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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르 슈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 문학과 사회연구소 역

 

《빅톨 슈클로프스키는 확실히 가장 독특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형식주의 비평가일 것이다. 형식주의 비평가 그룹의 창설자인 그는 한 운동의 초기에 있어서 그 주창자에게 요구되는 뛰어난 창의력, 전투성, 그리고 이론적 융통성의 희귀한 결합을 갖추고 있었다. 아이헨바움이(「‘형식적 방법’의 이론」에서) 보여주고 있듯이, 슈클로프스키는 형식주의 이론의 중요한 대부분의 문제에 손을 댔는데, 그는 우선 문제를 한정하여 그 해결책을 지적해내곤 했다. 그는 문제점을 명백히 보았으며 그것에 대해 날카롭게―지나치게 날카로울 정도로―설명했다. 흄이나 T. S. 엘리엇(T. S. Eliot)처럼 그 역시, 제자들은 그것을 모토로 내세우며 반대자들은 당황한 끝에 공격하기 쉬운 그런 유(類)》의 진술의 대가(大家)였다. 마르크스주의자의 가장 뚜렷한 표적이었기 때문에, 또한 러시아 혁명에 대한 입장이 아주 복잡했기 때문에, 그는 절충을 기도한 최초의 형식주의자가 되었다. 그는 1926년부터 자신의 문학 연구에 사회학적 소재를 포함시키려했는데, 1928년부터 톨스토이에 관한 그의 논문은 서로 상치되는 두 가지 힘의 산물로서 「전쟁과 평화」를 분석하고 있다. 그 두 가지 힘이란 톨스토이가 묘사한 사회계급과 장르로서의 소설이다.

「기술로서의 예술(1917)」은 초기 형식주의의 방법에 의거한 가장 중요한 논문이다. 그 이유는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그 시대 그 장소에서 유일하면서도 유용한 “미학적” 연구 방법과의 결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그것이 비평의 방법론(方法論)과 예술의 목적을 함께 제공한 이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포트브냐와 형식주의 사이의 분쟁을 개괄적인 면에서 논의했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더욱 전문적으로 언급했다. 슈클로프스키는 포트브냐니즘의 두 가지 특징인 “예술은 이미지로 사고(思考)한다”와, 예술의 목적이란 미지의 것(아주 흔한 말로는 추상적이거나 선험적인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써 표현하는 것이라는 관점을 공격하고 있다. 이론적인 면에서, 그 관점은 시의 풍요함도 그 본래의 가치도 인식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경험적인 면에서, 그 관점은 슈클로프스키의 지적대로 부적당한 것이다. 워즈워스(Wordsworth)에서 그 예를 끌어와 보자.

 

세상은 우리에게 너무 힘겹다; 더디게 그리고 급히,

소유하고 낭비하며, 우리는 우리의 재능을 황폐하게 한다.

 

이 구절은 확실히 시적이다. 하지만 그 시적인 질(質)이 깊이 잠재된 심상(imagery)에서 나온다는 주장은 경솔하다. 그리고 소네트의 결구에서 워즈워스는 사람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한 이미지로서 프로테우스(Proteus; 바다의 신-갖가지 모습으로 둔갑하며 예언력이 있었다고 함)와 트리톤(Triton; 半人半魚海神)을 재생시키고 있지만 여기에서 그 이미지는 그것이 의미하는 것보다도 덜 친숙하다. 따라서 포트브냐―상징주의자의 시론(詩論)은 이론적 실천적 양면에서 모두 부적당한 것이다.

이때에 이르러 형식주의자들은 문학과 비문학 사이의 차이점을 전보다 더 엄밀하고 보편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동시에 문학의 목적을 설명해 줄 비평 방법을 필요로 했다. 슈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ostranenie)”의 개념은 이 두 가지 일을 해냈다. 그것은 실제로 간단하게 포트브냐니즘을 뒤엎었으므로, 역사적으로 볼 때 적절한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슈클로프스키의 주장은, 습관적인 의사방식(意思方式)이 낯선 것을 쉽게 소화될 수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지각작용(知覺作用)은 보통 ‘자동적’이며, 이 말은 지각이 최소한도로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것을 시발점으로 할 때, 학습이란 대개 무지를 배우는 일이다. 예를 들어서 정지등(停止燈), 보행자, 다른 운전자들, 도로의 상태 등등에 최소의 지각 작용으로 적절히 반응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자동차 운전을 참으로 배운 것이 아니다. 즉 보행자가 무엇으로 보이는지를 주의하는데 실패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우리는 그 보행자를 보지 못하고 만다. 평범한 산문을 읽고 있을 경우 만일 우리가 개개의 단어를 단어로서 보고 있다면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낄 것이다. 슈클로프스키에 따르면 예술의 목적이란 우리를 강제로 인식케 하는 것이다. 흔히 지각 작용은 지나치게 자동화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은 지각 작용을 방해하거나 최소한 그 방해의 기법에 주의를 쏟게 하는 기술을 다양하게 발전시킨다. 따라서 “예술은 어떤 대상의 예술성을 경험하는 방법이며, 그 대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예술로서의 시는 그것의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지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 대상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는 “의미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는 서로 상치하는 미학적 체계의 공과를 시비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슈클로프스키의 위치는 그 반대자들이 인정하려는 것보다 더 포착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데 주의해야만 한다. 하나의 예술품이 경험될 수 있는 그 한도까지, 그것이 존재하는 그 한도까지 예술 작품은 다른 어느 대상과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그것은 모든 대상이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법으로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다른 대상과 달리 한 가지 이점(利點)을 갖고 있는데, 즉 그것은 특히 지각을 위해서, 주의를 끌어당기고 유인하기 위해서 특별히 고안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것은 의미를 품고 있을 뿐 아니라 의미를 독자에게 깨닫도록 강요한다. 비록 슈클로프스키가 이 방향을 따르지는 않았다 해도 그것은 모순 없이 그의 이론의 영역을 넓혀 주고 있다. 그는 I. A. 리처즈가 그랬듯이, 지각은 그 자체가 하나의 목적이며 행복한 생이란 세계를 완전히 인식한 자의 생이라고 주장하고 싶어 했다. 리처즈에 부연하여 또 슈클로프스키를 요약해서 말하자면 예술이란 그러한 인식의 기록이며 인식을 위한 계기인 것이다.

