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Roy Pascal)3) / 김 대웅 역

                                                                                         

루카치의 문학 비평에 있어서 “총체성(totality)"이란 용어는 가치 평가의 기준으로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용어는 동시에 삶의 기준, 현실의 기준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해서 나는 그것을 넓은 문맥 속에서 규정해야만 하고, 또 이 책에 실린 다른 글들에서 보다 상세하게 고찰되어질 영역과 엇물리게 해야만 한다.

루카치의 견해로부터 완전히 통합된 하나의 이론 체계를 짜 맞추려는 시도는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왜곡될 위험성에 직면한다. 그의 비평 저작들과 논문들은 상이한 국면을 거쳐 온 당(黨)의 문화 정책이라는 기본 틀에 짜 맞추어진 특수한 도전으로부터 생겨났고, 그의 견해와 이론 형식들은 언제나 특정한 순간의 특정한 관심에 의해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그 자신은 생의 마지막까지, 그리고 정치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자신의 대부분의 문학 비평이 쓰여졌던 것과는 매우 달랐던 환경에서 하나의 체계적 미학을 구축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체계적 미학을 고려하면서, 그가 내린 결론이 비평가로서의 그가 행한 초기의 실제적 작업들과 완전히 상응하는지 어떤지를 항상 되물어야만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 결론들은 사실상 내가 그의 생각이 일반적인(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공산주의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 속에서 하나의 새로운 단계에 놓인다는 것을 반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가 1918년 공산당에 가입한 이래의 그 어떤 시기보다도, (당의 입장을) 반영하는 실제적 책임에서 보다 멀어졌던 생의 한 시기, 즉 은퇴하여 당의 호의로부터 벗어난 시기에 형성되었다.

어쨌든 나는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을 이해하려면 「미학(Ästhetik)」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서는 총체성의의 일반원칙들이 그의 초기 저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다 풍부하면서도 분명하게 다루어지고 있으며, 또한 그 용어에 대한 그의 초기적 사용과 일치되게 다듬어져 있기 때문이다.

루카치에 있어서 예술이란 인간이 그것을 통해 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위대한 도구 중이 하나이다. 현실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변증법적 ‘존재,’ 즉 노동을 통한 인간의 자기 보전이자 자기 진보이다. 과학과 예술은 이러한 총체적인 인간학적 과정에 기여하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끊임없는 노력이며, 그것을 통해 인간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변화시킨다. 과학과 예술 양자는 모든 인간적 “실천(Praxis)”에, 즉 루카치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일상 생활”에 관계된 정신적 작용에 뿌리박고 있으며, 이러한 실천을 발전시키는 수단들이다. 양자 모두는 인간이 그 속의 한 부분인 현실을 “반영한다(mirror, wiederspiegeln).” “반영한다”는 것은 그 말의 이미지가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표면적인 반영(surface-reflexion)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험세계에 대해 취하는 관계들에 관한 모든 형태의 정식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단단한 화살촉이나 과학적 공식들은 현실의 “반영(reflection)”이다.

과학과 예술 모두는 경험, 즉 특수한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둘 다 이 특수한 것 안에서 보편적인 원리를 찾는다. 과학의 방법론은 탈신인동형동성설(脫神人同形同性說, de-anthropomorphization),4) 즉 루카치가 어떤 특수한 것이라도 지배하는 “외연적인 동시에 내포적인 총체성”이라고 부른 보편 법칙을 추구하여 사적 무매개성(personal immediacy)5)을 상쇄시켜 나아가는 것이다.6) 그것은 또한 주관적인 요소도 갖고 있는데, 왜냐하면 일상 생활의 작용이 선별적인 목적에 의해 지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추구 역시 선택과 의도에 의해서 지배되기 때문이다. 한 대상이 지닌 보다 중요한 속성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별, 보다 본질적인 속성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별, ‘현상’과 ‘본질’ 사의의 구별은 현실성의 정도에 따른 구별이 아니라, 단지 인간 목적의 상이한 수준을 의미할 뿐이다.7)

반면에 예술의 방법론은 神人同形同性說的(anthropomorphic)이다. 그것은 두 가지 관점에서 총체성을 추구한다. 첫째로 그것의 임무는 예술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이것은 어떤 특정한 대상, 어떤 사건이나 사건들의 집합, 또는 어떤 주제나 어떤 사건의 측면 등이 될 것이다)로부터 총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학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내포적인 총체성, 즉 대상의 본질적인 결정요인들(Bestimmungen)의 총체성을 재생산하여야 한다.” 따라서 현실의 외적인 현상에 국한하지 않는다. 어쨌든 과학과는 달리 예술은 추상적이고 몰개성적인 법칙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들(사건들 등)의 감각적 개별성을 재생산해낸다.8) 예술의 특성은 그것이 존재의 독특함, 즉 특수성을 고양된 형태로 재생산한다는 데 있다. 동시에 그것은 과학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독특함 속에서 보편성을 밝혀내지만,9) 그 보편화의 형식은 “全人(the whole man)의 감각적(sinnfällige) 보편화”이다. 거기에서 표현되는 것은 전형적인 것, 즉 존재 양식이나 감정 양식 등에 있어서 전형적인 것, 한 집단이나 계급 등에 있어서 전형적인 것으로 나타난다.10) 이러한 전형성은 지적 추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의 형식, 구조, 스타일 등을 통해서 얻어진다.

예술 작품은 또 다른 성질로 인해서도 “총체적”이며, 외적 사건의 직접적인 표현이나 모사가 아니다. 예술작품의 진실은 어떤 특수한 사건에 비추어서 검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모방, 즉 인위적인 것이다. 그것은 그 자체로 완결된다는 점에서의 총체성이며, 자기 완결적이다. 그것은 세계에의 직접적인 참여로부터 일시적으로 후퇴한 사변적 정신에 의해서만 체험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효과는 직접적인 교화(instruction)나 훈계(exhortation)로 얻어지는 것과는 다르다.11) 예술 작품의 목적은 진실, 즉 향유자로 하여금 그가 미적 사변의 세계로부터 다시금 실제 세계로 되돌아올 때 그 자신의 개인적 참여를 “변화시키고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통찰과 인식이다.12) 

그러나 예술에 있어서의 총체성은 또 다른 형태로도, 즉 ‘주체’의 질(質)로서도 나타나는데, 루카치는 그 용어를 창조적 예술가와 수혜자(다시 말하면 예술의 향유자) 모두를 의미하는 데 사용한다. 예술은 “주체성(subjectivity)의 강화”13)를 가져오며, 그는 “예술이 모든 영혼을 움직이게 한다”는 클롭스톡(Klopstock)의 진술을 긍정적으로 인용한다. 여기에서 비로소 루카치가 현재 기반으로 삼아 작업하고 있는 존재론의 윤곽이 나타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를 하나의 전체로서 느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서, 노동의 분화가 인간의 능력을 분리시키고 그들을 서로에게서 분리시킬 때 더욱 더 절실해지는 욕구이다. 종교와 윤리는 양자 모두가 개인의 전체성(wholeness)을 재건하고자 하지만, “개성의 재통일(reunification of the personality),” “총체성의 인정과 인간의 개체성의 지속화”는 오직 예술 속에서만 진정으로 충족되어진다.14)

인간이 외부 세계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이 되는 것처럼 인간은 예술의 객관적 총체성을 창조함으로써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두 개의 총체성은 동시적인 것이며, 서로 서로의 조건인 까닭이다.15)  주체의 이러한 강화는 아무튼 우리가 대상에 비추어서 살펴봤던 것과 동일한 종류의 보편화를 뜻한다. 미적 체험에 있어서 예술가나 향유자는 자신들의 본질적인 자아가 되기 위하여 통상적인 자아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다. 그러나 루카치는 이렇듯 고양된 주체성이 우리가 일시적으로 우리의 특정한 역사적 자아를 초월하여 “보편적 인간”으로까지 우리 스스로를 확장시켜 왔음을 뜻하는 것으로 믿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보편화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우연적 특수성에서 벗어나 사회집단, 계급, 국가의 보다 큰 부분과의 동일화를 향해 넓혀 나간다라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한다.16)

총체성에 관한 이러한 두 번째의 주된 형식의 중요성은 예술의 대상이 인간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전인(全人)의 관점에서 파악할 경우, 모든 예술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놓여있다라는 그의 말로부터 명백해진다. 즉 “이러한 세계는 인간이 자기 것으로서, 자기의 휴머니티의 가치로서 긍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세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가?” 그에게 있어 예술은 상상의 인위물에 대한 체험을 통해 달성되는 총체성, 즉 체험의 전체성과, 단순한 일상의 편협하고 특수한 영역 사이에 예술이 수립하는 대비를 통하여 현실 세계를 비판하는 것이다.17) 되풀이하면, 루카치는 그의 실제비평(practical criticism)을 통하여 위대한 작가를 가르는 비평의 기준은 그들이 지닌 총체성의 관점에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발자크(Balzac)는 “全人의 이상에 고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루카치의 실제비평이 총체성의 한 가지 의미(외부적 현실의 미적 반영)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반면에, 총체성의 두 번째 의미를 단지 산발적으로만, 그리고 더듬더듬 포착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게 타당할 것 같다.

