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어얼리치(Victor Erlich) / 박 거용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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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형식주의는 자주 19세기 말엽의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 지상주의를 단순하게 다시 다듬은 이론으로 평가되어 왔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선 한 예를 든다면,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근본적으로 예술의 본질이나 목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실증주의>의 공인된 옹호자들인 그들은 예술적 창조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선입관>을 청산하려고 노력했으며, 또 미와 절대에 관한 명상도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 형식주의 미학은 형이상학적이라기보다 기술적(descriptive)이었다.

아이헨바움은 그의 초기의 한 논문에서, <우리의 방법론은 일반적으로형식주의적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나는 차라리 형태학적(morphological)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것은 연구의 대상을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학자의 견해에 따라, 작품 속에 반영된 것으로 삼는 심리학적, 사회학적 부류의 다른 접근 방법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이다>라고 말했다.

<형태학적>이란 용어는 형식주의 대표자들이 그들의 방법론적 입장을 밝히는 데 사용한 유일한 용어는 아니었다. 정통파 마르크스주의자들과 논쟁을 벌이는 가운데, 아이헨바움은 <우리들은형식주의자들이 아니고, 굳이 그렇게 말하고 싶다면, 특수성 규정인들(specifiers; specifikatory)이다>라고 한때 선언하였다.

<형태학적 방법><특수성 규정인들>이란 용어들은 실로, 러시아 형식주의의 두 개의 중요하며 상관적인 주장들a) <문학 작품>과 그 구성 요소들의 강조, b) 문학 연구의 자율성의 주장을 비추어 주는 적절한 개념들이었다.

형식주의 이론화의 추진력은, 전통적 문화 연구에 만연한 방법론적 혼돈을 마무리 짓고, 지적 노력의 뚜렷하고 통합된 분야로서 문학 연구를 체계화하려는 욕망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오랜 동안 지적 유토피아( intellectual no-man's land)였던 문학 연구가 그 영역의 경계를 확정하고 그 연구 대상을 명확하게 정의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형식주의자들은 주장하였다.

이것이 정확하게 형식주의자들이 하려고 착수했던 것이었다. 그들은, 문학 연구가란, 시드니 리경(Sir Sydney Lee)의 말을 빌자면, <문학이 생산되는 외부환경>보다는 실제 문학 작품에 전념해야 한다는 전제오늘날에도 널리 인정되고 있는로부터 출발했다. 크리들은 문학은 그 자체가 문학 연구의 대상이지 다른 외부적 연구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호전적인 형식주의의 <특수성 규명인>에게 이것은 충분히 독특하지가 못했다. 예를 들어 심리학사회학 그리고 문화사와 같은 눈에 거슬리는 인접 학문들로부터 문학 연구를 분리하기 위해서 더욱 더 정의를 요점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야콥슨은 <문학 연구의 대상은 총체로서의 문학이 아니고 문학성(literariness; literaturnost), 즉 다시 말해서 특정한 작품을 문학 작품이게끔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학 연구가는, 그가 진정한 문학 연구가라면, 문학적 자료들의 독특한 특징들의 연구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아이헨바움도 덧붙여 말했다.

이 주장은, 그 다음엔 무엇이 문학의 독특한 특징인가 하는 문학 이론의 제일 중요한 문제를, 이미 당연한 것으로 놓고, 회피하였다. 대신, 대부분의 형식주의 이론적 발언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다루었던 것은 <문학성의 본질과 소재지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였다.

이 중요한 의문점들에 답변하는데 형식주의자들은 전통적인 대답들과 임시 변통적인 해결책들을 피하려고 노력하였다. 심리학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함께, 그들은 시적 창조를 유도 통제하는 <정신의 기능(faculty of mind)>을 환기시키는, 시 작품보다 시인에 본질적 차이(differential)를 두는 모든 이론들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형식주의 이론가들은 <영감(intuition)> <상상력(imagination)> <천재(genius)> 등등에 관한 모든 공론들을 일소에 붙였다. 독특한 문학성의 소재지를 작가나 독자의 정신 속에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 내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형식주의자들이 문학을 잠재적인 심리학적 과정의 견지에서 설명하려는 경향을 거부했다면, 그들은 문학 작품 속에 구체화된 경험의 차원 또는 양식(mode) 속에서 <문학성>의 근거를 찾으려는 태도도 마찬가지로 반대하였다. 그들은, <신문>이 개념들을 다루는 반면 시는 감정을 다룬다는 친숙한 논제에서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했다. <문학적 사실>의 변화무쌍한 성질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는 상대주의자들인 그들은 특정한 모티프들을 다른 것들보다 더 시적이라고 평가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시란 무엇인가?란 그의 평론에서, 야콥슨은 본질적으로 시적인 주제들이란 개념은 독단적이며 쓸모없는 것이라고 거부하였다. 현대에 들어서서 시적으로 다룰 수 있음이 증명된 거의 무한정한 제재들(subjects)의 다양성은 그러한 모든 제한적인 도식들이 허위임을 입증하였으며, <오늘날에는 어떤 것이든 시의 자료로 사용될 수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

