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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 초판

 

 시사문단 통권 72호 2009. 04. 01
   시사문단 통권 73호 2009. 05. 01
   시사문단 통권 74호 2009. 06. 01
   시사문단 통권 75호 2009. 07. 01
   시사문단 통권 76호 2009. 08. 01

 

휘트먼(Walt Whitman)/주근옥 역

                                            

미국은 과거 또는 형식과 정치의 중심, 계급 사상, 구종교가(조용히 학습된) 아직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라고 추정된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 편견은 판단과 방법과 문학을 아직 붙잡고 있다. 인생이 새로운 형식의 새로운 삶으로 그 요구조건이 관철되는 동안 그 시신(屍身; 편견)이 침실로부터 서서히 운반되고 있는 것을 인지한다. 시신이 문에서 잠시 기다리는 것을 인지한다. 시신은 그의 생애 동안 매우 건장했었다. 그의 행동력은 가까이 있는 건장하고 건강한 상속인에게 물려 내려간다. 그리고 그 상속인은 그의 일생동안 가장 건강할 것이다.

연방의 모든 미국인들은 언젠가 지구가 시적 자연으로 아마 가득 찰 것이라고 믿는다. 연방 스스로가 본질적으로 가장 위대한 시이다.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 속에서 가장 크고 가장 멋진 감동이 그들에게 보다 넉넉하고 큰 것과 자극으로 길들여져 정연하게 나타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주야로 퍼뜨린 행동과 일치하는 인간의 행위 속에 무엇인가가 있다. 여기에 단지 일개 연방뿐만 아니라 연방 중의 풍요한 연방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 거대한 민중 속에서 웅장하게  움직이는 특별하고 섬세함에 부득이 눈먼 끈으로 얽매이지 않는 행동이 있다. 여기에 영웅들을 영원히 알리는 따뜻한 마음이 있다. 여기에 영혼이 사랑하는 거친 턱수염과 허공과 울퉁불퉁함과 무뚝뚝함이 있다. 여기에 풍요롭고 화려한 호사의 너그럽고 소나기로 흐르고 속박 없이 펼쳐지는 투시도의 늠름한 기상과 민중의 무서운 용맹과 뭉치고자 하는 행동을 멀리하는 말하자면 소인배들이나 하는 것과 같은 자질구레함을 경멸하는 행동이 있다. 인간은 여름과 겨울의 풍요로움, 그리고 옥수수가 흙 속에서 자라고 과수원에서는 사과가 떨어지고 골짜기에서는 사내가 계집과 더불어 아기를 낳는 동안 결코 파산하지 않는 것이 필요함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다른 나라들은 그들의 대표자들이 대표한다. 그러나 미연방의 천재성은 그들의 행정부나 입법부나 대사, 작가, 대학, 응접실, 또는 신문이나 발명가에게 많이 있지 않고, 가장 우세하지도 않다. 항상 가장 평범한 민중에게 있다. 그들의 태도 말씨 옷 친구들과의 관계, 그들에게서 풍기는 신선함과 理想의 솔직함, 멋대로 풀린 듯 생생한 몸가짐, 자유에 대한 불멸의 애착, 예의 없거나 우유부단하거나 비열한 것은 어느 것이건 혐오한다는 점, 다른 모든 나라들의 시민에 의해 한 나라의 시민이 실제적으로 인정되는 것, 그들이 분개하는 격정, 그들의 호기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환영,  그들의 자부심과 놀랄 만한 연민, 얕봄에 대한 민감성, 윗사람 앞에 서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갖는 태도, 말의 유창함, 그들의 음악취미, 사내다운 자비심과 타고난 영혼의 우아함을 지니고 있는 확실한 징후, 그들의 선한 기질과 넓은 도량, 그들이 참여한 선거에 대한 대단한 의미부여, 이러한 것들을 갖고 있는 그들은 대통령에게 모자를 벗지 않고 대통령이 그들에게 모자를 벗는다. 이것은 역시 연체시(Blank verse)이다. 그것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거대하고 관대한 대우를 기다린다. 

자연이나 국가의 크기는 시민들의 마음에 상응하는 크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자연이나 무리지어 움직이는 국가 도로 기선, 번영하는 직업, 농장 자본 또는 배움이 사람의 이상을 위하여 충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시인 또한 충분하게 기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회상 또한 충분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국가는 속 깊은 특성을 항상 도려낼 수 있고 가장 값싼 것에 대해 최상의 권위를 소유할 수 있고, 다시 말하면 자신만의 영혼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국가, 현재의 행위, 위엄과 시인들의 주제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유익한 결실이다. 마치 미국의 동부 역사에 있어서 현세대로부터 다음 세대로 속보를 걷는 것이 필요했던 것처럼. 마치 아름답고 신성한 명증이 신화적인 것의 뒤로 실각했던 것처럼. 마치 사람들이 어느 시대의 밖에서 그들의 특징을 만들지 않는 것처럼. 마치 미국의 서부 대륙이 발견에 의해 개방되고 남과 북의 미국이 구식의 소극장이나 중세의 작은 극장이나 중세의 몽유병자처럼 방향이 없었던 것보다 더 왜소한 것으로 생겨난 것처럼. 미연방의 자부심은 부와 도시들의 야심에 찬 책략과 상업과 농업으로 되돌아옴과 모든 지형의 크기를 허락한다. 성숙한 사내들과 한 사람의 굴복시킬 수 없고 순박한 성인 사내가 번식을 즐기는 외면적 승리의 과시를 허락한다.