어떤 점에서 루카치가 끌어낸 과학과 예술 사이의 구분은 동시에 이데올로기와 예술 사이의 구분이기도 하며, 그의 가장 두드러진 비평 중의 몇 개는 발자크나 톨스토이와 같은 위대한 작가에게 있어서 그들이 지닌 상상력이 어떻게 하여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적 결함을 교정하고 있는가를 보여 준다. 때때로 루카치는 사실상 예술가의 의식은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결론에 대해서조차 선별적인 동시에 교정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성18)에 대한 상상력의 이러한 우위성 확보는 당과 그 자신 사이의 괴리를 야기시켰다. 따라서 그는 변증법적 유물론, 즉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에 관한 자신의 일반적인 언급에 종속되지 않는 독특한 위치 속에 자리매김하고자 한다. 또는 실제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작가들이 어떠한 종류의 것을 써야만 한다고 하는 당의 요구를 받아들인다.

마르크스주의자 루카치가 과학과 예술 사이에서 끌어낸 구분은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이전의 루카치가 「영혼과 형식(Die Seele und die Formen)」(1911)에서 끌어낸 구분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에서 그는 과학의 영역은 “사실 및 사건들간의 연관”이며, 예술의 영역은 “영혼과 운명(souls and destinies)”이라고 말했다.19) ‘영혼’이란 자기 충족적인 통합된 인격을 가리키며, 흔히 그때만 사용되는 용어이고(예를 들어 짐멜), ‘운명’은 합목적성과 우연성, 개별적 의도와 선택, 그리고 사회 및 자연법칙을 모두 포괄하는 변증법적 법칙을 가리킬 때 그가 계속하여 사용하곤 하는 용어이다.20)(밑줄 편자) 마르크스주의자가 되기 이전의 정의나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정의를 둘 다 모두, 예를 들면 대도시의 정신적인 상황에 대한 짐멜21)의 과학적 분석(「대도시와 정신 생활」에서)과 릴케의 「말테의 수기(Die Aufzeichnungen des Malte Laurids Brigge)」에서 나오는 ‘영혼’의 대도시와의 만남에 대한 묘사 사이의 차이에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

특히 “총체성”이란 용어에 관한 루카치의 관용법이 헤겔의 그것에 대해 갖는 관계는 주시할 만하다. 그 까닭은 논증할 수 있고 인정할 만한 문제가 여기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헤겔의 관용법이 루카치의 그것을 명백히 해주기 때문이다. 헤겔은 예술이 현실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특수성 속의 살아 있는 존재 속에서” 현실을 파악한다고, 즉 예술은 분석을 통해서도 깨뜨리지 못했던 근본적 실체(substantial entity) 속에 존재한다고 말함으로써 과학, 즉 합리적 이해로부터 예술을 구별해 냈다.22) 그는 이러한 예술작품의 복잡한 실체를 “총체성(Totalität)”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의 본질적인 모습이 예술작품의 완결성(completedness)이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예술작품을 특징짓는 독립성, 즉 자기 충족성을 지닌 “총체적이고 자유로운 전체”라고 거듭하여 말하였다.23)

그리고 헤겔은 예술작품의 이러한 자기 충족적인 총체성을 인간의 기본적인 존재론적 특성, 즉 “진정한 개체적 총체성과 살아있는 독립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관심 및 요구”와 결부시켰다. 그의 동시대인과 마찬가지로 헤겔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 이러한 총체성의 현현을 보았으며, 그러한 총체성의 해체를 노동의 분업, 사회의 계층화 및 직업의 전문화 탓으로 돌렸다. 그는 괴테와 실러(Schiller)24)의 위대한 원리가 자신들의 시작(詩作) 속에서 ‘주인공’의 잃어버린 독립성을 되찾게 했으며, 동시에 이러한 총체성을 실제상에서 가능하게 하는데 실패한 원인은 근대사회에 있다고 간주하였다.25)   

헤겔에게 있어서 (루카치에게서와 마찬가지로) 총체성은 삶의 충족인 동시에 또한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으로 나타난다.

헤겔의 개념과 루카치의 개념에는 유사성이 존재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튼 루카치가 헤겔을 상당히 참고하는 가운데에서도, “진정한 개체적 총체성”이 되기 위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관한 진술을 전혀 참조하지 않았던 것은 놀라우면서도 의미심장한 일이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의 견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헤겔에게는 예술작품의 자기 완결성을 규정하고 한계를 결정하는 예술의 어떤 위대하고 영원한 주제들(사랑, 가족, 권력 등)이 있다. 그러한 주제들은 반드시 구체적인 역사적 형태로 제시되지만, 일반적으로 그는 역사적 구체화를 보편적 진리를 위한 단순한 장식물로 생각한다.26) 단지 역사극을 논할 때만, 그는 여기에 “한 사건의 가장 깊숙한 핵심과 의미”가 제시되어서 “본래적 합리성이 그에 적합한 현실 속에서 밝혀지고 분명해진다”고 말한다.27) 여기에서 헤겔은, 인류의 역사인 이성의 위대한 도정 속의 한 단계로서 우리가 그 중요성을 이해하는 바의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총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포착하는 것이 역사극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루카치는 모든 예술의 본질적 원리로서의 헤겔의 역사극에 대한 해석에 매달리게 되었다. 그는 “보편적으로 인간적인 것”이라는 생각, 즉 어떠한 위대한 주제들이 모든 시대의 인간 조건의 영원한 모습을 구현하고 있다는 생각에 맞서서 끊임없는 유세를 펴나가게 되었다.

루카치는 헤겔의 역사주의를 확장시키면서 동시에,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헤겔의 형이상학적 체제에 유물론적 해석을 부여한다. 세계정신(Weltgeist)의 저 웅장한 형이상학적 진화는 진정되었다. 그것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의 진화, 다시 말해서 그것을 통해 생산 양식이 어느 시기가 되면 보다 발달된 생산력과 충돌하게 되는 사회적(이데올로기적) 형식을 창조하는 변증법적 과정이 된다. 이 과정의 끝에 계급사회의 止揚(abolition), 즉 생산과 교환수단의 사회화를 통한 인간의 해방이 이루어진다. 헤겔이 세계정신의 결정적 진보라고 인식한 역사적 전기(nodal point)는 윤리적․철학적 혁명을 동반한 사회 정치적 혁명이 경제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일어날 때, 이러한 사회적 과정 속의 단계로서 해석된다. 루카치에 있어 예술은 이 과정을 반영한다. 그것은 역사과학처럼 분석하고 일반화하지는 않지만, 인격화하고(anthropomorphizes) 집약시킨다.

그리하여 예를 들면 「리어왕(King Lear)」은 역사적 과정이 개인적 운명의 매개를 통해 구체화되고 집약되어지는 곳인 가정의 이미지로써 봉건제의 붕괴를 시사한다.28) 따라서 예술은 인식의 특수한 방법이다. “역사에 대한 과학(the science of history: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를 의미한다)은 우리의 역사 인식의 기초를 이룬다. 예술은 우리의 역사적 자기 의식을 일깨우고 그것을 항상 깨어 있게 만든다.” 심지어 루카치는 특정한 형태의 예술 의식 없이는 과거나 현재를 알 수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지나간 시대(과거)가 위대한 고전적 예술가들에 의해 주어진 바의 형태로 인류의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것처럼 우리의 자기인식(self-knowledge)도 역시 그러하다. 루카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의 위대한 문학은 그것이 개별적 인간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 흡사한, 즉 인류의 과거에 대한 살아 있는 기억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29)