티니야노프의 표현대로 <문학의 정태적인 정의들>을 무의미하게 만든 문학적 변화에 대한 주장, 즉 문학적 현상에 관한 상대주의적 관점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을, 시적 허구(poetic fiction)와 현실 간에 견고한 구분을 지어놓은 미학적 비평의 경우보다,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문학과 인생간의 경계선들은 유동적이다>라고 티니야노프는 말했다. 르포르타지자서전 그리고 일기 등의 기록 문학에 대한 호의적인 관심과 결합된, 바로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형식주의 이론가들로 하여금 허구성(fictionality)을 상상적인 글쓰기(imaginative writing)의 주요 구분표들 중의 하나로서 강조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분명 문학과 비문학간의 차이점은 제재, 즉 작가가 다룬 현실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표현 양식(mode of presentation)에서 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이 후자의 문제를 연구하는 가운데, 형식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또 사무엘 테일러 코울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세실 데이 루이스(Cecil Day Lewis), 게오르크 플레하노프, 그리고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등 제각기 다른 현대 비평가들이 똑같이 주장하는, 유서 깊은 개념과 직면하게 되었음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이미지의 사용을 문학, 또는 광범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의 시의 두드러진 특징임을 주장하는 이론을 지칭하는데, 형식주의와 유사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이 원리를 면밀한 비평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부 형식주의 대표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던 주도면밀한 미학자인 구스타프 스페트는 시적 이미지를 <생동성(vividness)>에 관한 그럴 듯한 공론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회화적 자질(pictorical quality)을 시적 이미지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는 시적 담화의 진정한 본질을 잘못 판단한 것을 의미한다고 스페트는 말했다.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이미지는 오로지 이미지, 즉 발화의 모습(a figure of speech)일 뿐이다. 시적 이미지들은 은유이며 비유(trope)이고 내적인 형식이다. 심리학자들이 내적인 형식을 근본적으로 시각적 이미지로 해석했을 때, 그들은 시학에 상당한 해를 끼쳤다>고 스페트는 말했다. 계속해서 스페트는 <[]시각적 이미지는 시적 인식을 방해한다. []인간의 손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 푸시킨의 기념비, 또는 그의타는 듯한 언어, 즉 진정으로, 그 형식들이 시각적이지 않고 허구적인 모든 이미지와 상징을 시각적으로 인식하려고 노력하는 태도는 시적 담론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인식하게끔 강압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시학의 목적이란 그의 논문에서, 지르문스키도 비슷한 견해를 취했다. 최근의 독일 문학 이론가인 마이어(Th. Meyer)를 인용하면서, 지르문스키도 시적 이미저리의 감각적 특성에 너무 과중한 비중을 두는 태도를 경고하였다. 시가 환기시켜 주는 시각적 이미지들은 상당한 정도까지 개별 독자의 감수성과 그의 전연 색다른 연상 작용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에, 그것들은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계속해서 지르문스키는 생생함, 즉 다시 말해서 감각적 효과의 강도 면에 있어서, 시는 분명히 회화보다 못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언어 속에 고유하게 존재하며 다른 어떤 분야의 예술도 표현할 수 없는, 형식적이며 논리적인 관계들의 전체적 연쇄>를 뜻대로 다룰 수 있다.

<시의 재료는 이미지도 감정도 아니고 언어이다. [] 시는 언어로 된 예술이다>라는 지르문스크의 결론적 진술은 형식주의자들 언어에의 집착을 가리켜준다.

문학과 시각적 예술 간에 명백한 구분을 지음으로써, 지르문스키는 오히려 적절하게, 시각적 재현(representation)의 문제에서 시적 <화법(diction)>의 문제로 토론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 준거의 틀이 이미지에 대한 선입견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지는 못했다. 정말, 아리스토텔레스부터 로우스(J. L. Lowes)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미저리> 원리의 옹호자들은 <이미지>, 스페트가 그렇게 해석되기를 바란 것과 같이, 언어체적 현상으로 파악하였다. 그들은 비유, 특히 은유의 사용에서 시적 담론과 산문적 담론간의 중요한 차이점을 보았다.

형식주의자들은 [이 점을] 납득하지 못했다. 사실, 이미 지적하였듯이,기법으로서의 예술이란 슈클로프스키의 강령적 평론의 출발점은 이미저리 원리에 대한 맹렬한 공격이었다.

이미지의 사용을 문학예술의 두드러진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광범하며 또 동시에 너무 편협한 근거의 틀을 취하는 것이라고 슈클로프스키는 주장했다. 계속해서 그는, 시적 화법과 이미저리는 동연의(coextensive) 개념이 아니라고 말했다. 한편으로, 비유적 담화의 영역은, <비유(trope)>가 여러 가지 언어 층위에서예를 들어서 회화적 구어체나 웅변의 수사법 등에서나타나기 때문에, 시의 영역보다 훨씬 광범하다. 다른 한편으론, 야콥슨이 지적하였듯이, 시 작품은 때때로 그것의 암시성을 잃지 않고도 통상적 의미에서의 <이미지> 없이 존재할 수 있다. 야콥슨에 의하면, 이 경우의 좋은 예는 푸시킨의 유명한 서정시나는 한때 당신을 사랑했네에서 볼 수 있는바, 그 시는 비유적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의도된 효과여전히 들끓는 정열을 감추지 못한, 비련 섞인 체념의 효과를 달성했던 것이다. 이 걸작 서정시의 효력은 오로지 문법적 대립과 구절 선율(phrase melody)의 성공적 조작에 근거한다. 분명, 비시적(非詩的)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비()비유적 시도 존재한다고 형식주의자들은 주장하였다.

<시인은 이미지들을 창조하지 않는다. 그는 그것들을 [일상 언어 속에서-V. E.]발견하거나 또는 수집한다>고 슈클로프스키는 말했다. 따라서, 시의 변별성(differentia)은 단순하게 이미저리의 유무에서 찾아질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사용되는 용법에서 찾아져야 한다.

이것이 형식주의 논거의 결정적이고 가장 값진 국면이었다. 슈클로프스키와 야콥슨은 과열된 논쟁을 벌이면서 은유의 전략적 중요성까지 의심할 만큼 다소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은 시언어와 이미저리를 동일시하는 태도에, 근본적으로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반대하였다. 그런데 그들의 가장 큰 성공은, 의심할 나위 없이, 시적 이미지와 산문적 이미지 간에 뚜렷한 기능적 구분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 데에 있었다.

슈클로프스키는 시적 이미지를 설명적 도구이며 정신적 지름길이라고 보는 합리주의적 개념에 설득력 있게 반론을 폈다. <이미지는 항상 그것이 대체해 주는 개념보다 단순하다는 이론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만일 그러한 이론이 옳다면, 우리는 튜체프(Tjutcev)의 유명한 직유구름을 <귀먹고 벙어리인 악마들(demony gluxonemye)>로 비유한 것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고 슈클로프스키는 물었다.

