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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현대문학에서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


워런 모트(Warren Motte)1) / 주근옥 역  

(조선문학 통권 179호, 2006. 3. 1., 조선문학 통권 180호, 2006. 4. 1)


1970년대 후반 이후 자크 쥐웨(Jacques Jouet)는 문학의 한계를 은밀히 시험하고 있었다. 그가 출판한 저서는 시, 산문적 내러티브(장편소설과 단편소설), 희곡, 그리고 평론을 시험했다. 그는 작가들의 동인회인, “울리포(OuLiPo, the 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문학적 가능성의[잠세의] 공동 작업실)의 회장이었으며, 사전의 집필자였다. 그는 문학의 형식에 대해, 표현의 절약에 대해, 그리고 여느 때와 같은 경험을 깊이 있고 광범위하게 언급하고 있다. 1991년에 출판된 “107명의 정신(107 Ames, soul)”은 이러한 관심을 연출하며 구현하고 있고, 게다가 그의 저서 안에는 몇 가지 다른 형식과 주체적 관심이 담겨있다. 나의 목표는 이러한 현상을 고찰하는 것이며 자크 쥐웨의 글쓰기가 발현된 그것으로부터 보다 큰 문학적 교양(세련됨) 안에 어떻게 정위되고 있는가를 간단하게 언급하려는 것이다.

그 책 “107명의 정신”은 시집으로서, 실재적이지만 실물과 다른 초상을 스케치하고 있다. 서문에서, 자크 쥐웨는 저서의 독자적인 발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나는 “107명의 정신”에서 논제 안의 인물(실재적인, 살아있는 인물)이, 다시 말해서 내가 구성했던 질문에 그(또는 그녀)가 답한 것에 대해 가지고 있던 정보만을 각각의 시에 기록하고 있었다. 나는 몰이꾼(rabatteue)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으며, 그 인물에게 질문을 하고 있는, 그리고 되돌아와 나에게서 완성된, 그 응축을 받아들이도록, 다시 말해서 그(또는 그녀)가 선택한 인물을 납득하도록 책임을 떠맡았다. 일단 시가 쓰여 지면, 나는 몰이꾼에게 두 개의 부본(two copies)을 건네주었는데, 그 몰이꾼은 주체에게 그 중에서 하나를 건네주었다(9).   


열 개의 질문이 담겨있는 자크 쥐웨의 질문 중 아홉은 인구학적 데이터인 기본적 객관을 포함한다. 즉 성명, 나이, 출생지, 가정환경, 주택, 수입 등을 말한다. 그 열 번째 질문은 여론조사원의 차가운 행정적 어조로부터의 출발이다. 그 안에서, 자크 쥐웨는 그(또는 그녀)의 삶 속에서 확정적인 사건을 기술하는 그의 주체에 대해 질의한다.

만약 문학적 표상이 응축적인 것을 항상 필요로 한다면, 그 필연성은 자크 쥐웨와 같은 투사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강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그 자신과 그의 주체 사이에서의 관계를 확립함으로써, 자크 쥐웨는 문학적이며 질료적인 응축을 제안한다.


따라서 말로 표현된 주의가 포함된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시, 즉 기술적인 시를 쓰기 위하여, 첨부된 질문(만약 그것을 이행하는데 동의한다면)을 사용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만들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정적인(객관적인) 것이 될 것이다. 즉 내 임의로 판단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가능한 한 가장 행정적인 방법으로 질문에 대답할 것을 바란다.”

“그 규칙은 소문일지라도 당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인가 양쪽 모두를 알고 있는 매개자(go-between)로서 행동하는데 동의했다.”

“당신이 계약상의 일부가 됨으로써, 당신은 내가 당신의 대답을 인용할는지 모른다는 것을 승인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이름이 출판될지 모르는 시에 사용될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질문이 이행된다고 하는 사실은 당신이 승인함으로써 획득된다.”

“나는 그것이 쓰이자마자 곧 당신에게 전송할 것이다.(10; 원형의 생략)


종속적으로, “107명의 정신”은 익명의 개념과 개성을 연출한다. 한편, 자크 쥐웨는 그가 질문으로 유도해낸 정보의 골자보다 더 아무 것도 모르는, 다시 말해서 그것과 먼 주체로 작용하는 것을 선택한다. 분명히 “몰이꾼”의 중재적 역할은 여유 있게 결정적이며 이러한 간격을 유지하고, 그리고 사실 그 시집은 그들에게 헌납된다.1) 다른 한편, 자크 쥐웨의 주장이 비개성적임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그의 투사 때문에 이러한 “정신”의 각각은 개성화된 의미 안에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공급된 작은 데이터를 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각각의 시는 객관적인 것으로부터 주체적인 것을 추론하여야만 하며, 다른 것으로부터 각각의 정신을 식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대시는 자유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107명의 정신” 안에 수록된 시들은 평범한 형식을, 즉 한 개의 연이 6행으로 된 3개의 연을 공유한다. 그 행들은 비교적 짧고 대부분 7음절로 구성되어 있다.2) 여기 대표적인 예가 있다.


이 사람은 리모쥐에서 태어났네.

(43년을 살았어),

그는 44세.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학을 공부하고 싶은 갈망 때문에

그는 예술학교에 갔네.


자크는 그의 이름,

배리는 그의 성

리옹의 시민 자크는, 어쩌면

다른 도시의, 다른 계절에,

꿈 또는 어떤 실재를 감지하고 있는

그곳에 살고 있는지 몰라…


매달 12,000 프랑의

적절한 봉급을 받고

아파트에서 살며, 결혼한,

그는 화가, 그리고

셍-에트옌 예술학교의 선생

원래는 붓으로 생활비를 벌었었네.


Celui-ci naît à Limoges

(c'était en 43)

il a 44 ans

Au sortir du secondaire,

l'estuétique le démange:

aux Beaux-Arts il apparaît.


Jacques sera son prénom,

son nom Barry: Barry Jacques,

citoyen de Lyon, peut-être

d'ailleurs, en d'autres saisons,

lieux qu'en rêve il reconnaît

ou réalité quelconque…


Mensuellement opportune

paie de 12000 f.

En appartement, marié,

il est peintre assui enseigne

aux Beaux-Arts de Saint-Etienne;

Hier il vécut de son trait. (32; ellipsis in original)


This one was born in Limoges

(it was in 43),

he is 44.

After high school

he got an itch for aesthetics;

to art school he went.


Jacques will be his first name,

his last name Barry, Jacques

citizen of Lyon, maybe

of other cities, in other seasons,

places he recognize in dreams

or in some reality…


Monthly opportune

salary of 12000 frans

Lives in an apartment, is married,

he's a painter, and also teaches

at the Saint-Etienne School of art;

previously, he earned his living with his brush.3)


비록 이 텍스트에 대해 언급될는지 모르는 것(예를 들어, 그것이 통합하는 그리고 인구학적 데이터의, 익명으로부터 특성을 발생시키는 그 동기의, 또는 그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으로 나타나는 미니멀리스트적인 기풍의, 날것으로서의 “큰 덩어리”를 분절하는, 그것으로서의 상태)이 많이 존재할지라도, 나는 “107명의 정신”의 어떤 무엇의 다른 독해를, 최초의 몸짓으로 제공하기를 좋아할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의 주체가 그의 질문에 “행정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자크 쥐웨의 소망에 의해 그리고 어떤 젊은 사람의 변론을 듣고 매우 기뻐하는 것에 의해, 일격이 가해질지라도,  


그가 고결한 나이 여덟 살 때부터

특별하면서도

행정적이라고

줄리앙 호프트는 내게 답했네.