루카치의 실제 비평에 있어서의 총체성


루카치가 총체성이란 용어를 최초로 의미 깊게 사용한 것은, 1916년에 기사화되어 1920년에 책으로 출판된 「소설의 이론(Die Theorie des Romans)」 속에서이다. 그것은 그가 헤겔을 접한 후 얻어낸 최초의 산물이었다. 예술은 “영혼과 운명”을 제시해 준다는 초기의 견해를 수정하면서 드라마와 소설의 구별에 전념하는 루카치는 이제 헤겔에 동의하여, 드라마는 “내포적인(intensive)” 총체성을, 소설은 “외연적(extensive)인” 총체성을 표현한다고 주장한다. 헤겔과 마찬가지로 그는 “외연적인” 총체성이란 광범위한 시간대와 무수한 등장인물에게까지 확장되는 총체성, 그리고 사회적 관계, 특히 헤겔이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통상적인 근대 사회생활의 “산문적 현실(prosaic reality)”에 관여하는 총체성, 둘 다를 의미한다. 이런 단계에서는 이미 정치적 행동에 연루되었다 할지라도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멀어진다. 사실상 그는 카프카(Kafka)의 현대적 작품에 매우 훌륭하게 어울릴 용어로써 서사시(epic)에 대하여 쓰고 있다. 소설은 선험적 의미가 제거된 세계를 반영하고, “인간의 선험적 실향(the transcendental homelessness of man)”의 표현이라고 그는 말한다.(밑줄 편자) 드라마는 “본질성의 내포적인 총체성”을 형상화한다는, 그의 견해 역시 비마르크스주의적이다. 그러므로 소설은 드라마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방식에서 “리얼리스틱”하게 되는데, 역사적 존재의 구체적이고 외연적인 현실을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을 때, 루카치는 그가 비록 소설과 드라마사이의 형식적인 구분에 끊임없는 그리고 정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언제나 “외연적” 및 “내포적”(리얼리즘)이란 용어로써 그것들을 의미하고자 하였지만, 이제는 그 양자 모두가 하나의 역사적인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소설과 드라마 사이의 이러한 절대적인 구분을 포기하게 되었다.30) 그의 모든 관용법은 확실히 소설에 가장 잘 어울리며, 비록 그가 드라마,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에 대해 탁월한 통찰력으로 언급했다 할지라도, 바로 이 분야에서 가장 의문시되는 약간의 주장을 그가 되풀이하였다는 것은 어느 정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리얼리즘과 마찬가지로, 총체성이란 용어가 루카치의 문학 비평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그가 공산당의 실제적이고 이론적인 작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던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정치 사상의 한 가지 기본 원칙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는 결코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승리라는 실제적인 목적에 자신의 사상을 국한시키는 것으로 만족하지는 않았다. 청년 마르크스를 생각나게 하는 용어들로써 그는 거듭해서 공산주의 혁명을 그 수단으로 하는 궁극적인 인간적 전망에 대해 언급한다.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대해, 그리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소외와 왜곡에 대해 인간성의 이름으로 항의하였다. 그는 궁극적인 목적을 계급사회, 즉 노동의 사회적 분업에 의해 생겨나는 왜곡과 일방성(one-sideness)으로부터의 인간 해방으로 보았다.  

그는 총체적 인간성, 즉 다양하고 통합된 인간이라는 전망에 의해 떠받쳐졌다. “사회주의 혁명의 위대한 전망은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청산, 즉 전방위적(all-sided)인간의 위대한 전망이다.”31) 「미학」과 1966년의 「대화록」에서 루카치는 “인간의 궁극적인 인간화(Menschwerdung des Menschen, epiphany of man, 인간의 현현)”에 대하여 훨씬 더 분명하게 언급했다.32) 그가 공산당의 실용주의적, 전략적 성향의 정치적 리더쉽과 거듭 갈등을 불러일으키는데는 이러한 관심에 적지 않은 정도의 책임이 있다.

1951년의 「발자크와 프랑스 리얼리즘(Balzac und französische Realismus)」에 부친 서문에서 그는 그 문제를 이렇게 쓰고 있다.33)

    미학에 있어 우리의 고전 유산은 인간의 총체성, 즉 전인(全人)을 그의 사회적 세계의 총체성 속에서 제공하는 위대한 예술이다.… 프롤레타리아 휴머니즘의 목표는 전체성의 인간, 즉 실생활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총체성의 회복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계급사회에 의해 야기된 우리 존재의 불구화된 파편화를 실제적으로 지양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적 및 실제적 전망들은 마르크스주의 미학이 고전을 되찾게 되는 기초로서의 기준을 결정한다. 그리스인, 단테, 셰익스피어, 괴테, 발자크, 톨스토이, 고리키 등은 인류 진화에 있어서 명백히 위대한 단계의 적절한 표상(Bilder)인 동시에, 인간의 총체성을 쟁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 투쟁의 지표이다.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루카치가 단지 인간의 미래의 성취뿐만 아니라, 인간의 재건(restoration)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헤겔, 괴테 또는 실러와 마찬가지로 그도 또한 (그리스 예술뿐만 아니라) 그리스인에게서 언젠가는 재건되어야 할 인간적 완성을 보아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향수는 르네상스 기(期)의 전방위적(全方位的) 인간을 잃어버린 이상으로 추켜세웠던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서도, 그리고 문명화되기 이전 사회의 타락하지 않은 인간에 대해 언급한 루소에게서도 역시 발견된다. 유토피아적 요소는 앞으로 뿐만 아니라 뒤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헤겔은 괴테와 실러를 예로 들어 자신의 전인이라는 개념을 설명했고, 루카치도 예를 들어 「문학사가로서의 마르크스와 엥겔스(Karl Marx und Friedrich Engels als Lteraturhistoriker)」, 「리얼리즘론(Essays über Realismus)」, 「괴테와 그의 시대(Goethe und seine Zeit)」 등에서 빈번히 동일한 목적으로 그들에게 의존했다. 그는 작품의 한결같은 열망이 「휴머니즘 이상(Humanitätsideal)」, 즉 사회적, 직업적 관점에서 노동의 분업을 극복하고 모든 인간 능력을 실현하는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그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들이 지니는 의미는 그것들이 그 속에서 총체성을 잃어버린 체험을 재건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발자크 류(類)의 리얼리즘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소규모의 지방적인 독일 세계가 당대의 위대한 역사적 쟁점들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의 어떠한 조건과도 거리가 먼 이상적인 인물들, 즉 바이런적 영웅들도 역시 단지 그러고 싶은 꿈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목적에 어울리지 못했을 것이다. 괴테와 실러34)가 하였던 것은 사회가 그들에게 어떠한 전망도 주지 못했던 시기에 인간의 잠재성을 구현하고 있는 형식을 고안해 냈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형식들 속에서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요소들은 언제나 그것들이 나온 사회적 현실을 지적하였다. 루카치의 비평이 유연한 의미는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그는 괴테의 부르주아적인 지방의 목가(牧歌) 「헤르만과 도르테아(Hermann und Dorothea)」의 협소한 세계가 어떻게 해서 운문의 고상함과 기품에 의해 보편적 중요성을 띤 이상(ideality)으로 고양되는가를 보여준다. 괴테의 책에서 가장 훌륭한 글은 「빌헤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Wilhelm Meistes's Apprenticeship)」에 대한 것인데, 거기에선 수많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제한적이고 특정적이다. 왜냐하면 그들 각자는 한 사회 속에서 “현실에 필요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유용한 역할을 선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들 각자는 “자신들이 지닌 열정의 자유로운 발전”을 통해, “개성의 조화 및 다른 자유로운 개성들과의 조화로운 협동”을 이룩할 수 있다.

인간의 잠재력은(그것은 유토피아적 공동체 속에서 실현되는 것으로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들이 속한 특수한 형태의 사회에 의해 부과된 한계와 함께 암시되어진다. 그 한 복판에 다소 무성격한 주인공이 서있는데, 그의 주된 성질은 교육 가능성과 공감력이며, 따라서 그는 성취가 아니라 잠재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다소 아이러닉한 스타일의 색조(色調)는 성취된 모든 개인적 완성(fulfillment)의 잠정성과 불완전성을 가리킨다. 대체로 그 소설은 “부르주아 휴머니즘 이상의 비극적 위기를 형상화하는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의 기본 골조를 넘어서는(잠정적으로는 유토피아적인) 휴머니즘 이상의 출현 개시”를 형상화하고 있다.35)(밑줄 편자) 

총체성, “휴머니즘 이상” 등의 용어들은 문학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심리학적 의미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빌헤름 마이스터 수업시대」에 대한 루카치의 평가가 주로 그것이 인간적, 사회적 진화 속에서 하나의 중요한 계기를 반영한다는 사실에 의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거기에서는 어떤 특수한 상황의 묘사가 그 상황에 대한 비판 및 그로부터 나타나는 것에 대한 고발과 변증법적으로 융화되어 있다. 비록 역사적 의미가 단지 그것의 예술적 형식과 스타일로 형상화된다 할지라도, 총체성은 예술적 형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내용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도 적용된다. 우리는 스코트에 대한 글에서 루카치의 절차를 보다 편리하게 살펴볼 수 있다.


월터 스코트(Walter Scott)36)


내가 스코트에 대한 루카치의 비평을 선택한 까닭은 그것이 전형적으로 최상의 상태에 있는 그의 비평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 중에는, 그리고 그 속의 언급 중에는 “속류 예술사회학”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선 그것들이 쓰여진 특수한 상황을 알아야만 한다. 예를 들면, “위대한 작품들은 한 시대의 토대, 생산관계 및 기본적인 사회관계들을 모범적인 방식으로 반영한다”와 같은 언급은 그것이 루카치가 비정통성, 수정주의 등으로 심각한 공격을 받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결사적으로 지키고자 노력했던 1951년의 “헝가리 과학 아카데미”에서 행한 공개 연설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한다면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트에 대한 분석은, 공산당이 진보적 부르주아들에게 승리를 거두기 위해 강력한 노력을 기울이던 1936년부터 1937년 사이, 즉 상대적으로 평온한 인민전선(Popular Front) 시기에 쓰여진 그의 책 「역사소설론(The Historical Novel)」 중의 한 장(章)이다. 루카치는 “문화전선(culture front)”의 비중 있는 대변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아마도 그 자신이 부르주아 지식인에게 말할 때보다 별로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것이다.