딜레탕트 미학자들에게 인기가 있던 허버트 스펜서의 <정신적 에너지를 절약하는> 법칙은 문학에는 적용할 수 없다고 오포야스(OPOYAZ) 선언문은 주장했다. 정보 전달 적 <신문>에서, 은유가 대상을 독자들에게 가깝게 가져다주거나 또는 적절하게 납득시킨다면, <>에서 그것은 의도한 미학적 효과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낯선 것은 낯익은 용어로 번역한다기보다, 시적 이미지는 습관적인 것을 새로운 견지에서 표현하거나 또는 그것을 예기치 않은 문맥 속에 넣음으로써 <낯설게 만든다(makes strange)>

묘사된 대상을 <낯설게 만든다>는 슈클로프스키의 이론은 이미지의 시적 사용으로부터 시적 예술의 기능으로 그 강조점을 바꾸어 놓았다. 비유는 여기서 시, 더 나아가서 모든 예술의 일반적인 경향을 예시해 주는, 시인이 임의로 사용하는 기법들 중의 하나로 단순하게 생각되었다. 대상을 <새로운 인식 영역>으로 이동시키는 것, 즉 비유가 가져다주는 독자적(sui generis) <의미론적 전환(semantic shift)>은 시의 근본적 목적이며 존재 이유라고 주장되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점점 파도의 속삭임에 익숙해져서, 그들은 그것을 듣지 않는다. 이런 사실로 비추어볼 때, 우리도 우리들이 말하는 언어를 거의 듣지 않는다. [] 우리는 서로 바라보지만(look),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주의 깊게 쳐다보지는(see) 않는다.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의식은 시들어 버려서,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단순한 인정(recognition) 뿐이다>라고 슈클로프스키는 말했다.

예술가가 대항해서 투쟁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일상과 습관이 냉혹하게 끌어당기는 힘이다. 대상을 습관적 문맥에서 뜯어내고, 본질적으로 다른 개념들을 함께 묶음으로써, 시인은 상투적 표현과 거기에 따르는 기계적 반응(stock response)에 치명적인 일격(coup de grace)을 가해서 우리들로 하여금 대상들과 그것들의 감각적인 결(texture)을 고양된 상태에서 인식하도록 한다. 창조적 변형 행위는 우리 주위의 세계에 <밀도(density)>를 부여함으로써 우리의 인식력을 날카롭게 해 준다. <밀도(faktura), 그 전체를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의도적으로 구축된 대상들의 특이한 세계의 중요한 특징이다.>

<낯설게 만들기의 기법(priem ostranenija)>이 문학적 전위의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문학의 어디에나 편재해 있는 원칙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할 듯이, 슈클로프스키는 그것의 가장 뚜렷한 본보기들을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인 레프 톨스토이로부터 유도해냈다.

톨스토이의 작품들에는 작가가 낯익은 사물들을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그것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묘사한 문구들이 풍부하다는 것을 슈클로프스키는 치밀하게 관찰하였다. 그래서전쟁과 평화에서 오페라 공연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그는 무대장치를 <페인트칠한 마분지 조각들>로 묘사했으며 또 부활의 미사 광경을 묘사하면서 성병(聖餠)을 지칭하기 위해서 <조그만 빵 조각>이란 일상적인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기법이,홀스토머(Xolstomer)()이 화자(話者)인 일인칭 화법으로 씌어진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폭넓게 사용되었다. 말의 주인과 그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사회적 관습과 제도들이, 이 작품에서는 인간들의 변덕과 위선에 놀라고 실망한 완전한 아웃사이더적 존재인 동물의 관점에서 표현되었다.

위의 예들에서 <낯설게 만드는 것>이 사회 비평의 수단, <자연>의 편에서 문명을 톨스토이 특유의 방법으로 폭로하는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슈클로프스키 논지의 부수적인 것이다. 그는 여기서 기법의 이념적 의미에선 관계하지 않았다. 그가 관심을 가기고 있는 것은 상투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도전즉 근본적이고 <소박한> 어휘를 위하여 무대 공연이나 미사 또는 사유 재산 제도 등을 논할 때 항상 호소하는 기술적 술책인 <허풍(big word)>을 몰아내려는 태도였다.

얼핏 보기에, 이 미학적 세련성의 옹호자가 톨스토이적 <단순성>으로부터 도움과 위안을 얻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나, 실제로는 여기에 아무런 모순도 개입되어 있지 않다. <낯설게 만드는 것>이 필연적으로 단순한 것을 정교한 것으로 대치하는 일을 수반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차라리 그 반대를 뜻할 수도 있다., 만일 학문적이거나 점잖은 용어가 특정한 경우에 널리 통용되는 어법일 때, 그것 대신에 불경스럽거나 세속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의미론적 전환>의 방향이 아니고, 그러한 전환이 일어났으며, 규범으로부터 일탈이 만들어졌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미학적 인식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이 바로 이 일탈(deviation) 이며 <분기성(分岐性, quality of divergence)>이라고 슈클로프스키는 주장했다.

슈클로프스키에 의하면, 은유 속에 내재하는 의미의 전이는 이런 미학적 효과를 이루는 방법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지각할 수 있는><밀도 높은(dense)> 세계를 건설하는 수단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고의적 방해받은 형식(deliberately impeded form; zatrudennaja forma)>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리듬일상 언어에 부과된 일련의 장치(a set of contrivances)이다. 시 쓰기는 언어의 외줄타기 곡예이며 <발성 기관의 춤>이라고 슈클로프스키는 주장했다. 시인의 <뒤틀리고(twisted)>, 에두르는(oblique) 담론 양식은 의사소통을 방해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좀 더 강렬하고 그래서 좀 더 보람 있는 방식으로 이 세계와 서로 손잡도록 한다.