Du haut de ses 8 ans d'âge,

c'est particulièrement

administrativement

que me répond Julien Hooft(108)


From his lofty eight years of age

it is particularly

administratively

that Julien Hooft answers me,


나는 “107명의 정신”이 위와 같이 순수하게 행정적인 방식으로 독해되는 것이 필요하다고(적어도 최초에) 믿는다.

따라서 “107명의 정신”에는 58명의 여성과 47명의 남성(둘은 그들의 성이 보고되지 않았다)이 있다. 그들의 나이를 보고하고 있는 102명 중에서, 가장 젊은 사람은 8명이고 가장 늙은 사람은 89명이다. 그들의 평균 나이는 36세이다. 그 18세이거나 또는 18세가 넘는 주체들 중에서, 27명은 미혼이고, 37명은 결혼했으며, 8명은 내연관계로 살고, 1명은 별거, 6명은 이혼, 그리고 9명은 미망인이다. 이들 프랑스 국민은 그렇다 치고, 독일인이 9명, 미국인이 4명, 영국인이 2명, 벨기에인이 2명이며, 로마인, 그리스인, 스코틀랜드인, 세네갈인, 아르헨티나인, 이탈리아인, 아일랜드인, 터키인, 퀘벡인, 포르투갈인, 오스트레일리아인, 그리고 일본인이 한명씩이다. 그 주체들의 27 퍼센트는 “외국인”이다. 주체들 39 퍼센트는 파리에 살거나 파리 영역에 살고, 50 퍼센트는 주에, 17 퍼센트는 다른 지방에 산다. 주체들 8 퍼센트는 최소형 아파트에 살고, 41 퍼센트는 큰 아파트, 5 퍼센트는 공공주택단지에, 37 퍼센트는 독신자 주택에, 그리고 1 퍼센트는 고정된 주거가 없다. 그들의 직업은 회계사, 디스크자키, 사서, 건축가, 비서, 부유한 학생, 정원사, 예술가, 교사, 농부, 사회노동자, 기계공, 주부, 심리학자, 실업자, 엔지니어, 의사, 간호원, 벽돌공, 노동조합사무원, 목수, 실내장식업자, 공장노동자, 퇴직자, 화훼가, 요리사, 그리고 벨파스트의 감옥에서 한번 단식투쟁을 했던 경험이 있는 정치적 조직책 등이다. 그들의 평균 수입은 매달 7,579 프랑이다. 가장 낮게 보고된 수입(무주택자들을 따로 계산하면, 그들의 수입은 아마 없을 것이다)은 매달 1,500 프랑이다. 가장 높은 수입은 매달 25,000 프랑이다.

그러한 독해가 비록 정신 안에서 완전히 결핍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은 “107명의 정신”에서 기본적인 관계를 지시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령 자크 쥐웨가 발자크(Balzac)와 달리 인구조사국과 라이벌인 체 가장하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투사는 엄밀함과 총망라함을 위하여 기록원이 취한 배려에 의해 생명이 부여되고 있기 때문이다. “107명의 정신”이 자크 쥐웨의 질문에 대답했던 주체들에 “대해서”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 또한 그들이 살아있는 그 안에서의 집단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이 안에서 자크 쥐웨의 의도는 적어도 조심스럽게 발자크적이다. 

모디스티(modesty)4)의 개념이 “107명의 정신”에서 열쇠가 되는 소인(素因)이라고 나는 믿는다. 자크 쥐웨는 이 텍스트에 “그들은 서사시가 아니다.” 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그들과 동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 시집의 간결한 형식은 결코 서사시가 아니다. 거기에는 영웅이 거의 없고, 영웅적인 노동자도 거의 없다. 그리고 그 초점은 비범함보다 평범함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모디스티는 “107명의 정신”의 표층 현상보다 더 광대한 헤아림을 지시한다. 자크 쥐웨는 줄잡아 말함, 환원, 평범함,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표상성을 일탈하는 어떤 광대함을 암시하는 표현의 생동감에 신중하게 협력한다. 그의 “107명의 정신”은 많은 다른 것들을 환기시킨다.5) 간단히 말해서, 자크 쥐웨의 투사는 표현된 것보다 더 적은 것으로, 즉 미니멀리스트적인 미학으로 굳게 기초가 만들어졌다.

이러한 텍스트의 명백한 간결성은 그렇다 치고, 거기에는 우리가 그들을 영감 속에서 미니멀리스트처럼 기술하도록 하는 여러 가지 헤아림이 존재한다. 그처럼 미학의 특성 중의 하나가 미술, 음악, 그리고 문학으로 표현되고 있음이 명석판명하다.6) 자크 쥐웨의 텍스트는 구상주의적으로 명석판명하다. 그들이 공들여 만들음으로써, 전통적인 시적 언어의 중요한 수사학적 격상(格象, figure)7)은 신중했으며, 극적으로 삼갔다. “107명의 정신”은 단순하고 단조롭다. 자크 쥐웨는 은유와 표상성 그 이상의 직접적인 형식의 편을 드는 그 부수적인 수사어구를 거부한다. 이러한 직접성은 그 자체가 자크 쥐웨와 그의 주체들, 즉 주로 함축적이며 표상적인 협정의 결과 사이의 “계약(contract)”의 일부분이다. 자크 쥐웨는 “기술적인,” “비개성적인” 시, 즉 그의 질문에 답하는 그들의 “행정적인 것”의 적절한 반성을 그들의 각각에 발송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한다. 이러한 텍스트의 문체론적인 명석 판명함은 그 시 안에서 그 자신을 인식하는, 또는 그 자신을 단순하게 그리고 불확실하게 인식하는 주체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8) 

또한 “107명의 정신” 안에서 발견되는 어떤 재현(repetition)은 미니멀리스트 예술의 흔한 속성이다. 압박감 중의 하나를 자크 쥐웨가 어휘항이 되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본질적으로 유사 데이터의 많은 분량을 어떻게 조정하는가 하는 그 여하에 달려있다. 예를 들어, 그 여러 가지 방식들은 도대체 어떻게 어떤 인물의 나이 또는 어떤 인물의 남편의 지위를 하나의 상태로 만들 수 있는가? “107명의 정신” 안에 많은 재현이 필연적으로 존재하며, 그 압박감을 자크 쥐웨는 그의 텍스트를 통하여 반복적(iterative) 효과를 연출하고 있는 그의 우월감으로 이용한다. 시는 다른 장르보다 훨씬 더 좋게 재현을 수용할 수 있다. 결국 이런 식의 재현은 기본적이며 형식적인 소인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들 가운데 3연 구조의 재현은 그렇다 치고, 이 작용에 또 다른 유사 효과가 존재한다. 비록 시에서 시를 다른 방식으로 투사하고 있을지라도, 인구학적 데이터의 반복은 이 시들 간의 교감을 창조한다. 총체로서의 그 시집 안의 함수(기능)는 라임(rhyme)을 매우 선호한다. 그것은 서로 약간의 상보적인 단위로 구성된 결합구조로 그것을 주시하는 독자로 하여금 용기를 갖도록 시집을 통합하는 경향이 있다.9) 한마디로 말해서 그 책 “107명의 정신”은 체계적(우주적)이다.10)

프랑세스 콜피트(Frances Colpitt)는 미니멀리스트의 예술 대부분이 체계적(우주적)이며, 비록 그것이 연속적일지라도 형식 안에 존재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그녀는 이러한 산출이 조직적이며 결속적이라고 주장한다. 작용하여 구성하고 있는 그 완전체의 일정불변성은 그들이 아주 동일하거나 점증적인 시리즈로 조정되거나 하여간 무엇으로든지 간에 구성적 계층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전복하며, 부분보다 더 좋은 전체 상에서의 배려에 초점을 맞춘다(59). “107명의 정신”에 그와 유사한 현상이 작용하고 있다. 시의 형식적인 동차성(同次性)과 반복의 라임효과를, 다시 말해서 일원적 작품으로서의 견고한 구조적 완전체와는 역으로 시집을 준비도록 일찌감치 언급했다.

