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린사람들" 중에서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 김 현격 역

 

이번에는 그에게 희망이 없었다. 세 번째 발작이었다. 밤마다 나는 그 집 앞을 지나다니며(그때가 방학이었다) 불 밝혀진 유리창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밤마다 창문을 변함없이 희미하면서 고르게 밝혀져 있었다. 만약 그가 죽는다면, 촛불의 그림자가 침침하게 가려놓은 차양 위에 어른거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신의 머리맡에 초 두개를 놓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가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래 살지 못해.” 나는 그이 말이 공연한 소리라고 생각했다. 이제 보니 그것은 사실이었다. 밤마다 나는 그 창문을 쳐다보며 ‘중풍’이라는 말을 가만히 되뇌어 봤다. 그 말은 내 귀에 항상 이상스럽게 들렸다. 기하학의 경절형(磬折形)이라든지 교리문답의 성직매매와 같은 말처럼, 그러나 지금 그 말도 어떤 악하고 죄받을 존재의 이름처럼 들렸다. 그 말은 내게 공포를 자아내게 했다. 그런데도 나는 더 가까이 가서 그것의 무시무시한 장난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내가 저녁 먹으러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코터 영감은 불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숙모가 우유죽을 국자로 내게 떠 주는 동안 마치 전에 하다만 말을 계속하는 투로 말했다.

“꼭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좀 이상스러운 점이 있다 이 말씀이야. 그 사람에게는 좀 괴상한 점이 있어. 내 소견을 말하자면…”

그는 파이프 담배를 빨아댔다. 틀림없이 속으로 소견을 정리해 보는 모양이었다. 지겨운 영감 같으니라고! 우리가 그를 처음 알았을 때는 퍽 재미있는 분이었다. 덜 된 술이니, 증류관이니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곧 그도 지겨워졌고 그 끝없는 증류에 관한 얘기도 넌더리가 났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는데 말씀이야,” 그가 말했다. “그것은 하나의 특수한 병이었다고 할까. 하여간 무어라 말하기가 어렵지…”

그는 그의 일가견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다시 파이프를 빨기 시작했다. 삼촌은 내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보고 내게 말했다.

“그래. 네 오랜 친구가 가버렸구나. 너도 그 말 들으면 섭섭하겠지.” “누가요?” 내가 물었다.

“플린 신부.”

“죽었나요?”

“코터 씨가 지금 막 그 말을 전해 주셨다. 그 집 앞을 마침 지나가셨더란다.”

나는 내가 주목받고 있음을 알고 그 소식에는 흥미가 없는 양 계속 먹어대기만 했다. 삼촌이 코터 영감에게 설명해 주었다.

“저 녀석하고 그 사람하고는 굉장한 친구랍니다. 그 영감님이 저 녀석에게 굉장히 많이 가르쳐 주셨지요. 사실입니다. 그 영감이 쟤에게 희망을 많이 걸었다고들 하던데.”

“하나님 그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소서.” 숙모가 경건하게 말했다.

코터 영감은 한동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의 작고 반짝이는 검은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음을 느꼈으나 접시로부터 머리를 쳐들어 보면 그가 만족해 할 것이므로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는 다시 담배를 물더니 마침내 무례하게 난로 쇠살 대에 침을 내뱉었다.

“내 아이라면 그런 사람하고 상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겠어.” 그가 말했다.

“무슨 뜻인가요, 코터 씨?” 숙모가 물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하고 코터 영감이 말했다. “어린애들에게 나쁘다 이 말씀이야. 무슨 말인고 하니 어린애라면 제 또래 애들하고 뛰어다니며 놀아야지 그런 식으로… 내말이 맞나, 짹?”

“그게 바로 저의 원칙이기도 합니다.” 삼촌이 말했다. “제 분수를 알아라. 이것이죠. 제가 늘 저 몽상가에게 하는 말이 그거랍니다. 운동해라 이겁니다. 글쎄, 제가 꼬마일 때 난 매일 아침 냉수욕을 했지요. 겨울이나 여름이나 어느 때든지 말입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수양이 좋고 그 힘이 크기는 하지만… 코터 씨가 저 양고기 다리는 드실 만한데…” 삼촌은 숙모에게 덧붙여 말했다.