슈클로프스키 <자동화(automatization)>, <지각 가능성(perceptibility)>의 양분법을 논하는 가운데, 슈클로프스키의 마르크스주의적 반대자들 중의 한 사람인 메드베데프는 이 형식주의 대표자가 객관적 분석의 정도에서 벗어나서 <미학적 지각의 심리학적생리학적인 조건들>속에 빠졌다고 비난했다. <생리학적(physiological)>이란 이 잘못 적용된 형용사를 완전히 무시한다고 해도, 메드베데프의 비난은 부당하게 생각된다. 문학 작품들은,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만이 접근할 수 있는, 인식 가능의 대상들이다. 결과적으로, 개별적 독자의 제멋대로의 연상 작용이 아니라, 예술 작품 속에 내재하며 특정한 <상호주관적(intersubjective)>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속성들을 강조한다면, 미학적 반응의 메커니즘은 <객관주의적> 예술 이론가의 정당한 관심사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이탈>이란 비난의 거의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그의 기술적(descriptive) 출발점에서 불구하고 슈클로프스키는 시를,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견지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견지에서, 정의하게 되었다고 주장해도 그릇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형식주의 이론은 <문학성>의 정의라기보다 <시의 새로운 옹호>임이 밝혀졌다. 더 나아가서, 슈클로프스키 공식들의 타당성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세계의 재발견으로서의 그의 예술관은 형식주의 비평가들이 인정하기를 꺼려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전통적이거나 대중적인 견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웰렉과 워렌(Warren)이 지적하였듯이, <낯설음>이라는 기준이 결코 새로운 이론은 아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완전한 시적 <화법><비일상적 언어(unusual word)>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더욱 최근에 코울리지, 워즈워스와 뜻을 같이하는 낭만주의 미학자들은 <새로움과 신선함의 감각(the sense of novelty and freshness)>이 진정한 시의 지표들 중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초현실주의자들에게도, 예술은 근본적으로 <놀라움의 부활(renascene of wonder)>이며 <새롭게 하는 행위>이다. 이 후자의 유추는 특히 강조할 만하다. 1926년에 쓴 평론에서, 프랑스 초현실주의의 시인들과 평론가들 중의 한 사람인 쟝 콕토(Jean Cocteau)는 시의 임무를, 슈클로프스키의 견해와 실제적으로 동일한 견지에서 묘사하였다.

콕토는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우리는 개와 마차와 집을 처음으로 주의 깊게 본다(see). 그러고 난 후에 곧 습관이 이 강한 이미지를 지운다. 우리는 개를 쓰다듬어 주고, 마차를 부르고 집 속에서 산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계속에서 콕토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이 시의 역할이다. 그것은 그 말의 완전한 의미에서, 베일을 벗겨낸다. 그것은 [] 우리를 둘러싸고 있고, 우리의 감각이 주로 기계적으로 반응을 보이는 놀라운 사물들을 드러내 준다. 일상사를 포착해서, 그것의 정도로, 그것을 깨끗하게 갈고 닦아서 빛나게 하라. 그러면 당신은 시인의 임무를 완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등등의 것이 문학이다(Tout le reste est litterature)>

이 두 견해들 간의 놀랄만한 유사성은 콕토에 미친 슈클로프스키의 영향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콕토가 이 오포야스 이론가의 저서들에 정통했다고 가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또 공식의 이러한 사실상의 일치는, 단순하게, 시에 관해 애정과 상상력으로 글을 썼던 두 명의 평론가들 간의 관점들의 수렴의 문제도 아니다. 슈클로프스키처럼, 문학적 전위를 위해서 횃불을 쳐든 이 시인이 때때로 오포야스 성명서를 프랑스식으로 해석한 것처럼 생각되는 견해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분명, 우연한 일이 아니다.

슈클로프스키의 즉흥적 예술철학은 러시아 미래파 운동을 찬양하였을 뿐 아니라 문학 이론에 기여하였다는 사실을 필히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명확한 미학적 언질(commitment)다른 형식주의 대변자들보다 슈클로프스키에게서 많이 발언된이야말로, 시의 포용과 창조적 변형의 치료적 가치에 관해 예상 밖으로 몰두를 한 그의 활기찬 평론의 취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다. 모든 시학파는, 자신들이 아무리 <인생>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더라도, 독자들에게 이야기하는 중에, 자신과 시 예술을 위해, 현실을 다루는 유일하게 효과적인 양식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2

슈클로프스키의 훌륭한 시 변호론은 후에 형식주의 이론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서, <낯설게 만들기> <자동화> <지각 가능성>과 같은 그의 중심 용어들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저술들 속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그러나 대체로 슈클로프스키의 논거는 문학 연구의 체계적 방법론이라기보다는 시적 실험의 이론적 근거로서 형식주의를 대표하였다. 현대 언어학 그리고 기호학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짐으로써 문학 이론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형식주의자들의 노력이 가장 간명한 표현을 얻은 것은 로만 야콥슨의 연구들에서이다.

1933년에 쓴 논문에서, 야콥슨은 <시의 기능은 기호가 그것의 지시체(referent)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러한 주의(암시, reminder)가 필요한가?>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야콥슨은 <왜냐하면 우리는, 기호와 그것의 지시체가 동일하다는 인식(AA1이다)과 함께, 이 동일성이 부적당하다는 의식(AA1이 아니다)이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기호와 대상간이 연결이 자동화되고 현실을 파악하는 힘이 시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야콥슨이 내린 시적 자질(poetic quality; basnickost)에 관한 간결한 개념적 정의는, 여러 면에서, 창조적 행위에 대한 슈클로프스키의 찬사와 유사했다. 두 비평가는 모두 시가 우리의 반응의 <자동화>를 향한 유해한 경향에 반대로 작용함으로써 우리의 정신적 건강을 강화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야콥슨의 강조점은 슈클로프스키의 그것과 다소 다르다. 야콥슨에게 긴급한 비평적 문제는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객체간이 상호작용이 아니라 <기호><지시체>간이 관계이며, 현실에 대한 독자의 태도가 아니라 언어에 대한 시인의 태도였다.

많은 형식주의 이론가들과 함께, 야콥슨은 시인이 그의 매개체를 사용하는 바로 그 방법 속에 <문학성>이 자리하고 있다고 보았다. 바꾸어 말하면, 문학의 변별점(differentia)의 소재지를 찾아내는 임무는, 근본적으로, 다른 양식의 담화들과 <시적 담론> 사이의 경계를 짓는 문제가 되었다.

