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트랜드(Paul Strand, 1890~1976)

1890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12세 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였고 이후 에티컬 컬처 스쿨(Ethical Culture School)에 입학하여 사진가인 루이스 하인(Lewis W. Hine)에게 배웠다. 하인은 그후 스트랜드를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에게 소개하였고, 1908년부터 1915년까지 8년 동안 스트랜드는 스티글리츠에게서 사진수업을 받았다. 스승인 스티글리츠의 도움으로 〈291화랑〉에서 첫번째 개인전을 갖고 「카메라워크」지에 사진들이 실리게 되었다.

스티글리츠는 1903년 사진의 기계적 특성에 바탕을 둔 사진예술의 창조를 주장하며 사진분리파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스트랜드는 그 운동의 완성을 이루어냈다. 스트랜드는 사진이 가진 예술성과 과학적인 속성의 일치점을 모색하여 관념적인 요소들을 배제하고 냉철한 객관성을 유지하였다. 그는 사진이 가진 기계적인 기록성을 강조하여 즉물사진(卽物寫眞)의 장르를 개척하였는데, 렌즈의 심도를 깊게 하여 대상을 실물 그대로 정밀하게 재현함으로써 객관적인 묘사효과를 추구하였다.

스트랜드의 사회적 관심은 인간을 통해 나타났으며, 그 대상은 주로 밑바닥 인생의 생활상이었다. 그는 가난하거나 지위가 낮아도 인간의 존엄성이나 자존심을 잃지 않는 서민의 얼굴을 찍었다. 또한 그가 가진 엄격한 조형성은 식물이나 기계, 정물, 건축 사진에 중점적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인 다큐멘터리 사진부터 정물, 건축, 그리고 디자인적 요소가 강한 조형적인 사진까지 그의 활동영역은 폭넓고 다양하였다.

그가 1910년에 시도한 즉물사진은 그후 1920년대에 일어난 신즉물주의 일환으로 독일의 사진가 알베르트 렝거-파츄(Albert Renger-Patsch)와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에 의해 그 명맥을 잇게 되며, 이는 다시 안셀 아담스(Ansel Adams)로 이어져 미국 사진전통의 한 갈래를 이루게 되었다. 만년에는 다시 초기의 다큐멘터리 사진 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보이며 조형성 추구는 조금씩 퇴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