더 나아간 특성을 증명하는(그리고 다른 미니멀리스트의 문학과, 아주 명백하게 말해서 마리 르도네[Marie Redonnet]의 글쓰기와 공유하는) “107명의 정신”은 좌우 대칭적이다. 미가엘 프리트(Michael Fried)는 미니멀리스트의 매력을 좌우대칭으로 인지했으며(129), 구슨(E. C. Goossen)은 격자구조의 관례 안에서 이러한 이론적 매력을 찾아냈다.11) “107명의 정신”에 들어있는 각각의 시들은 격자처럼 생각될는지 모르며, 각 주체의 주어진 사실적 데이터와 관여하고 있는 구조는 상세하게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의 시들은 좌우대칭이 조화롭게 메아리치는 이러한 구조적 레벨 상에서의 다른 것과 유사하다. 더 나아가 그것은 총체(whole, 유약한 것으로 구성된, 좌우대칭적인 완전체지만 휴머니티의 교차단면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의 생생한 통계치를 상세하게 나타내는)가 격자로 그 자체가 구성된 것처럼 그 작품을 또렷이 나타내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107명의 정신”은 다른 형식주의자의 미학, 즉 울리포의 미학을 다시 입증한다. 이러한 미학의 중심 교의(敎義)는 문학 텍스트의 역작 안에서 형식적 압박체계의 사용을 포함한다.12) “107명의 정신”에서 자크 쥐웨는 그것을 주요한 텍스트의 가장 울리포스적인 것으로 언급했으며, 거기서 그는 압박의 두 체계(시의 6행-3연 구조 그 위에 더해서)를 사용했다. 그 첫 번째 체계는 그의 주체 안에 제공된 데이터의 철저한 검토가 질문에 응답하는 것이다. 즉 이렇게 언급한다. “나의 규칙은 완벽한 질문으로 제공된 데이터, 그 데이터의 모든 것, 그리고 오직 그 데이터만을 사용했다(11).” 두 번째 체계는 그가 서문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각각의 시는 해리 매슈(Harry Mathew)가 존 베리맨(John Berryman)의 꿈 노래의 첫 연에서 발굴했던 라임 도식을 혼합했다. 그 라임은 3행을 초월해서 주연(周延, distribute)된다. 자크 쥐웨는 첫 번째 행에서는 강세자음을, 두 번째 행에서는 강세모음을 앉혀놓고, 세 번째 행에서는 그들을 혼합한다. 앞에서 인용된 시에서, 강세자음 "m"과 "g"는 단어 "Limogoes" 안에 나타난다. 강세모음은 단어 "ans" 안에 있다. 그리고 단어 "démage"는 그들을 혼합한다. 진기할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기교에 의해 성취된 효과는 라임의 체계이다. “따라서 어투의 특징으로, 세 번째 행은 첫 번째 행과 함께 자운 안에, 그리고 두 번째 행과 모운 안에 있다. 그것은 자운과 모운 두 개의 총계로 라임을 만든다(12).” 그러한 장치는 일반적인 문학적 소인으로 라임 안에 있는 자크 쥐웨의 깊은 관심을, 즉 어떻게 해서든지 모든 그의 주요한 작품에 착색하려고 하는 관심을 지적한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자크 쥐웨는 변형, 치환, 또는 다른 방법으로 수용된 기교를 이용하는, 따라서 문학의 규범에 대해 명백히 그리고 현저하게 의심을 품는 구조에, 틀에 박히지 않은 라임에 관심을 갖는다.13) 이것은 혁신의 광대한 전략의 한 동작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크 쥐웨는 그 텍스트를 “시를 의심하는 이러한 시”로서의 “107명의 정신”에 귀속시켰다. 그런 식으로 함축된 언급은 그의 투사, 즉 clinamen벗어남(clinamen)14)의 핵심으로 획득될 수 있는 격상이다. 이것이 에피쿠로스(Epicurus)15)에 의해 이해됨으로써, 그리고 루크레티우스(Lucretius)16)의 “대자연에 대하여(De rerum natura),” “일탈원자(clinamen atomorum, swerve of the atom)”의 제2권에 발표됨으로써, 데모크리토스(Democritos)17)의 원자론의 결정론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단조로운 1차원성에 떨어지는 대신에 루크레티우스는 원자가 우연히 뜻밖에 벗어나고, 아무런 이유 없이 나타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벗어남은 그의 형이상학 안에 자유의지를 위한 공간을 제공한다.

거의 2천년 동안이나 방치되었던 벗어남은 최근에 복귀되었고, 이론적 담화의 인상적인 변화로 갑자기 나타났다.18) 자크 쥐웨 그 자신은 알프레드 자리(Alfred Jarry)로부터 물려받은 울리포의 그의 동료로부터 벗어남을 체득했다.19) 그 “의외의 야수성(the unforeseen beast)”을 일컬어, 자크 쥐웨는 그의 패터피직스(pataphysics, 초형이상학), 즉 “특수과학”의 설립축조 중의 하나로서의 벗어남이라고 제안했다(122, 31). 폴 브래퍼트(Paul Braffort)에 의하면, 울리포는 1970년대 초에 벗어남의 이론적 가능성을 깨달았으며, 따라서 그것을 깨달은 뒤로부터 그들의 작품 안에 “본질적인 역할”을 연출했다(108). 또 다른 울리포주의자 이탈로 칼비노(Italo Calvino)는 벗어남은 성공적인 예술작품과 그보다 떨어지는 작품 사이의 편차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20) 그의 소설 “생명의 사용법(La Vie mode d'emploi)”에서 언급한 바에 의하면, 조르주 페렉(Geoges Perec)은 체계 안에서의 교묘한, 생성적 에러로 벗어남의 성격을 묘사한다. 보다 더 깊이 있게 언급한다면, 이 에피소드는 좌우대칭(균형)을 깨뜨리기 위하여, 체계 속으로 에러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자태를 감추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압박체계를 가지고 있을 때, 거기에는 또한 그 안에 비압박의 기본요소가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며… 즉 거기에는 반드시 벗어남이 존재하여야만 하기 때문이다("Entretien" 70).