루카치는 스코트의 작품이 19세기 초반의 영국에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부르주아 혁명은 여기에서 “모델적” 발전, 즉 부르주아가 봉건 계급을 타파하고 화해시켜왔던 바의 안정된 “중립노선(middle way)”의 기반을 수립하였다. 이렇게 달성된 혁명의 안정성으로부터 스코트는 거리낌없이 과거의 제 갈등을 관찰할 수 있었다. 토리(Tory)37) 당원으로서 그는 그들이 취한 삶의 형태들이 부르주아 국가의 삶 속에서 와해되어 흡수되어버린 봉건 영주, 스코틀랜드 일족(一族) 및 농부들과 깊은 의미의 동질성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동질화는 그가 전체로서의 역사적 변혁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전체로서의 국가와 동일시하는 데 있어서 그 방해함이 없이(이러한 방식으로 예술가는 자신의 주관성을 일반화시켰다) 그의 동정과 통찰을 심화시켜주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 성격과 그가 살았던 역사적 상황간의 친화성 때문에 역사를 현실적으로, 즉 “올바르게” 인식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의 천재성은 그가 이러한 역사적 현실이 표현될 수 있었던 문학 형식을 포착함으로써 발휘되었다. 스코트는 소설이 드라마처럼 “가장 격렬한 형식으로 제 갈등의 폭력적 해결”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경향들이 나타났다간 사라져버리는” 방식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역사의 외면적 총체성을 미적 체험으로 만드는 형식을 추구한다. 과거의 커다란 갈등들은 개인적 형식, 즉 큰 쟁점이 구체적이고 개인적 형태로 나타나는 가정, 친구 및 소집단들의 개인적인 관계들 속에서 제시된다. 비록 사건과 감정이 지방적이고 사적(私的)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그것들은 언제나 “전형적”인데, 말하자면 그것들은 “사회적 경향들과 역사적 세력들”을 구현하고 있다.

스코트는 무분별하게 허풍을 떨지 않고 의미 있는 순간과 특수한 상황을 선택한다. 그는 이렇듯 상세하고 내포적인 처리를 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써 그는 자신이 집필하고 있던 당대의(고대의 서사적 세계에 반대되는) 특징과 인간관계들의 커다란 복잡성을 보여 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회는 고도로 분화되었고, 개인들은 계급, 집단, 종교 등의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스코트의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의 심오한 개체성의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적인 동시에 역사적인 통찰이다.

루카치는 소설의 중요한 성격에 대해 특히 흥미 있는 언급을 했는데, 그것은 소설 주인공의 “수동적”이고 “지체적(retarding)”인 성격에 관한 언급으로서 괴테의 말에 도움을 받은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스코트 작품의 주인공들은 다소 무뚝뚝하고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들로서 강한 열정에 의해 이끌려지지 않고 자신들을 이런저런 식으로 끌어당기는 다소 우유부단한 동정에 의해 휩싸이지도 않는다. 루카치는 웨이벌리(Waverly)나 헨리 모튼(Henry Morton)과 같은 등장인물을 고려하고 있다. 그들은 종종 다소 특징 없는 성격 때문에 비판받아 왔지만, 루카치는 그들의 “불명료함(inconspicuousness)” 속에 중요한 예술적 기능이 놓여 있다는 것을 지적해 낸다. 그들은 이야기의 중심에 적절하게 자리잡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양쪽 세력에 다리를 놓고 양진영과 인간적 관계를 맺으며 투쟁에 개입된 여러 세력들에 의해 깨어진 총체성, 화해 및 균형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개인적 운명은 위대하지도 또한 극적이지도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커다란 사건에 분에 넘치지 않을 만큼만 참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존은 민족 공동체의 지속성을 대표하며, “영국적 발전의 긴 세월에 걸친 확고부동함”을 대표한다.         

루카치는 스코트가 매우 적절하게도 리샤르 쾨르 드 리옹(Richaed Coeur de Lion), 루이 9세, 엘리자베스 여왕, 크롬웰 등과 같은 위대한 인물들에게 2차적인 예술적 역할들 부여하고 있다고 쓰고 있는데, 헤겔주의자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적 야망과 위업 속에 당대의 실질적인 관심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들은 소설 속에서 스스로의 사적 이야기를 지닌 개인들로서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사적 역할에 따라 행동하는 그들의 완성된 역사적 중요성 속에 드러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소설의 주인공으로서는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역사의 의지를 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듀 에스 마키나38)로서 등장한다.

그 소설들의 주인공들은 언제나 소집단의 지도자, 즉 로브 로이(Rob Roy), 버얼리(Burley), 제니 딘즈(Jeanie Deans)와 같이 전설적이거나 창조된 영웅들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힘과 영웅주의는 바이런 식의 영웅과 같이 추상적이고 개인적인, 또는 악마적인 것이 아니라, 한 집단의 증류된 힘이다. 이러한 소잡단의 전망 안에서 우리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관심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게 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관심은 진정한 개체성을 획득하는 지도자들을 포기한다. 따라서 우리는 또한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 스스로가 결정적으로 등장할 때, 비로소 그들의 역사적 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코트는 “역사의 위대한 변혁을 민중적 삶의 변혁으로서 묘사한다.” 그리하여 제니 딘즈는 영웅적 행동으로까지 분기한 후에 자신이(그로부터) 홀연히 나타났던 바의 불명료한 “보존적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스코트의 소설들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다. 역사적 풍속은 현학적인 공동품 수집 취미가 아닌 충분히 시사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는 환경에 따라서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며, 행동한다. 그 소설들은 “산문적(prosanic)” 생활 그 자체처럼 사건이 풍부하지만, 그것들은 사건으로부터 역사 자체의 필연적 발전인 의미 있는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러한 필연성은 사건에 대한 “내세적 운명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환경의 변혁 과정 속에서 그 환경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부터 일어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스코트는 과거를 근대화함으로써, 즉 시대 착오적인 인물을 끌어들임으로써 과거를 연관성이 있는 것처럼 만들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가 스스로 허용한 유일한 시대 착오는 불가피한 것인데, 말하자면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중요성을 등장인물보다 더 잘 의식하여 과거를 자기 자신이 속한 당대의 전사(pre-history)로서 바라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들은 스코트에 관한 루카치의 논문이 지닌 주된 모습인 것이다. 그는 세밀한 성격 묘사, 즉 스타일에 대해서는 거의 논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루카치는 겨우 한두 차례 여성 등장인물의 개성과 열정의 결핍에 관해서만, 특히 스코트에 있어서의 어떤 속물 근성을 관찰할 경우 등에서만 스스로의 비판을 허용한다. 어째든 루카치가 형식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그는 어디까지나 소설의 특정한 형식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까닭은 예술가의 세계 해석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우리는 루카치가 그 자신이 속한 당대의 여러 작가들에게 스코트가 취한 절차를 하나의 규범적 모델로서 정당화시키려는 논쟁적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는 “총체성”이라는 용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모든 예술은 결정적인 역사적 사실들과 그 이데올로기적 형식들이 갈등을 통해 해결을 촉구하는 총체적인 역사적 상황, 즉 동적(動的)인 상황을 제시한다.

2. 총체성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형식 속에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포착되는데, 그들은 특정한 환경 속에서 자신들의 운명을 성취하고, 자신들의 사적 운명을 원숙하게 만들어 나간다. 그러므로 그것은 현실로부터 구별되는 자기 완결적 총체성이다.

3. 제시된 총체성은 소설의 전편을 통해 일관되게 적용되는 총체성이다. 역사는 혁명을 통해서 움직이지만, 이렇듯 커다란 변화들은 완만한 해체와 축적을 통해서 준비되어진다. 비극은 위기의 극단적인 순간을 제시하고, 소설은 “여러 경향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방식”을 제시한다.39) 그러므로 소설이 산문적이고, 외면적이며, 아무리 극적 절차들(극적 발생, 대화)을 빌어 온다 할지라도 그것들을 소설의 산문적 서술의 흐름 안에서 조직화해야만 한다.

4. 따라서 이러한 총체성은 우리의 근대적 의식을 포기한다거나, 또는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근대적 상황에 관계되는 것을 발견해 냄으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상상력으로써 경험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과거의 위대한 역사적 변혁을 응축한 지난 시대의 모든 예술은 하나의 총체적이고 완결된 경험으로서 제시되는 우리의 전사(前史)인 셈이다. 그것의 역사성은 본질적인 바, 그것은 우리에게는 우리의 과거, 인류의 과거가 구현되어 있는 기억으로서 중요하며, 인류에게는 각 개인의 어린 시절의 의미 있는 순간에 대한 기억으로서 똑같은 기능을 한다.40)(밑줄 편자) 

스코트론은 루카치 방법론의 하나의 완성된 시사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그의 비평이 지닌 전형적인 부적합성을 예시해 준다. 만일 그의 모든 논점이 지닌 공정성과 적절성을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것은 완전한 비평인가? 그것은 스코트의 역사적 통찰과, 소설의 형식에 대한 그의 이해가 진실하며 심오하다는 걸 충분히 알려주는가? 우리가 루카치를 읽은 뒤에 스코트를 읽게 될 경우, 우리는 문장의 단조로움, 어조(語調)의 느긋함, 그리고 우리의 반응에 있어서의 격렬함과 고양(高揚)됨과 분노의 부족 때문에 놀라게 된다. 루카치가 이러한 부족함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것들을 스코트 당대의 영국에 의해 이룩된 사회적 합의에 적합한 것으로서 설명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당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들 자신은 소설이 지닌 강점뿐만 아니라 약점에 있어서도, 그것이 역사적 상황과 역사적 세력들의 적합하고 진정한 모습을 제공한다는 인식에 만족하지는 않는다.