이미 최초의 형식주의 성명서들이 시적 언어와 <일상적> 또는 정보 전달적인 언어 간의 차이점을 구분해 놓았다. 시가 미학적 효과를 위해서 철저하게 조직된 담화라고 평가되는 반면, 후자는 미학적으로 중성적이며 특성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되었다. 의사전달적인 언어에서는, 언어로 구성된 <기호>의 소리나 결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주장되었다. 일상적 담론과 과학적 담화에서는 더욱 더, 언어는 투명한 계산자이며 단순한 꼬리표이다. 상상적 글쓰기(imaginative writing)에서, 특히 시에서는, 발화음(speech sound)들을 신중하게 사용한다. 시적 언어의 특징인 언어적 유희(verbal play)는 언어의 음성적 결을 <드러낸 준다(lays bare)>

초기의 형식주의 저술들은, 시적 언어 대 <일상적> 언어의 양분법을 언어의 인식적 방법과 정서적(emotive) 용법에 대한 의미론자들의 구분과 동일시하여서, 문제를 혼동하는 경향이 있었다. 분명, 흔히 받아들여지는 시의 정감 이론(affective theory of poetry)에 승복을 했기 때문에, 오포야스 비평가들은 시적 언어를 의사소통의, 표현적 또는 비논리적 양식이라고 말했다.시와 의미 초월적 언어(trans-sense language)에 관해서란 그의 평론에서, 슈클로프스키는 감탄사, 정서가 가득 실린 고문체와 두운과 같은 활음적(euphonic) 기법들을 똑같이 일괄하여 다루었다. 야쿠빈스키는, 프랑스 시의 소리 패턴(sound-pattern)을 개별적인 모음들과 자음들에 대한 정서적 채색(彩色, the emotional coloring)이라는 견지에서 분석하려고 노력했던 모리스 그라몽(Maurice Grammont)이 전개한, 음운(phoneme)의 잠재적 표현성에 관한 이론을 공감적으로 수용하였다.

그러나 이 <정서주의적> 일탈은 곧 버려졌다. 상징주의 미학과 대항하는 가운데, 형식주의자들은 소리들과 정서들흔히들 소리들의 <언어 마술>이 환기시킨다고 말해지지만, 실상 언어 표현을 넘어서는간의 신비스런 <상응(correspondence)>에 점차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시적 담론과 정서적 담론을 동일시하는 것은, 시적 유포니를 의성어로 변형시키는 것처럼, 잘못된 것이다>고 야콥슨은 단언하였다. 시인은 간혹 표현적 언어의 자원을 사용하며 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목표를 더욱 멀리 확장한다.

감정적 발언(affective utterance)의 목표들과 구별되는 시적 담화의 <목표들>은 무엇인가? 야콥슨은 이 문제를 아주 명확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시가 인식적 형태의 담화(the cognitive mode of discourse)보다 정서적 형태의 그것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후자에는 <소리와 의미간의 관계>가 인식적 언어에서 보다 <더욱 유기적이며 본질적>이라는 점을 인정했으며, 또 그것은 <적절한> 소리의 결합을 통해서 정감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언어의 음성학적인 결을 면밀히 검토할 것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들의 유사성은 여기서 끝난다고 야콥슨은 주장했다. 정서적 담론에 있어서, <적당한> 소리의 뭉치(sound-cluster)는 그것이 무엇인가 하는 면에서가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전달하는가 하는 면에서 평가를 받는다. , <정감이 그 법칙들을 언어 집단에 명령하듯이>, 유포니는 의사소통의 하녀이다. <일상적언어와 정서적 언어에 모두 내재하는 의사소통적 기능이 최소한도로 축소된> 시는 그렇지 않다. <시란 오로지 표현양식을 지향하는 발언(vyskazyvanie s ustznovkoj na vyrazenie)으로서 내재적 법칙들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이 러시아 미래파 시에 관한,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자극적인 연구에 나타난 야콥슨의 입장이었다. 15년 후에는 그는 똑같은 생각을 좀 더 신중한 용어로 고쳐서 이렇게 말했다.

(시의 독특한 특징은, 언어가, 지시된 사물이나 감정 폭발적인 내용물이 아니라 언어 자체로 지각되며, 언어와 그것들의 배열, 그것들의 의미, 그것들의 내적외적 형식이 그들 나름대로의 무게와 가치를 획득한다는 사실에 있다.)

또 다른 형식주의 이론가인 토마체프스키는 야콥슨으로부터 시사를 받은 것처럼 보인다. 형식주의 방법론의 가장 포괄적인 해설서인 토마체프스키의문학적 이론에서, 시적 언어는 <의사소통적 기능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언어체적 구조가 자율적인 가치를 획득한 언어 체계의 하나>라고 정의되었다. 그리고 러시아 형식주의에 대한 연구서의 저자인 에피모프(Efimov)는 형식주의적 시 개념을 <최대한의 지각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표현양식으로 특징 지워지는 언어활동>이라고 요약하였다.

<매개체에 대한 강조>, <표현양식의 지각 가능성>과 같은 표현들은 문학의 언어를 다른 형태의 담화들과 나란히 놓이게 하는 중요한 공식들이었다. 인식적인 것 대 정감적인 것의 양분법을 여기서 정보 전달적 산문의 지시적 언어와 언어적 상징을 <생생하게 그려내려는> 시의 기호-지향적(sign-oriented) 언어 간의 차이점으로 대치되었다. 시인 재량의 모든 기교들리듬유포니, 그리고 이것들과 못지않은 <이미지>라고 알려진 기상천외의 단어 조합, 그것의 복잡한 결 및 <밀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언어로 수렴된 것처럼 보였다. 시에서 언어는 대상의 언어체적 그림자 이상의 것이며, 그것은 자기 권리를 가진 대상이다 라고 형식주의자들은 주장했다.