울리포가 벗어남을 주로 형식적 소인으로, 형식적 압박 안에서의 보충적 급박함으로 개척했음에 반해, 나는 자크 쥐웨가 “107명의 정신” 안에서 그것을 다르게 어떤 무엇으로 불러일으킨다고 암시하고 싶다. 따라서 격상에 대한 그의 신개념은, “벗어남 또는 빗나감(swerve)에는… 필연적으로 시적효과이론이 작용하는 신개념이 존재하는데, 그 이유는 시의 기원으로부터 각각의 시를 분리하는 것(분할해서 따로 떼어두는 것 따위)은 창조적 수정주의의 한 예이기 때문이다(389)”라고 해럴드 블룸(Harold Bloom)이 벗어남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그것에 보다 더 유사하다. 왜냐하면 해럴드 블룸의 벗어남은 예술가적 자유의 어떤 주장이기 때문이다. 즉 그 자유의 주장은 시의 지배적인 모델로부터 빗나간, 보다 더 과격한, 보다 더 강력한 시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그 빗나감은  “107명의 정신” 안에 나타난다. 요아힘 두 벨리(Joachim Du Bellay)와 폴 베를렌(Paul Verlaine)과 같이 뛰어난 선각자로서의 시인의 함수에 빗대어 말하면, 그 빗나감은 자크 쥐웨의 텍스트와 전통시를 쓰고 있는 시인과 비교하도록 독자에게 용기를 북돋고 있으며, 그들의 편차를 감지토록 한다.21) 메타논평의 추이는 고정되고 견실한 가공품으로서의 시의 개념을 연출한다.22)

그러나 “107명의 정신”에서 가장 뚜렷한 빗나감은 여전히 광대한 의문을 수반한다. 그 책의 주석에서, 자크 쥐웨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나타낸다.


시에 대해 자주 말했네.

주체보다 다른 주체가 없다고.

따라서 어떤 함수라도 거절하네.

내러티브 또는 기술, 역사 또는 모럴,

코믹한 또는 상황적인, 정치적인

또는 전기적인 함수도…


On a trop dit que le poème

n'a d'autre sujet que lui-même,

annulant par là toute fonction

narrative ou descriptive, historique ou morale,

comique ou de circonstance, politique ou

biographic…(ellipsis in original)


All too often, it has been said that the poem

has no subject other than itself,

thus denying it any function that is

narrative or descriptive, historical or moral,

comic or circumstantial, political or

biographical…

 

분명히, 자크 쥐웨는 다른 종류의 시를 제안하고 있다. 다시 한 번 말하면, “그들은 서사시가 아니다.” 즉 “107명의 정신”의 표상적 의도는 서사시에 어울리지 않는다. 역으로 그것은 실재적인 삶의 평범함을 보증한다. 왜냐하면 자크 쥐웨가 작품을 쓰는데 선택한 질료는 날것 그 자체로서의 흔해빠진 것, 평범한 세부묘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107명의 정신”은 대부분의 다른 최근의 문학적 경험과 친족이라고 선언한다. 예를 들어, 조르주 페렉은 그가 “하위범사(下位凡事, infraordinary)”라고 일컬었던 것에 의해 그리고 그의 작품이 사회학의 시시콜콜한 것을 정성들여 만들려고 하는 하나의 시도로서의 어떤 차원으로 독해될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했던 것에 의해 매료되었다.23)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시애틀의 미국인 집단은 평범한 것의 표상성 상에 초점이 맞춰진다.

여하튼 그러한 모든 경험은 동일한 문제, 즉 전통적 이야기하기가 평범함보다 차라리 더 희한하고, 더 놀랄만하고, 더 비범함을 안착시킨다는 사실과 화해한다. 왜냐하면 평범함은 명석 판명한 의미(또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믿으므로)로 존재하기 때문에,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 아서 샐츠맨(Arthur Saltzman)의 지적에 의하면, 이러한 문제는 미니멀리스트의 문학에서 생성하고 있는 의미작용의 일환이다. 현대(contemporary) 미국소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는 주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가 무엇인가 하면 소설적 표상(표현) 안의 시시콜콜한 존재의 평범함을 보다 잘 고찰하기 위하여 속이 들여다뵈도록 명백한 시학과 동화(elaboration)하는 것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그러나 그 관심사는 미니멀리즘의 소인적 구속으로서 속이 들여다뵈도록 명백함을 연출(상연)하고 있는 세심함과 그들의 방법이 엄격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동일시하고 있는 비방자들(벗어남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 즉 미니멀리스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니멀리스트라고 주장하는 자들 ―역주)에 의해 미니멀리즘이 반발 당했다고 주장한다(423). 미니멀리스트의 조형예술에 관한 토론에서, 프랑세스 콜피트는 다양한 예술가들의 영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그 문제는 “선천적 타고남과 후천적 관심의 2원 관계를 해결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과 같다고 한다(120).

자크 쥐웨는 “107명의 정신”에서 이러한 이분법에 곧바로 직면하고, 사실 어떤 텍스트 안에서 그것을 신중하게 명기한다.


    마티유를 위해

태어난 것이 어떻단 말인가.


    Pour Mathieu,

il importe d'être né. (56)


    For Mathieu,

what matters is being born.


전기적 세부묘사가 사실상 어떤 인간 탄생의 있는 그대로의 사실보다 더 명석판명하고, 보다 더 명백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압박감을 그는 그 스스로 떠맡았다. 그러나 자크 쥐웨는 그들이 보고될 때마다 그의 시 안의 탄생에 관한 세부묘사에 명백히 순응되지 않으면 안 된다(어떤 하찮은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그의 주체에 의해 제공된 데이터의 조각을 사용한 결정)


    사는 동안 생긴

결정적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탄생에 대해 말하네.


    S'agit-il

d'avouer un événement

déterminant de sa vie,

il dit que c'est sa naissance. (119)


    When asked

to point out a determinant

event in life,

he says it's his birth.


따라서 “107명의 정신”은 시시콜콜함의 그리고 그것을 구성하는 평범함의 발자취를 필연적으로 떠맡는다. 때때로 자크 쥐웨는 그 문제를 상술하고 있는,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그리고 그것을 고찰하는 독자에게 질의하고 있는, 그의 텍스트 안에 이것을 명백히 환기시킨다.


그는 매우 시시콜콜한 사건을 소리 높여 말하네.

화장실의 손잡이를 손으로

왈칵 꺾어버렸다고.


Il met très haut un fait très humble:

la chasse d'eau de ses chiottes

lui est restée dans les mains. (46)


He speaks very highly of very humble event:

the flush handle on his toilet

broke off in his hands.


투시도법 상에서 살펴보면, 자크 쥐웨와 그의 응답자 사이의 불균형은 막대하다. 매우 평범함 속에서, 보고된 사건은 그의 이야기하기를 빈털터리 거지로 만드는 것 같다. très haut(매우 높은)과 très humble(매우 시시콜콜한)의 완고한 대당(對當)에 의해 강조된, 내러티브적 돌출의 문제는 대립적인 것 같다. 그것은 다른 곤경의 폭넓은 한계와 발생되는 권위의 문제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자크 쥐웨는 이러한 곤경을 그의 이점으로 사용할 것이며, 평범함의 순간적인 시험을 통하여 그의 머리에 구멍 뚫기와 관심의 이분법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그는 그 모험이 시시콜콜함의 명백히 단조로운 패턴으로 발견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의 책략은 가치에 대해 정성을 들이는 기록을 통하여, 그곳에서 다른 미니멀리스트의 원본의 가치와 재 접합하며, 그 심원한 경험은 일상적인 경험으로 정위된다(Craig-Martin 7).