루카치의 총체성 개념으로써 나의 비평을 설명한다면, 그것은 결국 예술 작품의 객관적 총체성에 대한 관심과 그것의 역사적 범주에 대한 관심이 “주관적” 총체성에 대한 관심을 무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관적” 총체성에 대한 관심이 전적으로 무시되는 것은 아니다. 루카치는 스코트의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성격이 그로 하여금 어떻게 역사의 운동을 포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어떻게 해서 소설의 형식적 요소들이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역사의 운동을 상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하는 방식으로 조화되는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것을 “주관성(subjectivity)의 강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독자가 그로 말미암아 역사적 변화의 양식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과 사회 과정에서 자신의 몫에 대해 보다 생생한 의식을 얻는다는 점에서만 그럴 수 있을 따름이다.

「미학」에서 루카치가 “개성의 재통일(reunification of personality)”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주관성의 자기 지향적 의미는 이러한 식의 인식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만일 그러하다면 독자의 직접적인 반응을 증진시키거나 방해하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에 대해 루카치가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야만 했을 것이라는 점이 거의 납득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루카치의 글과 관계되는 도날드 다비(Donald Davie)의 「스코트의 시대(The Age of Scott」를 읽는다면, 그가 정당하게도 루카치가 무시하거나 제쳐 둔 요소들에 대해 매우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루카치가 문화 정책에 너무나 열중해서, 또는 너무나 지적(知的)이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 반응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비평은 일반적으로 이 점에서 실패하고 있다. 내가 이제 카프카에 대한 그의 비평으로 넘어간다고 하다면, 그것은 여기에서 우리가 심오하고, 즉각적이며, 미학적인 반응의 다소 드문 표현을 그에게서 끌어낼 수 있으며, 바로 그런 기초 위에서 루카치가 총체성의 의미에 대한 보다 복잡한 논의로 들어서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총체성―카프카41)


공산당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전(全) 시기를 통틀어 루카치는 모든 모더니스트, 아방가르드(avant-garde)42) 문학에 대해 냉혹하리만큼 적대적이었다. 그것은 스탈린이나 주다노프43)에 대한 강요된 아첨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의 문화정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던 동안에 루카치는 모더니스트 문학의 데카당적이며,44) 의도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통해서 제국주의적이거나 파시스트적이라는 것을 어떤 정통 사회주의 리얼리스트만큼은 확신하게 되었다. 스탈린 사후, 헝가리 봉기 이후, 그리고 그 자신이 공산당과 정치 일선에서의 강요된 은퇴 이후 1958년의 「오해된 리얼리즘에 대하여(Wider den missverstandenen Realismus,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에서야 비로소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판단은 어느 정도의 조야한 선동적 의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프로스트(Proust), 조이스(Joyce), 카프카, 무질(Musil),45) 베케트(Becket) 등의 상상적 세계의 일반적 초상(肖像)은 다음과 같이, 즉 비정합적(incoherent) 사실성이나 감각적 인상(sense impressions)의 유형에 의한, 지난 시대 리얼리스트들의 정합적인 사회세계의 대치 ; 인간과 사회적 환경 사이의 모든 의미 있는 관계의 소멸 ; ‘성격’의 붕괴 ; 목적과 의지의 해체 ; 인간의 고립과 소외 ; 주관적 시간에 의한 객관적 시간의 대체, 내적 독백, 이야기 자체의 소멸, 알레고리46)에의 경도 등에 의한 객관적 서술과 묘사의 대체 등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루카치는 이러한 현상들을 단순히 리얼리즘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방기해 버리지는 않는다.

그는 이들 작가들의 표면적인 비(非) 리얼리즘(non-realism)이 그들의 시대, 즉 부르주아 사회의 위기, 제국주의, 파시즘 및 전쟁의 시대에 대한 진정한 예술적 체험으로부터, 말하자면 예술가의 독특한 특성인 전체성과 성실에의 직관과 요구에 반해 측량되어지는 인간의 왜곡 때문에 그들이 당하는 고통으로부터 나온다고 쓰고 있다. 모더니스트의 작품 속에서의 현실의 왜곡은 왜곡된 현실의 정직한 반영이다. 그들의 작품을 특징짓고 있는 혼돈(chaos)과 불안(Angst)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직한 초상이다. 사실상 어떠한 현대의 부르주아 리얼리즘도 혼돈과 불안을 구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특히 지식인들 사이의 체험이 불안, 구토, 고립, 자기와 타인에 대한 불신, 경멸과 자기 비하, 절망 등의 감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감정을 유발하거나 형상화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초상은 진실하지 못한 동시에 겉치레가 될 것이다.47)

모더니스트에 대한 루카치의 비판은 이들 작가들이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을 너무 직접적으로, 즉 너무 무반성적으로(unreflectively) 반영한다는 데 있다. 그들은 부르주아적 체험의 경계선 안에 머물러 있고, 따라서 자신들의 세계 전체를 바라볼 수 없다. 그는 앞의 인용문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간단하게 이것이 전체 현실이냐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묘사되어서는 안 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우리가 이 점에 매달려야만 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이들 작가들에 대한, 그리고 그가 모더니즘의 중심적인 철학적 대변인이라고 간주한 하이데거에 대한 그의 비판의 요점 중의 하나는 현대 부르주아 지식인들의 특정한 상황이 마치 보편적이고 영원한(timeless) 인간의 조건인 양 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모더니스트 예술의 “전형(the very type)”으로 간주하는 카프카에 대한 비평 속에서 그의 논지를 읽어 내려갈 수 있다.

루카치는, 카프카의 소설들의 의미를 미묘하게 분장된 사회 비평이라 해석했기 때문에 카프카를 구해 낸  몇몇 현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의 손쉬운 방법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는 사회 비평이 존재한다는 것을 시인하긴 하지만, 카프카의 존재론적 의도에 견주어 볼 때, 즉 “불안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와,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전망(vision)”이라는 보편적 인간 조건(condition humaine)의 제시와 비교해 볼 때, 그것은 그저 우연적일 따름이다. 루카치는 「심판(The Trial)」과 「성(The Castle)」의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타파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계속 간직해 나가는 초월적 권위, 초월적 의미에 대한 깊은 열망을 구현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한 판단이 루카치로 하여금 카프카는 예술가로서 아무런 중요성도 지닐 수 없다고 결론짓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카프카의 예술가적 힘과 성실성을 계속해서 증명해 나간다. 그는 그의 전망, 사건과 현실, 문장과 스타일의 모든 모습들이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가를 관찰한다. 카프카적 세계의 “숨은 존재하지 않는 신(神)”이 유령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주인공들이 기이할 정도로 진정하고 세세한 부분에서 움직이는 세계도 역시 유령인 것이다. 카프카는 “표면적 자료의 감각적 사실(the felt facts)을 단순히 환기시키는 차원을 넘어서 나아가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이러한 그리고 다른 언급들을 통해, 우리는 초기의 경우보다도 훨씬 「미학」 속에서의 루카치의 정의(定義)에 가까운 비판적 태도를 알고 있다. 카프카적 세계의 객관적 총체성은 체험된 현실의 통찰로부터, 즉 모든 부분들의 共鳴(consonance), 스타일과 구조의 통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그것은 표면적 현상의 기저를 파고든다는 점에서 현실의 세계를 반영하는 총체적인 자기 완결적 상상의 세계를 형성한다. 동시에 그것은 이러한 객관적 총체성에 상응하는, 또는 오히려 그 속에 내재한다고 할 수 있는 주관적 총체성을 창조한다. 우리의 주관성은 우리가 미적 체험에 사로잡혀 열광하기 때문에 “강화된다.” 우리의 공포, 우리의 황홀함은 카프카적 전망의 성질과 형상을 규정하는 비장의 가치들로서의 개성의 전체성에 대한, 즉 의미 있는 실존과 세계에 대한 우리의 요구를 우리가 보다 정확히 인식하게 되는 정도의 척도이다.

그러나 루카치는 카프카를 완전한 이름의 리얼리스트라고 보지 않는데, 그에게 있어 이 말은 진실하고 위대한 예술의 달성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카프카는 그의 전망이 총체적이지 못하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매개성(immediacy)에 ‘얽매어져’ 있고, 자신의 통찰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없으며, 모든 결정적 요인들(Bestimmungen)을 볼 수 없었다.