“아니야, 아니, 난 싫어.” 코터 영감이 말했다.

“근데, 왜 그게 어린애들한테 나쁠까요, 코터 씨?” 숙모가 말했다.

“어린애들한테 나쁘고말고.” 코터 영감이 말했다. “애들 마음은 그만큼 여리니까. 어린애들이란 그런 것을 보면, 아시다시피 영향을 받게 마련이라…”

나는 죽을 퍼 넣어 입을 틀어막았다. 화가 터져 나와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긋지긋한 딸기코 천치 같으니!

꽤 늦어서야 나는 잠이 들었다. 코터 영감이 나를 어린애 취급하는 데에 화가 났지만 나는 골머리를 써서 그의 덜 끝낸 말의 의미를 추려보려고 했다. 어두운 내 방에서 나는 중풍환자의 짙은 잿빛 얼굴을 또 보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머리 위로 담요를 뒤집어쓰고 크리스마스를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잿빛 얼굴은 여전히 쫓아왔다.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털어놓고자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나의 혼백이 쾌락과 악의 지대로 물러나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그것은 나는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중얼거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고백하기 시작했고 나는 왜 그것이 계속 웃고 있는지 왜 입술이 침으로 젖어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러나 그때 나는 그것이 중풍으로 죽었음을 기억했고 그의 매관매직 죄를 용서라고 해주려는 것처럼 희미하게 내가 웃고 있음을 또한 느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조반 후에 그레이트 브리트가의 그 오두막집을 보려고 내려갔다. 수수한 가게였는데 그냥 포목상이라는 막연한 상호의 간판이 붙어 있었다. 포목이라고 하는 것이 주로 어린애들 털실 신, 우산 따위 물건이었고 보통 날에는 으레 진열창에 “우산 고칩니다.”라는 광고가 붙어 있곤 했었다. 지금은 덧문을 닫아 놓았기 때문에 광고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조화(弔花)가 리본과 함께 문 노커에 묶여 있었다. 두 가난한 여인과 전보 배달 소년이 조화에 꽂혀 있는 카드를 읽고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읽었다.

 

1895년 7월 1일

제임즈 플린 목사(미스 가(街) 성 캐서린 교회 전 담임목사), 65세.

삼가 명복을 빕니다.

 