게다가 자크 쥐웨는 그의 주체 이야기의 평범함을 다른 방식으로 개척한다. 왜냐하면 “107명의 정신”의 의미작용의 차원은 자크 쥐웨와 그의 주체 사이의 간격의 이야기하기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텍스트는 다른 것으로 써서 면밀한, 숙고된 경험의 연대기로 독해될는지도 모른다. 뉘앙스가 있는 의미로서의 글쓰기의 통찰력 있는 연구로서, 또는 편차와 대당이 되는 공통정의에 대한 논박으로서, 샌더 길맨(Sander Gilman)은 예술가의 다른 것의 환기, 즉 주체와 객관과의 간격의 환기는 그 자체 구조 안에서의 중요한 몸짓이라고 주장했다(12-14). 더 엄밀하게 말해서, 고도로 형식화된 표현의 모드에 의지하는 예술가의 몸짓(마치 자크 쥐웨처럼)은 경험을 조직하도록 재촉하는 급박함을 발생시킨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즉 “세계 안에서 혼란의 의미를 극복할 필요성은 고정된 그리고 엄밀한 예술의 형식―회화의 프레임, 텍스트의 한계(즉 포스트모던 텍스트가 제한한다), 음악 작곡법의 수학적 속성을 찾아내려는 예술가를 가동시킨다(6-7).” 역설적으로 이러한 편차에 대해 정성을 들이는 탐구는 그의(또는 그녀의) 주체에 접근하는 예술가를 허락하며, 샌더 길맨은 그들이 한계의 배경을 공유한다고 넌지시 언급한다. 즉 “나는 중립적이지 않고, 따로 떼어 놓지도 않는데, 그 이유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국외자(局外者)로서의 존재(being)가 냉정하고 객관적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당신을 국외자로 정의하며 불에 타서 눌어붙는 의미가 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17).” 라고 한다. 

그러한 고찰은 “107명의 정신”에서 나로 하여금 자크 쥐웨의 절차에 대한 성격을 만들도록 하는 것 같다. 그는 진지하게 그리고 위엄 있게 타자(他者)를 묘사하고 있는, 많은 그의 주체의 사회적 한계를 인식한다.


이 글을 쓰는

1988년 5월 현재

최저 임금은 서서히

4,800 프랑에 접근하고

알렉산드라의

최고 수입은


그보다 더 적은 1,500 프랑.


A l'heure où j'écris en mai

1988,

Le SMIC doucement s'approche

des 4800

f. Les rapports maximaux

d'Alexandra représentent


1500 f. pas plus. (81)


As of this writing, in May

1988

Minimum Wage is slowly approaching

4800

francs. Alexandra's maximum

income is


1500 francs, no more than that.


그러나 자크 쥐웨가 그의 주석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그의 의도는 이러한 한계가 “107명의 정신”을 인류평등주의의 소인으로 구성하고 있는, 회복된 어떤 단계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데 있다.


인간의 권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기 때문에

각자의 정신은 동일 차원의

그리고 동일 형식의 시의

주체로 여기 존재한다.


Puisque les humains devraient naîte

et demeurer égaux en droits,

chaque âme fait ici le sujet d'un poème

de même dimension et même

forme.


Because humans should be born

and remain equal in their rights,

each soul is here the subject of a poem

of the same dimensions and the same

form.


“107명의 정신” 안에서 두 텍스트는 이러한 일반적인 규칙으로부터 탈출하며 시험을 입증한다. 어떤 정신은 그 부재의 가치에 의해 페이지 위에 문장(紋章)이 그려진다. 시집의 끝에서 두 번째의 눈에 보이지 않는 페이지는 예외 없이 각주를 위한 것이다. 즉 “완성된 시를 받고 두 달 뒤에, 106번째의 정신은 나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이름에 대한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텍스트를 출판하지 않겠습니까?(118).’” 무주택자에게 충당된 다른 텍스트는 “107명의 정신”에서 일련의 산문 조각일 뿐이다.24)


…그와 일치된, 그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고, 우리는 단지 그것을 믿을 뿐인가? 그것이 여자이든지 남자이든지 이야기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38살일 뿐이지만, 그는 완전히 곤궁하지 않다는 것을 넌지시 언급하였던가? 그의 언명은 그의 학문을, 교육을 망각해버렸으며, 숙련된 기능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의 수입은 “?!!!.”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것보다 더 그를 괴롭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는 꼼짝 못하고 국외자로 살고 있으며, 그는 파리에서 태어났고, 15년 동안 피보호자로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비록 그의 삶의 모험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고 있을지라도, 트리스탄(Tristan)이 필요했던 것보다 그가 더 적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총체로서의 시집 안에는 107명의 정신의 표상적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아슬아슬해서 결정하기 어려운 상태가 존재한다. 그 트리트먼트(treatment)25)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자크 쥐웨는 이러한 정신에 따르고 있으며, 다른 것과 분명히 다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그 편차를 통해서일지라도 다른 것을 조명하는데 기여한다. 어떻든 자크 쥐웨가 참된, 육체와 피가 있는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그 현실화는 다른 텍스트 안에서보다 직접성이 더한층 있는 것으로 독자로 하여금 절실히 느끼게 한다. 이것은 다른 것과 같지 않은 양측의 정신이 익명 그리고 비록 결정되지 않은 성(gender)일지라도 그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진리이다.26) 첫 번째의 경우, 자크 쥐웨가 그의 주체와 확립했던 계약은 그의 투사 상에서 급진적으로 상상을 꾀한다. 그의 텍스트는 실재세계적인 압박감의 질료적 발자취를 제공한다. 여기서 어쨌든, 문학은 삶을 인도(引渡)한다. 더 나아가 자크 쥐웨가 이러한 주체와 함께 인수받았던 계약은 다른 것의 신빙성을 보증한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 안에서의 기포(氣泡, lacuna)는 사실상 생산적이다. 두 번째 경우에, 주체에 의해 제공된 정보의 곤궁은 이야기되는 것을 거절하는 삶의 곤궁을 반영한다. 또한 양측은 자크 쥐웨가 구성하는, 즉 형식적으로 곤궁해진 “정신”으로 명기된다. 

“107명의 정신”의 표상적 조직 안에서의 극단적인 경우로 관찰됨으로써, 이러한 텍스트는 총체로서의 투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고찰을 웅변적으로 증명한다. 왜냐하면, 자크 쥐웨가 여기서 정성을 들여 만들었던 것은 활기에 찬 형식주의자의 시학, 은밀히 모디스티적으로 그리고 단호히 휴머니스트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궁지에 몰린 입장보다 더 낫게 존재한다(36).”

 

각주

1) Warren Motte: Boulder에 있는 콜로라도 대학의 프랑스어 교수. 이 글은 『유약한 세계(SMALL WORLDS) ―프랑스 현대문학에서의 미니멀리즘(Minimalism in Contemporary French Literature), University of Nebraska 1999』, pp. 139~152의 번역이다. 그의 최근 저서로는 연극텍스트 『현대문학에서의 유희(Ludics in Contemporary Literature, Nebraska 1995)』가 있다. "Contemporary vs modern"이 비교되는데, 전자는 시간적 개념으로서의 현대(당대)를 의미하고, 후자는 시간이 아니라 세계관의 전환적 관점으로서의 현대를 의미한다. (역주)

2) 자크 쥐웨는 24개의 몰이꾼을 사용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풍부한 것은 17개의 질문에, 최소한 하나의 질문에 답했다. 개인적인 인터뷰에 의한 것은, 1993년 7월 14일이다. 다른 방법으로 써놓은 것 없이, 더 나아가서 자크 쥐웨로부터의 인용은 이 인터뷰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3) 약간의 시들은 8음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어떤 시(75번)는 각각의 행이 9음절로 구성되어 있다.