슈클로프스키에 의하면 이러한 지각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주된 기술은 “낯설게 하기”이다. 그것은 하나의 장치라기보다 오히려 많은 장치에 의해 획득 수 있는 하나의 결과이다. 슈클로프스키도 지적하고 있듯이 하나의 참신한 관점은 낯익은 대상을 낯설게 보이도록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지각할 수 있게 한다. 고의로 리듬을 거칠게 한 단어 구사나, 어법의 형태는 모두 같은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 그래서 시에는 어느 한 가기 장치가 주된 것은 아니다. 시는 어떤 종류의 내용, 이미지, 애매성, 상징 등의 존재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고도(高度)한 수준으로 눈을 돌리게 만드는 그것의 뛰어난 능력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다.》

“예술은 이미지로 사고한다.” 이 격언은 고등학생들까지도 되뇌는 것이지만, 체계적인 문학론을 세워보려는 박학다식한 언어학자들의 시발점도 된다. 부분적으로는 포트브냐의 착상인 이 생각은 널리 유포되어 왔다. 포트브냐는 “심상없이는 예술이 있을 수 없고, 특히 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썼으며, 어느 곳에서는 “산문은 물론 시도 무엇보다 먼저 사고하며 인식하는 특수한 방법이다”라고 했다.

시는 사고의 한 특수한 방법이다.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이미지로 사고하는 법이며, “정신적 노력의 경제”라고 흔히 일컬어지는 것을 가능케 하는 방법, “그 과정이 비교적 용이한 지각”을 이루는 방법이다. 미학적 감정은 이 〔지각의〕절약에 대한 반응이다. 이것이 학술원 회원인 오프샤니코 쿨리코프스키(Ovsyaniko-Kulikovsky)가 포트브냐의 저작을 주의 깊게 읽고 나서 그의 스승의 사상을 거의 확실하게 이해하여 올바르게 요약한 것이다. 포트브냐와 그의 많은 제자들은 시를 사고 작용의 특수한 일종―이미지를 수단으로 하는 사고 작용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심상의 목적이 여러 가지 대상과 행위를 덩어리로 나누는 과정을 돕는 것이며 기지(旣知)의 것을 수단으로 해서 미지의 것을 해명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혹은 포트브냐가 쓴 것처럼,

 

해명되고 있는 것에 대한 이미지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a) 이미지는 변화를 입는 것에 대한 고정된 진술―가변성으로서 인식된 것을 끌어당기는 불변의 수단이다. …(b) 이미지는 그것이 해명하는 것보다 더 명백하고 단순하다.

 

다른 말로 하자면,

 

심상의 목적은 유사에 의해 그 이미지가 뜻하는 의미를 우리에게 환기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이것과는 별도로 심상은 사상(思想)에는 무익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지가 해명하는 것보다 이미지에 더 친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원리를, 여름 번개를 농아(聾啞)의 귀신에 비유한 튜체프(Tyutchev)나 하늘을 신의 옷에 비유한 고골리(Gogol)에 적용해 보는 것은 교훈적이리라.

“심상 없이는 예술도 없다”―“예술은 이미지로 사고한다.” 이러한 격언은 개별 예술 작품에 대한 견강부회식의 해석을 유도해 왔다. 이미지적 사고로서의 음악과 건축과 서정시를 가치 평가하려는 시도조차 있었다. 사반세기 동안 이러한 시도를 한 끝에 오프샤니코 쿨리코프스키는 마침내 서정시와 건축과 음악을 이미지 없는 예술의 특별한 범주 속에 넣고, 그것들을 정서에 직접 호소하는 서정적 예술로서 규정했다.

이같이 해서 그는 사상의 양상을 띠지 않는 예술의 막대한 한 영역을 인정한 것이다. 이 영역의 한 부분인 서정시(협의의)는 시각 예술과 아주 흡사한 반면, 또한 언어 예술이기도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시각 예술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비시각적 예술로 변화하는 데도 그 두 가지에 대한 우리의 지각 작용이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상징의 제작이라는 것을 의미하는(나는 논의에서 중간적인 용어를 배제하겠다.) “예술은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정의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론의 실추를 모면했다. 그것은 주로 상징주의의 부흥 속에서, 특히 상징주의 운동의 이론가들 사이에 잔존해 있다.

그 위세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시의 주된 특징이 이미지로 사고하는 것―“길과 풍경” 그리고 “밭고랑과 울타리” 따위의 구체적인 정경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결국 그들은 그들이 일컫는 “이미지적 예술”의 역사가 심상의 변천사로 구성될 것을 기대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지가 거의 변화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시대, 모든 국가, 모든 시인들 사이로 이미지는 아무 변화도 겪지 않고 흐르는 것이다. 이미지는 어느 누구의 소유물이 아니며 “신의 것”이다. 당신이 한 시대를 이해할수록 당신은 어느 시인이 그것에 탐닉하여 당신이 그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미지가 거의 아무 변화 없이 다른 시인으로부터 취해진 것임을 더욱더 확신하게 될 것이다. 시인의 작품은 시인이 발굴하여 공유하는 새로운 기법에 따라, 그리고 그들이 언어의 자원을 개발하고 정돈함에 따라 분류되고 나누어지는 것이다. 또한 시인들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보다 이미지를 정리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미지는 시인들에게 부여되지만, 이미지를 기억하는 능력은 이미지를 창조하는 능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다.