    프란츠 카프카는 현실의 면전에서 맹목적이고 황당한 불안(Angst)에 사로잡힌 이러한 상황의 고전이다. 그의 독특한 위치는 그가 이러한 기본적 체험에 대한 직접적이고 단순한 표현을 형식주의적인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추구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그 단순한 직접성 속의 기본적 취지가 미적 형식을 결정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카프카는 위대한 리얼리스트 작가 군에 속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주관적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도 매우 높은 위치에 속해 있다. 왜냐하면 그만한 정도의 독창성과 천진함, 세계의 완전한 새로움에 대한 그만한 정도의 외경(畏敬)을 지닌 채 세계를 파악하고 재생산할 수 있었던 작가들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실험적이든 고식적이든 간에 일상사(routine)가 대다수의 독자들처럼 대다수의 작가들을 지배하는 시기에 있어서 이렇듯 열광적인 자극은 광범한 영향력을 행사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작품의 강도(强度)는 그 작품이 보기 드문 공정함과 정직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상상의 세계가 그에 상응할 만큼 단순하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더욱 고양되었다. 여기서 바로 카프카의 가장 깊이 있는 독창성이 놓여있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가 진정하면 진정할수록 그는 더욱더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카프카는 이러한 불안과, 그것을 야기하는 것, 즉(이른바) 객관적 현실에 상응하는 구조와 사실성에 대해 예술적 형식을 부여하는 진정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카프카의 독창성의 예술적 기초는 새로운 형식적 기법의 고안이 아니라, 그의 사실 세계의 암시적이고 폭력적인 자기 증명(self-evidence)과 거기에 대한 주인공들의 반작용이다. 아도르노(Adorno)는 “충격을 주는 것은 끔찍한 기괴함이 아니라, 그것의 사실성(matter-of-factness)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의 모든 진정함(genuineness)48)과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카프카는 리얼리스트가 아니다. 그의 방법론과 의도는 우화적(allegorical)이고, 이런 점에서도 역시 그는 모더니즘의 대표자이다. 루카치에게 있어서 알레고리는 “존재하는 마지막 기반의 초월, 즉 인간과 현실 사이의 심연으로부터 야기되는 세계 내의 균열”이라는 전제에 의거한 미적 범주이다. “알레고리는… 이러한 측면, 즉 모든 예술 작품의 기초였고, 현재도 기초가 되고 있는 인간 실존과 인간 활동 속의 저 의미의 내재성을 거부한다.” 루카치는 조형 미술의 경우와, 아마도 내재성의 조망(outlook)이 아직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믿음을 극복하진 못했으나 그것이 어렵게 쟁취한 내재성의 철학적 지위를 포기한 현실의 세속적인 유의미성(meaningfulness)을 청산하는 걸 뜻하던 시대의 예술적 과정의 하나로서 초자연적 힘에 대한 믿음을 비난하는 이전 시대의 문학의 경우에는 알레고리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타당성을 인정한다.

그는 바로크49) 시대의 드라마에 대한 연구에 나오는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알레고리 이론을 기꺼이 인용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을 모더니스트의 견해와 방법론의 옹호로서 정당하게 이해하고 있다. 벤야민은 역사는 알레고리 속에서 “얼어붙은 태고의 풍경”으로서, “세계의 수난(the passion of the world)”으로서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죽음이 유일한 현실이다. 역사는 영원한 삶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부식(decay)의 과정으로서 보인다. 알레고리는 미(美)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찾는다. “알레고리가 사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파괴가 사물의 영역에 속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총체성의 거짓된 조화는 사라진다. 에이도스(eidos, image)50)는 사라지고, 유사성은 소멸되며, 그 속의 우주는 시들어버린다.” “萬有(everything), 즉 모든 사람들, 모든 사물들, 모든 관계들은 마음에 드는 그 어떤 것이든지 의미할 수 있다.” 따라서 알레고리의 방법은 “세속 세계”가 절대적으로, 또한 정당하게 비난받는다는 걸 의미한다고 벤야민은 말하고 있다.

특정한 생득적(生得的)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각각의 특수자는 새롭고 초월적인 가치를 획득하는 동시에, 초월적 체계에 있어서의 수준으로까지 고양된다. 루카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즉, 리얼리스틱한(진실하고 위대한) 문학에 있어서 모든 특수자는 독특하고, 사적이며, 그 자체의 오류가 없는 동시에 전형적(전체 역사적 상황과 운동에 있어서 전형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반면에, 알레고리에 있어서는 모든 특수자가 실제의 역사적 문맥으로부터 찢겨져 나와, 초월적 의미의 문맥 속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것은 현실의 복잡한 그물(網)의 일부가 되는 대신에, 그리고 그 자체가 무한정으로 복잡해지는 대신에, 공통성이 없는 항목(disparate item), 즉 암호가 된다.51)

루카치가 여기에서 단순히 모더니즘의 세계관(Weltanschauung)을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발자크, 스코트 및 톨스토이와 같은 작가들의 잘못된 세계관이 어떻게 하여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로서의 그들의 진실됨에 해를 끼치지 않고 있는가를 자주 보여 줬다. 알레고리의 가장 큰 실수는 그것이 잘못된 세계관을 구현하고 있는 예술 “형식”이라는 것이다. 알레고리 양식은 리얼리즘을 부정한다. 또한 그것을 우리들의 문맥으로 옮겨보자면, 알레고리 양식은 총체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점을 보다 자세하게 밝힌다. 그것은 알레고리의 세계가 시간, 역사, 운동, 변화하는 요소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망”이 부족하다. 이러한 한계는 카프카의 알레고리 형식에 고유한 것인데, 왜냐하면 알레고리는 특수자를 역사과정으로부터 추상하여(abstract), 그것을 초월적 절대로서 확립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상상 세계는 삶이 그 속에서 딱딱하게 응고되어 버리는 초월적 무(transcendental nothingness)의 알레고리이다. 카프카의 비현실적(unrealistic) 방법론(즉 괴기스러움과 기이함)이 아니라, 운동의 부재가 그 작품 속에서 총체성을 박탈한다. 루카치는 즈다노프에 의해 데카당트라고 비난받아왔던 또 다른 괴이한 작가 호프만(E. T. A. Hoffmann)52)의 “총체성”을 옹호하는데, 그의 환상적 세계는 “봉건적 절대주의의 왜곡으로부터 19세기초의 왜곡된 자본주의로 움직여 나가는 독일”의 정직한 반영인 것이다. 그렇지만 카프카는 자신이 받아들이는 현실을 인간의 보편적 상태의 알레고리로 바꾸어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의의를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루카치의 논리이다.

루카치가 “전망(perspective)”이란 말로써 의미하는 바는 그가 카프카와 토마스 만(Thomas Mann)53) 사이에서 끌어낸 대조에 의해 분명해진다. 만도 역시 그의 소설 속에 불안, 즉 현대인의 고립을 구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에 단호하게 남아 있으면서, 이러한 특징을 특정한 현대적 상황, 즉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변화된 상황의 특징으로서 한정짓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상황의 결과로서 사회주의 “전망,” 즉 사회주의 휴머니즘의 “전망”을 내세운다. 따라서 만의 주인공들은 아무리 특정적이라 할지라도 절대적 상황의 암호로서가 아니라 전형으로서의 보편적 중요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들은 특수한 상황의 특징적인 태도와 역할의 전형으로서 경직된 태도로 얼어붙지 않고 결단과 변화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


결론


이 글의 과정에서 나는 완전하게 처리될 수 없는 문제, 즉 결국에는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의 “세계관”의 역할과 같은 것으로 귀착되는 문제를 계속해서 침식해 왔다. 여기서는 내 스스로가 총체성이라는 개념과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바의 주된 이 점과 결점이라고 믿는 것을 요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한다.

1. 그 용어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일반 철학, 즉 포이어바흐54)적 관점에서의 인간학(anthropology)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는 완벽한 미학이다. 인간 활동의 다른 중요한 형식들과의 관계 속에서 예술의 성격과 기능이 명백히 규정된다. 이러한 종류의 포괄적 체계의 커다란 이점은 그것이 판단을 가능케 만든다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사람들은 널리 유행하는 관심과 풍조, 또는 사적(私的) 취향에 의해 좌우되어 예술과 비예술, 위대한 예술과 왜소한 예술을 안전하게 구별할 수 없다. 물론 판단의 타당성이 어느 정도까지는 일반 체계의 타당성에 달려 있다는 것이 약점이다.

2. “어느 정도까지는(to some extent)”이라고 말한 까닭은 루카치의 미학이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의 일반 강령에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주도면밀한 반응으로부터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루카치로 하여금 몇 가지 점에서 정통 마르크스주의에 도전하고 경험주의적 체험에 의해 이데올로기적 추론을 수정하게끔 이끈 것은 문학에 대한 그의 예민한 반응이었다. 아무튼 몇 가지 중요한 점에서, 그는 이러한 직접적인 미적 체험을 자신의 체계 속에(특히 서정시, 그리고 괴테의 “이피게니(Iphigenie)”와 같은 작품들) 구현시킬 수 있었다. 과거의 위대한 작품들을 끊임없이 참조하는 것 또한 그에게 있어서는 보수주의, 전통주의로의 경사, 즉 새로운 형식과 스타일에 대한 맹목성(blindness)을 조장한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약간 저질의 작품과 실험의 중요성을 과소 평가하게 만들어 사회주의자이든 부르주아든 간에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에게 냉랭한 영향력을 미치게 하였다.      