4) 에드몬드 자베(Edmond Jabés)와 함께, 나는 문학적 번역으로 추적된 원본의 자크 쥐웨의 행을 인용하기 위하여 선택했다. 

5) 모디스티(modesty): 드레스의 앞가슴을 넓게 팠을 때, 심한 노출(露出)을 피하기 위하여 대는 레이스 장식 따위. 겸손, 조심성, 겸양, 수줍음, 정숙, 얌전함. (역주)

6) 자크 쥐웨는 107명이 무한대의 격상(格象)으로, 그 타이틀이 연출하고 있는, 즉 “그 위에서 107년을 낭비하지 말자”고 하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획득될는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또한 기교적인 레이몽 크노(Raymond Queneau)의 어떤 생각은 그의 첫 소설의 첫 문장에서 그의 소인(素因)적 성격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 즉 “어떤 사람의 실루엣은 프로필로, 다시 말해서 그들에 대한 많은 것을 동시에 나타냈다(Le Chiendent 9).” 레이몽 크노에 관한 그의 비평에서, 자크 쥐웨는 에티엔 마르셀(Etienne Marcel)의 성격을 “크노적인 화자…개성적 성질의(Raymond Queneau 115)”로 언급했다.

7) 예를 들어, 바트코크(Battcock)의 “서문” 32를 보라. 즉 “미니멀 예술의 현저한 성격은 그 명석 판명함에 있다.”를, 그리고 Leepa 206-7을 보라.

8)  figure: 서구어에서는 "representation vs sign vs figure"의 의미적 식별이 분명하지만, 한국어에서는 그 식별이 애매하다. 특히 "representation vs figure"의 식별이 더욱 애매하다. "figure"는 형상, 표상의 의미로, 그러면서도 시적 비유로서의 변형 등 여러 가지로 번역될 수 있으나, “표상(representation) vs 형상(figure)”과 같이 그 번역을 대비해 놓고 볼 때 의미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한국어가 서구어에 비해 철학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아직 발달되지 못한데 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에스키모족이 눈의 종류를 다양하고 미세하게 구별하는데 비해 한국어에는 그렇지 못한 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부득이 조어(造語)를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논리학 용어와 언어학 용어를 차용하고자 한다. 사실 A. J. Greimas는 "figure"를 철학적으로 보다는 논리적 용어로 사용하는 것에 보다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즉, 직접추리는 대당관계(對當關係)에 기초하고 있는데, 여기서 정언삼단논법은 다시 식과 격(figure)으로 이루어진다. 식은 대전제 4개(A, E, I, O)×소전제 4개(A, E, I, O)×결론(A, E, I, O)=64개의 종류가 가능하며, 이것이 다시 4개의 격과 결합하여 256개가 된다. 격은 정언삼단논법의 3개의 개념 중 매개념(M)의 위치에 따른 구별이다. 이러한 추리법에 따라 일종의 대전제와 소전제의 결합이라고 볼 수 있는, 총체로서의 “격식(格式)”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지만, 그러나 이것도 연언(conjunction) 또는 선언(disjunction)에 의한 일종의 변형(transformation)으로서의 다른 형상이어야 할 것이므로, 즉 표출 면에서는 그 외형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므로, “격상(格象)”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대당관계는 모순대당, 대소대당, 반대대당, 소반대대당 등 네 가지가 있다. (역주)

9) 예술적 경험이 중재되지 않은, 상징, 메시지, 주관성이 박탈된, 직접적으로 점증하고 있는 요구에 반응하고 있는 것으로서의 미니멀리스트적인 조형예술에 관한 구슨(E. C. Goossen)의 언급을 보라.

10) 셀리라르(cellular: 성기게 짠 직물의 일종)에 관한 윔 머튼(Wim Merten)의 기술을, 그리고 테리 릴리(Terry Riley)의 음악의 결합적 성격을 보라.

11) 이러한 개념에 대한 조형 예술가들의 신개념(conception)을 대신해서, 멜 보흐너(Mel Bochner)의 체계적(우주적) 변명 그리고 체계적(우주적) 사유를 보라.

12) 또한 격자의 탁월함에 대해 언급한 프랑세스 콜피트의 토론을 보라. 울리포(OuLiPo)의 다른 회원의 작품 안에서의 격자 사용에 관해 언급한 토론을 위해서는 모트의 “격자에 관해 언급한 조르주 페렉(Geoges Perec)”을 보라.

13) 예를 들어, 마르셀 베나보(Marcel Bénabou)의 "La Règle et la contrainte(모트 역, OuLiPo 40-47)"; 조르주 페렉의 "Histoire du lipogramme(97-108)"; 그리고 모트의 레이몽 크노(Raymond Queneau)와 형식적 압박의 미학을 보라.

14) 예를 들어, 그가 레이몽 크노 65에서 라임의 변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라.

15) clinamen: 라틴어로서 벗어남, 기울어짐, 빗나감의 의미. (역주)

16) Epicurus: 에피쿠로스(쾌락을 인생 최대의 선(善)이라 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341-270 B.C.). (역주)

    

17) Lucretius: 에피쿠로스 학파의 시인, 철학자. (역주)

    

18) Democritos: 데모크리토스(그리스의 철학자; 460?-370?B.C.). (역주)

19) 이러한 현상의 근거를 알기 위해서는, 모트(Motte)의 “되돌아온 벗어남(Clinamen Redux)”을 보라.

20) 레이몽 크노 35에서 자크 쥐웨의 벗어남의 토론을 보라.

21)  “컴퓨터라고 하는 보조기구는 예술가의 창조적인 행위와는 멀고, 예술가가 예술의 진실한 작품으로서의 텍스트만을 오직 만들 수 있는 벗어남 상에서 농축하고 있는 것의 가장 좋은 기회를 그 자신에게 허락하고 있는 결합적 탐색의 그 혹심한 노역 상에서 그 자신을 보다 더 좋게 해방시키도록 허락한다고 하는 것을 이것이 입증한다고, 우리는 믿는다(“산문과 반결합[Prose et anticombinatoire]” 331; 모트 역, 울리포 152).”

22) “66―리처드(Richard)와 같이 행복한 사람/율리시즈(Ulysses),” 그리고 “24―무겁거나/놓거나 하는 것은 남편도 아기도 아니다”를 각각 보라.

23) 예를 들어, 70: “텍스트는 에러를 풍부하게 만든다.”를 보라.

24) 예를 들어, 조르주 페렉의 “하위범사(infraordinary)”로 선택된 텍스트를 보라. 또한 그가 그의 작품 안에서 추적했던 4가지 방향의 언급, 즉 “탐색에 관한 노트(Notes sur ce que je cherche)” 10을 보라. 그 중에서 “이러한 방향의 첫 번째는 ‘사회학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서 ”시시콜콜한 것에 대해 고찰하는 방법“으로 기술될 수 있다. 