어떻든 이미지적 사고작용이 예술의 모든 양식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며, 또 언어 예술의 전양식(全樣式)조차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심상의 변화는 시의 전개에 주된 것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실제로 이러한 의도 없이 창조된다고 해도 하나의 표현은 시적인 것으로, 미학적 쾌감을 위해 창조되는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예컨대 슬라브어가 특히 시적이라는 안네스키(Annensky)의 견해와 명사 뒤에 형용사를 배치하는 기법(이것은 18세기 러시아 시인들이 사용한 기법인데)에 대한 안드레이 벨리의 희열이 그렇다. 벨리는 기법을 예술적인 어떤 것으로, 보다 정확히 말해서 만일 우리가 의도를 예술로 간주할 경우 의도된 것으로서 쾌히 받아들였다. 실제로 형용사-명사의 일반적 순서에 대한 이런 반전(反轉)은 그 언어의 기습(奇習; 이것은 슬라브 교회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이다. 그래서 작품은 (1) 지루한 것으로 의도되었는데 시적인 것으로 인정되거나, (2) 시적으로 의도되었는데 지루한 것으로 인정될 수도 있다. 이것은, 소정의 작품에 부여된 것으로 추정되는 예술적 효과는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법에서 결과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말이다. 협의의 ‘예술품’으로서, 우리는 작품을 가능한 한 뚜렷하게 예술적으로 만들어 주도록 고안된 특수한 기법에 의해 창조된 작품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는 심상과 동일하다”로 공식화될 수 있는 포트브냐의 결론은 “심상은 상징주의와 동일하다”라는, 즉 이미지는 다양한 주제에 관해 불변의 진술로서 “공헌한다.” 라는 전반적 이론을 야기했다. (이 결론은 상징주의 이론과 유사한 생각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안드레이 벨리, 메레즈코프스키(Merezhkovsky) 그리고 그의 “영원한 동지들” 같은 몇몇 상징주의 대표자의 흥미를 끌었으며 사실상 상징주의 이론의 기반을 형성했다.) 그 결론은 부분적으로 포트브냐가 시어(詩語)와 산문어(散文語)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두 가지 심상의 양태: 사고의 실제적 수단으로서의, 범주 속에 대상을 배치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이미지와 시적인 인상효과(印象效果)를 보강하는 수단으로서의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간과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해명해 보겠다. 나는 손가락에 버터를 묻혀가며 버터 빵을 먹고 있는 어떤 어린 아이의 주의를 끌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봐, 버터핑거스(butterfingers)야!”라고 부른다. 이 화법의 형태는 분명히 산문적 비유다. 그 아이가 내 안경을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렸다. 그때 내가 말하기를, “이봐, 버터핑거스(butterfingers)야!”라고 했다. 이 화법의 형태는 시적 비유이다. (첫 번째 예에서의 “버터핑거스”는 환유이며, 두 번째는 은유이다그러나 이것은 내가 강조하고자 하는 점이 아니다.)〔butterfingers에는 “서투른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시적 심상은 가능한 가장 강력한 인상을 창조하려는 심상이다.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 목적에 의거해서 볼 때 그것은 다른 시적 수법보다 더도 덜도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평범하거나 소극적인 대비법, 반복법, 균형법, 과장법, 일반적으로 인정된 수사적 형태, 표현(단어나 分節音까지도 포한하는)의 정서적 효과를 강조하는 모든 그런 종류의 방법보다 더도 덜도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적 심상은 우화나 속요 속의 진부한 심상 혹은 이미지로 하는 사고 작용(예컨대 오프샤니코 쿨리코프스키의 「언어와 예술(Language and art)」속에 나오는, 어린 소녀가 공을 작은 수박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예)의 어느 한 가지와 외견상으로만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시적 심상은 단지 시어(詩語)의 장치물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산문적 심상은 추상의 수단이다. 즉, 램프 갓이나 머리 대신의 작은 수박은 대상의 특징 중 둥글다는 것 한 가지에 대한 추상일 뿐이다. 그것은 머리와 수박은 둘 다 둥글다는 것 한 가지에 대한 추상일 뿐이다. 그것은 머리와 수박은 둘 다 둥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의미된 것이긴 하지만 시와 무관하다.

창조적 노력의 경제법칙도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스펜서(Herbert Spenc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이러한 격언들의 기초가 되는 법칙의 실마리를 찾아보면, 독자나 청취자의 주의를 절약케 하는 것의 중요성이 그 대부분의 전조(前兆)가 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가능한 최소의 정신적 노력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사상을 표현한다는 것은 위에 인용한 대부분의 법칙이 향하고 있는 희망사항이다. …그래서 사상의 전달 수단으로 비유가 사용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전달 수단의 알력과 불활성(不活性)은 능률을 감소시키는 것이며 작문에 있어서 주된 것은, 이것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아니라고 해도, 이 알력과 불활성을 최소한도로 감소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또 아베나리우스(Richard Avenarius)는 다음과 같이 썼다.

 

만일 어떤 정신이 지칠 줄 모르는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때에는 물론 그 무진장한 자원에서 얼마만큼이 소비될 것인지는 대수롭지 않은 문제일 것이며, 단지 불가피하게 소비될 시간만이 중요하리라. 그러나 정신의 능력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정신은 가능한 한 편하게 지각의 과정을 서둘러 수행한다는 비교적 힘의 낭비를 최소한으로 해서 비교적 최상의 결과를 낳는다는 기대에 끌리는 것이다.

 

정신적 노력의 일반 법칙에 대해 단 한 번 언급한 페트라치츠키(Petrazhitsky)는 그 자신과 부합되지 않는 제임스(William James)의 정서의 물리적 바탕에 관한 이론을 부정했다. 알렉산드르 베셀로프스키 조차도 특히 리듬의 연구에 어필하는 이론인 창조적 노력의 절약 원리를 알고 있었으며, 스펜서의 “만족스러운 문체는 엄밀히 말해서 최소의 단어로 최대의 사상을 전달하는 문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그리고 안드레이벨리도 그의 보다 뛰어난 저서에서 “거칠게 한” 리듬의 무수한 예를 들었으며 시의 성질형용사(性質形容詞)에서 나타난 난점들을(특히 바라틴스키 Baratynsky로부터의 예에서)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에서 창조적 노력의 경제법칙에 관해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즉, 고색창연한 자료에서 뽑은 반증된 사실과 시적 창조의 기법에 관한 그의 방대한 지식, 그리고 크라예비치(Krayevich)가 쓴 고등학교 물리학 교과서에 기초하여 예술 이론을 창조하는 과감한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창조의 법칙과 목적에 관하여는 물론 에너지 절약에 관한 이러한 생각은 아마도 ‘실용적’ 언어에 그것을 적용할 경우에 있어서는 진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시어에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어의 법칙과 시어의 법칙을 적절히 구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일본의 시가 회화체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음(音)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시어와 일상어의 차이점에 관한 실제적이며 중요한 지적이 될 수 없다. 레어 야쿠빈스키(Leo Jakubinsky)는 유음(流音, Liquid sounds)의 이화법칙(異化法則)이 시어의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 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것은 그에게 시어는 발음하기 어려운 유사한 음의 덩어리에 대해 관대하다는 암시를 주었다. 과학적 비평의 최초의 예 가운데 하나인 그의 논문에서 그는 시어의 법칙과 일상어의 법칙 사이의 상이점(나는 이것에 대해 나중에 좀 더 말할 것이다)을 귀납적으로 지적했다.

이제 우리는 산문에서 유추한 기반에서가 아니라 시어의 법칙을 바탕으로 해서 시어에 있어서의 소비와 경제의 법칙을 말할 차례다.