카드를 읽고 나서야 그가 죽었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나는 멈칫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가 죽지 않았다면 나는 상점 뒤의 작고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서 그가 커다란 외투에 거의 파묻힌 채 난롯가의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으리라. 숙모가 하이 토스트 담뱃갑을 그의 몫으로 내편에 보냈을지도 모르고 이 선물 때문에 그는 마비상태의 졸음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노상 내가 담배가루를 그의 코담배상자에다 털어 넣곤 했다. 그의 손이 너무 떨려 내버려 두면 한 갑의 절반쯤 마루에 쏟을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떨리는 커다란 손을 코 가까이 댈 때에도 고운 구름 같은 가루가 손가락 새로 흘러서 옷 앞자락에 떨어지곤 했었다. 늘 상 담배가루가 이처럼 쏟아지므로 그의 오래된 사제복이 빛바랜 초록빛을 띠는 것인지도 모른다. 원래는 붉었던 손수건이 한 주 가량의 담뱃진으로 검게 되는데 그것으로 떨어진 가루들을 털어내려고 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나는 들어가서 그를 보았으면 했지만 문 두드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해가 비치는 쪽으로 천천히 길을 걸으며 가게 창문에 붙어 있는 연극 광고들을 모조리 읽어갔다. 나나 남이나 슬퍼하는 것 같지 않아 이상했다. 오히려 그가 죽어서 마치 무엇에서 해방된 듯한 자유 감을 느끼게 되어 퍽 곤혹스러웠다. 나는 이 기분이 이상하기만 했다. 삼촌이 전날 밤 얘기했듯이 그분은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로마에 있는 아일랜드 대학에서 공부를 했던 연고로 내게 라틴어 발음을 바르게 하도록 가르쳐 주었다. 카타콤의 얘기며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에 대한 얘기들을 해주었고 미사 드릴 때의 각기 다른 의식이며 사제가 입는 각각의 복식의 의미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때로는 내게 어려운 질문을 던져 놓고 재미있어 했는데, 이러저러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저러한 죄는 씻을 수 없는 죄인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만 결함에 불과한 것인가 하고 물어보곤 했다. 그의 질문 덕분에, 전에는 단순한 행위로 생각했던 교회 의식이 경우에 따라 얼마나 복잡하고 신비스러운 것인가 깨닫게 되었다. 성찬식에 대한 사제의 의무, 고해실의 비밀에 대한 사제의 의무 등은 내게 너무나 중대한 것처럼 보여서 도대체 어떤 사람이 감히 그런 일을 해낼까 궁금하게 여겼다. 그래서 교회 신부들이 이러한 복잡한 문제들을 해설하느라고 전화번호부만큼 두툼한 책을, 신문의 법률공고문만큼 빽빽하게 썼다고 내게 말했을 때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이런 문제는 생각해 보았지만 전혀 대답할 수 없거나 더듬거리는 대답이나 바보 같은 대답 밖에 못하면 그는 미소를 짓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곤 했다. 때로 그는 미사의 응답을 모두 외우게 해서 실제로 시험을 해보았다. 내가 줄줄 외는 동안 그는 진중하게 미소를 짓고 고래를 끄덕이다가 각각의 콧구멍에 듬뿍 코담배를 집어넣곤 했다. 그가 웃을 때는 빛바랜 커다란 이빨들을 드러내고 혀를 아랫입술 위에 얹어 놓곤 했었다. 처음에 그를 잘 알기 전 우리가 사귀기 시작했을 때 이 버릇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햇볕 속으로 걸으면서 나는 코터 영감 말을 떠올렸고 꿈에서 그 후에 어떻게 됐는지 기억해 보려고 했다. 긴 벨벳 커튼과 흔들거리는 구식 등잔이 눈에 띄었던 것이 생각났다. 대단히 먼 곳이었다고, 풍습이 이상했던 나라라고, 페르시아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꿈의 끝을 기억할 수 없었다.

저녁때 숙모는 나를 데리고 상가(喪家)로 찾아 갔었다. 해가 진 뒤였다. 그러나 서향집들의 유리창은 거대한 뭉게구름의 황금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내니가 우리를 대청으로 맞아 들였다. 숙모는 노파에게 소리 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다 싶었던지 악수만 했을 뿐이었다. 노파는 물어 보는 투로 위쪽을 손짓했고 숙모가 끄덕이자 우리를 앞서 좁은 층계를 기를 쓰며 오르기 시작했다. 노파의 숙인 머리가 난간 위로 솟을까 말까였다. 첫 번 층계참에서 멈추고서는 시신을 모신 방의 열린 문 쪽을 열심히 우리에게 가리켰다. 숙모가 먼저 들어갔다. 노파는 내가 들어가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고 내게 거듭거듭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발끝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창가리개 끝의 레이스 장식을 통해 방안이 황혼의 황금빛으로 충만해지자 촛불들이 창백한 여읜 불꽃으로 보였다. 시신은 입관이 돼 있었다. 내니가 앞장서서 우리 셋은 침대 발치에 꿇어앉았다. 나는 기도하는 척했지만 노파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정신을 산란케 해서 생각을 집중시킬 수가 없었다. 나는 노파의 스커트가 뒤쪽으로 엉성하게 여며진 것이며 그녀의 천으로 된 장화가 한쪽만이 닳아빠진 것을 눈여겨보았다. 늙은 신부도 관 속에 드러누워 웃고 있을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아니었다. 우리가 일어서서 침대 머리께로 갔는데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엄숙하고 뚱뚱한 모습으로 제단에 나가는 복장을 하고 커다란 양손으로 성배를 느슨히 잡고 있는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얼굴은 험상궂고 잿빛에다 커다랬으며 검은 동굴 같은 콧구멍에다가 얼굴 주위에는 흰 수염이 듬성듬성 나 있었다. 방에는 짙은 냄새가 배어있었다. 꽃 냄새였다.