이러한 원리는 본질적으로 <음성 에너지(phonic energy)의 해방><자기-가치적(self-valuable) 언어>라는 구호를 가진 미래파 시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논의되어 왔다. 이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초기 형식주의의 시적 언어에 대한 개념이 러시아 미래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야콥슨의 <시적 담론은[] 자신의 궁극적인 경계음성학적,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활용적 언어, 즉 순수한 소리를 향하고 있다>는 그의 논지를 옹호하기 위해 홀레브니코프의 <의미 초월적(tran-sense)> 실험들을 인용하였다. 슈클로프스키는 <발음 기관들의 춤>을 맛보았으며, 시창작을 <각운들 사이의 거리를 자유로운 음성의 점들(free phonic spots)로 메우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의미론은 수그러지고> 소리가 <돋보이는> 형태의 시를 편애하는 태도는 전적으로 미래파의 충격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다. 새로운 비평 학파에게는, 시적 유포니를 강조하는 것이 문제를 극화하는, 즉 다시 말해 문학의 변별점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 드러냄에는, 시의 고도로 형식화된 구조 때문에, 시가 산문보다 더욱 적절한 경우처럼 보였다. 그리고, 제한받지 않는 언어유희에 근거를 둔 실험적인 시가 <인습적> 형태의 시보다 더 좋은 시금석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초기 형식주의 발언들의 뒤에 숨어있는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자기 가치적 언어>에 대한 형식주의 비평가의 매혹은 일시적 사건에 불과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형식주의 연구의 강조점은 곧 음성학에서 의미론으로, 또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소리와 의미간의 상호 관계의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의미론에 대한 이러한 점차적인 인식은 단순히 연구의 영역을 확장하는 문제만이 아니었다. 여기에는 초기를 대표했던 것보다 음성기호(verbal sign; 언외지언적 기호-편주)에 대한 좀 더 광범하고 성숙한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래파는 음성기호(verbal sign; 언외지언적 기호-편주)를 그것의 감각적인 걸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또는, 같은 얘길지 모르지만, 그들은 언어의 의미와 그것의 지시체를 혼동하였기 때문에, 미래파는 언어를 그것의 의미로부터 해방시킨다고 그럴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일부 형식주의 이론가들에게 거대한 영향을 준 철학자인 에드문트 후설은 <대상(Gegenstand)> , 언어가 지시하는 비언어체적 현상과, <의미(Bedeutung)> , <대상>을 표출하는 방식간의 차이점을 밝힘으로써 매우 효과적인 구분을 지었다. 바꾸어 말하면, 후설에게는, 의미가 언어 외적 현실의 요소가 아니라 음성기호(verbal sign; 언외지언적 기호-편주)의 본질적인 부분이었다. 그러나 만일 사실이 이렇다면, 미래파의 표어는 불합리하거나 또는 최소한 잘못 명명된 것이 된다.

사실, 형식주의 대변인들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듯이, 어떠한 시도, 그것이 아무리 비객관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의미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이를테면, 에디드 시트웰(Edith Sitwell)이나 에즈러 파운드(Ezra Pound)의 가장 실험적인 시들에서조차, 그리고 유사한 음소들을 특수하게 조립한 의사-단어(quasi-word)들로 가득 차 있는피네간스 웨이크(Finnegans Woke)의 가장 황당한 문장들에서 조차, 의미는, <대충(apporximate)> 잠재적 형식 내에 존재하는 방법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여하튼 어디엔가 항상 현재한다. 같은 어원을 가진 <실제적> 언어와의 유추뿐만 아니라 문맥의 영향도, 시인의 언어적 공상의 이렇게 기묘한 창작품들에까지 특정한 의미론적 분위기(aura)를 부여해 준다.

분명 실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어의] 의미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고 지시체에 대면한(vis-a-vis)[언어의] 자율성이었다. 이 언어의 자율성이란 특히 시적 신조어(neologism)에 관해서 표명되었는데, 그것은 언어 외적(extra-linguistic) 현실의 알아볼 수 있는 요소를 가리키지 않기 때문에 외연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극단적인 시적 상황이다. 자주 우리는 시에 있어서, <의사-지시(pseudo-reference)>(이보 윈터즈[Yvor Winters]가 끈 용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엠프슨(Empson)적 의미의 <모호성(ambiguity)>과 관계를 가져야만 한다. 시적 문맥의 특징인 여러 가지 의미론적 차원들 간의 왕복운도(oscillation)은 기호와 대상간의 유대 관계(bond)를 느슨하게 만든다. <일상적> 언어에 의해 이루어지는 외연적 정확성은 연상 작용의 내연적 밀도와 풍부함에 자리를 내준다.

바꾸어 말하면, 독특한 담화 양식으로 시를 보증해 주는 것은 의미의 부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의미의 다양성에 있다. 이것이 바로 성숙한 형식주의 성명서에 표현된 견해였다. <시의 목적은 언어의 결을, 그것의 모든 국면에서, 지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고 아이헨바움은 말했다. 그런데 분명 이것은 언어의 <내적 형식> , 그 속에 내재하는 의미론적 연쇄(the semantic nexus)가 순수한 소리 못지않게 미학적 효과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의미했다. 시가 성취하는 음성 기호의 <현실화(actualization)>, 언어의 음성학적인 층위는 물론이고 의미론적이며 형태론적(morphological)인 층위들을 포함하는 복합적 거래(transaction)로 파악되었다.

 

3

음성 기호의 복합적 통일성을 주장하는 태도는 문학 작품이라는 그 기호들의 독특한 체계의 미분해성의 전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나하나의 단어에서 <의미>가 소리로부터 분리될 수 없듯이, 문학 작품의 누적된 의미, 즉 그것의 <내용><형식>이라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예술적 구체화(embodiment)로부터 분리하려는 일은 마찬가지로 무익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형식 대 내용>이라는 전통적 이분법을 거의 용납하지 않았는바, 그 이분법이란 것은, 웰렉과 워렌이 말했듯이, <예술 작품을 두 개의 반쪽투박한 내용과 그 위에 첨가된 순수하게 외형적인 형식으로 절단하고 만다.> 러시아 형식주의의 사려 깊은 철학적 동조자이며, 오포야스의 주장들을 신칸트적 미학의 범주들로 수정하려고 노력했던 보리스 엥겔하르트도 <표현된 대상><표현 수단>이란 이원론을 없애려는 형식주의자의 결정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문학의 <어떻게><무엇>의 불가분리의 통일성의 진상을, 지르문스키는 평범한 비평적 상식의 견지에서 밝혔다. 그는, 형식을 시인의 사상을 위한 단순한 의복 또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내용을 <쏟아부을 수 있는> 그릇으로 보는 소박하고 무비판적인 개념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문학에서의 내용정감적이건, 인식적이건, 형식이란 매개체를 통해서만 표현되므로, 그것의 예술적 구체화와 분리해서는, 유익하게 논의될 수도 진정으로 인식될 수도 없다. <사랑, 비애, 비극적 내면 투쟁, 철학적 사상 등등은 시 그 자체(per se)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구체적인 형식 내에서만 존재한다>고 지르문스키는 말했다. 지르문스키는, 시 작품 속에 구체화되어 있는 감정들이나 사상들을 그것들의 문학적 문맥 밖으로 끄집어낸 다음에 그것들을 심리학적이거나 사회학적 견지에서 논의하는 생경한 외제적 비평의 경향에 정확하게 경고를 하였다.