지각의 보편적인 법칙을 검토해 보면 지각이 습관화됨을, 즉 자동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습관은 무의식적 자동화 속으로 퇴보한다. 예를 들어서 만일 어떤 사람이 처음으로 펜을 잡았다든가 외국어를 말했을 때의 감각을 기억하고 나서 만 번째 그 행위를 했을 때 느낀 감감과 비교해 본다면, 그는 이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이런 습관화는 일상 화법에서 우리가 한 구절을 끝마치지 않은 채 혹은 단어를 반만 표현한 채로 남겨두는 그 원리를 설명해 준다. 대수학에서 이상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 과정에서는 단어는 완전히 표현되지 않는다. 또한 단어의 주요 음들은 가까스로 인식된다. 알렉산드르 포고딘(Alexander Pogodin)은 “스위스의 산은 아름답다(The Swiss mountains are beautiful)”는 문장을 T, S, m, a, b라는 일련의 글자 형태로 판단하는 한 소년을 예로 들었다.

사유(思惟)의 이런 특징은 대수학의 방법뿐만 아니라 상징의 선택(글자, 특히 약자)까지도 암시해 준다. 사유의 이 “대수학적” 방법에 의해서 우리는 분명치 않은 형태만으로 된 대상을 이해하게 된다. 또한 대상의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가진 주요 특징으로 대상을 인식한다. 우리는 대상을 그것이 마치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본다. 즉 우리는 그 윤곽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지만 사실은 단지 그것의 실루엣만을 보고 있을 뿐이다. 평범한 지각의 방법으로 이처럼 지각된 대상은 사라져 그 첫인상조차 남지 않게 된다. 또 결국은 그것이 무엇이었다는 지각의 알맹이조차 잊혀져 버린다. 이와 같은 지각 작용은 왜 우리가 단조로운 단어의 전부를 들을 수 없는가(레오 야쿠빈스키의 논문 참조)를, 그리고 그래서 왜 우리가(그 말의 나머지 조각들과 함께) 그 단어를 잘 발음할 수 없는 가를 설명해 준다. 한 대상에 대한 완전한 자동화를 의미하는 “대수화(代數化)”의 과정은 지각의 노력을 가장 절약할 수 있게 해 준다. 대상은 단 하나의 적절한 형태(예컨대 숫자)로 지정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상은 공식에 의한 것처럼 작용하여 인식조차 되지 않는다.

 

나는 여기저기 방을 청소하다가 소파로 갔는데 내가 그것을 닦았는지 닦지 않았는지를 기억할 수 없었다. 이런 동작은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기억할 수 없으며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만일 내가 그것을 청소하고 나서 잊어버렸다면, 즉 무의식적으로 행동했다면 그것은 내가 청소하지 않았을 경우와 같은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의식적으로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 사실은 확정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거나 무의식적으로 보고 있었다면, 만일 많은 사람들 전체의 복잡한 생활이 무의식적으로 영위된다면, 이런 생활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같이 해서 생활은 없었던 것으로 간주된다. 습관화는 작업, 의복, 가구, 누군가의 부인(婦人), 전쟁의 공포 따위를 집어 삼킨다. “만일 많은 사람들 전체의 복잡한 생활이 무의식적으로 영위된다면, 이런 생활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리고 예술은 존재하여 사람들이 생의 감각을 되찾을 수 있게 한다. 또 예술의 존재는 사람들이 사물을 느낄 수 있게 하며 돌을 <돌답게> 만들어 준다. 예술의 목적은 사물에 대한 감각을 알려져 있는 대로가 아니라 지각된 대로 부여하는 것이다. 예술의 기법은 사물을 “낯설게”하고 형식을 어렵게 하며, 지각을 힘들게 하고 지각에 소요되는 시간을 연장한다. 왜냐하면 지각이 과정은 그 자체가 미학적 목적으로 따라서 되도록 연장돼야 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한 대상의 예술성을 경험하는 방법이며, 그 대상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시적(예술적) 작품의 범위는 감각에서 인식으로, 시에서 산문으로, 구상에서 추상으로 확대된다. 즉 세르반테스(Cervantes)의 돈키호테(Don Quixote; 공작의 궁(宮)에서 반쯤은 의식적으로 굴욕을 느끼는 학자풍의 초라한 귀족)에서 투르게네프(Trugenev)의 노골적이면서도 공허한 돈키호테로; 샤를마뉴대제(Charlemagne)에서 “왕”이란 이름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러시아어에서 "Chales"와 "King"은 뚜렷이 동일어원 <korol>에서 분리돼 나온다.〕 한 작품의 의미는 기교와 예술적 효과가 희미해질 정도로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우화는 시보다 더 많은 것을 상징하며 속담은 우화보다 더 많은 것을 상징한다. 결국 포트브냐의 이론에서 자기모순이 가장 적은 부분은 우화를 다룬 부분인데 그것을 그는 자신의 관점으로 철저히 연구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표현적인” 예술작품에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그의 저서를 완성시킬 수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문학론에 관한 노트(Notes on the Theroy of Literature)」는 포트브냐 사후 13년 뒤인 1905년에 간행되었다. 포트브냐 자신은 우화에 관한 章만을 완결했다.

우리는 한 대상을 여러 번 본 후에야 그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대상은 우리의 면전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은 것이다.―따라서 우리는 그것에 관해 중요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 예술은 다양한 방법으로 대상에서 지각의 자동화를 제거한다. 여기서 나는 레오 톨스토이에 의해 반복되어 사용된 한 가지 방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적어도 메레즈코프스키에 있어서 그 작가는 사물을 본 그래도, 사물의 전부를 본 그대로 사물을 개조하지 않고 표현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톨스토이는 친숙한 대상물을 명명(命名)하지 않음으로써 친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만든다. 그는 하나의 대상을 마치 그가 그것을 처음 본 것처럼, 하나의 사건을 그것이 최초로 일어난 것인 양 묘사한다. 어떤 것을 묘사할 경우 그는 그 대상의 어느 부분에 대한 수락된 명칭을 피하고 대신에 다른 대상에서의 그에 상응하는 부분의 명칭을 갖다 붙인다. 예컨대 「수치(Shame)」라는 작품에서 톨스토이는 이 방법으로 태형의 관념을 “낯설게 한다.” 즉 “범법자들의 옷을 벗기고 그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엉덩이(bottoms)를 회초리로 친다.” 그리고 몇 줄 뒤에, “벌거벗은 엉덩이(bottoms)를 채찍질한다.” 그러고 나서 톨스토이는 다음과 같은 언급을 한다.

 

도대체 왜 아주 바보 같은 이런 야만적인 방법을 쓰는가, 어째서 다른 방법을 쓰지 않는가―왜 어깨나 몸이 다른 부분을 바늘로 찌르거나 손을 비틀거나 바이스로 발을 죄거나 하는 다른 방법을 쓰지 않는가?