미국을 위하여 낡은 것과 새것으로 둘러싸여 있는 미국의 시인들은 독특한 멋 중의 멋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음유시인은 민중과 함께 어울린다. 음유시인에게 다른 대륙은 헌배하며 다가온다. 음유시인들은 그들의 목적과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받아준다. 음유시인 정신은 그의 나라의 정신에 부합된다. 음유시인은 지형과 자연적 삶과 강물과 호수를 인간의 모습으로 구체화한다. 해마다 미시시피는 홍수와 급류의 줄기를 바꾸고, 미시시피와 콜롬비아와 오하이오와 세인트 로렌스의 폭포들과 아름답고 거친 허드슨은 스스로 강어귀를 만드는 것보다 더 깊이 바닥난 곳에 강어귀를 만들지 않는다. 그 푸른 폭은 버지니아의 내륙과 매릴란드와 매사추세츠의 외해(外海)와 메인 너머와 맨해튼 골짜기와 챔플레인과 에리에 너머와 오타리오와 허드슨과 미시간과 슈퍼리어 너머와, 그리고 텍사스 사람과 멕시코 사람과 플로리다 사람과 큐바해와 캘리포니아 외해 너머와 오레곤은 그 푸른 폭의 물이 그 위 폭의 물보다 더 아래쪽에 있고, 그 아래쪽은 그에 의해 일치된다. 긴 대서양 연안은 더 길게 뻗고 태평양 연안은 그들과 함께 북부 또는 남부로 쉽게 뻗는 것보다 더 길게 뻗어나간다.  그 연안은 또한 동부와 서부 사이에 걸쳐 있고 그들 사이에 있는 것들을 반영한다.  그 터전 위에서 소나무와 히말라야시타와 솔송나무와 떡갈나무와 메뚜기와 밤나무와 시프레스나무와 호두나무와 보리수나무와 미루나무와 감나무와 목백합과 선인장과 덩굴과 타마린드나무와 감나무는 자라고 숙성해져서 그들의 종을 파생시킨다. 대나무와 늪으로 뒤엉킨, 그리고 숲은 투명한 얼음으로 입혀졌고 바람 속에서 큰 가지는 매달려 얼지 않고 툭툭 소리를 낸다. 그 주변과 산정, 그리고 목초는 부드럽고 서배너 강처럼 고원지대처럼 대평원처럼 자유롭다. 야생 비둘기와 딱따구리와 과수원의 꾀꼬리와 물닭과 검둥오리와 말똥가리와 물수리와 대머리수리와 푸른 백로와 독수리가 서로 화답하며 날고 노래하고 깔깔거린다. 그들에게 나타나는 유전적 용모는 양친으로부터 물려받는다. 실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의 본질, 즉 기온의 엄청난 차이와 농업과 그 축척으로 이루어진 본질이 그에게 감지된다. 비바람에 시달린 배들이 새로운 항구에 들어가거나 바위로 뒤덮인 해안에 착륙하거나 하여 북부와 남부에 자리 잡은 원주민(숙성한 키와 근육), 1776년의 불손한 정의와 전쟁과 평화와 체격의 형성... 연방은 항상 실없는 사람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항상 고요하며 확고함, 이민들의 영구한 입주, 시민들과 우수한 해군들에 의해 둘러싸인 부두(답사되지 않은 내륙) 통나무집과 간척지와 야생동물과 사냥꾼과 덫을 놓는 사람들... 자유로운 상업, 어부들과 포경업과 금광 찾기, 새로운 신분의 끝없는 잉태, 매년 12월의 의회 소집, 의원들은 모든 지방과 모든 분야로부터 서서히 모여든다. 뛰어난 성격을 갖고 젊은 숙련공과 자유로운 미국의 근로 남성들과 근로여성, 일반적인 열정과 우정과 기획, 남성과 더불어 여성의 완전한 평등, 커다란 열정을 갖고 성장하는 공장들과 상업 활동과 노동 축척의 기계, 그로 인하여 인구의 유동적 변동이 있고, 양키들은 서로 교역한다. 뉴욕의 소방관과 짧은 유람여행, 남부의 농장 생활, 북동부의 특성과 북서부와 남서부의 특성과 노예제도와 그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펼치는 손들의 떨림, 그리고 중지하거나 혀로 말하는 것과 입술을 움직이는 것이 중지될 때까지 결코 중지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저항, 왜냐하면 그러한 미국 시인의 표현은 훌륭하고 새롭기 때문이다. 그것은 간접적이며 서술적이거나 서사적인 직접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 특성은 이것들을 더 많이 경험한다. 그 연대와 다른 나라들의 전쟁은 구가되고 그들의 연대와 특성은 설명하고 그 운문은 끝마치자. 공화국은 그렇게 위대하게 찬송하지 말자. 여기 그 주제는 창조되었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여기 가장 존경받는 석수(石手)와 결심과 과학으로 이루어진 계획 사이에 한 사람이 다가온다. 그리고 비만하여 굳어버린 형식이 아니고 새로운 미래의 아름다운 형식과 충만함을 보라.

모든 국가들 가운데 시적 성분으로 가득 찬 혈관을 갖고 있는 미연방은 가장 시인들을 필요로 하고 가장 위대한 시인을 갖게 될 것임이 틀림없고 그들을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대접할 것이다. 그들의 대통령은 그 나라의 시인들이 행하는 만큼의 일상적인 조정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형형색색의 위대한 시인들은 평등한 인간이다. 그의 내부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떨어져나간 사물들은 그로테스크하거나 괴팍하거나 제 정신이 아니다. 적재적소를 벗어난 사물은 좋은 것이 없고 적재적소에 있는 것 치고 나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인은 모든 대상체와 그 성질에 더도 덜도 아니고 적당한 균형을 부여한다. 그는 다양성의 중재자요 열쇠이다. 그는 시대와 영토의 평형장치이다. 그는 보완을 원하는 것은 보완하고 견제를 원하는 것은 견제한다. 만일 평화가 그 평화의 정신과 크고 부유하고 검소하고 광활하고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말하는 정상적인 루트를 벗어난다면, 농업과 예술과 상업에 (인간의 연구, 영혼, 영생불멸) 용기를 북돋는다. 동맹국가나 시정부, 결혼, 건강, 자유무역, 육지나 바다의 짧은 유람 여행, 너무 가까운 것도 없고, 너무 벗어난 것도 없고, 시인들 또한 너무 벗어나지 않는다. 전쟁에서는 시인이 가장 위력적인 힘이다. 시인을 신병으로 뽑는 것은 기병과 보병으로 뽑는 것과 다름없고, 시인은 엔지니어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중 가장 우수한 대포를 가져온다. 사람이 나태해지고 몸이 무거워질 때 일깨우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다. 시인은 그가 말하는 낱말 하나하나가 선혈을 뿜어내도록 할 수 있다. 관습이나 복종이나 입법의 평면 속에 고인 것들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는 고이지 않도록 한다. 복종은 그에게 주인이 아니고 그가 복종을 지배한다. 그는 그의 손끝에서 벗어나 높이 있는 빛을 되돌려 응축시킨다. 그는 그의 손으로 회전축을 돌린다. 그는 서서 가장 빠른 주자를 발버둥치게 하고 쉽게 따라잡아 그들 에워싼다. 시간이 불신과 사탕발림과 희롱 쪽으로 벗어나는 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억누르고, 접시들을 펼쳐 사내와 계집들을 자라게 하는 질기고 맛있는 고기를 제공한다. 그의 두뇌는 최고의 두뇌이다. 그는 논쟁을 일삼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재판관이다. 그는 판사가 판결하는 것처럼 판결하지 않고 다만 무기력한 것의 주위에 햇빛이 쏟아지는 것처럼 심판한다. 그는 가장 먼 것을 보는 것과 같이 가장 큰 신념을 갖고 있다. 그의 사상은 사물을 칭찬하는 찬송가이다. 그 영혼과 영겁과 그의 수준을 벗어난 신의 말속에서 그는 서막과 대단원이 있는 연극처럼 영겁을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군상 속에서 영겁을 본다. 그는 꿈이나 오점처럼 사내와 계집을 보지 않는다. 신념은 아주 청결한 영혼이다. 신념은 민중 속에 충만하고 그들을 보호한다. 그들은 믿음과 소망과 진실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거기에 가장 고상하게 표현되는 천재성의 위력을 낮추고 업신여기는 그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신선함과 무의식이 있다. 시인은 예술가가 아닌 사람이 가장 위대한 예술가만큼 어떻게 신성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지는가를 확실하게 관조한다. 파괴하거나 다시 개조하는 그 위력은 그에 의해서 자유로이 구사되지만 결코 무력으로 침략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가 보다 높은 수준의 모형을 드러내지 않고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모든 단계에 의해 그 스스로 입증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간에 과거는 과거, 그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이 정복한 존재, 협상하거나 싸우거나 미리 준비된 공격이 아닌. 이제 그는 그 뒤에 보이는 길을 통과했다. 거기에 어느 절망의 흔적이나 염세나 간사함이나 배타성이나 출신이나 피부색이나 지옥의 망상이나 지옥의 필수품, 그리고 그 때부터 무지나 약점이나 죄악으로 아로새겨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시시하거나 평범한 것은 거의 모른다. 만일 그가 전에 작다고 생각되었던 사물 속으로 입김을 불어넣는다면 그것은 우주의 웅장함과 생동감으로 팽창할 것이다. 그는 예언자요 그는 개인적이요 그는 스스로 완전하다. 다른 사람들도 그 만큼 훌륭하지만 오직 그만 관조할 뿐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그는 코러스의 단원이 아니다. 그는 규정 때문에 중단하지 않는다. 그는 규정을 관장하는 사람이다. 견자(見者)가 사물에게 보내는 시선을 그도 사물에게 보낸다. 호기심 많은 견자의 비밀을 누가 아는가? 다른 사람들의 직관은 그들 스스로를 확증하지만 이것은 어느 증명이라도 제거하지만 그는 그 자신과 정신 세계의 정체를 앞지른다. 무엇이 놀라운가? 무엇이 믿어지지 않는가? 무엇이 불가능하고 근본 없고 애매한가? 일단 예쁜 소녀의 복숭앗빛 음문(陰門)을 열어 주었고, 멀리 가까이에 있는 청중에게 황혼에게 부드러이 빠른 속도로 모든 사물을 혼란이나 난폭하거나 곤란 없이 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한 후인데.