25) 자크 쥐웨는 이러한 텍스트가 페이지 상에서 비록 일련의 산문조각일지라도 그것은 실제로 8음절로서의 6행-3연의 시로서, 다른 시들과 똑 같이 구성되었다고 지적한다.

26) treatment: 동작·카메라 앵글 따위의 장면 변화 방식을 추가해서 써 넣은 대본, 시나리오. (역주)

27) 자크 쥐웨는, 시집이 출판된 뒤에 무주택자가 여자였다는 것을 몰이꾼이 그에게 밀고했다는 것을 보고한다.


 

OuLiPo

OuLiPo(pronounced oo-lee-PO)는 대충 “잠세적(潛勢的, 또는 잠재적·가능성의) 문학동인회(연구회)”로 번역된 “잠세적인 문학의 공동 작업실(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을 뜻한다. 그 동인회는 주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작가와 수학자들의 고정되어 있지 않은 모임이며, 구속된 글쓰기(constrained writing)의 기교를 사용하는 창조 작업을 추구한다. 그러한 작품의 경향은 1960년 Raymond Queneau와 François Le Lionnais에게서 발견되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멤버는 Georges Perec과 Italo Calvino와 같은 소설가, Oskar Pastior와 같은 시인, 또한 수학자로도 알려진 Jacques Roubaud와 같은 시인들을 포함한다.
  그 그룹은 용어 “littérature potentielle(
잠세적인 또는 잠재성·가능성의 문학)”으로(대의적인 번역) 정의한다. “여하튼 작가에 의해 사용될는지 모르는 그래서 새로운 구조와 패턴의 추구를 그들은 즐긴다.”
  구속
(constraints; 거북하고 어색함)은 방아쇠적인 아이디어와 인스피레이션의 의미로, 그 중에서도 특히 Perec은 "story-making machine"을 삶의 구축-어떤 사용자의 매뉴얼로 사용했다. 동시에 마치 중자(重字)를 빠뜨리고 잘못 쓰기(convivial을 convial로 하는 따위)를 한 것과 같은 lipogram(Perec의 소설 “A Void”)과 회문(回文, 역순으로 읽어도 같은 말이 되는 말: eye; madam)과 같이 확립된 기교를, 그 그룹은 마치 체스-보드의 기사(the Knight)의 일순(一巡) 그리고 순열(또는 치환)과 같은, 수학문제에 흔히 기초된 것처럼 꾀하고 창출한다.
  역사: OuLiPo는 1960년 11월 24일, 초형이상학
(Pataphysique)의 조합(組合, the Collège)과 실험문학연구소(Séminaire de littérature expérimentale)의 타이틀을 단 분과위원회로 발족되었다. 그러나 두 번째 모임에서, 이 최초의 명칭은 Albert-Marie Schmidt의 제안에 의해 오늘날의 모습, “잠세적인(가능성의) 문학의 공동 작업실(Ouvroir de Littérature Potentielle),” 또는 "OuLiPo"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는 소그룹이 9월에 국제문화센터 스리지-라-살(Cerisy-la-Salle)에서 Queneau 작품의 토론을 위한 세미나에서 만났던 그때, 첫 번째 모임의 대략 두 달 전의 그때 나왔던 것이었다. 이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는 동안, QueneauFrançois Le Lionnais는 그 단체를 구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 10년 동안, OuLiPo는 그룹으로서의 활동이 아주 미약했다. 분과위원회로서의 그들은 1961년에 그들의 작품을 초형이상학의 조합에 보고했다. 게다가 Temps Mêlés
(프랑스인)는 1964년 OuLiPo에 수익금을 기부했고, 벨기에 라디오는 OuLiPo의 모임을 보도했다. 그러나 그 멤버들은 이 몇 해 동안 개인적으로 활동했었던 것이며, 전체로서의 그 그룹은 표현 일부의 선집인 잠세적인(가능성의) 문학(La Littérature Potentielle)의 출간과 함께 드러나기 시작했다.

울리피언의 글쓰기(Oulipian writing)의 몇 가지의 예: Queneau의 문체는 버스여행 중의 사소한 언쟁을 증언하는 사람을 통하여, 어조와 문체의 각각의 독특한 말로, 하여간 거의 언제나 논리에 맞지 않는 에피소드의 열거로 존재한다.

Harry Mathews(OuLiPo의 유일한 미국인)의 “야릇한 즐거움(Plaisirs singuliers)”은 61개의 다른 장면을 묘사하고, 그것의 각각은 61명의 다른 사람들(각기 다른 연령, 국적, 그리고 인생행로의 모든 사람들)이 수음(手淫)하는 것을 통하여 각각의 다른 문체(일반적으로 시적, 정교한, 또는 완곡한)로 언급했다.

각각의 페이지에 들어있는 아동그림책에서 영감을 얻은 Queneau의 “Cent Mille Milliards de Poèmes”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합된 그래서 각기 다른 그림(보통 사람들)을 통해서, 자유롭게 전도될 수 있는 수평조각으로 잘려 있다. Queneau는 시에 이러한 기교를 적용한다. 그 책은 각각의 페이지에 10편의 소네트를 담고 있다. 각각의 페이지는 각각의 시행(line)을 위한 하나로서의 14개의 조각으로 분할되어 있다. 작가는 그것이 모든 가능한 조합으로 독해하는 대략 200만년을 취할는지 모르는 예비설명으로 어림한다.

 * "N(noun)+7"의 방법(프랑스어로는 S[substantif]+7): 사전 안으로 나중에 도입된 항목·이끎음(seventh; 제7음)으로서의 명목과 함께 텍스트 안에 모든 명목을 반제(返濟)하라. 예를 들어, “몇 년 후에… 나를 이스마엘(Ishmael; Abraham의 아들; 창세기 ⅩⅥ: 11)이라 불러다오(Moby-Dick에서).”는 “몇 년 후에… 나를 섬사람(islander)이라 불러다오.”가 된다. 그 결과는 사용된 사전의 변화에 의지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교는 마치 언외지언(verbs)과 같은, 그래서 또 다른 어휘적인 강류(classes)로 연기할 수 있다. 7(seventh: 제7음. 이끎음, leading note); 다음의 음으로 이끌어가는 작용을 하는 음을 말하며 도음(導音)이라고도 한다. 으뜸음의 반음 아래에 있어서 으뜸음을 이끌어내는 음이기도 하다. 특히 음계 중에서 중심이 되는 음을 향하여 위로 끌어가는 음을 상행이끎음(aufwärtsführendwe leitton)이라 한다. 그 음정은 일반적으로 반음이고, 서양의 장음계에서는 제7음을 일컫는다. 단음계에서는 화성적 단음계의 제7음을 반음 높여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단음계에서 장7도음의 제7도음에 한정된다고 하는 것은 으뜸음부터 아래쪽으로 음정을 잡으면 단2도를 이루므로 선율적 단음계 하행형의 제7도음은 제외된다는 말이다. 즉 이끎음이란 반음 상행하여 이끎음을 이끌어내는 음이라는 뜻이다. 단음이지만 딸림3화음이나 딸림7화음의 제3음으로서 그것이 최고성에 있을 때는 으뜸음으로 반음 상행하므로 이끎음이 될 수 있으며 장음계라 하더라도 으뜸음부터 순차적으로 하행할 경우에는 제7도음이라 하더라도 이끎음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보통 반음 진행에 의해 화성적으로 어울리는 음이며 혹은 선율적으로 중점이 놓은 음으로 나아간다. 이와 같은 진행을 이끎음 진행(leading note motion)이라고 한다. 이끎음은 다음의 음으로 나아가서야 비로소 안정감을 얻는 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는 불안정하고 긴장을 내포한 음이다.)
  
