨의 개념의 논리적 외삽(外揷)으로만 존재한다. 따라서 자립적인 실재물로 고찰된 시적 담화는 즉각적으로 포착되고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총합대상’)로 쉽게 파지된다. 부분적인 분석은 계열체적 모체(paradigmatic matrices)의 존재자를 폭로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을 한 가지 목표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표준화하고 있는, 형식적 야티큘레이션이 눈으로 볼 수 있는(곧 존재하게 될 것인),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간주된 주체-질료에 의해 하나밖에 없는 것으로 표현된, 계층구조의 형식 안 시적 담화의 기술을 유도할 수 있는 것으로만 존재하는 존재자를 말한다. 따라서 시적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시적 대상의 구조를 연구할 작정인 한에 있어서는, 시학은 시적 대상 안에 표출된 연구의 분야를 넓히거나, 언어학적 의미론적 그리고 음성학적 질료를 포함시키지 않으면 안 되며, 동시에 내용의 유형학 확립의 그리고 시적 대상을 구성하고 있는 폐포체계의 음악적 총체의 가능성으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시적 그리고 통시적 구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 있어서는, 최상의 실체적 진척은 의미론적 내용 안에서 최근에 이루어졌다. 인상파적 음성학의 레벨을 포기하고 있는 표현의 기술이 독특한 특징의 분석 상에 기초된 따라서 그것과 필적할 만한 음성학적 구조와 동정(同定)된다는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몇몇 최근의 연구(특히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의 연구)는 폐포된 작품 속 내용 아티큘레이션의 레벨에서 단순한 시적(또는 문학) 대상의 이중읽기의 가능성의 존재자에 주의를 기울였다. 첫 번째의 경우, 그 대상은 계열체적 구조(paradigmatic structure) 안에서 통합된 부분적인 아티큘레이션의 폐포체계의 형식을 선택한 것 같다. 두 번째의 경우, 어느 대상은 착란적인 진화의 특별한 순간에, 의미론적 전면과 후면을 형식화하고 있는 내용의 통시적 변형으로 해석된 존재(being)가 가능한 연속성의 해법을 제공할 것인 열린 체계(open system)”로 독해될 수 있다. 최초의 광경에서 기묘하게 나타난 이중읽기의 가능성은 시의 이중도식으로 일치된다. 따라서 시학은 시적 단위를 분리하고 있는, 내용분석의 효과를 만들고 있는, 그리고 대상의 함축적인 또는 명백한 동류체(isotopy)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것으로 선택하고 있는, 새로운(그리고 함수적인) 특징으로 규정된다. 또한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에서 전제된 동류체의 개념이, 폐포체계로 고찰된 시적 대상으로 취급하는 분류법의 개념 안에서 그것의 삼각기(三角旗; pendant)를 갖게 된다. 그리고 동류체 안에서의 그 분기는 분류법적 실재물 상에서 작용하고 있는 언어학적 변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시적 행복감(euphoria)

행복감적인 그리고 불쾌감적인 언외지의(connotation)

그것은 행복감을 생산하는 전체로 선택된 시적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할 수 없는 한편, 아티큘레이션의 모든 레벨에서, 음성학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어진 의미론적 질료가 행복감 때로는 불쾌감으로 그 자체를 나타내고 있는 다시 말해서 자기 자극에 감응하는 범주에 의해 표현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 나타난 모순은 만약 그것이 우리가 제안했던 것으로 인정된다면, 그 시적 형식은 주체-질료의 그것으로부터 매우 독특한 의미(meaning)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반면에 주체-질료는 행복감적인 그리고 불쾌감적인 시의 형식이, 다시 말해서 삼각기의 꼭짓점에서 행복감이 전체적으로 존재하는 언어연기와 진실의 인상을 소유하면서 의미효과(sense effects)”를 생산하고 있는, 여분의 그리고 표현과 내용의 적정성의 표출이 기본적으로 존재하는 시의 형식이, 함께 존재하는 동류체적 변이로 표현될 것이다.  

 

각주

 

구조의미론(Structural Semantics); A.J.Greimas/주근옥 역

의미론선집(On Meaning); A.J.Greimas/주근옥 역

정념의 기호학(The Semiotics of Passions); A.J.Greimas, Jacques Fontanille/주근옥 역

미니멀리즘; 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SUR LES ROUES/Gueune-Ok JOU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