육지와 바다, 동물들과 물고기와 새들, 하늘과 천체, 숲으로 우거진 산과 가을은 하찮은 주제가 아니지만 보통사람들은 시인들이 무언의 실제적 목표를 공격하는 아름다움과 위엄보다 더 높이 가리키기를 기대한다. 사내와 계집들은 아마 시인만큼 충분히 아름다움을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사냥꾼, 나무꾼,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 정원과 과수원과 밭을 경작하는 사람들의 열렬한 집착력, 남성같이 건강한 계집들, 선원, 말몰이꾼의 사랑, 햇빛과 확 트인 야외에 대한 열정, 이 모든 것들이 아름다움을 틀림없이 인지하고 있으며 교외에 사는 사람들 속에 시적인 면이 있음을 표시하는 여러 가지 표적이 있다. 그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시인들의 도움을 결코 받을 수 없다. 어떤 이는 그럴지 모르지만 그들은 결코 받을 수 없다. 그 시적 특성은 리듬이나 통일성이나 사물을 설명하는 관념이나 불평이나 훌륭한 교훈 속의 애수로 배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삶과 그밖에 많은 것들이 영혼 속에 존재한다. 리듬의 이로운 점 즉 그것은 달콤하고 무성한 리듬의 열매를 떨어뜨리는 것이며 통일성의 이점은 눈에 띄지 않게 흙 속으로 뻗은 스스로의 뿌리로 자신을 나른다는 것이다. 완벽한 시의 리듬과 통일성은 운율의 자연스러운 발전을 보여주고 숲속의 라일락과 장미처럼 정확하고 느슨하게 그들로부터 꽃봉오리를 맺고 알밤과 오렌지와 멜론과 배처럼 알찬 모습을 보여주고 형식으로 하여금 영묘한 향기를 발산케 한다. 아름다운 시나 음악이나 연설이나 시낭송의 유창함과 수식은 자유롭지 않고 예속적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피와 아름다운 두뇌로부터 온다. 그 위대함이 사내와 계집 속에서 결합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사실은 우주를 통해서 설득될 것이다. 그러나 기만과 허식은 수 백 만년 동안 설득되지 않을 것이다. 수식과 유창함에 대하여 스스로 고민하는 자는 멸망한다. 이것은 당신이 해야 할 것이다. 지구와 해와 동물들을 사랑하라. 부(富)를 쫓아내라. 구하는 자에게 베풀어라. 어리석고 실성한 사람들의 편에 서라. 다른 사람들에게 수입과 노동력을 바쳐라. 압제자를 미워하라. 신에 대하여 논쟁하지 말아라. 민중을 향하여 인내와 관대함을 가져라. 알려져 있든 알려져 있지 않든 무가치한 것에 모자를 벗지 말고 어느 사람에게든지 모자를 벗어라. 무지한 사람들과 젊은이와 집안의 어머니들과 자유롭고 활기차게 어울려라. 당신이 살아가는 매년 매 계절마다 활짝 트인 교외에 나가 이 시집을 읽어라. 학교에서 교외에서 어느 책에서 이야기했던 모든 것을 재음미하라. 당신의 영혼에 무례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쫓아버려라. 조용하고 위대한 시는 한없이 신선하며 가장 부유함은 낱말 하나 하나뿐만 아니라 그 입술과 얼굴과 눈빛의 채찍과 모든 몸짓 속에서 몸을 묶는 그 조용한 시구들도 유창함을 갖게 될 것이다. 시인은 무료 속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다. 시인은 흙이 항상 경작되고 거름이 주어질 준비가 되어있음을 알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지만 시인은 경작하고 거름을 줄 것이다. 시인은 피조물에게 직접 다가 갈 것이다. 그의 진실은 그의 손이 닿는 모든 진실을 포용할 것이며 모든 애착을 포용할 것이다.

기지(旣知)의 우주에는 한 사람의 완숙한 연인이 있으니 그가 곧 시인이다. 그는 영원한 열정을 불태우고 어떤 기회가 오건 말건 무관심하고 행운이나 불운의 우연한 가능성이 있건 없건 매일  매 시간마다 기꺼이 줄 것이라는 것을 설득시킨다.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고 좌절시키는 것은 접촉과 사랑스러운 기쁨으로 발전시켜 불태우려는 연료이다. 다른 사람들이 즐거움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점점 줄어들어 없어진다. 하늘로부터 또는 가장 높은 곳으로부터 기대된 모든 것들은 새벽의 광경 속에서 함께 일치되고 겨울 숲의 광경이나 뛰노는 아이들의 존재나 사내와 계집의 목을 감은 팔과 함께 그는 일치된다. 모든 사랑의 정상에 있는 그의 사랑은 여가와 넓은 공간이 있다. 그는 스스로 여지를 남긴다. 그는 우유부단하거나 의심 많은 연인이 아니다. 그는 믿는다. 그는  간극(間隙)을 경멸한다. 그의 경험과 빗발침과 스릴은 무용지물이다. 아무도 그에게 충격을 줄 수 없다. 고통과 어두움, 죽음과 공포도. 그에게 불평하고 질투하는 것과 선망은 흙속에 묻혀 썩은 시체들. 그는 묻힌 그들을 보았다. 그가 모두 완벽하고 아름다운 그의 사랑의 열매가 있음을 믿는 것만큼 바닷가 해안에 대하여 해안이 바다에 대하여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아름다움의 결실은 요행이 아니다. 인생처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중력처럼 정확하다. 전경(前景)은 또 다른 전경으로부터 생기고 들림은 또 다른 들림으로부터 생기며 목소리는 인간과 더불어 조화를 사물의 끝없이 호기심을 갖는 또 다른 목소리로부터 생긴다. 이들과 서로 상응하는 완전성은 나머지 사람들의 편이라고 생각되는 위원회뿐만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을 대표하는 스스로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민중의 홍수 속에서 완전성의 법칙을 이해한다. 그 완전성은 그 스스로를 위한 것이고 그 스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은 풍부하고 공평하며 그것이 없으면 밝음과 어둠의 순간뿐만 아니라 한 뼘의 뭍과 바다도 없고 하늘의 명령도 생업도 사건의 전환도 없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독특한 표현이 정밀하게 발란스를 이루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 부분을 다른 부분위로 억지로 밀어 올릴 필요가 없다. 가장 훌륭한 가수는 가장 우렁찬 오르간과 같은 음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시의 즐거움이 가장 멋진 운율과 직유와 소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노력 없이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조금도 들춰내지 않고도 위대한 시인은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모든 사건과 열정과 장면과 사람들의 정신을 제시한다. 이런 일을 잘 하는 것은 시간을 쫓고 따르는 법률에 비견할 만하다. 목적이 무엇인가 분명해야 하고 실마리가 있어야만 한다. 가장 희미한 암시는 최상의 암시이며 가장 명확한 암시가 된다. 과거 현재 미래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묶여 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미래에 이루어지는 일괄성을 과거와 현재로부터 형성시킨다. 그는 사자를 관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발 앞에 세워 놓는다. 그는 과거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앞에서 일어나 걸어라. 그는 교훈을 배운다. 미래가 현재가 되는 곳에 자리 잡는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성격과 장면과 열정에 눈부시게 빛을 발할 뿐 아니라 마침내 올라가 모든 것을 끝맺는다. 그는 그들이 무엇을 할 것인가 정상을 보여준다. 그는 가장자리에서 잠시 불타오른다. 그는 후에 여러 해 동안 고무되거나 두려워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의 섬광에 의해 반쯤 숨겨진 미소와 찡그린 얼굴이 될 때 가장 경탄할 만하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설교하거나 윤리 도덕에 몰두하지 않는다. 그는 영혼을 안다. 그 영혼은 어느 교훈도 결코 인정하지 않고 자신만이 간직하고 있는 무궁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부심만큼 무한한 연민을 갖고 있고, 자부심은 연민과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어느 한 편이 다른 한 편과 함께 뻗어나갈 동안 너무 지나치게 뻗어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예술의 가장 은밀한 비밀은 이 두 가지와 함께 잠자고 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이 두 가지로 만들어진 안식의 땅에 존재해 있으며 그들은 그 형식과 내용 속에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기교 중의 기교, 표현의 화려함과 문자의 빛으로 짜여진 햇살은 천진난만하다. 천진난만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과잉이나 명확성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충돌이 일어나고 지적인 깊이를 간파하고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모든 주제들은 흔하거나 희귀하지도 않은 힘이다. 그러나 더 나무랄 데 없는 청렴과 동물들의 태평스러운 움직임과 숲속에 있는 나무들의 나무랄 데 없는 정서와 길섶의 풀들은 예술에 있어서 무결점의 승리와 함께 문학에 대하여도 언급한다. 만일 그것을 성취한 사람을 보았다면 우리는 모든 국가와 시대의 예술가들 중에서도 대가의 한 사람을 보게된 것이다. 우리는 항만을 비행하는 갈매기나 순종 말의 기운 찬 행동이나 키 큰 줄기에 매달린 해바라기의 기울음이나 하늘을 여행하는 태양의 자태나 달의 모습을 만족하면서 응시하지 말아야 하듯 그를 응시하지 말아야 한다. Ezra Pound와 비교해 보라.가장 위대한 시인은 두드러진 스타일이 없고 보다 더 많은 사상의 방향도 없고 증감도 없으며 그 스스로 자유로운 해협이다. 그는 그의 예술에게 맹세한다. 나는 성깔을 부리지 않겠노라고, 나는 나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 커튼처럼 가려져 있는 그 방법에 매달려 우아하거나 효과적이거나 기발한 시를 쓰지 않겠노라고. 나는 그 방법 속에 아무 것도 매달리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값진 커튼이라도 매달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정밀하게 말할 것이다. 신분을 올리거나 깜짝 놀라게 하거나 매료당하게 하거나 진실하도록 하자. 나는 건강과 뜨거운 감정과 차가운 지성을 갖고 있는 것처럼 목표를 설정하겠으며 단순히 관조하는 것만으로 관여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경험하거나 묘사하는 것은 조각조각으로 이루어지는 바로 그런 구성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성될 것이다. 당신은 내 옆에 서서 나와 함께 거울 속을 들여다보시라.