우리는 성호를 긋고 물러났다. 아래층 작은 방에 엘리자가 그의 팔걸이의자에 점잖게 앉아 있었다. 나는 구석에 있는 내 차지 의자를 찾아서 갔고 그러는 사이 내니는 찬장으로 가서 백포도주병과 포도주잔 몇 개를 꺼내왔다. 그녀는 그것들을 탁자 위에 놓고 포도주를 권했다. 그러고 나서 언니의 명령에 따라 백포도주를 잔에다 따라 우리에게 건넸다. 크림 비스켓도 같이 들라고 그녀는 내게 권했지만 먹느라 너무 큰 소리를 낼까봐 나는 사양했다. 그녀는 내가 거절한 것에 약간 실망을 해서 조용히 소파 쪽으로 가서 언니 뒤에 앉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불 없는 난로를 쳐다보았다.

숙모는 엘리자가 한 숨 쉬기까지 기다리다가 드디어 말했다.

“아, 결국 그분은 더 나은 곳으로 가셨군요.”

엘리자는 다시 한숨을 쉬며 긍정하는 표시로 머리를 숙였다. 숙모는 포도주 잔 받침대를 만지작거리다가 조금씩 마셨다.

“저… 편안히 갔나요?” 숙모가 물었다.

“그럼요. 아주 편안했답니다.” 엘리자가 말했다. “언제 숨이 끊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었답니다. 편안히 죽었지요.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그리고 모든 게…?”

“오로크 신부가 화요일에 와서 그에게 기름을 발라주고 모든 절차를 다했지요.”

“그분도 아셨겠네요?”

“아주 체념한 상태였지요.”

“우리가 그를 염하려고 불렀던 여인네도 그렇게 말했지요. 꼭 잠든 것 같다고요. 그토록 편안하고 체념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이처럼 참한 모양의 시신이 될 거라곤 아무도 생각 못했지요.”

“정말 그러네요.” 숙모가 말했다.

숙모는 조금 더 마시고 말했다.

“플린양, 하여간 자매님이 그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음을 알고 있는 터이니 그게 큰 위안이 되겠어요. 두 자매님들은 정말 그에게 친절했지요.”

엘리자는 무릎 위로 치마를 잡아 폈다.

“아, 가엾은 제임스!” 그녀가 말했다. “우리가 가난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음을 하느님도 아시겠지요. 그가 그런 상태에 있는데 뭔가 부족을 느껴서야 우리가 차마 볼 수 없겠지요.”

내니는 소파의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서 막 잠들려는 것처럼 보였다.

“가엾은 내니.” 엘리자가 그녀를 보며 말했다. “아주 지쳐버렸어요. 저 사람과 내가 했던 그 모든 일들, 염하는 여자 불러와 목욕시키고 염습하고 그 다음에 입관, 그리고 성당에서 미사 준비, 아휴, 오로크 신부가 없었다면 무슨 일을 해냈을까 모르겠군요. 그분이 우리한테 꽃도 가져다주었지, 성당에서 촛대도 두개 가져왔지, 프리만 저널지에다 광고도 냈지, 묘지와 제임즈의 보험관계에 필요한 서류도 도맡아 다 했지 뭐예요.”

“정말 고마운 분 아니겠어요?” 숙모가 말했다.

엘리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가로저었다.

“옛 친구만큼 좋은 친구가 없답니다.” 그녀가 말했다. “모든 게 다 끝나 버려서 믿을 친구가 없을 때 말이지요.”