* 눈뭉치(snowball; 제7음과 같이 나중에 도입된 명목과 함께 뭉쳐진): 각각의 시행으로서의 시는 단순한 단어로 존재하며, 각각의 성공적인 단어는 보다 더 긴 문자로 존재한다.
  
* Lipogram: 그것의 글쓰기는 하나 또는 보다 더 많은 문자를 배제한다. 앞의 문장은 B, F, H, J, K, Q, V, Y, 그리고 Z(그것은 이러한 문자들의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다) 안에서 lipogram의 유형으로 존재한다. (Lipogram은 싱커페이션과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syncopation: 1. 어중음생략법(語中音省略法); 어중음은 단어나 문절 등 완결된 최소의 음운 연속체에서, 어두음과 어말음을 제외한 음, 곧 ‘민족’에서 ㅁ과 ㄱ을 제외한 “ㅣㄴ ㅈ ㅗ” 음을 말하며, 발화 중에 “고함지르다”를 “괌지르다”로, 또는 “가르쳐주다”를 “갈쳐주다”와 같이 그 어중음이 소실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어중음생략이라고 한다. 환원과 같은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2. 가사상태: 생리적 기능이 극도로 약해져서, 인사불성이 되어 호흡이 정지되고 맥박이 미약해져서 얼핏 보기에 죽은 것 같이 된 상태. 여기서는 충격을 받은 사전적 의미가 어지럽게 된 상태를 말한다. 3. 당김음법은 음악에서, 같은 높이의 센박과 여린박이 연결되어 여린박이 센박, 센박이 여린박 되어, 셈여림의 위치가 바뀌는 것을 말한다. 같은 마디 안이나 두 마디에 걸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15세기경부터 유럽의 예술음악에서 사용하였으나, 각종 민족음악의 특징으로도 볼 수 있으며, 또 재즈음악에서는 리듬의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상호주관적인 의미와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4.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의미는 이들 중의 어느 하나가 아니라, 3가지 모두를 의미하는 복합발화(complex utterance)로 보아야할 것이다.)
  
* 포로(prisoner)의 구속(“macao”의 구속, 포로로 사로잡힌 “m. a. c. a. o”)은 “a, b, c, d, f, g, h, j, k, l, p, q, t, y”등의 알파벳 중에서 기선(基線)의 위로 높게 뻗은 문자(b, d, f, h 등)와 문자의 기선(基線)에서 밑으로 뻗은 부분(q, p, y 등)이 생략된 lipogram의 유형으로 존재한다. 즉,

b, d, f, h (m. a. c. a. o) q, p, y (역주)


 Jacques Jouet

 

Jacques Jouet는 시인, 소설가, 극작가, 그리고 평론가이다. 그는 1983년 Paul Fournel, Georges Perec 그리고 Jacques Roubaud에 의해 열린 워크숍에 참가한 후 OuLiPo에 가입했다. 그의 최근의 소설은 Mon bel autocar(2003), La république de Mek-Ouyes(2001), Une réunion pour le nettoiement(2001)와 Fins(1999)을 포함한다. 그의 시 작품은 Poèmes avec partenaires(2002), Poèmes de métro(2000), 그리고 Navet, linge, œil-de-vieux(1998)를 포함한다. 그는 희곡 Vanghel(2003)의 작가이다. 잡지 SubStance의 특집 판(# 96, 2001)은 그의 작품으로 충당되었으며, 그의 두 번째 소설의 영문 번역은 2004년에 Mountain R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François Caradec와 Hervé Le Tellier처럼, Jacques Jouet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위해 프랑스 문화에 있어서의 “머릿속의 파푸아 사람들(Les Papous dans la tête)”을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출연한다. 그의 연재소설 La république de Mek Ouyes는 웹과 라디오에 동시에 발표되었으며, 최근에 연극으로도 개작되었다. 또한 그는 요리를 즐기고 콜라주(collage; 인쇄물 오려낸 것·눌러 말린 꽃·헝겊 등을 화면에 붙이는 추상 미술의 수법)에 열중하고 있다. (역주)

 

 

A documentary saga of the OuLiPo - part 1

A documentary saga of the OuLiPo - part 2

A documentary saga of the OuLiPo - part 3 

 

saga

중세 때 북유럽에서 발달한 산문문학을 통틀어 일컫는 말. 사가는 '이야깃거리'라는 뜻이다. 처음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듯하나 뒤에는 전적으로 아이슬란드에서 쓰여졌다. 내용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① 역사 또는 사전(史傳), ② 소설적 사가, ③ 전기적(傳奇的) 로망스, ④ 공상적(空想的)·동화적 사가 등으로 나눌 수 있다.

①은 스노리 스튀르들리손의 대저(大著) 「헤임스크링글라: Heimskringla(노르웨이 王朝史)」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의 발견과 식민(植民),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도래(渡來) 등을 다룬 「식민(植民)의 서(書)」 「붉은 털 에이리크의 사가」 「아이슬란드인의 서(書)」 「그리스도교도의 사가」 「승정전(僧正傳)」 등

②는 사가로서 가장 특색을 발휘한 것인데, 어떤 사실(史實)을 근거로 하여 인간상을 그리는 데에 주안(主眼)을 두고 있다. 바이킹 시인으로 유명한 시인의 전기(傳記) 「에길의 사가」, 미녀 메르코를이나 구도룬의 자태로 주목되는 「락크스 골짜기의 사가」, 불행한 호걸의 생애를 그린 「그레틸의 사가」, 현자(賢者) 니알의 일족을 태워 죽인 사건을 다룬 「니알의 사가」 등이 유명한데, 하나같이 700∼800매의 장편이다. 「에이레의 식민(植民)」 「뱀의 혀를 가진 시인 군라우구의 사가」 「암탉의 드리살의 사가」 「하발드의 복수」 「산골짜기 호수의 사가」, 그 밖의 중단편에도 재미있는 것이 있다. 주로 식민시대 초기의 가족과 대표적 인물을 다뤄 「가족의 사가」로 불리는 것이 중심을 이룬다.

③은 북유럽이나 대륙의 영웅 전설 계통을 잇는 것으로, 독일의 「니벨룽의 노래」와 같은 소재를 다룬 「뵐숭가의 사가」, 영국의 「베이어울푸」와 중복되는 점이 있는 「롤프 크라키와 베즈왈 비야르키의 사가」 「디도레크(東고트의 테오도리쿠스 大王)의 사가」 「쇠사슬 가죽자루의 라구날의 사가」, 짧은 것으로는 「노르나게스트의 사가」 등이 있고, 뒤에는 대륙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정신과 기사도 도덕에 침투된 소설이 들어와 사가로서의 특색을 잃게 된다.

④는 주로 '전대(前代)의 사가'로 불리는 것인데, 아이슬란드 식민 이전의 바이킹들에게서 취재한 황당무계한 공상적 작품, 괴담(怪談) 비슷한 것, 동화 비슷한 것이 많다.

 

미니멀리즘_C.W. 할렛, 워런 모트/주근옥 역

주근옥의 미니멀리즘 시선집

 SUR LES ROUES/Gueune-Ok JOU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