위대한 시인들의 뜨거운 혈기와 무결점의 온화함은 그들의 자유에 의해 증명될 것이다. 영웅적인 사람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관습과 전례와 권위를 벗어나 편안하게 걷는다. 작가 대학자 음악가 발명가 그리고 예술가 무리의 특성 중에서 새롭고 자유로운 형식으로부터 발전해 나오는 조용한 도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 시와 철학 정치학 기계 과학 행동, 예술의 기교, 적절한 국립 오페라, 조선소, 그밖에 기술이 필요할 때 가장 근본적이고 실용적인 모범을 보여주는 자가 영원히 가장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다. 가장 청결한 표현이란 그 스스로의 가치 있는 영역을 찾지 못할 때 만들어지는 것이다.

위대한 시인들이 모든 선남선녀에게 주는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동등한 조건으로 오라, 오직 그 때에만 우리를 이해한다, 우리는 당신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우리가 에워싸고 있는 것은 당신도 에워싼다, 우리가 즐기는 것은 당신도 즐거워할는지 모른다. 당신은 절대자가 오직 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절대자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으며 하나의 전경이 또 다른 전경을 보다 더 상쇄할 수 없고 사람들은 오직 그 자신 안에서 훌륭하고 위대한 절대자를 지각할 수 있을 뿐이다. 폭풍우의 웅대함과 국토 분할과 치명적인 전투와 파멸과 자연의 야생적 격노와 바다의 힘과 자연의 몸짓과 인간 욕망의 아픔과 위엄과 증오와 사랑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여기저기서 경련 하는 하늘과 바다를 산산조각 부수고 자연과 격정과 죽음을 지배하며 분노하고 소용돌이치는 영혼 속의 그 무엇이다.

미국의 시인들은 관대하고 호의적이며 경쟁자를 격려해주는 아량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은 독점과 비밀이 없고 무엇이든지 누구에게나 주고 나서 즐거워하는, 주야로 평등에 굶주린 우주가 될 것이다. 그들은 부와 특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며, 가장 부유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가장 부유한 사람은 자신의 부보다 더 강력한 부와 동등한 부로써 보이는 모든 과시와 직면하는 사람이다. 미국의 시인은 사람의 계층이나 한 두 사람의 흥미의 층이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나 진실 가장 아름다운 영혼이나 육체를 묘사하지 않고, 서부보다 동부의 주들을, 남부보다 북부의 주들을 위하여 묘사하지도 않을 것이다.

정밀 과학과 그 실천은 가장 위대한 시인에 의해 규제되지 않지만 항상 지원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거기에 최초의 발단과 추억이 있다. 거기에 맨 먼저 그를 올려주고 떠받쳐 준 팔들이 있고, 거기에 사라져 간 것들과 새로이 나타나는 것들 뒤로 그는 되돌아온다. 해부학자 화학자 천문학자 지질학자 무당 수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사전 편찬자는 시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인들에게 있어서는 입법자요 그들의 조직은 모든 완벽하게 창작된 시의 구조 속에서 초석이 된다. 무엇이 일어나든지 무엇이 표명되든지 그들은 詩라고 일컫는 개념의 씨앗을 보냈다. 그들은 그들에 의해 영혼의 명백한 증거를 내세웠다. 항상 그들의 父性的 요소는 시인들의 야무진 경쟁의식을 낳았음이 틀림없다. 만약 거기에 그 부자간의 사랑과 만족이 있고 만약 아들의 위대함이 아버지의 위대함으로부터 스며 나온다면 시인과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사람 사이에도 사랑이 스며 나올 것이다. 아름다운 시속에는 자연과 과학의 마지막 박수 갈채가 있다.