“그건 정말 그래요.” 숙모가 말했다. “자 이제 그분도 영원한 보답을 받으러 갔으니, 자매님과 자매님이 그에게 행한 모든 착한 일들을 잊지 않겠지요.”

“아, 가엾은 제임즈!” 엘리자가 말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큰 문젯거리는 아니었답니다.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끽 소리가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이제는 아주 갔고 그것으로 끝이지만…”

“모든 게 끝났을 때 허전한 법이지요.” 숙모가 말했다.

“사실지이요.” 엘리자가 말했다. “이제는 고깃국을 가져다 줄 일도 없고, 부인도 그에게 코담배 보낼 일도 없어졌지요. 아, 가엾은 제임즈!”

그녀는 마치 과거와 이야기하는 듯이 말을 멈추었다. 그러고 나서는 짓궂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에요. 요사이 그에게 이상한 일이 벌어졌었지요. 국물을 가지고 갈 때마다 기도문은 바닥에 떨어져 있고 그는 입을 벌리고 의자에 벌렁 누워 있곤 했단 말이에요.”

그녀는 손가락 하나를 코에 대더니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데 늘 하는 말이 여름이 지나가기 전 날씨 좋은 날 아이리쉬타운에 있는 우리가 태어났던 옛집을 꼭 찾아보겠다며 내니와 나도 함께 데려가겠다는 거였지요. 오로크 신부가 그에게 말했다는, 그 소리 안 난다는 신식마차, 그 뭐야 공기 타이어를 달았다는 마차를 하루 싸게 빌릴 수 있었다면 말이지요. 저기 조니 러시네 가게에서 말이에요. 그러면 어느 일요일 오후 우리 셋이 타고 가게겠다고 그리 말했지요. 꼭 그러겠다고 작정을 했던 모양이던데… 가엾은 제임즈!”

“하느님 그를 자비로 살피소서!” 숙모가 말했다. 엘리자는 손수건을 꺼내서 눈물을 닦았다. 그러고 나서는 수건을 다시 주머니에다 넣고 말없이 한동안 텅 빈 벽난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항상 그는 너무 양심적이었지요.” 그녀가 말했다. “사제직의 의무가 너무 무거웠던 겁니다. 그리고 그의 생애는 좌절됐다고 말할 수 있지요.”

“그래요.” 숙모가 말했다. “그 분은 풀이 죽어 있었어요. 그 점은 눈치 챌 수 있었어요.”

침묵이 그 작은 방을 휘감았다. 나는 침묵을 방패삼아 식탁에 다가가서 내 몫의 포도주를 맛보고 구석에 있는 내 자리로 조용히 돌아왔다. 엘리자는 깊은 명상에 빠진 듯싶었다. 우리는 황공하게도 그녀가 침묵을 깨기를 기다렸다. 오랜 침묵 후에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가 깨뜨린 성배 때문이었지요… 그것이 시작이었어요. 물론 다들 괜찮다고 했지요. 무얼 담고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모두들 그것도 미사동의 잘못이라 그랬었지요. 그렇지만 제임즈가 너무 불안해했던 거예요. 하느님 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엘리자가 끄덕였다.

“그 일 때문에 정신이 사나워진 것이지요.” 그녀가 말했다. “그 일 이후 그는 혼자서만 우울 속에 지내기 시작했고 누구한테 말하는 법 없이 혼자서만 배회했었지요. 그러자 어느 날 밤, 어느 곳을 가야할 일이 생겼는데 어디서고 찾을 수가 없었단 말예요. 위아래 할 것 없이 다 뒤졌지만 도대체 어디서든 꼴을 볼 수 있어야지요. 그러자 어떤 직원이 성당 안을 찾아보자고 말을 했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열쇠를 찾아 성당을 열고, 그 직원, 오로크 신부, 마침 거기에 있던 신부 또 한 분이 촛불을 켜들고 들어가 그를 찾아보았는데… 글쎄 고해실 어둠 속에 혼자 앉아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가만히 웃고 있더래지 뭡니까?”