계속해서 지르문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예술에서, 소위 형식의 요소들은 독립적인 존재물이 아니며 미학적 구조의 일반적 법칙들로부터 벗어날 수도 없다. 그것들은 시적주제, 예 적모티브또는 이미지 역학을 하며, 그리고 바로 그 자격으로서 문학 작품이 목적하는 미학적 효과에 참여한다.>

슈클로프스키는, 그 특유의 활발하지만 무례한 말투로, <분리 가능한 내용>의 오류를 비난하였다. 그는 형식을 <필요악> 그리고 <진정한 사물>을 위한 의복으로 다루며, 예술 작품의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성급하게 형식을 무시하는 비평가들을 조롱하였다. <미술 작품이 마치 글자 맞추기 퀴즈인 양, 그것들을 <풀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더욱 잘 보기 위해서 형식을 떼어내려고 한다.>

서양의 <문맥주의(contextualist)> 비평가는 위의 혹평에 이의를 제기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예술을 <순수한 형식>으로 보는 슈클로프스키의 정의나 자화자찬식의 투로 아래와 같이 단언하는 태도에 점차적으로 반항적으로 되어 가리라. <형식주의 방법론[]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것이 예술의 이념적 내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소위 내용이라고 하는 것을 형식의 양상들 중의 하나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형식주의 대변인이 실제적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가? 그는 예술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형식이라고 암시하였는가, 또는 예술 작품의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형성되었다, 즉 미학적 목적을 위해서 조직되었다고 단순하게 말했는가?

우리는 여기서 철학적이며 의미론적인 이중의 혼란에 직면한 것처럼 보인다. 형식 대 내용에 관한 슈클로프스키의 견해는 <형식>이란 용어를 일관성 없이 사용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미학적 기준의 상대적 중용성에 관한 명료한 인식을 결여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떨어졌다. 이 러시아 형식주의 지도자는 그 용어의 두 가지 다른 해석 사이를 오락가락한 것처럼 보인다. 즉 그는 <형식>이란 용어로 미학적 총체(esthetic whole)내의 내재적 자질을 의미해야 할지 또는 어떤 특정한 자질의 부여된 미학적 총체를 의미해야 할지 결정을 할 수 없었다.

전자의 경우로 사용될 때에는 언제나, 예술을 형식과 동일시하려는 경향은 무익한 <순수주의(purism)>의 냄새를 풍기게 되는데, 그것을 슈클로프스키는 <기계론적(mechanistic)이며 진부한 것>이라고 그의 한 평론에서 거부하였다. 그 실마리가 되는 용어인 <형식>이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될 때, 위의 반론은 명백하게 가치를 잃게 된다. 사실, 우리는 <만일형식적이란 용어가미학적이란 의미를 갖는다면, 내용의 모든 사실들은 예술 내에서 형식적 현상이 된다>는 지르문스키의 의견에 쉽게 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크리들이 그랬듯이, <형식>을 예술적 창조의 총칭적 용어(a generic term)로 대우하는 것너무 광범 내에서, 오도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거의 쓸모없게 된 해석이 실제로 가능한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형식적>이란 말이 <미학적>이란 말과 동일하게(interchangeably) 사용되는 곳에서는, 일반적으로 전체보다는 부분을 의미하는 <형식>이란 개념을 버리고 대신에 <구조>라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분명 전통적 용어의 함정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형식이란 개념에 의해 결코 만족하지 못했으며, 그 점에 있어서는, 형식주의 추종자들이 아니라 방관자들이 그 운동에 못 박아 놓은 것이 분명한 <형식주의자>라는 명칭에 대해서도 만족하지 못했다. 형식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방법론적 입장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형태학적(morphological) 방법>, <특수성 규명인(specifiers)> 등등의 개념들에 너무 열성적으로 의지하였다는 사실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문학적 사실>의 구조와 문학적 절차(literary process)의 메커니즘을 논하는 가운데, 그들은 점차적으로 <형식 대 내용>이란 정태적인 이분법을 <재료(material)><기법(device; priem)>이라는 역동적인 개념들의 쌍으로 대체하는 경향을 보였다.

형식주의의 견지에서 볼 때, 후자의 용어 쌍은 여러 가지 방법론적 이점을 마련해 주었다. 미학적 대상 내에, 두 개의, 동시적이며 표면상 분리 가능한 요소들이 공존한다는 개념이 문학적 절차 내의 두 개의 연속적인 국면미학 이전의 것(the pre-esthetic)과 미학적인 것이라는 개념에 자리를 내주게 되자, 문학 작품의 유기적 통일성(the organic unity)이 구출되었다. 형식주의적 어법으로는, <재료>, <기법>의 중개 작용, 또는 좀 더 정확히 말해서, 문학에 독특한 일련의 기법들의 작용을 통해서만이 미학적 효능을 획득하고 문학 작품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되는 문학의 원료(the raw stuff)를 의미한다.

초기 형식주의 저서들에서, 독특한 용어상의 타협, 특히 <형식 대 재료>의 양분법을 발견한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두 개의 전통적 개념 중에서, 좀 더 못마땅한 것인 <내용>은 탈락되고, 반면에 나머지 하나는 단순하게 외형적인 껍질이나 외부적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동적인 통합과 통제의 형성적 원칙(a formative principle)으로 재해석되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eidos)와 매우 유사한 개념으로서, 그것은, 현대 언어 철학자인 안톤 마르티(Anton Marty)의 말로는, <원료에 가해지는 내향적 조형력(inward shaping power)>을 함축한다.