지식의 용솟음에 대한 신뢰와 사물의 질과 표면의 깊이를 탐구하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시인의 영혼은 의기양양하게 원을 이루며 부풀어 오르지만 항상 그 자신을 통제한다. 그 깊이는 잴 수 없고 그러므로 고요하다. 그 순결과 적나라함은 되찾아지고 그들은 겸손하거나 불손하지도 않다. 특별하고 초자연적이고 그것과 쌍을 이루거나 그것으로부터 끌어내어지는 이론의 모든 것들은 하나의 꿈으로서 출발한다. 과거에 일어났던 것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과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과 앞으로 일어날 것과 생명의 법칙들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그들은 어느 경우이거나 모든 경우를 물론하고 만족한다. 서두르거나 늦추는 일도 없다. 어느 사건의 기적이나 웅대하고 청결한 조직 속에서 모든 움직임과 새싹과 남녀의 육신과 정신 그리고 그들에게 관련된 모든 것들이 말할 수 없이 완벽한 기적들로 귀착되고 각각 적재적소에 있다. 그것은 또한 이미 알려진 우주 속에서 선남선녀보다 더 성스러운 그 무엇이 수용되는 영혼의 실재와 함께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선남선녀와 지구와 그 위의 모든 것들은 단순히 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탐구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완벽하게 공평해질 것이다. 이러한 기초 위에 철학적 사색은 시인을 향하여 있고, 모든 행복을 향하여 영원히 옹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눈여겨볼 때마다 느끼는 감각과 영혼이 해맑음과 조화를 이룬다. 왜냐하면 행복을 향하여 영원히 옹호하는 경향이 있음은 오직 온전한 철학의 특징을 만들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보다 더 함축된 의미는 없다. 빛과 천체 운동의 법칙보다 작은, 도둑 거짓말쟁이 대식가와 술고래가 이승에서 그리고 분명 저승에까지 따라 다니는, 시간의 광대한 신축성과 인구밀도의 느린 형성과 신분 계층을 끌어올리는 인내심보다 작은 것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완전한 형상은 평범 속에서 나온다. 일반 법칙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평범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위대하다. 그 대가는 말할 수 없이 위대하고 모든 것이 말할 수 없이 위대함을 또한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아이를 잉태하고 잘 키우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으며, 존재는 인식하거나 이야기하는 것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대가가 됨에 있어서 정치적 자유의 사상은 절대 필요한 것이다. 자유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영웅들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잔여의 사람들로부터는 시인들보다 더 많은 지지와 환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자유의 목소리이며 해설자이다. 그들은 시대를 초월해서 웅대한 사상을 소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들은 믿음직스럽고 그들은 그 믿을 만한 사상을 지탱할 수 있음이 틀림없다. 그것을 앞질러 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곡시키거나 품위를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위대한 시인의 태도는 노예를 격려해 주고 독재자를 공포에 떨게 하는 것이다. 시인들의 고갯짓 발짓 손짓들은 어떤 사람에게는 위험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진다. 잠시 시인들에게 다가가라. 시인들은 당신에게 말을 하거나 충고하지는 않지만 신뢰할 만한 미국의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이다. 자유는 한 두 번 혹은 여러 번의 실패로부터 훌륭한 의도가 묵살 당하는 사람들에 의해 제대로 섬겨지지 않고, 우연한 무관심과 사람들의 배은망덕이나 불끈 치솟는 힘의 날카로움이나 병사와 대포와 어느 가혹한 형법을 낳은 소송의 초래로부터도 제대로 섬겨지지 않는다. 자유는 스스로를 신뢰하고 아무에게도 권하지 않으며 아무 것도 약속하지 않으며 벗은 가운데 조용하게 앉아서 빛을 받으며 명확하게 구성된다. 그리고 낭패라는 것을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면 큰 소리로 경보가 울리고 전진과 후퇴가 잦아진다. 적군이 승리하여 감옥, 수갑, 쇠목걸이와 차꼬, 단두대, 교수형구와 납덩어리가 제구실을 한다. 억센 목구멍들은 피로 막혀있고 청년들은 서로 지나칠 때 눈썹을 땅으로 내려 깔고, 그리고 자유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자유는 결코 사라지 않았다. 자유가 사라질 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로 가지 않았다.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가기를 최후까지 기다린다. 늙은 순교자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질 때, 애국자의 위대한 이름들이 공회당에서 연사들의 입으로 조롱 당할 때, 사내아이들은 더 이상 똑같은 세례명으로 이름이 지어지지 않을 때, 그러나 압제자의 세례명으로 지어져 대신으로 특징 되어질 때 자유인의 법은 인색하게 허락되고 밀정과 범죄신고 사례금이 사람들의 취향에 맞아떨어질 때 우리는 지구 위를 활보하다가 우리와 동등한 우애로 교감하는 수없이 많은 형제들의 입장을 연민의 정으로 아파하며 아무나 주인으로 섬기지 않는다. 우리가 노예의 입장에서 숭고한 기쁨과 함께 고무될 때, 영혼이 어둠의 냉랭한 교감 속에서 물러나고 그 경험을 되살펴 보며 말의 무아경에 빠지고 압제자의 손아귀 속으로 어쩔 수 없이 순결한 사람들을 처넣거나 잔인한 열등의식 속으로 집어넣을 때, 이 나라의 방방곡곡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전에는 미국의 진정한 성격을 깨달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못할 때, 비겁한 사람들의 무리 바보 줏대 없는 사람들 정치적 기생충 시의회 혹은 주의회 사법부 국회 혹은 관직에 진출하기 위하여 음모를 꾸미는 사람들이나, 민중으로부터 사랑이나 자연스런 존경의 감응을 얻을 때 그들이 직책을 얻든지 말든지 안정된 눈과 솔직하고 관대한 마음을 갖고 항상 모자를 벗지 않고 있는 가장 가난하고 자유로운 수리공이나 농부보다 직책 속에서 높은 봉급에 묶여 있는 얼간이나 건달이 되는 것이 더 나을 때, 그리고 시나 주나 연방정부나 크거나 작거나 어느 압제에 의해 노예상태가 가장 적은 도피의 기회에 역비례하여 이루어지는 비율로 당연히 뒤따르는 형벌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을 때, 혹은 모든 생명과 사람의 영혼이 지구의 어느 부분으로부터 쫓겨날 때, 그 때만이 오직 자유의 본능이 지구의 그 부분으로부터 쫓겨나게 될 것이다.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시인들의 속성은 진정한 육체와 영혼과 사물들의 즐거움 속에서 모든 소설과 이야기보다 월등히 순수함을 소유하고 있다. 시인들이 스스로 사실들을 토로하면 그것들은 빛처럼 쏟아진다. 그 빛은 더욱 폭발적으로 쏟아진다. 또한 일몰과 일출 사이의 심연은 더욱 더 깊어진다. 정확한 목표와 상황과 결합과 과정은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九九法도 노년도 목수의 생업도 그랜드 오페라도 증기로 운항하거나 돛을 달고 바다에 떠있는 거대하고 말쑥한 뉴욕 쾌속정은 비할 데 없이 아름답게 빛을 발하고 있다. 미국의 여러 집단들과 행정부와의 커다란 조화는 그러한 것들과 함께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보편적으로 한정된 목적과 행위들과 함께. 우주 속에 살고 있는 시인들은 조정과 엄호와 분투와 전략을 첫 번째 원리로 발전시킨다. 시인들은 그 필요성으로부터 가난을 해결하고 그 자부심으로부터 부유함을 만들어낸다. 그들이 언급하는 커다란 타당성은 무엇보다도 더 깨닫거나 지각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을는지 모른다. 자유의 소유자는 돈을 지불하고 산 관료적 형식주의의 권리를 움켜쥐고 있는 자가 아니다. 각종의 발언과 주제와 형식과 평등함을 알아차려 인지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유의 소유자이며, 그들은 그 사람들 속에 쉽게 편입된다. 그리고 베풀거나 父性과 母性을 지향하는 의지력과 유연성과 부와 거대함을 획득한다. 강하고 건강하고 성취된 미국의 주들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형태의 침식으로부터 만족을 얻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허용하지도 않을 것이 틀림없다. 광물과 목재로 만들어지는 회화와 조소와 도서와 신문의 삽화, 희극과 비극,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들어지는 패턴, 아름다운 침실이나 가구나 복장이나 처마장식과 기념물, 뱃머리와 고물,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출입문 안팎의 어디에나 놓여있는 것, 그 영리하게 생긴 모습을 찌푸리게 하거나 비현실적인 존재와 장소와 우연성은 불쾌한 것이며 저항감을 일으키는 것이다. 특별히 인류의 모습은 결코 우스꽝스럽게 만들어지지 않았음이 틀림없으며 더없이 위대한 것이다. 겉으로 꾸민 장식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식들은 열린 대기(大氣)의 완벽한 실재를 따른다는 것이 허용되며 자연의 창조 작업을 따르는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억압할 수 없는 것이며 창조 작업의 완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대부분의 그 창조 작업은 꾸밈없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 창조 작업 중에 더러 보이는 과장은 인간의 생리적인 한풀이가 될 것이다. 순결하고 활발한 아이들은 매일매일 자연의 형식이 만들어내는 모델이 공개되는 이러한 사회 속에서 오직 분출되고 이해될 뿐이다. 위대한 천재와 각주의 민중은 결코 헛된 꿈을 요구하지 않고 있음이 틀림없다. 역사는 언급되자마자 마땅히 더 헛된 꿈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위대한 시인들은 또한 계략이 없이 개인적으로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허심탄회하게 정당화되는 사람으로 알려진다. 그러면 민중은 새롭고 손쉽게 얻는 즐거움과 그들의 두뇌로부터 도약하는 신성한 목소리로 반향 한다. 그 솔직성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모든 결점은 완벽하게 솔직한 그런 사람으로 인하여 탕감될는지도 모른다. 이제부터는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하자. 그 솔직성은 안팎의 세계로부터 신망을 얻고 단 하나의 예외도 없었기 때문이며, 우리의 지구가 한 무리가 된 이래로 사기와 협잡과 변명이 가장 작은 티끌과 가장 희미한 그늘의 기미가 되었기 때문이며, 부와 계층을 통틀어 또는 모든 주들의 아부를 일삼는 자와 교활한 자들은 발견 되는대로 경멸을 받을 것이며, 그러한 정신은 한 번도 속아본 적이 없고 속을 수도 없고, 그 정신이 승낙한 사랑 없이 번성함은 오직 악취 나는 입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것은 지구의 어느 대륙에서도 결코 성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행성이나 위성이나 별, 소행성, 아주 작은 우주의 부분, 조밀한 인구의 한 가운데, 바다의 축축한 습기, 아기가 태어나기 이전의 상태, 인생의 변화, 죽음이라고 표현되는 것들을 따르는 상태, 성장의 중지, 생명력이 넘치는 곳이면 어디에서든지 본능적으로 진실을 미워하는 존재는 성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기울여야 할 조심과 신중성, 가장 건실한 유기체의 건강, 어머니와 아이들을 위한 대망과 비교와 자애, 커다란 영향력과 파괴력은 우연성, 자연적 조화의 완벽한 직감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건들에 적용된 평등 정신의 타당성, 이러한 것들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날 때부터 가장 위대한 시인의 부분으로, 두뇌의 세계에 떠오른 부유물로 부름을 받는 것이며, 어머니의 몸 밖에서 이루어지는 탄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심성은 거의 사라졌다. 그것은 신중한 시민들이 그 스스로 단단한 획득물로 사용했고 스스로와 가족을 위하여 잘 실천했으며, 의구심과 범죄 없이 합법적인 인생을 완성한 시민들이었다. 가장 위대한 시인은 음식과 수면의 경제를 관찰하듯이 이러한 경제성을 관찰하고 허용한다. 그러나 그가 걸쇠 잠긴 문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 기울이는 생각보다 더 많게 신중한 생각을 한다. 인생의 신중성에 대해 언급한 전제는 그것의 환대나 교접하는 것이나 그것의 수확물이 아니다. 그밖에 저축을 위하여 모아둔 적은 양의 돈, 그리고 주변의 많은 통 만드는 참나무 판자와 혼자서 소유한 많은 미국의 땅과 그 해의 부족한 옷감과 식량을 보충하기 위한 여유 돈과 사람이 치켜 올린 것처럼 그렇게 위대한 존재가 자포자기하여 우울한 사려분별과 그들이 불태운 나날들과 얼어붙게 만든 밤들과 함께 돈을 벌기 위하여 피땀 흘린 여러 해, 답답한 책략과 도피, 아주 작은 응접실, 다른 사람들이 굶주리는 동안 부끄럼 없이 배를 채움, 개화기의 상실과 흙과 꽃과 공기와 바다의 냄새와 지나치는 혹은 젊은이나 중년들과 함께 하며 맛보게 되는 진실, 치솟는 메스꺼움과 고상하거나 소박함 없이 밀어닥친 인생의 절망적인 반란, 화창함이나 장엄함 없이 죽음을 수없이 재잘거림, 이러한 것들은 현대문명이 낳은 위대한 사기꾼이며 부정하기 어렵게 설계된 문명의 외관과 구조를 얼룩지게 만든 의도이다. 그리고 펼쳐진 그 거대한 모습은 눈물로 젖어서 축축하고 영혼에게 키스하기 위하여 매우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그러나 정의로운 의미는 신중성에 의해 만들어져 남아 있다. 단순히 행복에 대한 신중성과 가장 존경할 만한 삶을 갖고 있는 명사들은 세계를 관조하는 시야 안으로 서서히 나타난다. 영원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적절한 신중성의 사상이 크고 작은 이슬방울 모양의 보석으로 만들어 늘어뜨린 장식처럼 조용히 곁에 있을 때. 한 해 또는 칠팔십 년 동안의 허약을 각 세대에 의해 일정한 간격으로 지혜로 채우는, 힘차게 보강된 어느 시대와 풍요로운 선물과 당신 쪽으로 흥겹게 달리고 있는 모든 방향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결혼식에 초대된 손님들의 깨끗한 얼굴과 같은, 그러한 지혜는 무엇인가? 정신은 오직 그 스스로이며, 모든 것은 뒤이어 일어나는 증명서일 뿐이다. 사람들이 행하는 또는 생각하는 모든 것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그러한 움직임은 하루한달 직접적으로 일생의 어느 한 부분이나 죽은 뒤뿐만 아니라 간접적으로 일생 동안의 앞뒤에 영향을 미치는 작용을 한다. 간접성은 항상 중요하며 직접성과 마찬가지로 사실적이다. 그 정신은 그것이 육신에게 주는 만큼과 똑같이 육신으로부터 되받는다. 말과 행동뿐만 아니라 성교 후의 쓰라림이나 얼룩, 자위하는 사람의 프라이버시, 열성가나 술고래들의 타락한 기질, 유부녀를 타락시키는 음흉한 해독뿐만 아니라 유부녀를 바보로 만들고 매음케 하고 젊은 사내들을 타락시키고 망신스러움을 얻어 이룩케 하고 사람들에게 거칠게 대하는 관료, 죄수를 대하는 판사,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 아버지를 대하는 자식, 아내를 대하는 남편, 부하를 대하는 두목뿐만 아니라, 탐욕스러운 얼굴이나 악의가 있는 소망, 사람들에 의해 꾸며진 어느 농간이 앞에 언급한 사람들에게 덮어씌워지고, 현재의 또는 앞으로 그 계획된 농간에 의해 짓밟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연히 실현되고 반복되고 또 그 실행이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이다. 동정심의 분발이나 개인적인 힘이 심원한 이성보다 더 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가까이 또는 멀리 논쟁을 불러들일는지도 모른다.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다. 더 붙이거나 빼거나 나누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 사람의 크고 작음, 배웠거나 무지하거나, 흑백, 합법적이거나 불법적이거나,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첫인상은 마지막 인상으로 이어지는 숨통이며 남녀 모두가 활발하고 인자하고 청순함은 보편적으로 확고부동한 이치 속에서 모든 사람에게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 전체적인 질서는 영원하다. 만약 야만함과 흉악함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만약 가장 위대한 시인과 학자가 단순히 같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대통령과 대법관이 같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젊은 수리공과 농부가 더 할 나위 없이 같다고 생각한다면, 만약 매춘이 더 할 나위 없이 슬기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흥미로움은 잃었던 의식이 서서히 드는 것과 같이 일어날 것이다. 모두가 의식을 회복할 것이다. 전쟁과 평화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행동은 모두가 친척과 낯선 사람과 가난한 자와 노인과 슬픔에 찬 사람과 젊은이와 미망인과 병자와 모든 도피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모든 탈주자들을 조장하는 것과 노예들의 탈주, 꿋꿋이 서서 멀리 난파선에서 살아 나와 사람들이 구명보트의 자리를 서로 빼앗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든 극기심, 모든 본질을 제공하거나 훌륭하고 노련한 이유를 갖고 있는 인생, 또는 친구가 살아가는 이유나 여론의 동기, 이웃에서 조롱 받는 열성가들의 모든 고통, 그 웅대하고 달콤한 사랑과 어머니들이 겪는 고귀한 경험, 우리가 상속받은 史料의 파편들로 만들어진 몇몇 고대 국가들의 모든 장점, 보다 강력한 다수의 장점들과 이름과 시간과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고대 국가들, 성공했던지 못했던지 일찍이 씩씩하게 출발했던 모든 국가, 그 모든 것이 인간의 성스러운 마음으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의 신성함이나 그의 위대한 손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으로 암시되었던 어느 시대, 그리고 모든 것이 지구의 표면 어느 곳에서든지 이런 나날들을 잘 생각하고 행한다. 또는 떠도는 어느 별이나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것처럼 이들에 의해 정착한 별들, 이후에 존재하는 것이면 누구에게서든지, 또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서 잘 생각하고 행해질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그리고 전체적으로 그들의 시대에 단련되었고 현재 단련되고 그들이 도약했거나 앞으로 도약할 것으로 항상 동질성을 익히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단지 그 순간을 살았던 그들의 어느 것을 추측해 낼 수 있는가? 세계는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다. 명백한 부분이 아니며 불분명한 존재도 아니다. 그 길고 오랜 선행의 결과 없이 현존의 결과는 없는 것이며 가장 먼 미래에 언급할 만한 지점이 어느 다른 지점보다 훨씬 더 가까이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뒤로 역행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정신은 진실하다는 것을 무엇이든지 만족시켜 준다. 가장 위대한 시인의 사려분별은 마지막으로 열망에 답하고 정신을 포식하고, 만약 그들이 그 길을 따른다면 사려분별 없이 경멸하지 않고, 아무 것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경우이거나 어느 경우에도 중단을 허락하지 않고, 특별한 안식일이나 최후의 심판일이 없고, 죽음으로부터 삶을, 불의로부터 정의를 분리해내는 일이 없다. 현재에 만족하고 서로의 상관성에 의해 모든 사상과 행동이 짝을 이루고, 용서가 불가능하거나 죗값을 대신할 수 없음을 안다. 청년은 태연히 그의 인생에 목숨을 걸고 그 스스로 곧잘 엄청난 것을 잃는다. 그의 일생에 목숨을 걸고 부유함 속에 노년을 안주케 하고 그 안락이 그 스스로를 위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아무 것도 없음을 알게 되는 동안. 그리고 생명이 긴 것들을 좋아할 줄 아는 사람만이 사려분별을 배울 필요가 없으며, 육체와 정신이 같음을 알아차리고, 간접적인 것이 분명히 직접적인 것을 뒤따르고 그가 행하는 어떠한 악이나 선이 그를 앞질러 가서 다시 그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위급할 때에 서두르거나 죽음을 피하지도 않는다.

