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에이킨스(Thomas Eakins, 1844~1916)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 184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제퍼슨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 1866년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가 에콜 데 보자르에 들어갔으며, 장 레옹 제롬과 레옹 보나에게 그림을 배웠지만 스승의 화풍이나 당시 유행하던 인상주의에 그리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학업을 마치고 에스파냐로 가 6개월간 머물며 벨라스케스, 리베라와 같은 사실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토머스 에이킨스는 1870년 미국으로 돌아와 초상화 주문을 받으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그러나 완고하고 비타협적인 표현 방식 때문에 작품을 주문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는 작품 제작에 과학적인 기법을 적용했고, 인체의 기능에 대한 이해를 위해 해부 과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들을 모델로 한 커다란 크기의 집단 초상화 작품은 수술 장면의 객관적이고 치밀한 묘사가 당시 미술계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에이킨스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면서 또한 훌륭한 스승이기도 했다. 1878년 그는 모교인 펜실베이니아 미술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인체의 누드를 직접 소묘하는 법과 동적인 자세, 해부학적 지식을 가르쳤다. 이는 당시로서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술 지도법에 불만을 품은 이들도 적지 않아 그는 남녀 혼합 수업에서 남성 누드 모델을 그리게 했다는 이유로 1886년에 펜실베이니아 아카데미의 권한 하에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사진가로도 활동했던 그는 모션픽처(활동사진)를 개발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선구적인 실험정신을 이어받아 연속 사진을 통해 움직임을 연구했다. 오늘날 에이킨스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로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비평가들이 그를 미국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고 있다. 그는 1916년 72세를 일기로 필라델피아에서 사망했다.

주요 작품에는 「1인용 스컬을 타고 있는 맥스 슈미트 Max Schmitt in a Single Scull」(1871), 「그로스 박사의 임상강의 The Gross Clinic」(1875), 「물웅덩이 The Swimming Hole」(1884~1885), 「애그뉴 박사의 임상강의 The Agnew Clinic」(188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