 

이런 거친 예를 든 점에 대해서 사과해야 하겠다. 하지만 그것이 양심을 찌르는 톨스토이의 전형적인 방법이다. 태형에 대한 낯익음은 묘사에 의해 그리고 그것의 성질이 아니라 형태를 변화시켜려는 계획에 의해 낯설어진다. 톨스토이는 늘 이 “낯설게 하기”의 기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서 「콜스토머(Kholstomer)」의 화자(話者)는 한 마리 말이며 그 소설의 내용을 낯선 것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은(사람의 시점보다도) 그 말의 시점인 것이다. 이제 그 말이 사유 재산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나는 그들〔사람들〕이 채찍질과 기독교 정신에 대해서 대화하는 내용은 이해했지만, 어떤 내용에 대해서는 전해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소유”라든가 “그의 망아지”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이런 구절 때문에 사람들이 나와 마구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그 관계가 어떤 것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얼마 후 그들이 나를 다른 말들과 떼어놓았을 때 나는 그것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그들이 나를 “사람의 재산”이라고 부르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나의 말”이란 것은 살아있는 한 마리 말인 나를 지칭한 것이었지만, “나의 땅”, “나의 공기”, “나의 물” 같은 것처럼 내겐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그 낱말들은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늘상 그것들을 생각했지만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그 뜻을 이해했다. 그 뜻은 이렇다. 즉, 사람들은 생활하면서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낱말에 의해서 지시를 받는다. 그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다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서 그들 사이에 약속된 낱말로 이야기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로는 “나의”와 “나의 소유”라는 것이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다른 사물, 피조물, 대상, 심지어는 땅, 사람, 그리고 말에 적용시키는 것이다. 그들은 누군가가 이것, 저것, 혹은 다른 것에 대해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을 인정해 준다. 그리고 가장 수가 많은 사물에 대해 “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그들 사이에서 협정된 게임에 의해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의 핵심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것을 실제로 소용에 닿는 어떤 말로 설명해 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설명하기를 포기했다.

예를 들어서 나를 자기 것이라고 말한 많은 사람들은 내 등에 올라탄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올라탔는데 말이다. 내게 먹이를 주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이 점은 같았다. 또한 마부(馬夫)나 수의사(獸醫師), 그리고 대개 낯선 사람들은 내게 친절히 대했는데 나를 자기 것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머지 안 해서 내 관찰 시야가 넓어졌기 때문에 나는 “나의”라는 개념이 우리 말들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사유 재산에 관한 권리나 인식을 일컫는 인간의 편협한 본능 이외의 다른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고 확신했다. 어떤 사람은 “이 집은 내 것이다”라고 말하지만 그 속에서는 결코 살지 않는다. 단지 그는 그것의 수리나 유지비를 걱정할 뿐이다. 예컨대 어떤 상인은 “내 점포야”, “내 피륙점이야”라고 말하지만 상점에 쌓아 둔 좋은 옷감으로 옷을 해 입기조차 하지 않는다. 땅의 한 구획을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땅을 쳐다보지도 그 위에서 어슬렁거려 보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을 보고 자기 소유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코 그들을 알고 있지도 않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전체 관계는, 소위 “주인들”이 그들을 불공평하게 다루는 데 있다.

여자를 자기 소유 혹은 자기 “부인”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그들과 같이 생활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좋은 일 때문에 다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소유라고 부를 수 있는 재산을 위해 싸운다.

나는 이제 이 점이 사람과 우리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그래서 우리가 다른 면에서까지 우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바로 이 하나의 장점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살아 있는 피조물의 서열에서 인간보다 높은 곳에 서 있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인간의 행위는, 적어도 내가 관계했던 행위는 <언어>에 의해 지시되며―우리는 행위에 의해 인도되는 것이다.

 

이 말(馬)은 소설이 끝나기 전에 살해되지만 그 기법인 해설의 방법은 바뀌지 않는다. 즉,

 

오랜 후에 그들은, 세상을 겪었으며 먹고 마시며 살아왔던 세르푸코프스키의 몸뚱이를땅 속에 묻었다. 사람들은 그의 가죽과 살과 뼈의 어떤 것도 유익하게 써먹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 왔던 그 시체는 무거운 짐이어서 그것을 매장하는 일은 사람들을 아주 곤혹스럽게 했다. 오랫동안 아무도 그를 필요로 하지 않았으며, 오랫동안 그는 모두에게 짐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자(死者)를 매장하는 사람들은 즉시 썩기 시작한 이 부풀어 오른 몸뚱이를 훌륭한 옷과 장화를 입힐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네 귀퉁이에 새 장식술이 달린 새로 만든 훌륭한 관 속에 시체를 넣고, 다시 이것을 납으로 만든 관에 넣어 모스크바로 운반했다. 거기서 낡은 뼈를 파낸 후 그 자리에서, 구더기가 들끓는 썩은 가죽을 벗기고 새 옷과 깨끗한 장화를 신기고 나서 시체를 진흙으로 완전히 덮었다.

 

이같이 해서 우리는 이 소설의 종결에서 톨스토이가 그 기법을 쓸 만한 이유가 없어졌음에도 그것을 계속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는 마치 전쟁이 어떤 낯선 것인 것처럼, 전쟁 전체를 묘사하는 데에 동일한 기법을 쓰고 있다. 네 권으로 된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인용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묘사들은 인용하기엔 너무 길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응접실과 극장의 묘사에 있어서도 동일한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즉,

 

무대 중앙의 바닥에는 평평한 널이 깔려 있고 가장자리에는 나무가 그려져 있는 그림이 장식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린넨 천이 바닥까지 늘어져 있었다. 무대 한 복판에 붉은 상의와 흰 치마를 입은 소녀들이 앉아 있는데 그 중 제일 뚱뚱한 소녀 하나는 푸른 등받이가 있는 좁은 벤치 위에 홀로 떨어져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노래를 끝마치자 흰옷을 입은 소녀가 후견인 석으로 다가갔다. 꼭 달라붙는 바지와 비단옷을 입은 굵은 다리의 한 남자가 깃털을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서 두 팔은 벌리고는 절망적인 몸짓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굵은 다리의 이 남자가 노래를 끝내자 이번에는 그 소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끝나고 잠시 후에 똑같은 음악이 다시 울려나왔다. 그러자 그는 그녀의 손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함께 노래를 불렸다. 그들의 노래가 끝나자 극장 안의 모든 청중들은 환호성을 지르면 박수를 쳤다. 그러자 연인으로 분장한 그 남녀는 무대 위에서 손을 흔들며 미소로써 답례했다.