오늘날은 가장 위대한 시인이 직접적으로 겪어야 할 시련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가 광막한 대양의 파도처럼 바로 이 시대와 함께 스스로를 범람하지 않게 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만의 영지인 육신과 영혼을 자신에게로 유인하지 않는다면, 그의 목에 비할 데 없이 고귀한 사랑을 매달고 유태인 같이 단단한 근육을 그러한 장점과 단점 속으로 내던지지 않는다면, 만약 그가 스스로 변형된 시대를 만들지 안는다면, 만약 그에게 모든 시대와 장소와 과정과 생명력이 있거나 생명력이 없는 형식들과 유사하게 하는 영원성을 개방하지 않는다면, 그 형식은 시간의 뼈이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호함과 유영하고 있는 오늘날의 형상 속에서 솟아오르고 유순한 인생의 닻에 묶여 있으며 현재의 시점을 과거로부터 미래로 가는 통로로 만들고 1시간이라고 하는 파도와 60분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파도의 아이들로 표현하는 스스로에 몸을 맡기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스스로를 그러한 일반적 경향 속에 융합시켜 스스로의 성장을 기다려라. 그래도 시나 어떤 성격이나 작품에 대한 마지막 시험이 남아있다. 통찰력이 있는 시인은 여러 세기에 걸쳐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고 한 시대가 지나간 뒤에도 인생의 연기자와 연기를 비판한다. 그 비판은 연기자들과 함께 살아 숨쉬고 있는가? 그가 묻힌 뒤에도 오래도록 믿어질 수 있는가? 젊은 사내가 종종 그를 생각해 줄 수 있겠는가? 젊은 계집이 그를 종종 생각해 줄 수 있겠는가? 중년과 노인들도 그를 생각해 줄 수 있겠는가?