3. 만일 루카치의 사적 유물론(historical materialism) 및 미학의 일반 원칙을 받아들인다면, 그리고 “총체성” 개념에 대한 그의 일반적 의도를 받아들인다면, 그가 그 용어를 사용하는 데 중요한 결점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용어가 역사적 과거(예를 들어 그리스나 르네상스)에 달성된 영광을 의미하는 데 쓰인 경우와 같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유토피아적 요소에 대해 언급해 왔다. 루카치가 “노동의 사회적 분업”이 사라짐과 더불어 전방위적(all-sided) 인간이 다시 나타나리라고 믿을 때, 그러한 유토피아적 요소는 미래적 관점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이러한 독단이 현존하는, 또는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인 분석을 방해하고, 특히 이러한 사회 내의 거대한 조직 속에서의 개인의 위치에 대한 그 어떤 고려도 방해한다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루카치의 저작에 아주 특징적이다. 이러한 유토피아적 독단론은 총체성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의 배타적인 역사적․사회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한 그 용어를 하나의 미적 범주로 사용하는 그의 커다란 약점이기도 하다. 그가 간과해 버린 점은 예술의 존재론적 기능에 대한 적절한 관심, 즉 개인의 자기 목적․자기 완성과 관련된 예술의 의미에 대한 철저한 탐구이다. 그는 「미학」 속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몇 걸음 내디뎠고, 이제 「사회적 존재론」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전에 그는 모든 일반적 定義에 대한 마르크스의 의구와 회의주의를 공유했으며, 마르크스의 “인간은 사회 관계들의 總和이다”라는 수준에서 멈춰서는 데 만족했었다. 단지 최근의 저작인 1966년의 「대화록」 속에서만 루카치는 인간의 존재론적 정의를 암시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인간을 “반응하는 존재(a responding being),” 즉 어떤 역사적 한계 내에서 선택을 하는 존재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항상 그렇듯이 자기 완성, 즉 “전체성(wholeness)”이 사회적 진보 세력들과의 자기 동일시를 통해서, 말하자면 사회주의적 사회 목표들의 완수를 통해서 달성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는 자신의 저작 속에서, 즉 내 책 「자서전에 있어서의 구상과 진실(Design and Truth in Autobiograph」에 대하여 그가 1961년 3월 7일 내게 써 보낸 편지에서 결코 크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나도 또한 자서전의 목적에 대한 당신의 정의에 동의합니다. 여기에서 사실상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문제, 즉 인간 퍼스낼리티의 실체성, 또는 실체성의 부족이라는 문제입니다.”

개인의 이러한 자기 지향성이 예술 속에서 나타나는 정도와 형식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양하지만 그것이 문학, 예를 들어 서정시(루카치의 체계 속에서는 실제로 제외되었다)의 커다란 동기와 제재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1903년 짐멜은 “현대 생활의 가장 심각한 문제들은 사회의 초(超) 권력에 대항하여 자기 존재, 자신의 역사적 유산 및 삶의 외적 문화와 기술의 독립과 통일성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의 요구에서 발생한다”고 썼다.

루카치는 한때 자신의 스승이었던 그의 이러한 태도를 그저 사회학적으로, 즉 부르주아 사상가 또는 예술가의 진술이라고 해석하고, 이러한 갈등은 부르주아와 이데올로기의 흔적이 말살되어 버리기만 하면 사회주의 사회 속에서 완전히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현대 부르주아 및 사회주의 리얼리스트 작가들에 대한 루카치의 여러 해석들이 조악할 정도로 정치적이거나 선동가적인 특성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것은, 또한 총체성에 대한 그의 관념을 그토록 제한하고 있는 것은 개인의 이러한 자기 의도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그것은 또한 내가 생각하기로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자신의 적절한 이론을 제시하는데 실패한 근본적 원인이다. 왜냐하면 그가 외부 세계의 반영으로서의 상상력이 지닌 신비한 상상력을 정당화하고, 때로는 예술가와 사회와의 관계를 예리하게 보여 주고 있는 반면에, 개인적 실존으로부터 의미를 추출해 내려고 노력하는 한 개인으로서의 예술가는 경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려는 “내향성(inwardness)”을 고취시켜야만 한다. 또한 그런 내향성은 종종 시인들을 반사회적 태도, 형이상학적 및 신비적 믿음으로 이끌어왔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것들이 총체성의 달성을 왜곡하거나 제한하는 것이라고 맞서 싸움으로써 루카치를 동정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는 예술의 이러한 기능을 무시하거나 또는 그것을 예술에 적대적인 것으로 비난할 만한 아무 권리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의 일반 이론이 그것을 포용할 만큼 수정되고 확장될 수 있었을까? 그러나 물론 그 자신이 그렇게 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정통 마르크스주의로부터 그리고 당으로부터의 소외를 의미했었을 지도 모른다. 


각주

1) Fritz J. Raddatz, 정혜선 역, 「루카치」(서울: 중원문화사, 1984), pp. 176~210.

George Lukács(1885~1971): 헝가리의 철학자이며 문학사가. 독일철학 특히 신헤겔주의의 영향을 받아 마르크스주의에 접근하여 「역사와 계급의식(Geschichte und Klassenbewusstsein: 1923)」을 저술하였고, 헝가리 혁명이 좌절되자, 베를린, 모스크바 등지로 망명(1918~191945)하여 미학, 문학사의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1930~1931년의 소비에트 철학논쟁을 계기로 이전의 자기의 저작을 자기 비판하였다. 귀국 후에 명저 「청년 헤겔(Der Jung Hegel: 1948)」과 「이성의 파괴(Die Zerstörung der Vermnft: 1954)」는 마르크스주의 적인 사상사를 엮어보려고 시도한 것으로 주목되었으나, 1956년 헝가리 폭동시 에나기 정권을 지지한 이유로 극도의 비판을 받고 만년을 불우하게 보냈다. 그의 저서로는 칸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시기의 저작 「영혼과 형식(Die Seele und Form)」 및 「소설의 이론(Theorie des Romans)」이 있으며 만년의 저작 「미학(Ästhetik)」이 있다.(편주) 

2) G. H. R. Parkinson, 김대웅 역, 「루카치 美學思想」(서울: 문예출판사, 1986), pp. 211~245.

3) 버밍햄 대학의 독일어 교수. 「독일에서의 셰익스피어(Shakespeare in Germany)」, 「근대 독일의 성장(The Growth in Germany)」, 「독일의 질풍노도(The German Strum und Drang)」, 「독일 소설(The German Novel)」 등등을 저술했다.

4) anthropomorph: 인간의 모습을 한. 라틴어 anthromoporphísmus(神人同形論)에 기원한 말.(편주)

5 immediacy: 직접. 즉시성.(편주)

6) G. Lukács, 「Ästhetik」, Ⅰ, I. pp. 237~138.

7) Ibid., pp. 357~359.

8) Ibid., p. 461.

9) Ibid., P. 604.

10) Ibid., pp. 238~144.

11) Cleanth Brooks의 "hersey of paraphrase(부연설명은 異端이다)"와 비교해 보라.

12) Ibid., pp. 428~429.

13) Ibid., p. 533.

14) Ibid., pp. 538~534.

15) Ibid., p. 555.

16) Ibid., p. 589 여러 곳.

17) "Die revolutionären Demokraten" in 「Der russische Realismus in der Weltliteratur」, p. 86 여러 곳.

18) I. Kant에 있어서는 悟性.(편주)

19) 「Die Seele und die Formen」, p. 7.

20) I. Kant의 관점에서 보면, 영혼은 理性界(자유의지의 세계, 가상세계, 무제약), 운명은 現象界(+감성+悟性의 세계, 제약)가 될 것이다.(편주)

221 Georg Simmel(1858~1918): 독일의 사회학자(형식사회학). 신칸트학파의 철학자. 사회학에 대한 그의 접근방식은 당시 독일에서 널리 쓰이던 두 가지 방식, 즉 일회적 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기술방법과 A. Comte와 H. Spencer가 주장한 유기적 접근방식을 모두 거부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 대신으로 사회란 유형화된 상호작용의 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양한 역사적 시기와 문화적 환경 속에서 거듭하여 나타나는 이러한 상호작용들의 형식을 연구하는 것이 사회학의 임무라는 생각을 전개하였다.(편주)  

22) Hegel, 「Ästhetik」, iii. p. 239.

23) Ibid., iii. pp. 239~241.

24)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 독일의 국민적 극시인. 고전주의 예술이론의 건설자. 프랑스 혁명전의 혁명적 문학 운동인 “질풍노도(Sturm und Drang)”의 대표적인 작가로서 출발하였다. 칸트의 미학과 도덕 철학에 기초하여 그것을 발전시키는 한편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연구 결과 괴테와 더불어 고전주의 예술이론을 수립하였다.(편주)

25) Hegel, op. cit., i. p. 250ff.

26) Ibid., i. pp. 359~360.

27) Ibid., iii. p. 266.

28) 「Der Historische Roman」, p. 93, 영역판 「The Historical Novel」, pp. 93~94.

29) "Literatur und Kunst als Überbau,"Beiträge」p. 425; "Die revolution ären Demokraten," 「Der russische Realismus in der Weltliteratur」, p. 86; 「Gespräche」, pp. 24~25; 「Studies in European Realism」, p. 115.