제 2막에서는 달빛이 비쳐드는 린넨 커튼과, 창문과 무덤을 그린 그림이 배경이 되어 있으며 창틀에는 램프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악사들이 베이스호른과 카운터베이스를 연주하자 검은 외투를 두른 사람들이 무대 좌우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도를 들고 팔을 휘둘렀으며, 다른 한쪽에서는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그들은 흰 옷을 입었던 그러나 지금은 하늘색 옷을 입고 있는 그 소녀는 끌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즉시 끌어내지는 않고 오랫동안 그녀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무대 뒤에 있는 쇳덩이를 세 번 반복해서 두들기자 사람들은 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영창했다. 그러나 이 모든 행위는 청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성 때문에 여러 번 방해를 받아야만 했다.

 

제 3막은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폭풍이 불어 닥쳤다. 오케스트라에서는 반음계와 감 7 음정이 울려 퍼졌다. 모든 사람들이 뛰어다녔으며, 막이 내릴 때 그들은 다시 배경 뒤에 서 있는 구경꾼 중 한 사람을 끌어냈다.

 

제 4막에서는, “어떤 악마가 팔을 휘두르며 노래를 부르다가 받침대가 빠지자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부활」에서 톨스토이는 도시와 궁전을 모두 같은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는 「크로이제르 소나타」에서 결혼식을 묘사할 때도 비슷한 기법을 썼다―“영혼의 친화력이 있다 해서 잠도 함께 자야만 하는가?” 그러나 그가 냉소하는 것에 대해서만은 낯설게 하는 기법을 쓰지 않았다.

 

피에르는 새 전우(戰友)들 속에서 일어나 포로들이 묶여 있는 길 저쪽과 모닥불 사이로 걸어갔다. 그는 그 포로들과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프랑스군 보초가 그를 길 위에서 정지시키고는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피에르는 시키는 대로 했지만 모닥불 쪽으로 도 그의 전우들이 있는 쪽으로도 가지 않았다 그를 마구(馬具)가 채워지지 않은 채 방치된 마차가 있는 데로 갔다. 그는 마차 바퀴 옆 땅바닥에 터키식으로 다리를 꼬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는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은 채 생각에 잠겼다. 한 시간이 지났다. 아무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가 건강하고 듣기 좋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웃음소리가 너무 크고 이상해서 사람들은 깜짝 놀라 주위를 들러보았다.

“하, 하, 하”하고 웃으며 피에르는 혼잣말을 했다. “군인들이 나를 못 가게 했어. 그들은 나를 붙잡고 가두었어. 나를―나를― 내 불멸의 영혼을 말이야. 하, 하, 하.” 그의 눈에서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피에르는 죽어가는 자의 심정으로 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응시했다. “이 모두가 나의 것이고 내 속에 존재하며 모두가 <나>로군.” 피에르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그들이 붙잡아 판자울 속에 가두었구나.” 그는 미소를 지었으며 전우로부터 떨어진 곳에 누워 잠들었다.

 

톨스토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 속에서 이런 구절을 수백 개라도 찾아볼 수 있다. 평범한 전후 관계를 이탈해서 사물을 바라보는 그의 방법은 후기 작품 속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톨스토이는 그가 공격하는 교리와 의식(儀式)을 마치 그것들이 낯선 것인 양 묘사한다. 즉, 그는 교회 의식에 흔히 쓰이는 용어를 그 관습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대신 일상적인 의미로 대치시킨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을 낯설고 기괴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모독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이런 반응은 주로 톨스토이가 자신의 환경을 지각하여 기록한 기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회피해왔던 것에 손은 댄 후에야 톨스토이는 자신의 지각이 자신의 신념을 어지럽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낯설게 하기의 기법은 톨스토이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의 작품이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를 인용했을 뿐이다.

이제 이 기법의 성질을 설명했으므로 다음에 그 적용의 근사치를 구해 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낯설게 하기가 형식이 존재하는 거의 모든 곳에서 발견된 수 있다고 느낀다. 다른 말로 바꿔서 말하자면, 포트브냐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 사이의 차이점은 이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그것을 통해 폭로되는 삶의 가변적 복합체에 대한 영원한 지시가 아니며, 그것의 목적은 우리를 지각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기보다 대상을 특수하게 지각하게 하는데 있는 것이다―<그것은 대상을 인지하는 수단으로서 이바지하기보다는 대상에 대한 “통찰력”을 창조한다.>

색정 예술에서 심상의 목적은 더 정밀하게 연구될 수 있다. 흔히 색정의 대상은 그것이 처음 보여진 것처럼 표현된다. 「크리스마스이브」에서 고골리는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하고 있다.

 

이때 그는 헛기침을 하면서 미소를 짓고 그녀의 통통한 팔뚝을 어루만지며, 그가 호의를 갖고 있는 동시에 솜씨도 있다는 것을 표시하면서 그녀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예쁜 솔로카, 이게 뭐지?” 이렇게 말하며 그는 살짝 뒤로 물러섰다.

“뭘 말이죠? 그건 팔이죠, 오십 니키포로비치!” 그녀가 대답했다.

“흠, 팔이라! 헤, 헤, 헤!” 그 서기관은 자신의 수작에 만족해서 진심으로 말했다. 그는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사랑스런 솔로카, 그럼 이건 뭐지?” 그는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목덜미를 살짝 잡고는 역시 이번에도 뒤로 조금 물러서며 말했다.

“당신은 보고 싶지도 않은 게로군요, 오십 니키포로비치!” 솔로카가 말했다. “목에 걸린 목걸이를 말예요.”

“흠, 목걸이라! 헤, 헤, 헤!” 그는 손을 비벼대며 다시 방안을 서성거렸다.

“아름아운 솔로카, 이건 뭐야?” …그 서기관이 이번엔 그의 손가락을 어디로 내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크누트 함순(Knut Hamsun)은 「굶주림」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즉, “두 개의 흰 불가사의한 물체가 그녀의 블라우스 속으로 나타났다.”

색정적 주제는 우리를 그것의 “인지(認知)”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상징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래서 성기(性器)는 자물쇠와 열쇠, 매질하는 도구, 활과 화살, 고리와 쇠막대 등으로 표현된다. 스타뷔요르(Stavyor) 전설에서는 남편이 전사(戰士)로 변장한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여 아내가 다음과 같은 수수께끼를 제시한다 :

 

“기억해 보세요. 스타뷔요르, 당신은

우리가 어렸을 적 거리에서 뭘 하며 놀았는지 기억이 나요?

