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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핀터(Harold Pinter)/이후지 역

 

리퀘스트 버스 정류장에 늘어선 사람들. 제일 앞에선 여자와 그녀 다음에 서 있는 레인코트 입은 키 작은 남자, 그리고 두 여인과 한 남자.


여자 (키 작은 남자에게) 죄송합니다만 지금 뭐라고 하셨죠?


사이.


난 그저 셰퍼드 부쉬로 가는 버스를 여기에서 탈수 있냐고 물어 본 것뿐이잖아요.


사이.


누가 당신더러 살살대고 나한테 아첨하랬어요?


사이.


당신,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사이.


하. 당신 같은 부류 알아, 당신 같은 타입 안다구. 걱정 말아요, 당신 같은 사람들 잘 아니까요.


사이.


당신 같은 사람들 출신 알 만해요. 주중 매일매일 당신 같은 부류가 쏟아져 들어오죠.


사이.


당신 같은 사람은 신고를 해야 해. 그러면 눈 깜짝할 새에 당신은 피고석에 서 있게 되겠죠. 내 친한 친구 중 하나가 사복경찰이라구요.


사이.


나도 다 알아요. 시치미 떼고서 점잔 빼고 피고석에 서 있는 거 말이야. 그러다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만나면 그 때에는 . . . 아주 다른 짓을 하겠죠. (허공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했는지 들으셨죠? 난 그저 셰퍼드 부쉬까지 가는 버스가 여기서 있냐고 물은 것뿐인데 말이죠. (그에게) 증인도 다 있어요. 걱정 마세요.


사이.


주제넘게 시리.


사이.


남자에게 그저 정중하게 질문을 하면 남자들은 여자를 싸구려로 취급하려 든다니까.(그에게) 이봐요, 젊은이, 내가 경고하는데 나 아주 바쁜 사람이에요. 여기 일반 고속도로에 서서 그런 모욕을 당할 이유가 없어요. 누구라도 당신이 외국인인 것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구요. 난 바로 저쪽 길모퉁이를 돌아선 곳에서 나서 자랐어요. 누구라도 당신이 흥청망청 놀려고 저 위쪽 나라에서 왔다는 거 눈치 챌 수 있어요. 당신 같은 부류야 뻔하지. 


사이.


그녀가 한 숙녀에게 다가간다.


저, 실례합니다, 부인. 이 남자를 치안판사에게 끌고 갈까 하는데요, 당신도 이 남자가 수작부리는 거 들으셨죠, 증인이 되어주시겠어요?


숙녀는 도로로 내려선다.


숙녀  택시 . . .


그녀가 사라진다.


여자  저 여자 같은 스타일도 뻔하지. (원래 위치로 돌아가서) 네가 이 줄의 맨 앞에 서 있었는데 말이야.


사이.


바로 저기 가까이에서 태어났어요. 태어나서 자랐지요. 저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행동거지가 배워먹지 못했어. 페루인들 말이지요. 내가 당신을 고소하지 않은 걸 큰 행운으로 여기세요. 단순한 질문을 하는 것뿐이었는데-


줄 서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지나가는 버스를 향해 손을 내 뻗는다. 모두들 버스를 쫓아 달려간다. 여자는 혼자 딱딱 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고 중얼거린다. 한 남자가 우측에서 정류소로 걸어와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녀는 곁눈질로 그를 살펴본다. 마침내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운 듯, 망설이는 듯 말을 한다.


실례지만, 여기서 . . . 마블 아치로 가는 버스가 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