위대한 시인은 세대간에 공유하는 것이며 모든 신분과 얼굴색과 모든 부문과 종파와 사내만큼 계집과 계집만큼 사내와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 위대한 시인은 남녀에게 최후가 아니라 시작이다. 마침내 어느 지당한 권위를 갖고 앉아 어느 설명으로 밝혀진 의미에 만족하며 안주하고 깨닫고 흡족하고 충만하다고 생각해본 사람이 있을까? 위대한 시인은 그러한 종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그는 중단도 보호받는 비만과 안락도 가져오지 않는다. 그가 붓을 들어 쓴 시는 행동 속에 살아 움직인다. 그가 포용하고 있는 사람을 그는 꽉 끌어안고 이전에 이르지 못했던 생생한 영역으로 데려간다. 거기서부터는 안락이 없다. 위대한 시인이 데려간 그들은 죽은 공허 속의 낡고 바랜 얼룩과 빛을 되살려 만든 우주와 신성한 광채를 보게된다. 그들의 반려들은 별들의 탄생과 진행과 의미를 배운다. 이제 소란과 혼돈 속에서 응집되어 나온 한 인간이 있게 될 것이다. 더 나이 먹은 사람은 젊은이를 격려하고 인생의 묘방을 가르쳐 줄 것이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두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가 스스로 궤도를 맞추고 보다 더 작은 별들의 궤도 위에서 태연히 계속 원을 그리며 날아가 우렁찬 소리가 끝이 없을 때까지 겁없이 전진케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성직자들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일은 끝났다. 그들은 잠시 기다릴는지도 모른다. 아마 한 세대나 두 세대를. 신분을 잃을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지위는 보다 더 좋게 조성될 것이다. 질서와 조화로 이루어진 한 무리와 예언자들이 일시에 그 지위를 얻게 될 것이다. 새로운 질서가 생기고 그들이 인간을 구제하는 성직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 자신을 구제하는 성직자가 될 것이다. 그들의 영향 아래 세워지는 교회들은 선남선녀들의 교회가 될 것이다. 그들 스스로의 신성함을 통하여 조화로운 세계와 새로운 시인들이 탄생함은 사람들과 사건들과 사물들의 통역관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들은 현재의 실상(實相)속에서 과거와 미래의 조짐과 영감을 발견케 될 것이다. 그들은 영원성이나 신이나 사물의 완전성이나 자유나 최고 미와 영혼의 실재를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미국 안에서 일어나 그 땅의 유물로부터 감응을 받게 될 것이다.