당신과 나는 곧잘 쇠막대를 갖고 놀았지요―

당신은 은빛 쇠막대를 가졌고,

그런데 나는 금빛 고리를 가졌던가요?

그때 내가 고리를 들고 있으면

당신은 늘 쇠막대를 고리 속에 집어넣곤 했지요.“

고디노비치의 아들인 스타뷔요르는 말하기를,

“뭐라고! 나는 당신과 쇠막대를 갖고 논 적이 없어요!”

그래서 바실리사 미클리치나는: “설마 그럴라구요.

당신은 기억하나요, 스타뷔요르, 기억하나요,

당신은 이제 알 텐데요, 당신과 나는 함께 읽고 쓰기를 배웠는데 ;

내 것은 은색 잉크병이었고,

당신 것은 금색 펜이 아니었나요?

내가 그것을 그때 적셔주었지요,

내가 늘 그것을 적셔주었지요.“

 

이 전설의 다른 변형판에서 수수께끼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

 

이때 그 무서운 使節 바실류시카는

치마를 바로 배꼽까지 들어올렸다,

그러자 고디노비치의 아들인 젊은 스타뷔요르는

그녀의 금빛 고리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는 색정적 수수께끼의 기법(완곡어법)일 뿐만 아니라 모든 수수께끼의 바탕이며 핵심이다. 모든 수수께끼는 그것을 언급하는 동안, 적당하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제외한 후 그 주제를 상술하거나 묘사하는 낱말에 의하거나 혹은 모방되는 음을 제외한 나머지 낱말에 의하는 둘 중의 어느 한 가지로 그 주제를 보여 주는 체한다.("Twas brillig, and the slithy toves/Did gyre and gimble in the wabe")

수수께끼로 의도되지 않은 색정적 이미지도 낯설게 된다(“boobies, 젖이 큰 여자” “tarts, 화냥년” “piece, 계집년” 등등). 널리 알려진 심상에는 흔히 “잔디 짓밟기(trampling the grass)”와 “까마귀밥나무꺾기(breaking the guelder-rose)”와 같은 것들이 있다. 낯설게 하기의 기법은 곰과 다른 짐승(혹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악마)들이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널리 퍼진 이미지(애욕의 주제를 가진)속에서 아주 명백하다.

다음 이야기에서의 알아보지 못하기는 아주 전형적인 것이다.

 

어떤 농부가 얼룩암말로 밭을 갈고 있었다. 그때 곰 한 마리가 다가와서 묻기를 , “아저씨, 이 암말은 무엇으로 얼룩이 졌어요?”

“내 손으로 얼룩지게 했단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어요?”

“그럼, 너에게도 그렇게 해 줄까?”

곰이 승낙하자, 농부는 곰의 다리를 밧줄로 묶고 바퀴 두 개가 달린 쟁기에서 보습을 떼어 불에 달군 다음 그것을 곰의 옆구리에 갖다 대었다. 농부는 뜨거운 보습으로 곰의 털을 벗기고 가죽을 남겨 얼룩지게 했다. 농부가 곰을 풀어주자 곰은 나무 아래에 가서 누웠다.

잠시 후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의 셔츠에 싸둔 고기를 쪼아 먹었다. 농부는 까치를 붙잡아 다리 하나를 부러뜨렸다. 까치는 그 아래에 곰이 누워 있는 나뭇가지로 날아가 앉았다. 까치가 날아간 뒤 말파리 한 마리가 말 위에 날아 앉아 물기 시작했다. 농부는 지팡이 끝으로 말파리를 밀러 쫓아 버렸다. 그 파리는 곰과 까치가 있는 나무로 갔다. 이제 그 나무에는 모두 셋이 앉아 있었다.

농부의 아내가 저녁밥을 들고 들판으로 나왔다. 그와 그의 아내는 맑은 공기 속에서 저녁밥을 먹고 나서 땅 위에서 씨름을 하기 시작했다.

곰이 이것을 보고 까치와 파리에게 말했다. “맙소사! 저 농부가 누군가를 또 얼룩지게 하려고 하네.”

까치가 말했다, “아냐, 그는 누군가의 엉덩이를 막대기로 밀고 있는 거야.”

 

톨스토이의 「콜스토머」와 여기에서의 기법은 아주 비슷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학 작품 속에서는 아주 빈번히 성행위 자체가 낯설게 된다. 예컨대 「데카메론(Decameron)」에서는 “통씻기(scraping out a barrel),” “나이팅게일 잡기(catching nightingales),” “양털 패는 즐거운 일(gay wool-beating work)(이 마지막 예는 플릇 속에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등으로 언급하고 있다.

일련의 전체 플롯은 이같이 알아보지 못하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아파나셰프(Afanasyev)의 「친근한 이야기(Intimate Tales)」에 나오는 「수줍음 타는 부인(The Shy Mistress)」의 전체 줄거리는 대상에 적절한 명칭이 부여되지 않는 사실에―다른 말로해서, 알아보지 못하기 게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런 것은 온추코프(Onchukov)의 「얼룩진 페티코트(Spottes Petticoats)」에 나오는 제 525화와, 곰과 토끼가 ‘상처’를 입는다는 「친근한 이야기」속의 「곰과 토끼(The Bear and the Hare)」에서도 마찬가지다.

「공이와 반죽 (the pestle and the mortar)」또는 「노인과 지옥(Old Nick and the infernal regions)(「데카메론」) 같은 소설 역시 낯설게 하기의 예이다. 그리고 나는 플롯 구성에 관한 한 논문에서 심리학적 대구법에서의 낯설게 하기에 대해 썼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다시 여기에서 조화된 문맥 속에서 부조화를 지각하는 것이 대구법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반복한다. 심상의 일반적인 목적에서처럼, 대구법의 목적 또한 대상에 대한 평범한 지각을 새로운 지각영역으로 전이시키는 것―독특한 의미의 변화를 이루는 것이다.