그녀는 갑자기 무슨 소리를 들으려는 듯이 말을 멈추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집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 노신부가 우리가 보았던 대로 관 속에 가만히 누워 있음을 알고 있었다. 죽었어도 엄숙하고 험상궂게, 빈 성배를 가슴위에 놓은 채.

엘리자가 말을 계속했다.

“글쎄 눈을 커다랗게 뜨고 혼자 웃고 있더래니까… 그래서 모두들 그런 꼴을 보고 그 사람이 뭐 잘못됐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지요…”


 

작가 및 작품 해설

 

김현격

 


James Joyce

 

James Joyce는 1882년 2월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는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이었지만 가세의 몰락과 함께 사춘기에 들어서는 대단히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그는 Jesuit교파의 학교들을 거치면서 교육을 계속 받아 결국 1902년에는 더블린의 University College를 졸업하고 바로 그해에 의학공부를 목적으로 파리에 갔으나 곧 포기하고 오히려 문필가의 길을 택하게 된다. 1903년, 어머니의 위독으로 다시 귀국하여 온갖 일을 하며 지내다가 1904년 Galway 출신의 시골처녀 Nora Barnacle을 만나게 되고 이들은 유럽으로 건너가 동거를 하며 아들딸을 낳았으나 정작 결혼식은 1931년에 가서야 하게 된다.

1904년 이후 그는 거의 일생을 외국에서 보냈으나 마음만은 항상 고국에 있어서 모든 작품의 내용이 더블린과 아일랜드에 관한 것이었다. 1914년 출판된 Dubliners는 사실상 1904년에서부터 시작하여 대체로 1907년에 끝냈으나, 출판업자들의 사소한 “도덕적 시비”로 인해 지연되고 말았다. 그 결과 Dubliners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보다 4개월 늦게 나오게 되었고 그 결과 DublinersA portrait-의 영광에 가려지게 되었다. 심지어 Joyce의 발굴자라 할 수 있는 Ezra Pound마저 Dubliners의 중요성을 A portrait-아래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 등으로 인해 Dubliners가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은 1950년대 이후로 미루어지게 된다.

Dubliners를 읽을 때 독자들의 첫 인상은 무엇인가 미완으로 남아있는 듯한 이야기의 구조에 막연한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읽으면 한 작품 작품이 대단히 치밀하게 짜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끼리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결국 전체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Sisters", “Araby"와 같은 작품은 소년기, “The Boarding House", “The Clay"와 같은 작품은 성년기, “A Painful Case"와 같은 작품은 사회인으로서의 활동기, “The Dead"는 Dubliners의 총결론적인 작품으로 구분이 된다. (물론 이곳에 소개된 작품을 포함하여 Dubliners에는 총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가 자신은 Dubliners에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는 주제나 분위기가 “마비”(paralysis)임을 강조하고 있다. “Sisters"에서 시작하고 있는 “마비”는 “Araby”에서 소년의 환멸, “The Boarding House”에서 탈출의 욕구와 갇혀 있음의 깨달음, “The clay”에서 인간관계의 단절과 그 회복의 의문, “A Painful Case”에서 사랑을 두려워하는 이기주의, 그리고 마지막 “The Dead”에서는 겉으로의 인간관계와 진실한 내면의 실상, 거기에서 오는 환멸 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견과 직결됨을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예를 들어, “The Dead”의 제일 마지막 부분에 잘 드러나고 있다. 그레타의 마음속에는 예전의 애인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가브리엘은 엄청난 충격을 받지만 비로소 그레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거의 매 작품에서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이 암시되어 있다. 그것이 환멸이든 무엇이든 간에, 엄청나게 새로운 세계의 존재가 제시되면서 동시에 이야기는 끝나버린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그 경계선을 알아보는 순간 긴장을 느끼면서 동시에 감탄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이곳에 소개된 작품들을 계기로 나머지 작품들, 또 Joyce에 대한 애정이 배가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