영어는 웅장한 미국적 표현에 편을 든다. 그 표현은 충분히 강건하고 유연하며 충만하다. 모든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비축된 그 튼튼한 특성은 결코 정치적 자유의 이념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그것은 자유의 아니무스1)이다. 그것은 보다 우아하고 명랑하며 미묘하며 보다 더 고상한 언어이다. 그것은 저항적이며 강력한 언어이다. 그것은 의미를 공유하고 있는 방언이다. 그것은 자부심을 갖고 있는 연설이며 침울한 특성도 갖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성장 신뢰 자긍심 자유 정의 평등 우정 도량 사려분별 결심과 용기로 표현되는 일종의 선택된 언어인 것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거의 같은 것으로 표현되는 영매(靈媒)이다.

위대한 문학은 행동이나 웅변 사회적 고통 수신제가(修身齊家) 공중도덕이나 고용된 사람들의 고용주에 의해 받는 대우의 스타일과 같은 것이 아니다. 실천 명령, 육군이나 해군의 행동 명령, 입법 사법 경찰 교수 건축 노래 위락의 정신이나 젊은이들의 복장과 같은 것이 아니며, 미국인이 기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질투심과 격정의 본능을 오래도록 감추고 있는 것일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민중의 입으로 표현되는 기호가 아니라, 무심코 지나친 뒤에 모든 자유인의 가슴에 생생히 살아있는 의문이 고동치고 있는 것이거나, 이것이 자취를 남기는 것이다. 그것은 내 조국과 함께 한결같아지는 것인가? 그것은 수치스러운 차별 없이 정돈되는 것인가? 그것은 숙성한 형제들과 연인들을 위한 것인가? 크고 잘 결합된 구형식의 자긍심, 또는 모든 형식과 잘 어울리는 관대함을 위한 것인가? 그것은 들에서 신선하게 자란, 오늘 방금 요리하기 위하여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그 무엇인가? 나는 안다. 내게 쓸만한 것을. 미국인이라면 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반드시 쓸만한 것, 육체의 한 부분에 쓸모가 있는 것을. 그리고 이것을 답할 수 있는가? 보편적 요구에는 언급이 필요 없는가?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미개발사회의 욕구를 싹트게 할 수 있는가? 위락의 낡은 욕구가 현대 과학과 형식에 의해 자리 잡혀질 수 있는가? 들어서 알다시피 기지의 자유와 절대 인식은 생사를 위해 하잘 것 없는 것에 예속될 수 있는가? 그것은 외모가 준수하고 성기가 큰 사내를 양육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계집은 완벽하고 독립심이 강한 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가? 그것은 태도를 개선할 수 있는가? 그것은 젊은 공화국의 유모인가? 그것은 수많은 어린이들의 어머니 가슴에 달려있는 젖꼭지에서 흘러나오는 달콤한 젖을 쉽사리 나오게 할 수 있는가? 전에는 신선했던 관용과 공명정대가 이제는 너무 낡아 버렸는가? 마지막으로 태어나는 것과 위업의 달성 쪽으로 굳혀진 이들과 모험적 편력과 자신의 외부로부터 급습하는 모든 힘을 경멸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사랑으로 함께 바라볼 수 있는가?

다른 시들로부터 추출해낸 시들은 아마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 비겁자는 틀림없이 사라져버릴 것이다. 생명력이 있고 위대함에 거는 기대는 오직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과 위대함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행실에 의해서만 충족될 수 있다. 번쩍번쩍 윤을 내며 비난을 퍼붓는 무리들과 비평가와 얌전을 빼는 상류층은 둥둥 떠다니며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전언을 갖고 온 방문객들을 침착과 호의로써 맞아들일 준비를 한다. 그들이 보증되고 환영받는 것은 지성으로서가 아니다. 재능 있는 사람, 예술가, 영리한 사람, 편집인, 정치가, 박식한 사람, 그들은 진가를 인정받는다. 그들은 적재적소에 앉아 자신의 일에 충실한다. 국가의 정신 또한 그러한 노동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위장도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숨겨질 수도 없다. 아무 것도 거절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한다. 오직 그 스스로 만큼 훌륭한 사람을 위하여 반쯤 전진할 것이다. 개인은 최고의 국가를 만들어낸 자질을 소유하고 있을 때 국가만큼 훌륭해질 것이다. 가장 크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자긍심이 높은 국가의 정신은 시인들의 영혼을 만나기 위하여 반쯤 마중을 나가도 좋을 것이다. 신호를 보내는 것은 효과적이다. 실수 할까봐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만약 시인이 진실하다면 국가도 진실하다. 한 사람의 시인을 증명해주는 것은 그가 그의 조국을 흡수 동화시켰듯이 그의 조국이 그를 자애롭게 흡수하여 동화시키는 것이다.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 출생. 아버지는 목수였는데, T. 페인(1737∼1809)의 인권사상 등에 심취하였고, 어머니는 네덜란드 이민 출신으로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풍을 지녔다. 4세 때 브루클린으로 이주, 가정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중퇴하여 인쇄소 직공으로 있으면서 독학으로 교양을 쌓았다. 1835년 고향에 돌아가 초등학교 교사, 신문 편집 등에 종사하였다. 그 후 뉴욕으로 옮겨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하여, 1846년에는 브루클린의 미국 민주당계 일간지 「이글(Eagle)」의 편집자가 되었다. 그러나 1848년 “프리 소일(free soil) 운동”을 지지하는 그의 논설이 민주당 보수파의 분노를 사게 되어 사임, 전부터의 염원이던 프리 소일파의 주간신문 「자유민(Freeman)」을 창간하여 그 주필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또다시 민주당 보수파의 공격을 받고 겨우 1년 만에 사임하였다.

185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합승마차의 마부석 옆에 앉거나 나룻배에 타거나 하여 민중의 생태를 관찰하고, 또는 아버지의 목수 일을 도우며 많은 시간을 독서와 사색으로 보냈다. 이 내부침잠(內部沈潛)의 시기를 거쳐서 그의 시인으로의 전신(轉身)이 이루어졌다. 1855년 시집 「풀잎(Leaves of Grass)」을 자비 출판하였는데, 이것은 종래의 전통적 시형(詩型)을 크게 벗어나 미국의 적나라한 모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찬미한 것이었다. 그러나 제3판(1860)에 이르자, 새로 수록된 「카라마스」 등의 시군(詩群)을 통해서 사랑과 연대(連帶)라고 하는 일정한 주장이 표면화하기 시작하여, 이른바 ‘예언자 시인’으로의 변모를 드러냈다. 논문 「민주주의의 전망(Democratic Vistas, 1871)」에서도 미국사회의 물질주의적인 경향을 비판하고, ‘인격주의’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1862년 겨울, 남북전쟁에 종군 중이던 동생 조지가 부상당한 것이 계기가 되어, 1863년 이후는 관청에 근무하면서 워싱턴의 병원에서 부상병을 간호하기도 하였다. 어떻든 남북전쟁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자신의 고통과 죽음을 견디는 젊은 병사들의 모습을 직접 목격한 경험은 그의 마음속에 미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1865년, 남북전쟁을 소재로 하는 72페이지의 작은 시집 「북소리(Drum-Taps)」를 출판하고, 이듬해 링컨 대통령에 대한 추도시(追悼詩) 「앞뜰에 라일락이 피었을 때(When Lilacs Last in the Dooryard Bloom’d)」를 포함한 24페이지의 「속편(續編)」을 출판해서 곧 「풀잎(4판, 1867)」에 재록(再錄)하였다.

1873년에 중풍의 발작이 있었으나 요양에 전념, 1879년에는 서부 여행, 1880년에는 캐나다 여행도 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되었다. 1882년에는 산문집 「자선일기(自選日記) 기타」를 출판, 문명(文名)도 높아졌다. 1884년에는 「풀잎」의 인세(印稅)로 세운 뉴저지주 캠던의 미클가(街) 자택에는 내외의 방문자가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러나 체력도 약해졌지만 그 자신은 점차 염세주의로 기울었으며, 1888년 재차 중풍이 발작한 후, 1892년 폐렴(肺炎)으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