30) 「Der Historische Roman」, pp. 146~147, 영역판 「The Historical Novel」, pp. 140~142.

31) 「Karl Marx und F. Engels als Literaturhistiriker」, p. 96.

32) 「Gespräche」, p. 45, 113. 또한 「Ästhetik」, Ⅰ, I. p. 528.

33) 「Studies in European Realism」, p. 5.

34)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 독일의 시인․극작가․역사가․질풍노도(Sturm und Drang) 운동의 혁명적 극작가로서 등장. 「群盜」, 「음모와 사랑」 등을 내어 유명해졌고, 칸트 철학을 연구하여 그의 미학, 윤리학을 발전, 괴테와 함께 고전주의 예술 이론을 확립함.

35) 「Goethe und seine Zeit」, pp. 42, 44. 영어판 「Goethe and his Age」, pp. 62, 64.

36) Sir Walter Scott(1771~1832): 소설가로서 더 많이 알려진 그는 본래 시인으로서 문학생활을 한 사람이다. “호수의 시인들”과는 달리 그는 Scotland 출신이지만 어려서부터 민요에 둘러싸여 살아온 관계로 누구보다도 민요에 관심이 많았다. 이 사실이 “호수의 시인들”과 연결 지어 주는 요소가 된다. Bishop Percy의 "Reliques"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어 그로 하여금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민요들을 수집하는데 열을 올리게 하였고, 드디어 그는 "Reliques"에 버금가는 "The Minstrelsy of Scottish Border(1802~1803)"를 출간하게 되었다. 이것은 외국 민요에 대한 관심에서 자기 고장의 민요로 관심을 돌리고 나서 그가 Scotland 남부에 풍부하게 산재해 있는 전통적인 민요들을 수집한 것인데, 편찬 기술상 결함도 많고 문제점도 적지 않았지만 사라져 가는 전통을 되살리고, 다른 곳에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보물을 보존해 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가치 있는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편주)    

37) Tory 黨: Tory는 본디 아일랜드의 왕당파 流賊의 명칭인데, 반대파가 나쁜 뜻으로 붙인 별명임. 영국의 2대 정당의 하나. 왕권과 國敎 제도를 옹호한 보수주의적 정당. 1679년 王弟 요크 公의 왕위 계승의 순서 문제로 Whig 당과 대립되어 국교파 귀족과 지주계급의 지지를 얻었으나 이어 곧 Whig 당에 압도당함. 1760년 이후 조지 3세의 어용 당화하여 근 반세기 동안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뒤에 三分되어 세력을 잃었음. 1832년 선거법 개정 이후 보수당으로 개칭하고 유력한 의회 정당의 하나로 갱생하여 근대적 의회정치를 발전시키면서 현재에 이름.(편주) 

38) dues ex machina: 급할 때 나타나 돕는, 신의 힘을 가진 인물.

39) 「Der Histirische Roman」, pp. 146~147, 영역판 「The Historical Novel」, pp. 140~142.

40) 「Gespräche」, pp. 24~25; "Literatur und Kunstals Überbau," 「Beiträge zur Geschichte der Ästhetik」, pp. 424~425.

41) Franz Kafka(1883~1924):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작가. 1906년 법학사 학위를 딴 뒤, 1908년 노동재해보험협회에 취직함. 유작에 의해 유명해졌는데,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힘. 작품은 「유형지에서」, 「심판」, 「아메리카」, 「변신」, 「성」 등이 있음.(편주)

42) avant-garde: 전위. 선두. avant-guerre: (1차 대전)전쟁전. après-guerre: 대전후.(편주)

43) Andrei Alexadrovitch Zhdanov(1896~1948): 1939년이래 러시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로서, 문화․이데올로기의 여러 문제에 적극적인 비판을 가하여, 알렉산드로프의 철학사, 쇼스타코비치와 프로코피에프 등의 음악, 발가의 경제학 등에 대한 조직적 비판의 중심이 되어 활약하였다.(편주)

44) décadent: 데카당파의 문인, 예술가. 퇴폐적이며 자포자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데카당 문학: 퇴폐문학. décadence: 19세기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 각국에 퍼진 풍조로서 퇴폐적인 문화에 미적 동기를 구하는 관능주의. 뒤에 상징주의로 발전하였음. 舊來의 전통이나 권위를 무시, 근대인의 비정상적인 자극을 구하는 욕망의 나타남이라고 할 수 있으나, 동시에 사상적인 데카당스 현상은 前時代 문화의 붕괴를 촉진하여 새로운 발전 능력을 낳는다고 하는 어느 정도 적극적인 뜻도 지니고 있음. 프랑스의 Baudelaire, Verlaine, Rimbaud, Laforgue 등과 영국의 Swinburne, Wild 등의 작품이 선구임. 퇴폐파.(편주) 

45) Rovert Musil(1880~1942): 오스트리아-독일의 소설가.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소설은 기념비적 미완성 소설 "Der Mann ohne Eigenschaften(The Man Without Quality, 1930~1943)이다.(편주)

46) allegory: 서양 어원의 의미는 “다른 것을 말함”이란 뜻. 한문 용어로는 諷喩, 또는 寓喩라 번역하나, 그냥 알레고리라고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알레고리는 “확장된 비유”라고 우선 정의할 수 있는데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인물과 행위와 배경 등 통상적인 이야기의 요소들을 다 갖추고 있는 이야기인 동시에, 그 이야기 배후에 정신적, 도덕적, 또는 역사적 의미가 전개되는 뚜렷한 이중구조를 가진 작품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서 구체적인 심상의 전개와 동시에 추상적 의미의 층이 그 배후에 동반되는 것이 의식되도록 되어진 작품이 알레고리인 것이다.(편주)

47) 「Wider den missverstandenen Realismus」, p. 85, 영역판 「The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p. 76: 이 번역은 너무 의역인데다 오역도 종종 눈에 띈다.

48) genuineness: 진짜임. 순수함.(편주)

49) baroque: 비뚤어진 진주의 뜻에서 유래. 17~18세기에 유럽,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에 유행한 회화, 건축, 문학, 음악, 장식미술의 한 양식. 명쾌하고 안정된 불변의 미를 형용하는 클래식에 대하여 감각적 효과를 노린 회화적, 극적인 動感에 넘치는 양식임. 외면 양식에 분방한 기교로서 표현 내용의 복잡성을 나타냄. 베르사유 궁전이 이 양식의 대표적인 예인데, 이 양식에서 로코코 양식으로 발전함. rococo: 프랑스의 루이 15세 시대의 건축, 장식 양식. 1723년부터 1760년경까지 프랑스 궁전을 중심으로 하여 유행하였던 것으로, 전유럽의 왕족․귀족들에게 영향을 주었음. 복잡한 소용돌이, 唐草 무늬, 꽃과 잎의 무늬 등 곡선 무늬에 淡彩와 금빛을 병용하였음.(편주)

50) Eidos(aidɔs, das), (그리스어 eĩdos) 1. [철학] 형상, 형태, 외관. 2. [철학](플라톤의) 이념, 이데아. 3. [철학](아리스토텔레스의) 질료의 반대 개념. 4. [철학](Husserl의) 본질.(편주)

51) 「Wider den missverstandenen Realismus」, pp. 41~45, (pp. 40~45); 「Ästhetik」, I, ii. pp. 727~774.

52) Ernst Theodor Amadeus Hoffmann(1776~1822): 독일 후기 로맨티시즘의 소설가. 그림, 음악에 뛰어났으며 대법원 판사도 지냄. 몽환적, 괴기적인 요소가 강했고 E. A. Poe에 영향을 미침. 「황금항아리」, 「수코양이 무르의 인생관」 등의 작품이 있음.(편주)

53) Thomas Mann(1875~1955): 독일의 작가, 평론가. 장편 「부덴부르크스家」로써 일약 문명을 떨치고, 1차대전후 「魔의 산」으로 1929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음. 이어 「요셉과 그의 형제」를 집필하였고, 나치스에 쫓겨 미국에 망명하여 「파우스트 박사」 등의 작품을 내었음. 심리분석과 문화비판을 바탕으로, 인생의 운명과 사랑을 통하여 신휴머니즘의 확립을 추구, 현대 독일의 양심을 대표하는 최대 작가로 꼽힘.(편주)

54) Ludwig Andreas Feurerbach(1804~1872): 1830년 익명으로 낸 「死 및 不死에 관한 고찰」로써 물의를 일으켜 교직에서 쫓겨난 후 「헤겔 철학 비판을 위해서」를 위시하여 헤겔 철학의 비판에 착수, 헤겔 좌파의 대표자가 됨. 헤겔에 있어서의 존재는 실은 사고에 불과하며, 그의 현상학도 실은 현상학적 논리학이라고 지적하였음.(편주)

 

참고자료

러시아 형식주의의 기본개념들-빅토르 어얼리치(Victor Erlich) / 박거용 역

기술(技術)로서의 예술-빅토르 슈클로프스키(Victor Shklovsky) / 문학과 사회연구소 역

상호 텍스트성-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 / 최현무 역

형식주의 문학논쟁-우스이 요시미(臼井吉見) / 주근옥 역