그렇다면, <재료들>의 본질 또는 위치(locus)는 무엇인가? 그것들은 문학 작품의 제재(subject matter), 즉 문학 속에 구체화되는 현실 영역을 구성하는가 또는 그것의 매개체인 언어를 구성하는가? 이점에 관해서, 형식주의와 준형식주의 대표자들 간에는, 분명, 완전한 의견의 일치가 없었다. 철학자로서 언어학보다는 존재론에 더욱 집중하였던 엥겔하르트에게, <재료>는 시적 <의사소통>의 비미학적 잔여물이며 현실을 <통제하는> 부분을 뜻했다. 슈클로프스키는 이 두 상반된 해석에 모두 관여하였는데 일관성이나 용어상의 정연함이 그의 장점은 아니었다. <외부 세계는 화가에게 내용이 아니라 그의 그림의 단순한 재료이다>고 그는 문학과 영화란 그의 소책자에서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내용>이란 항목 하에 일반적으로 분류되어 있는 문학의 심리학적이며 이념적 요소들에도 이 사실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문학 작품 속에 묘사된 사건들뿐만 아니라 그 속에 표현된> 사상들과 감정들은 여기서는 언어나 언어 결합과 동일한 질서의 현상인 예술적 건설(artistic construction)이란 일을 위한 <건축 재료(building materials)>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같은 견해를 찾아볼 수 있다. <여하튼간에, 작가에게 언어란 필요악이거나 또는 무언가를 말하기 위한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바로 그 작품의 재료라는 사실이 내게는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문학은 언어로 구성되며 언어를 다스리는 법칙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다.

다른 형식주의 저술들에서는 이 후자의 해석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다. 야콥슨뿐만 아니라 지르문스키다른 점에서는 매우 판이한 러시아 형식주의의 두 명의 대표자들을 지명한다면도 문학의 <재료>를 그것의 언어체적 결(texture)과 동일시하였다. 시인은, 음악가가 음조(tone)를 다루고 화가가 색채들을 다루는 방식과 같은 방식으로, 언어를 다룬다고 주장되었다.

이 내재적 관점이, 문학 작품의 자족적(self-contained) 특징을 주장한 형식주의적 태도와 더욱 일치하였다. 창조 과정을 일상 언어와 그것을 구체화하거나 또는 변형시키는 예술적 기법들 간의 긴장으로 보는 개념은, 문학이 본직적으로 언어학적 또는 기호학적 현상초기 형식주의 용어로는 <언어체적 재료들의 펼침(unfolding)>이며, 체코 구조주의 어법으로는 <기호들의 체계>이라는 형식주의의 강령을 확증해 주었다. 다시 한 번, 시인의 임무는 현실의 표현이라기보다 언어의 조종(manipulation)으로 정의 내려졌다. 현실적인 것은 문학과 인접해 있으나 다른 존재론적 상태를 누리고 있는 경험적 계열체(an empirical series), 문학 작품의 누적적 지시체(the cumulative referent)의 역할로 좌천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재료>라는 개념이 형식주의의 언어학적이거나 또는 기호학적인 경향을 밝혀 주는 증거라면, 상관적 용어인 <기법>은 더욱더 중요하였다. 이제 <기법>이 러시아 형식주의의 구호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기법으로서의 예술>, <낯설게 만들기의 기법(priem ostranenija)>, <드러난 기교(a device laid bare; obnazenie priema)>, <문학 작품은 거기에 사용된 기법들의 총체이다>와 같은 이런 모든 중요한 공식들에서, <기법(priem)>은 핵심어시적 형식의 기본 단위, <문학성>의 대리인(the agency)로서 나타난다.

이 용어의 선택이 가장 중요하였다. 형식을 의식하는 많은 비평가들이 <표현 수단>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특히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심리주의, <시는 시인의 영혼을 드러내 준다는 소박한 사실적 공식>의 뺨을 치는 일이었을 것이다. 베젤로프스키처럼형식주의 이론가들은 그의 <역사적 시학>에 여러 면에서 덕을 보았다그들은 창조적 개성(the creative personality)이란 성가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였다. 문학적 테크놀로지가 그들에게는 창조의 심리학보다 훨씬 확고한 기반이었다. 그래서, 문학을 자기표현이라기보다 <재료>에 기법(technique)을 주도면밀하게 적용하는 것으로, 그리고, 비개성적이기까지는 아니지만, 초개성적(supra-personal) 현상으로, 그리고 고백이라기보다는 관습(convention)으로 보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문학예 작품은 항상 만들어지고 형상화되고 발명된 것좋은 의미에서 기교를 부린 것(artful)일 뿐만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다>고 아이헨바움은 특유의 문구로 말했다. 그리고 슈클로프스키는기사의 이동이란 그의 평론집의 배배 꼬인 특성을 변호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사가 방랑하는 기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 주된 원인은 예술의 규약성(conventionality)이다. 나는 예술에 존재하는 관습들에 관해 논한다.>

<예 의 규약성>, 이것은 슈클로프스키의 저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러시아 형식주의 비평에 널리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절하였다. 문학이 <지각할 수 있도록> 조직된 기호들의 체계라면 각 시대의 각 문학 양식에 맞는 조직 원칙, 미학적 운용 방법(modus operandi), 즉 재료에 부과될 관습들의 체계를 세우는 것이 필요하였다. 실로 새로운 문학적 대상에 직면했을 때, 형식주의 비평가들은 왜, 또는 누가 그것을 창조했는가 하는 사실이 아니라 <어떻게 그것이 만들어졌나>하는 점을 알고자 했다. 그들은 작품을 형상화해 준 사회적 압력이나 심리학적 충동을 조사하는 것으로 연구를 시작하지 않고, 작가의 사회적 충실도(social allegiances)나 그의 예술적 기질과는 상관없이, 특정한 문학의 유형에 내재하며 작가에게 부과된 미학적 규범들을 연구하는 데서 출발하였다.

 

참고자료

상호 텍스트성-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 최현무 역

기술(技術)로서의 예술-빅토르 슈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 문학과 사회연구소 역

게오르르 루카치: 총체성의 개념-파스칼( Roy Pascal) / 김대웅 역

형식주의 문학논쟁-우스이 요시미(臼井吉見) / 주근옥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