낱말의 독특한 배치와 낱말로 이뤄진 특별히 주도면밀한 구조는 물로 그 음성과 어휘의 구로로써 시의 어법을 연구할 경우 우리는 도처에서 예술적 상표, 즉 분명히 지각의 자동화를 제거하기 위해 고안된 요소를 발견한다. 작자의 목적은 바로 비자동화 된 지각에서 유래하는 비전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 작품은 지각이 방해받은 결과로서의 그 지각의 지체를 통해 가능한 최대로 효과를 산출할 수 있도록 “예술적으로” 창조된다. 이렇게 질질 끈 결과로서 대상은 공간적 넓이에서가 아니라 시간 속에서의 지속성으로 지각된다. 이렇게 해서 “시어(詩語)”는 만족을 주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시어는 이상하고 낯설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은 종종 외국어로 표현된다. 즉, 앗시리아인(Assyrians)에 의해 사용된 수메리아어(Sumerian), 중세, 유럽의 라틴어, 페르시아에서의 아라비아풍, 러시아 문학 속의 고대 불가리아어, 혹은 민요 속에 쓰이는 거의 문학어에 가까운 고상한 말 등이다. 시어에서 흔히 나타나는 의고체(擬古體), 부드러운 새 문체 속에서 보이는 딱딱한 말, <발음하기 어려운> “거친” 형식을 쓴 아르나우트 다니엘(Arnaut Daniel)의 애매한 문체―이런 것들이 아주 똑같은 방식으로 사용되었다. 레오 야쿠빈스키는 비슷한 음을 반복하게 되는 특별한 경우에서 시어를 음성적으로 “거칠게 하는” 원리를 주장했다. 이때 시어는 다루기 어렵고 한결 거칠어졌으며 방해 받은 언어이다. 몇 가지 특수한 경우 시어는 산문어에 근접하지만, 이것도 “거칠게 한” 형식 원리를 어긴 것이 아니다.

 

그녀의 언니는 타티아나라고 불리웠다.

처음으로 우리는

이 이름으로 소설의 섬세한 부분들을

자유자재로 빛나게 할 것이다.

라고 푸쉬킨은 썼다. 푸쉬킨 당대의 흔한 시어는 데프짜빈(Derzhavin) 식의 우아한 문체이었다. 하지만 푸쉬킨의 문제는 당시에 천박한 것으로 여겨진 것이어서 그의 동시대인들에겐 의외로 어렵게 생각되었다. 우리는 그의 비속한 표현에 대한 당대인의 경악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그의 동시대인들이 일상적인 프랑스어 회화 속에다 러시아어를 섞어 썼던 바로 그것처럼, 주의를 오래 연장하기 위한 특수한 장치로서 통속어를 사용했다. (「전쟁과 평화」에서의 톨스토이의 예 참조)

 

바로 지금 더 이상한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원래 러시아에서는 낯설게 여겨졌던 러시아의 문학 언어가 너무 많이 민중의 언어 속에 스며들어 섞여 쓰리게 되었다. 그 반면에 문학은 이제 방언(레미조프 Remizov, 클뤼예프 Klyuyev, 에쎄닌 Essenin, 그리고 재능이 전혀 다르면서도 사용한 언어는 비슷한 많은 다른 작가들은 고의적으로 지방색을 드러냈다)과 야만주의(세베랴닌 그룹 Severyanin group을 일으킨)를 사용하는 풍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 막심 고르키(Maxim Gorky)는 그의 어법을 낡은 문학 언어에서 레스코프(Leskov) 식의 새로운 문학의 구어체로 바꾸고 있다. 그로써 일상 회화와 문학 언어는 서로 위치를 바꾸게 되었다.(뱌체슬라프 이바노프 외 많은 작가의 작품 참조). 그리하여 마침내 새롭고 적절한 시어를 만들기 위해 클레브니코프(Khlebnikov)에 의해 주도된 강력한 풍조가 부상(浮上)하게 되었다. 이러한 발전의 조명 속에서 우리는 시를 <희미해지고 뒤틀린> 회화체로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시의 어법은 <형성된 어법>이다. 이에 반해 산문은 평범한 어법이다―경제적이며 쉽고 적절한 산문의 여신(女神)은 정확하고 쉬운 형식의 여신이며 어린이의 ‘솔직한’ 표현이다. 나는 플릇 구성에 관한 한 논문에서 꽤 자세하게 예술의 일반 <법칙>으로서의 거친 형식과 지연을 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에너지 절약의 사상을, 시어 속에 존재하며 시어를 다른 것에서 구분케 하는 것으로까지 주장하는 자들의 위치는 단번에 리듬의 문제에 대해서도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리듬에 관한 다음과 같은 스펜서의 진술은 절대적인 것처럼 여겨질 것이다.

 

여러 가지 연속적인 충격을 받는 육체에 있어서 근육은 가장 강력한 충격이 언제 올지 모르므로 그에 대비해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무질서한 분절음을 받아들이는 정신도, 듣기에 가장 어려운 음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지각력을 활동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만일 충격이 명확한 순서로 반복된다면 육체가 각각의 충격에 필요한 저항을 조절함으로써 그 힘을 절약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만일 음절이 규칙적으로 배열된다면 정신은 각 음절에 요구되는 주의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힘을 절약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외견상 결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 관찰은 시어와 산문어 사이의 법칙을 혼란시켰다는 실책을 저질렀다. 「문체의 철학(The Philosophy of Style)」에서 스펜서는 그 양 법칙 사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리듬은 두 개의 기능을 갖는다. 산문 리듬, 혹은 “두비누쉬카(Dubinushka)” 같은 노동요의 리듬은 작업 구성원에게 필수적으로 필요한 “함께 일하기”를 가능케 하여 작업을 자동화시킴으로써 일을 쉽게 만들어 준다. 실제로 음악이 없을 때보다 음악이 있을 때 행진은 한결 쉬워지며 나아가서 활기찬 대화를 나누면서 행진하기가 한층 더 쉬울 것인데, 그것은 행진을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문 리듬은 중요한 자동화의 요소이며 그에 반해 시의 리듬은 그렇지가 않다. 예술에는 ‘질서’가 있지만 그리스 사원의 어느 원주도 정확한 질서 속에 서 있는 것은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의 리듬 역시 무질서하다. 그 불규칙성을 체계화하려는 시도가 있어 왔으며, 이런 시도는 리듬론의 당면문제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 체계화는 효과가 없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문제는 리듬의 복잡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리듬의 불규칙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며―그 불규칙성은 예언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리듬의 불규칙성이 하나의 관습이라면 언어를 거칠게 하는 장치로서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리듬에 관해서 책 한 권을 쓸 것이므로 여기서 더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Victor Shklovsky, "Iskusstvo, kak priyom,"

Sborniki, Ⅱ, 1917.

 

참고자료

상호 텍스트성-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 최현무 역

러시아 형식주의의 기본개념들-빅토르 어얼리치(Victor Erlich) / 박거용 역

게오르르 루카치: 총체성의 개념-파스칼( Roy Pascal) / 김대웅 역

형식주의 문학논쟁-우스이 요시미(臼井吉見) / 주근옥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